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맥의 유적지 1 >
강하진은 지금 캐나다 쪽에 있는 로키산맥에 와 있었다.
이곳에서 유적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발견된 적이 없는 양식의 유적이라는데 규모는 별로 크지 않았다.
실제로 유적도 그저 흔적만 남아 있었고, 딱히 특별한 유물 같은 것이 남아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의미 있는 유적이라고 판단해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유적에서 발견된 문양 때문이었는데, 그 문양은 던전에서 얻은 장비에 새겨진 문양과 비슷했다.
하지만 정확히 그런 문양이냐 하면 또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닮은 구석이 있을 뿐, 같은 형식의 문양은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비슷하다는 건, 다른 의미가 깃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기에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며 유적을 발굴했다.
그런데도 그것이 이렇게 정보가 되어 돌아다니는 이유는 유적지가 있는 위치 때문이었다.
그 유적은 로키산맥에서도 굉장한 험지에 있었다.
산맥에서 괴물과 싸우던 각성자들이 도망치다가 우연히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마 앞으로도 발견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캐나다 쪽에 있는 로키산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괴물의 서식지 중 하나였다.
캐나다는 광활한 영토에 비해 인구가 많지 않아서 던전의 위협에 원활히 대응하기 어려운 나라였다.
그렇기에 모든 국토를 괴물과 던전으로부터 지켜낼 수는 없었다.
캐나다는 국토의 절반 정도를 괴물에 빼앗겼다.
특히 로키산맥이 있는 곳은 이제 괴물의 서식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디언스가 적극적으로 사냥을 하고 도움을 주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캐나다였다.
또한 캐나다는 미국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나라였다.
디펜더스 역시 캐나다의 로키산맥에 상당한 전력을 투입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로키산맥을 타고 괴물들이 미국으로 내려가면 미국으로서도 골치 아플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디펜더스가 적극적으로 캐나다를 돕도록 지원하고, 자체적인 각성자 부대를 운용해 로키산맥을 항상 감시하고 혹시라도 괴물이 보이면 즉각 대응하고 있었다.
유적이 발견된 곳은 캐나다 쪽 로키산맥 깊은 곳이었다.
유적 발굴팀은 준비를 아주 철저히 하고 출발했다. 또한 다수의 강력한 각성자로 이루어진 팀을 여럿 대동하고 출발했다.
유적 발굴은 캐나다 정부의 주도로 시작했고, 거기에 세계 유수의 기업 몇 군데와 가문 몇 군데가 숟가락을 얹었다.
유적을 연구해서 뭘 얻어낼지는 아직 모르지만, 벌써부터 앞으로 얻을 것들을 나누기 위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명인혁에게 그 정보가 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이 확대되니 정보의 파편 몇 개가 흘러나왔는데, 그걸 잡아낸 것이다.
사실 이런 정보는 명인혁의 취향에는 별로 안 맞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그저 가벼운 보고서에 곁들여지는 양념 정도로 취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하진이 박물관에서 과거의 잔재를 접한 이후 제법 진지하게 부탁했기에 훨씬 적극적으로 관련된 정보를 수집했다.
명인혁이 강하진에게 보고하고 강하진이 캐나다로 출발하기 직전, 결국 일이 터졌다.
유적을 다수의 괴물이 덮친 것이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유적에서 멀지 않은 곳에 던전이 하나 있었고, 그게 터진 것이다.
던전에서 쏟아진 엄청난 수의 괴물을 유적지에서 간신히 막고 있는 중인데,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괴물의 수가 너무 많고, 강력한 개체가 여럿 섞여 있어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유적 발굴팀은 다급히 캐나다 정부에 연락해 상황을 보고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캐나나 정부는 숟가락을 올린 가문과 기업에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부랴부랴 구조대를 조직해 투입하기로 했다.
유적 발굴팀만 구하면 되기에 다수의 드론을 이용해 상황을 파악하고 수십 개의 각성자 팀을 보내고자 한 것이다.
한데 그 순간 일이 터졌다.
