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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34화 (134/200)
  • < 군주의 유산 >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로 벽을 둘러 부조된 조각들이 벽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 치고 있었다.

    다만 너무 움직임이 느려서 얼핏 보면 멈춘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워낙 공간을 두르고 있는 벽이 길어서 저 병사들 수를 다 합하면 무려 천 명이나 되었다.

    정확히 천 명의 병사가 벽에 갇혀 있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이 공간이 과거의 잔재라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걸 시스템에 편입시키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시스템의 힘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과거의 잔재라는 것은 시스템의 힘을 갈취하는 존재였다. 그러니 이 안에는 시스템의 힘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시스템의 힘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힘이 함께 존재했는데, 그것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시스템의 힘을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그 힘 역시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어쩌면 시스템에 이곳을 편입시키면 그 힘 역시 시스템에 귀속되면서 정체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랐을 때, 시스템의 힘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힘의 흐름이나 중심을 찾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강하진은 모험을 걸어보기로 했다.

    상식적으로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바로 힘의 중심 아니겠는가.

    이 공간은 정확히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강하진이 서 있는 자리가 바로 원의 중심이었다.

    강하진은 완벽하게 감지하지 못했지만 그냥 이 자리에서 편입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시스템의 힘이 강하진의 의념에 따라 이 자리에 꽂혔다.

    강하진은 순간적으로 성공한 줄 알았다.

    ‘실패네.’

    하지만 아니었다. 이곳은 시스템의 힘이 연결된 자리이긴 했지만, 과거의 잔재를 시스템에 편입하기에는 무언가 좀 부족했다.

    강하진은 편입에 실패한 순간, 공간 내부의 공기가 변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병사들이 천천히 벽을 뚫고 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젠 조금씩 벽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물론 아주 느리긴 했지만.

    “봉인을 풀어버린 모양이네.”

    강하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엿보기 스킬을 썼다.

    [세레트로프의 전투병사]

    [레벨 : 892]

    [체력 : 1000000, 마력 : 1000000]

    [검술(P), 방패술(P), 군진(P), 돌격(A), 급속행군(A), 절대복종(P)]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저들을 가두고 있던 봉인을 시스템과 연결하면서 뭔가가 틀어졌다.

    ‘그런데 왜 저 병사들만 시스템에 편입된 거지?’

    강하진의 머릿속에 뭔가가 번쩍 떠올랐다.

    이곳에는 과거의 잔재가 두 개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저 병사들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저 병사들을 지휘하는 지휘 시스템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지휘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저 무시무시한 천 명의 병사들과 싸워야 할 테니까.

    “후우우.”

    강하진은 심호흡을 통해 급해지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럴 때일수록 서두르면 안 된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꿈틀거리며 벽을 빠져나오고 있는 병사들에게는 의도적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안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천 명의 병사들이 충분히 마음껏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드넓은 공간이 전부였다.

    강하진은 문득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 공간에서 병사가 없는 곳은 천장과 바닥이 전부였다.

    바닥을 통해 병사를 묶고 있는 봉인을 풀었으니, 이제 천장이 남은 셈이었다.

    천장에 동그랗게 새겨진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중심을 표시한 거라고 여겼는데, 상황이 이 지경이 되고 나니, 그게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이 안에 가득한 기묘한 힘 때문에 시스템의 힘을 감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여기서 상황이 더 나빠져 봐야 얼마나 나빠지겠는가.

    강하진은 천장 쪽으로 손을 뻗었다.

    분명한 시스템의 힘이 느껴졌다. 저 동그라미를 통해서도 시스템의 힘이 움직이고 있었다.

    강하진은 바로 그 힘을 시스템에 편입시켰다.

    일단은 성공적이었다. 아까 바닥을 시스템에 편입시켰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 이게 아니었나보네.”

    벽을 뚫고 나오려 몸부림치던 병사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들의 몸을 옭아매던 벽의 힘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방금 강하진이 시스템에 연결시킨 건, 저 병사들을 가두고 있던 봉인이었다.

    벽의 힘이 시스템에 편입되면서 힘이 재구축되었고, 그 사이 병사들이 벽을 빠져나온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전부 예정되어 있던 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 안에 들어온 사람이 시스템과 연결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면, 그게 누구든 방금 강하진이 한 일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시도를 할 시간이 없었다.

