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약 >
TV에서는 한창 디펜더스의 기자회견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벌써 몇 번째 재방송을 해주는지 모른다.
정말 작정하고 밀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가디언스도 거기에 맞불을 놓듯 언론 플레이 중이었다.
여론은 가디언스의 우세였다.
아무리 언론 플레이를 해도 애초에 쌓아온 성과가 달랐으니까.
디펜더스의 멤버들은 하나하나 유명하긴 했지만, 저 중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제대로 거둔 사람은 제이슨과 제니퍼뿐이었다.
그나마 제니퍼는 괴물과의 싸움보다는 미모로 더 유명했으니 실질적으로 던전과 관계되어 지구를 구한다는 이미지에 맞는 사람은 제이슨뿐이었다.
반면 가디언스는 그동안 무수한 성과를 거둬왔다. 또한 그 때마다 확실히 언론을 움직여 사람들의 머릿속에 제대로 기억되었다.
앞으로도 아마 계속 신경전을 벌이고 여론전을 벌여야 할 것이다.
분명히 그럴 거라고 여겼다.
* * *
가디언스의 회의실, 강하진과 윤경민, 명인혁이 원탁에 둘러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디펜더스가 여론 조성을 중지했다고?”
“네. 솔직히 저도 좀 당황스럽습니다.”
명인혁의 말에 강하진이 눈을 번득였다.
디펜더스는 가디언스가 두 번째 재앙에서 활약했던 나라에 적극적인 여론 조성을 해왔다.
가디언스를 교묘히 깎아내리고 그 대안으로 디펜더스라는 존재를 부각시키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가디언스에서도 대응해서 여론을 움직였고.
한데 그런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명인혁도 당분간 분위기를 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가지 않고 관망 중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윤경민이 명쾌히 대답했다.
“어쩌긴 뭘 어째. 거기서 안 하면 우리도 그만 둬야지.”
강하진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계속 지켜만 봐. 나중에 혹시 변화가 생기면 바로 보고하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번엔 윤경민 차례였다.
“디펜더스가 우리 가디언스와 선의의 경쟁자 포지션을 취하고 여론몰이 중입니다.”
“그것도 좀 의외네요. 지금 상황으로는 우리 상대가 될 수 없는데.”
“아무래도 어차피 상대가 안 되니 묻어가는 전략으로 바꾼 것 같습니다.”
강하진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돌아가는 정황을 보면 묻어가는 게 맞다.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이슨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제이슨뿐 아니라 스팬서도 마찬가지였고, 윌리엄도 그런 사람이었다.
제니퍼는 확실히 모르지만, 아마 이런 것 자체에 별 관심을 안 뒀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디펜더스가 가디언스에 묻어간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 까다로워졌습니다.”
“까다롭다고요?”
“네. 아무래도 그놈들이 사업 쪽으로 집중하려는 모양입니다.”
“사업이라······.”
확실히 그들이 사업에 집중하면 그 저력은 굉장할 것이다.
스팬서도 그렇고 윌리엄도 그렇고 강력한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니까.
특히 스팬서는 가문의 힘까지 동원하면 얼마나 많은 돈을 끌어올 수 있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대단했다.
제이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당한 규모의 투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알짜 회사에 다수 투자해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다.
그런 놈들이니만큼 사업에 집중한다면 파괴력이 오히려 사냥에 집중할 때보다 훨씬 강력할 것이다.
“우리 쪽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죠?”
“영향을 미친다기 보다는······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투자요?”
“우리 쪽과 선이 닿은 기업이나 조직들에 투자를 해서 지분을 확보 중입니다.”
강하진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지분을 확보해서 우리에게 뭔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걸까요?”
“글쎄요. 솔직히 아직 그들의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설마 가디언스에 대한 투자 제안도 들어왔습니까?”
“네. 아주 통 크게 지르더군요.”
윤경민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단호히 거절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한동안 큭큭 웃던 윤경민이 말을 이었다.
“아주 당황하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제안한 금액이 무려 10억 달러였거든요.”
10억 달러면 1조가 넘는 금액이다. 그 정도 액수를 걷어찼으니 당황할 수밖에.
