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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31화 (131/200)
  • < 산맥의 유적지 2 >

    특이한 유적지였다.

    일단 유적이 지하에 있었다.

    그렇다고 지상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거대한 건축물이 지상에 있고, 그 아래에 유적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지상에 있는 건축물은 아주 낮고 넓은 건물이었는데, 굉장히 넓적한 바위를 나란히 이어 붙여서 만들었기에 위에서 보면 그냥 평평한 바닥처럼 보였다.

    들어가는 입구가 여러 군데 있었는데, 유적 발굴팀의 각성자들은 그곳만 지키고 있었다.

    방어가 상당히 용이한 유적지였다.

    다만 유적 위를 덮고 있는 저 넓적한 바위에 괴물이 올라가 날뛰면 어떻게 되느냐가 관건인데, 강하진이 보기에 그리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유적 전체에 뭔가 특이한 힘이 흐르고 있었다.

    그 힘이 넓적한 바위들을 끈끈하게 연결했는데, 그 끈끈함을 쉽게 끊을 수 없을 듯했다.

    강하진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맴돌았다.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주위를 돌아다니는 괴물들이 보였고, 그 괴물들은 끊임없이 입구를 지키는 각성자들에게 달려들었다.

    괴물과 싸우는 각성자들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보아하니 거의 한계에 도달한 듯했다. 아마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결국 전부 죽을 것이다.

    강하진은 일단 입구 하나를 정했다. 가장 괴물과의 싸움이 치열한 곳이었다.

    강력한 괴물 여러 마리가 공격 중이었는데, 막는 각성자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있었다.

    거의 뚫리기 일보직전이었다.

    강하진은 그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 괴물들의 뒤를 쳤다.

    꽈르릉!

    [낙뢰]가 괴물의 머리에 꽂혔고, 그렇게 한 마리가 즉사했다.

    죽은 괴물이 있던 곳에 강하진이 파고들었다.

    어느새 강하진은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

    슈가가각!

    순식간에 강하진 주변에 있던 괴물들이 쪼개지고 잘라져 후두둑 쓰러졌다.

    입구를 지키던 각성자들이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들의 놀람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강하진이 [치료폭탄]을 쓴 것이다.

    화아악!

    강렬한 빛과 함께 그곳을 지키던 각성자들의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다들 멍하니 강하진을 바라봤다.

    “디, 디펜더스에서 나오신 겁니까?”

    무전이 가능했기에 디펜더스가 구조대를 보낼 거라는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이미 디펜더스가 도착해 유적에 들어오기 위해 전투 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들은 강하진이 디펜더스에서 보낸 선발대인 줄 알았다.

    “가디언스에서 왔습니다.”

    “가디언스? 디펜더스가 아니라요?”

    “디펜더스는 아직도 여기 들어오려고 괴물들이랑 싸우고 있습니다. 저쪽이랑 저쪽에서요.”

    강하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자신도 모르게 휙휙 쳐다본 각성자들이 다시 강하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가디언스에서도 우릴 도와주기로 하신 겁니까?”

    “그냥 혼자 개인적으로 들어온 겁니다. 가디언스는 아직 요청도 허락도 못 받은 상황이라서요.”

    각성자들의 표정이 한껏 굳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캐나다 정부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일단······ 들어오시죠.”

    각성자의 말에 강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먼저 정리 좀 하고 오겠습니다. 저러다가 다 뚫릴 거 같던데요?”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른 입구로 달려갔다.

    멀어져가는 강하진의 모습을 각성자들이 멍하니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른 괴물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아까와는 다를 것이다. 몸에 상처도 없고 위기도 지나갔으니까.

    괴물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던 그들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강하진의 버프가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그제야 가디언스의 마스터에 대한 소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의 버프를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던 유머 섞인 소문을 말이다.

    그 소문은 진짜였다.

    * * *

    주변을 한 차례 정리한 강하진은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강하진의 버프를 받은 각성자들은 달려드는 괴물을 손쉽게 처리한 후, 쉬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안쪽으로 강하진을 안내했다.

    유적 중심부에 탐사대가 모여 있었다.

    각 입구를 지키던 각성자를 전부 합하면 30명 정도였다.

    그리고 안쪽에도 30명 정도가 있었다. 정확히는 32명이었다.

    그 중 각성자는 25명이었고, 7명이 일반인이었다.

    그들 중 책임자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강하진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지미, 이 사람은?”