    뭔가를 찾을 시간도 없었고.

    다만 이 주변을 자욱하게 메우던 그 특이한 힘이 굉장히 옅어졌다는 사실이 선명히 느껴졌다.

    그러면서 시스템의 힘 또한 훨씬 선명해졌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시스템의 힘은 처음부터 천장이나 바닥, 벽에 있지 않았다. 허공에 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은 상태로 무수한 힘의 선이 교차하면서 뚜렷한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저러니 내가 못 알아차렸지.’

    강하진이 그렇게 시스템의 중심을 확인한 사이, 병사들이 지척에 다가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병사들이 가진 스킬 [군진]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만일 그것까지 있었다면 정말 싸우기 어려웠을 테니까.

    또한 병사들이 가진 패시브 스킬 [절대복종]이 쓸모없어졌다는 것도 중요했다.

    [절대복종]은 사령관이 보내는 버프의 효율을 엄청나게 높이는 스킬이었다.

    이 병사들을 지휘하는 사령관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강하진은 아공간에서 검을 꺼냈다. 그리고 검에 전격을 덧씌웠다.

    나머지 한 손에는 냉기가 휘몰아쳤다.

    꽈아아앙!

    병사들과 강하진이 강하게 격돌했다.

    * * *

    “후욱. 후욱. 후욱.”

    강하진은 거친 숨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사방을 노려봤다.

    절반의 병사를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체력과 마력이 바닥났다.

    모든 버프를 썼음에도 레벨이 892나 되는 다수의 병사들과 싸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병사들이 가진 패시브 스킬인 검술과 방패술은 정말 까다로웠다.

    강하진의 공격은 번번이 막혔고, 그 때마다 빈틈을 파고드는 검을 처리하느라 체력과 심력을 엄청나게 소모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싸우다보니 강하진도 실력이 가파르게 늘었다.

    그동안 좀 부족하다 싶었던 검술을 더욱 다듬을 수 있었고, 레벨이 높은 병사들과 싸우다 보니 레벨도 쭉쭉 올랐다.

    ‘그나저나······ 보통 병사는 아닌 줄 알았지만, 설마 생명체가 아니었을 줄이야.’

    이 병사들은 전부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목숨을 끊을 때마다 돌무더기가 되어 와르르 쏟아졌다.

    사방이 죽은 병사의 몸을 이루고 있던 돌로 가득했다.

    그것이 움직임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심지어 그렇게 무너진 돌무더기를 이룬 돌멩이들은 잘 깨지지도 않았다.

    강하진을 넓게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이 또 달려들었다.

    쿵쿵쿵!

    쉬아악!

    검이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강하진의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쩡!

    강하진은 그것을 쳐내며 남은 한 손을 휘둘렀다.

    꽈르르릉!

    사방으로 벼락이 쏟아져 나갔다.

    처음에는 검에 전격을 두르고 냉기를 보조로 썼는데, 지금은 반대로 하고 있었다.

    검격을 통해 냉기를 불어 넣어 병사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남은 한 손으로 벼락을 쏟아내서 광역 공격을 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꽈득! 후두두둑!

    병사의 심장을 꿰뚫자, 그대로 돌무더기가 되어 무너졌다.

    그 공격의 순간 다섯 개의 검이 강하진이 피할 자리까지 미리 선점하며 날아왔다.

    강하진은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그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리고 검을 교묘하게 휘둘렀다.

    꽈득! 꽈득! 꽈득!

    병사들의 목이나 팔이 툭툭 떨어졌다.

    강하진은 정신이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검을 끊임없이 휘둘렀다.

    정신을 잃는 느낌이 아니라 굉장한 고양감이 들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모든 검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감각의 범위가 차츰차츰 넓어졌다.

    이내 공간 안에 있던 모든 남은 병사들의 움직임이 머릿속에 한꺼번에 그려졌다.

    엄청난 정보량이 머릿속에 쏟아져 들어왔지만, 무리 없이 그 모든 걸 처리할 수 있었다.

    강하진은 최적의 움직임과 속도로 병사들의 급소를 찌르고 베었다.

    마치 돌로 만든 병사들 사이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내 모든 병사들이 돌무더기로 변해 바닥을 채웠다.

    그 넓은 공간에 오직 강하진 혼자 서 있었다.

    강하진은 지그시 눈을 감고 지금 이 순간을 만끽했다.