산맥 안에 그동안 웅크리고 있던 여러 개의 던전이 하나씩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캐나다 쪽 로키산맥 전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로키산맥에 괴물의 밀도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그러면서 미국에도 비상이 떨어졌다.
미국 쪽 로키산맥은 항상 감시의 대상이었다. 그곳에서 던전이 생기면 바로바로 닫고, 괴물이 보이면 곧장 처리했다.
그렇게 해서 깨끗하게 유지했는데, 캐나다에서 괴물들이 밀고 내려오면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미국은 엄청난 물량을 동원했다.
그러면서 유적 발굴팀 구조 작업에 차질이 생겼다.
구조대를 보내야 할 기업이나 가문의 소속이 대부분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력을 다시 미국 쪽으로 되돌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캐나다 정부의 선택은 디펜더스였다.
가디언스 쪽에도 도움을 요청하고자 했으나, 디펜더스에서 말렸다. 자신들이 완벽하게 책임지겠다고.
그들은 이번이 가디언스에게 한 방 먹여줄 찬스라고 판단했다.
물론 이걸 성공해도 가디언스를 넘어설 수는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한 걸음씩 쫓아가다보면 언젠가 넘어서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디펜더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는 걸 가디언스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캐나다 정부에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다른 시도를 할 수는 없었다.
가디언스는 평소처럼 산맥 초입, 그리고 거기서 약간 진입한 곳에 서식하는 괴물들을 처리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바빴다. 전체적으로 괴물의 밀도가 높아지는 바람에 산맥 밖으로 밀려나오는 괴물의 수도 훨씬 늘어난 것이다.
거기에 디펜더스가 다른 일을 하느라 전력이 줄어들었으니 그 하중이 가디언스에 몰렸다.
가디언스는 캐나다에 더 많은 각성자를 보냈다.
물론 그러면서 물밑으로 협상을 했다.
디펜더스와 손을 잡은 상황 자체가 괘씸했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캐나다 정부는 협상에 나선 윤경민에게 많은 것을 양보해야만 했다.
사실 안 그래도 캐나다는 가디언스에 굉장히 협조적이었다.
로키산맥이라는 골치 아픈 상황을 막아주고 있는데, 그걸 적극적으로 처리해주는 가디언스와 디펜더스에 최대한 협조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 가디언스 소속 길드원이 캐나다에 입국하거나 캐나다 내에서 무언가 일을 할 때 걸림돌이 없도록 항상 조치해주었다.
그런데도 윤경민은 거기서 뭔가를 더 뜯어냈다.
물론 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저 괘씸하니 조금만 더 이득을 보겠다는 정도였다.
그렇게 협상을 하면서 강하진이 조용히 산맥으로 들어갔다.
강하진은 괴물을 적극적으로 사냥하면서 산맥 안쪽에 있다는 유적지로 향했다.
물론 대놓고 다니는 건 아니고, [은폐]를 써서 기척과 모습을 감추고 이동했다.
그러다가 괴물이 보이면 잠깐 싸우고 다시 [은폐]를 쓰고 하는 식이었다.
‘많기도 하다.’
로키산맥에 와보는 건 처음이었다. 회귀 전에도 여기 올 일은 없었다.
그때도 가디언스가 로키산맥에 진출하긴 했지만, 거기에 가디언스의 멤버들이 직접 가지는 않았다.
서포터로만 구성된 각성자 부대를 조직해 로키산맥에 보낸 것이다.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사실 그런 자잘한 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던전에서 싸우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한데 막상 여기 와 보니, 괴물의 수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아무리 이번 일로 괴물의 밀도가 높아졌다고 해도 너무 많았다.
아마 회귀 전에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아니, 그때는 어쩌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가디언스와 디펜더스가 적극적으로 로키산맥에 전력을 투입하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오히려 양 조직이 경쟁적으로 사냥을 했기에 산맥 초입에 있는 괴물은 거의 정리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도 로키산맥 내부로 들어가니 끊임없이 괴물이 나타났다.
산맥 내부에 열린 던전은 처리할 수 없으니 그게 터지면서 계속 괴물이 수급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대로는 현상 유지만으로도 벅차다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었다.