    지미라 불린 사람이 얼른 대답했다.

    “우릴 도와주러 온 가디언스의 마스터입니다.”

    “가디언스의 마스터? 그 전설의 버퍼라던?”

    중년 남자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레나트라고 합니다. 유적 탐사대 각성자 팀을 이끌고 있죠.”

    강하진은 레나트의 손을 잡아주었다.

    “강하진입니다. 아시다시피 가디언스의 마스터입니다. 여긴 개인적인 볼일로 왔습니다.”

    레나트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개인적인 볼일? 그게 뭔지 혹시 알 수 있겠습니까?”

    강하진이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에 관심이 좀 있어서요.”

    “여기? 이 유적을 말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구조대는 디펜더스에서 맡았으니까 제가 여기 온 건 비밀입니다.”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어딘가 악동 같은 미소였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로 대화가 이어지자 다들 긴장이 좀 풀렸는지 하나둘 다가왔다.

    그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가디언스의 마스터라고 하셨죠?”

    “맞습니다.”

    “치료 스킬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맞나요?”

    강하진은 그제야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봤다. 각성자고 일반인이고 부상이 없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다치셨군요.”

    강하진은 즉시 치료폭탄을 썼다.

    화아악!

    치료폭탄이 사람들 중심에서 터지며 모든 사람들의 상처가 말끔히 치료되었다.

    이제 숙련도가 거의 꽉 차서 치료폭탄의 반경도 넓어지고 효과도 엄청나게 좋아졌다.

    다들 놀란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그들이 놀랄 일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보급품도 다 떨어졌을 것 같아서 좀 준비해 왔습니다.”

    강하진은 아공간에서 신선한 과일과 통조림, 빵 등을 우르르 쏟아냈다.

    다들 입이 쩍 벌어졌다.

    안 그래도 식량을 비롯한 보급품이 다 떨어져서 이제 어쩌나 싶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강하진은 구세주 그 자체였다.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 양껏 드십시오. 전 유적을 좀 둘러보겠습니다.”

    다들 신선한 과일을 하나씩 집었다. 그리고 행복한 표정으로 그걸 먹었다.

    강하진이 유적을 둘러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들에게 눈앞의 행복이 훨씬 더 중요했다.

    * * *

    강하진은 유적 내부를 찬찬히 둘러봤다.

    듣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적 곳곳에 특이한 문양이 보였다.

    문자는 아니었다. 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장식에 더 가까웠다.

    강하진이 보기에는 시스템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 새겨 놓은 문양 같았다.

    문양은 군데군데 있었다.

    벽 한가운데 사람 머리만 한 문양이 새겨져 있거나, 천장에 주먹만 한 문양이 큰 문양을 이루면서 새겨져 있거나 하는 식이었다.

    ‘혹시 침식이 이뤄지고 있는 건 없나?’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건 없었다. 아마 박물관이 좀 특별한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영국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은 각각 마력 공방과 마력 제작소였다.

    그렇다면 과연 여긴 뭐 하는 곳일까?

    강하진은 문양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어쩌면 저 문양들을 기억해 놓으면 써먹을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스마트폰을 꺼내 문양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서 기록했다.

    이곳을 관리목록에 등록시킨 다음에 차근차근 연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레나트가 다가왔다.

    “뭐 하십니까?”

    강하진이 레나트를 돌아보니 표정이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았다.

    강하진이 가져온 신선한 과일과 빵, 샌드위치 등을 먹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사진으로 문양을 좀 찍고 있었습니다.”

    “그거 말고 지워진 문양도 있는데, 그 사진도 제가 보내드리겠습니다.”

    “지워진 문양이 있다고요?”

    “예. 입구가 원래 막혀 있었는데, 그 막힌 곳에 커다란 문양이 새겨져 있었거든요. 손대니까 풀썩 무너져서 깜짝 놀랐지 뭡니까. 뭐, 덕분에 안에 아주 쉽게 들어올 수 있었지만요.”

    레나트는 자신의 카메라를 가져와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확실히 문에 새겨진 문양이 여기에 있는 그 어떤 문양보다 더 크고 복잡했다.

    레나트는 카메라를 조작해 사진을 강하진의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유적에 관심이 많으신 거 같으니 나중에 확인해 보십시오. 혹시 다른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시면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심성의껏 답해드리겠습니다.”

    레나트는 강하진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강하진이 가져온 음식 때문이기도 했고, 그걸 먹으면서 각성자들과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기도 했다.