하지만 생각해보면 거절하는 게 당연하다.
지금 가디언스는 굉장히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이 집중되어 있었다.
일단 아공간 사업만 해도 향후 얼마나 성장할지 가늠이 안 되는 사업 아닌가.
거기에 명품 이미지가 박힌 장비에 대한 판매도 만만치 않다.
가디언스는 일반적인 다른 길드와는 구조가 좀 달랐다.
보통 아무리 길드 마스터라고 해도 길드의 지분을 100% 갖는 경우는 없었다.
대기업 소속 길드처럼 기형적이지 않는 한 그랬다.
심지어 대기업에서 만든 길드조차 한 사람이 100% 지분을 소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디언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애초에 강하진이 아니면 성립할 수 없는 길드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사실 강하진이 의도한 바도 좀 있었고.
어쨌든 이런 대단한 사업이 얽힌 가디언스를 고작 10억 달러에 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이 10억 달러에 요구한 지분이 10%였습니다. 그러니 당황했겠죠.”
“아무튼 디펜더스가 전략을 수정한 건 확실하네요.”
“네. 맞습니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릴 키워서 흡수하겠다는 건데······.”
“어불성설이죠. 이런 식으로 가면 결국 역으로 우리가 디펜더스를 흡수할 수도 있게 될 겁니다.”
강하진도 같은 생각이다.
가디언스의 저력은 그 정도로 대단했다. 그리고 아마 디펜더스에서도 그 정도는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일을 시도한 걸까?
“계속 상황을 주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다른 방식으로라도 지분을 노리고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다른 방식으로 지분을 노린다고요?”
“예를 들면 로비를 통해 각성자 길드에 관한 새로운 법을 통과시킨다거나.”
윤경민이 눈을 크게 뜨고 강하진을 바라봤다.
확실히 가능성이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가디언스를 찢어먹겠다고 덤비는 놈들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윤경민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어렸다.
“사람들이······ 굉장히 큰 오해를 하고 있군요.”
“애초에 그렇게 보이도록 조장을 했으니까요.”
사실 사업과 가디언스는 전혀 별개였다.
사업은 강하진이 하는 것이고, 가디언스는 그걸 받아 처리해주기만 할 뿐이었다.
밖에서 보기엔 모든 걸 가디언스가 처리하는 것 같지만, 사실 안을 잘 들여다보고 분석해보면 전혀 별개로 움직인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디언스는 그저 자금이나 물품이 거쳐 가는 통로일 뿐이었다. 언제 사라져도 전혀 상관이 없는.
그 과정에서 가디언스에 떨어지는 수수료를 통해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굳이 이렇게 한 것은 혹시 누군가 노릴 경우 헛된 시간을 가디언스에 쏟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대응할 시간을 벌어야 하니까.
“그 모든 걸 알고도 가디언스의 지분을 확보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강하진의 말에 윤경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알고도 지분을 확보한다고요? 대체 왜요?”
“길드원과 명성이 남으니까요.”
“그거야 가디언스의 명성이지 디펜더스의 명성이 아니잖습니까.”
“아무튼 지속적으로 파악해 주세요.”
“뭐······ 그러죠. 어차피 그 일을 주로 하는 건 제가 아니겠지만요.”
윤경민이 그렇게 말하며 옆에 앉은 명인혁을 힐끗 쳐다봤다.
명인혁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껏 굳은 표정으로 결연히 말했다.
“제가 바늘 끝만 한 이상까지 모조리 찾아내겠습니다.”
“아주 든든하네. 그럼 그건 인혁이한테 다 맡기는 걸로 하고······.”
윤경민이 씨익 웃으며 강하진을 바라봤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린 우리대로 전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죠.”
“지금 사방에서 빗발치듯 오는 요청이 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강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공간 감지 장치겠죠?”
“맞습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한 건 아공간 판매를 시작할 때 미리 언급해두었다. 물론 지나가듯 살짝 한 것에 불과했지만, 아공간이 어떤 식으로 쓰일 수 있는지 조금만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결코 대충 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아공간은 쓰는 사람에 따라 악용될 소지가 무궁무진했다.