언젠가는 산맥 내부의 던전을 닫는 특작대를 다수 조직해서 보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건 나중의 일이다.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유적 발굴팀이 남긴 흔적이나, 디펜더스의 구조대가 남긴 흔적들이 보였다.
이제 이 흔적만 따라가면 유적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명인혁으로부터 약간의 정보를 받긴 했지만, 정확한 유적의 위치까지 알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먼저 간 사람들이 있으니 쉽게 유적을 찾아갈 수 있었다.
강하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유적에서 얻어야 할 건 과거의 잔재뿐이었다.
만일 그 유적이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면, 그냥 돌아 나와야 한다.
그랬을 때, 사냥이라도 많이 해두면 시간낭비는 안 할 것 아닌가.
느긋하게 이동했지만, 한가하지는 않았다.
괴물이 정말 끊임없이 나타났으니까.
강하진은 유적 근처에 도착할 무렵, 결국 레벨을 하나 올렸다.
준비해 간 아공간 몇 개가 괴물의 사체로 꽉 찼고.
유적에 다가갈수록 괴물의 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멀리서 전투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하진은 조금 더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한창 괴물들과 싸우는 다수의 각성자들이 보였다.
구조대가 유적을 둘러싼 괴물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여유롭게 왔는데도 아직 디펜더스 구조대가 유적에 들어가지도 못한 것이다.
‘이건······ 좀 의외인데?’
강하진은 [은폐]를 써서 모습을 감춘 후, 상황을 좀 더 유심히 살펴봤다.
디펜더스에서는 제이슨이나 윌리엄 같은 진짜 멤버들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강력한 각성자들로 구조대를 구성했다.
수도 많았다. 저기서 싸우는 자들만 해도 50명이나 되었으니까.
저들이 전부가 아니다. 싸우는 소리가 다른 곳에서도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아마 몇 군데로 나눠서 유적지로 진입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강하진은 그들의 정보를 하나하나 살펴봤다.
‘일곱.’
정보 확인이 안 되는 사람이 일곱 명이나 섞여 있었다.
다른 무리가 또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와 비슷한 수가 다른 곳에 또 있다는 뜻이다.
확실히 그들이 다른 각성자들보다 더 강했다. 강한 것도 강한 거지만 전투에 능했다.
그런데도 괴물 무리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건, 그들을 막고 있는 특이한 괴물 때문이었다.
커다란 뿔이 머리에 잔뜩 난 거대한 괴물이었는데, 그 괴물을 중심으로 다른 괴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그 괴물이 다른 괴물들을 지휘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강하진은 괴물의 정보를 확인했다.
[산맥의 지배자]
[레벨 : 999]
[체력 : 1500000, 마력 : 500000]
[철벽방어(P), 지배(P), 민첩상승(A), 체력상승(A), 상처치료(A), 마력전달(A), 고속마력흡수(P)]
깜짝 놀랄 정도로 놀라운 능력이었다.
일단 레벨이 999면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첫 번째 한계레벨이 1000이니 말이다.
더구나 체력과 마력이 엄청나다. 거기에 철벽방어라는 패시브 스킬은 물리 방어와 마력 방어 모두를 큰 폭으로 높여주는 스킬이었다.
지배라는 스킬이 아마 주변 괴물들을 지휘하는 스킬이 분명했다.
또한 놀랍게도 저 괴물은 버프와 치료 스킬을 갖고 있었다. 강하진처럼 말이다.
물론 강하진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놀라운 건, 주변 괴물들에게 마력까지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마력은 고속으로 회복하면서 말이다.
‘저러니 못 뚫고 지지부진하지.’
아마 저대로라면 아무리 디펜더스의 각성자들이 강력해도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괴물이 여기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산맥 전체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소란이 계속되면 결국 다른 괴물들이 몰려올 테니까.
강하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용히 움직였다.
일단 유적지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저렇게 디펜더스가 이목을 다 끌어주고 있으니 뭘 하든 편하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빠르고 은밀하게 이동한 강하진이 아무도 모르게 유적지 안으로 스며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