    방금 그 싸움으로 자신의 격이 한 차원 위로 올라갔다는 걸 깨달았다.

    강하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레벨을 확인해 봤더니 병사들과 싸우기 전보다 12나 올랐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강하진은 분명히 레벨로 규정할 수 없는 성장을 했다.

    그 증거로 시스템의 힘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졌다.

    강하진은 천천히 걸어 이 공간의 중심으로 향했다.

    이제 알 수 있었다. 이 공간의 중심을 만일 미리 발견했더라도 그걸 시스템에 편입시킬 수 없었다는 사실을.

    또한 지금 돌멩이로 흩어진 병사들 역시 소멸한 게 아니라 잠시 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강하진은 손을 뻗어 힘의 중심을 꽉 쥐었다.

    [군주의 유산]

    [철벽의 군주 세레트로프가 남긴 유산. 그는 다섯 개의 요새와 천 명의 병사, 병사들이 머물고 훈련할 수 있는 훈련소, 그리고 자신의 권위가 담긴 인장을 남겼다. 군주의 인정을 받아야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

    강하진은 자신이 편입시킨 과거의 잔재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주의 유산을 등록하기 전에 이 안에서 등록했던 두 개의 잔재를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세레트로프의 전투병사]

    [세레트로프가 자신의 권능으로 만든 천 명의 병사.]

    이것이 두 번째 편입시킨 잔재였다.

    [세레트로프의 훈련소]

    [세레트로프가 자신의 병사들을 위해 지은 훈련소. 병사들을 위한 훈련시설과 쉴 수 있는 막사로 구성되어있다.]

    강하진은 추가된 리스트를 확인했다.

    그것들은 각각 모든 능력치를 100씩 올려주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강하진은 방금 전까지 꽉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폈다.

    손에 반지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마지막에 군주의 유산을 시스템에 편입시킬 때 손에 들어온 반지였다.

    [철벽의 인장]

    [철벽의 군주를 상징하는 인장. 그의 권위가 담겨 있다. 정신력+200, 요새소환, 병사소환]

    굉장히 의미심장한 두 개의 스킬이 붙은 반지였다.

    [요새소환]

    [세레트로프의 다섯 요새를 소환한다. 소환된 요새는 하루 동안 유지되며, 하루에 한 번 쓸 수 있다.]

    다섯 요새를 소환한다는 말에 강하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이게 될까?

    강하진은 좀 더 깊이 그 정보를 확인해봤다.

    ‘요새 자체를 소환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에 연결된 힘만 소환하는 거였군.’

    [병사소환]

    [세레트로프의 전투병사를 소환한다. 일부 혹은 전부를 소환할 수 있다. 소환된 병사는 하루가 지난 후 훈련소로 되돌아간다. 전투병사는 반드시 훈련소에 있어야 소환이 가능하다. 소환 가능한 전투병사의 수는 레벨에 따른다. 레벨 10당 한 명 소환할 수 있다. 하루에 한 번 쓸 수 있다.]

    강하진은 설명을 확인하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레벨 10당 1명? 그럼 레벨이 1000이 되어야 고작 100명? 전부 소환하려면 필요레벨이 10000? 이게 말이 돼?’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어쨌든 자신에게 소속된 전투병사가 늘어난 셈이니까.

    역시나 전투병사의 수에 따라 증가하는 스킬 효율이 크게 늘어났다.

    천 명이나 휘하 병사가 늘어났으니 당연했다. 소환은 되지 않아도 강하진 소유의 전투병사인 건 인정되는 모양이었다.

    강하진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솔직히 많이 지쳤다. 돌아가기 전에 좀 쉬고 싶었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던 강하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대단하네.”

    이 병사의 훈련소와 다섯 요새를 만든 철벽의 군주라는 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 분명했다.

    병사의 훈련소가 다섯 요새의 지하와 연결되어 있었다.

    아까는 몰랐지만 이제 이곳의 주인이 된 이상,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머릿속에 정리되었다.

    아마 앞으로 대규모 전투를 할 일이 있을 때, 이 다섯 요새와 훈련소는 정말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전투병사를 더 늘려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는 강하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요새를 소환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전투병사를 등록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강하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바닥에 흩어진 돌멩이들이 천천히 움직여 다시 병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마 전투병사가 전부 회복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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