그러니 중요한 공간에 아공간을 감지할 수 있는 장비를 설치해두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회귀 전에도 이에 관한 여러 문제가 터졌고, 그로 인해 많은 연구진과 함께 아공간 감지장비를 제작했다.
“가격을 아주 비싸게 책정했는데도 얼른 팔아달라고 다들 난리입니다.”
윤경민이 그렇게 말하며 마치 악당처럼 나직하게 웃었다.
저게 필요한 자들은 보통 권력자이거나 재력가, 혹은 국가 조직일 것이다.
그들의 장점은 지불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고.
윤경민은 그들을 뜯어먹을 생각에 신이 난 모양인지, 희희낙락한 얼굴로 명인혁의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유통망도 확장할 건데, 그것 역시 우리 인혁이가 아주 잘 도와줄 겁니다. 그렇지?”
“예. 준비는 다 마쳤습니다. 시기만 조율하면 됩니다.”
“그래, 그래. 내가 아주 든든하다. 보셨죠? 확장은 저희한테 맡기시면 됩니다. 초고속 성장이 뭔지 보여드리죠.”
강하진은 그보다는 잠을 좀 더 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꿀꺽 삼켰다.
저렇게 행복해 하는데, 굳이 초를 칠 필요는 없었으니까.
차라리 건강을 생각해서 뭔가 해줄 만한 걸 찾는 게 더 나을 듯했다.
“기대하겠습니다.”
윤경민과 명인혁이 그 말에 씨익 웃었다.
왠지 두 사람이 형제처럼 닮아 보였다.
* * *
윤경민과 명인혁은 장담한 대로 가디언스의 사업을 크게 확장시켰다.
일단 세계 주요 국가에 안정적으로 유통망을 구축했다.
명품 장비만을 판매하는 전략이었기에 A-마켓의 도움과 정아연의 개인적인 도움까지 받아서 이제 가디언스만의 독자적인 유통망을 확보했다.
당연히 아공간도 자체 유통망을 통해 판매했다.
또한 강하진이 공간 속성 마석을 골라내면서 따로 분류한 속성 마석들을 이용해 유동훈이 뛰어난 장비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속성 마석이 추가되면서 장비에 속성과 관계된 능력이 붙은 것이다.
최근 강하진의 지시로 영입한 인재들이 거기에 달라붙으며 가디언스의 성장이 급격히 가속되었다.
강하진이 영입한 인재 중에는 나중에 마석 연구의 권위자가 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무한한 지원이 뒷받침되자, 그 인재들이 결과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마석이 연구되었고, 그걸 이용한 시제품들이 무수히 등장했다.
마석을 이용한 에너지 연구는 이미 상용화 된 상태였다.
에너지 혁명이 빠르게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 에너지 기업들과 가문들이 주도했다.
한데 가디언스가 거기에 끼어든 것이다.
가디언스가 구축한 세계의 구원자라는 명성이 있었기에 에너지 카르텔에서도 섣불리 견제하거나 공격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윤경민은 그 빈틈을 이용해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가디언스는 높이 도약할 모든 준비를 갖췄다.
그러는 사이, 강하진을 비롯한 가디언스의 무수한 각성자들은 각자 레벨업에 매진했다.
그러면서 인원을 나눠, 던전 공습을 막지 못해 아직까지 괴물 때문에 신음하는 나라에 파견해 적극적으로 도왔다.
가디언스가 도약하는 동안 디펜더스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디펜더스의 저력은 상당했다.
아마 그들이 준비한 걸 제대로 터트리고 시작했으면 오히려 지금의 가디언스보다 더 대단한 성과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가디언스를 쫓아가는 후발주자일 뿐이었다.
조금씩 경쟁자로 포장되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세계가 조금씩 안정되어갔다.
이 상황이 조금만 더 이어지면 과거 첫 번째 재앙이 일어나기 전보다 더 호황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들 희망을 꿈꿨다.
그리고 강하진은 새로운 정보 하나를 얻었다.
어쩌면 과거의 잔재일지 모를 유적에 관한 정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