    강하진이 아니었다면 벌써 괴물들이 입구를 뚫고 들어왔을 거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이니 호의적인 것이 당연했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다.

    “강하진 씨라고 하셨나요? 유적을 구경하려고 이렇게 괴물이 득실거리는 로키 산맥에 들어오다니, 정말 유적을 보통 사랑하시는 게 아닌 모양이군요.”

    레나트가 가진 호의의 절반 정도는 방금 말한 부분 때문이었다.

    “나중에 유적이나 유물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좋겠군요.”

    레나트의 말에 강하진이 눈을 빛냈다.

    과거의 잔재를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눈앞에 나타난 셈 아닌가.

    “저야 말로 나중에 꼭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영국 박물관과 루브르에 다녀왔는데, 거기도 정말 좋더군요.”

    “오! 요즘 유물을 잔뜩 갖다 놨다는 소문만 들었는데, 거길 직접 보고 오셨다니, 정말 기대 되는군요.”

    강하진은 몇 가지 밑밥을 깔아 두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정부와 관계가 깊으니 루브르 박물관에 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 같은 것들 말이다.

    레나트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펄쩍펄쩍 뛸 정도로 좋아했다. 그걸 보고 있으니 꼭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레나트의 안내로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레나트는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이 유적지에 대한 생각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강하진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설명을 들었다.

    그건 이 유적의 중심을 찾으려는 강하진에게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제가 보기에 이 유적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여기입니다. 사실 다른 문양이나 구조를 봤을 때 여기가 중심이 되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레나트의 설명을 들으며 따라다닌 것만으로 이렇게 간단히 유적의 중심에 도착했다.

    굳이 감각을 열고 어쩌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유적을 확인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이나 정보도 잔뜩 얻었고 말이다.

    “그럼 전 이 중심지를 좀 찬찬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레나트는 얼마든지 그러라는 듯 손짓을 했다.

    유적을 구경할 때만큼은 절대 방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레나트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강하진은 유적의 중심에 서서 날카롭게 벼린 모든 감각을 활짝 열었다.

    역시나 여긴 과거의 잔재 중 하나였다.

    강하진은 감각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차곡차곡 심상에 정리하면서 과거의 잔재를 현재의 시스템에 연결했다.

    * * *

    디펜더스의 구조대를 이끄는 사람은 스티븐이라는 각성자였다.

    그는 디펜더스의 서포터가 아닌 윌리엄의 권속이었다.

    이번 구조대에 포함된 권속은 전부 윌리엄이 보냈다.

    사실 제니퍼의 권속은 이런 일에 부적합했고, 제이슨의 권속은 다른 할 일이 많았다.

    남은 건 윌리엄과 스팬서의 권속인데, 스팬서는 아직 권속을 한 명밖에 못 만들었다.

    권속 적합자를 찾기가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스팬서는 정말 까다로웠다. 셋 모두의 권속인지라 적합자도 셋 모두의 조건과 어느 정도는 비슷해야만 했다.

    “괴물의 공격이 좀 느슨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

    스티븐 옆에 있던 각성자가 달려드는 괴물 한 마리를 날려 보내며 그렇게 물었다.

    정말로 그랬다.

    괴물들을 지휘하는 게 분명한 저 거대한 괴물이 갑자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걸 기점으로 괴물들의 연계가 아까 같지 않았다. 진형도 더 이상 촘촘하지 않았고, 연계가 빠진 괴물들의 공격은 아까처럼 위협적이지 않았다.

    “슬슬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군.”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스티븐의 표정은 어두웠다.

    들어가는 건 그렇다 치고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여길 빠져나가는 건 또 다른 문제였으니까.

    게다가 거기에는 일반인도 일곱 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괴물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고 난폭하고 강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단 계획대로 해야지.

    “자, 전진한다. 느슨해진 틈을 뚫고 갈 테니까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스티븐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가진 비장의 스킬 바람폭탄을 앞으로 던졌다.

    퍼버버버벙!

    엄청난 바람이 한 점으로 뭉쳤다가 확 퍼져 나가면서 괴물들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빈틈을 통해 빠르게 돌진했다.

    괴물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만일 아까 이렇게 했다면 뒤쪽에 있던 괴물들이 그 빈자리를 메웠으리라.

    아무튼 그렇게 괴물들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디펜더스의 구조대가 유적이 있는 곳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건 스티븐이 있는 쪽만이 아니라, 다른 쪽의 구조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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