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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22화 (122/200)
  • < 기습 1 >

    강하진은 멕시코의 괴물들이 날뛰는 곳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페드로라는 멕시코 각성자 협회의 직원이었다.

    특이하게도 그는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이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멕시코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각성자란 각성자는 싹 끌어 모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타국에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었지만, 어느 나라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가디언스도 도움을 뒤로 미뤘을 정도니까.

    가디언스도 사람이 모자라니 어쩔 수 없었다. 멕시코는 후순위로 밀려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멕시코에는 가디언스의 마스터인 강하진이 이렇게 직접 왔다.

    페드로는 처음에 강하진이 온다고 했을 때 정말 기뻤다.

    최근 강하진에 대한 소문이 급격히 양산되고 있었다.

    특히 강하진이 뿌리는 버프에 대한 얘기는 마치 전설처럼 포장되어서 퍼져 나갔다.

    사실 페드로 역시 강하진에 대한 소문을 반도 안 믿었다.

    하지만 그 반만 해도 강하진이 나서는 것만으로 멕시코의 상황을 대번에 호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희망을 가졌다.

    한데 그 희망을 뭉개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젠장. 말을 안 들을 수도 없고.’

    강하진은 멕시코를 구하기 위해 왔지만, 젝스터는 자신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이제 거의 도착해 갑니다.”

    페드로는 룸미러로 강하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괴물이 장악한 도시가 나타난다. 아마 멕시코의 각성자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것이다.

    물론 도시를 포위하는 일은 엄두도 못 낸다.

    그저 도시 안에서 군데군데 뭉쳐서 몰려오는 괴물을 힘겹게 막아내는 게 전부였다.

    군대도 당연히 동원했다. 하지만 도시를 촘촘하게 포위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 느슨한 포위망을 구축했다.

    군대가 할 일은 괴물이 도시 밖으로 뛰쳐나왔을 때, 약간이나마 발을 묶는 정도였다.

    그리고 대기 중인 각성자 부대가 도시 내부에 있는 각성자 부대와 교대할 때 포격을 쏟아서 약간의 틈을 만드는 정도가 전부였다.

    각성자가 대거 투입되어 있기에 괴물들이 도시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하지만 그것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각성자의 피해가 점점 누적되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결국 괴물들이 도시 밖으로 뛰쳐나올 것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포위망을 구축한 군대를 먹잇감으로 삼킬 것이다.

    그 다음에는 멕시코 전역으로 흩어져 살육을 벌이기 시작할 것이고.

    그 와중에 던전 몇 개만 터지면 멕시코는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의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페드로의 표정과 마음이 무거워졌다.

    페드로는 이번 일이 끝나면 미국으로 갈 것이다.

    이미 젝스터와는 얘기가 다 끝났다.

    가족을 전부 데리고 미국에 갈 수 있게 조치해 주겠다고 했다.

    가족을 위해 멕시코를 괴물의 아가리에 집어넣은 셈이었다. 무거운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표정이 안 좋아 보입니다.”

    강하진의 말에 페드로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괜찮을 겁니다. 이보다 더한 상황도 해결했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이탈리아 쪽이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아, 그, 그렇습니까?”

    저런 말을 들으니 죄책감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강하진은 그런 페드로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사실 멕시코에 도착한 순간부터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공기 자체가 불길했다.

    그리고 분명히 디펜더스에서 뭔가 수작을 부릴 거라 여겼는데 아직까지 조용한 것도 수상했다.

    사실 강하진은 러시아 던전 안에서 뭔가 일이 터질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대비를 제법 철저히 했다.

    한데 던전이 터질 때까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강하진의 신경을 더 건드렸다.

    아직 재앙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디펜더스에서 기회를 노린다면 재앙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지금이 최적의 시기였다.

    협회의 직원이라는 자를 슬쩍 떠봤는데, 왠지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강하진의 직감이 경고 했다. 이 사람이 디펜더스와 연결되어 있다고.

    그렇다면 이 차도 믿을 수 없다.

    물론 차를 폭발시키더라도 강하진은 충분히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니, 아예 안 다치고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지금 강하진의 힘은 웬만한 각성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러시아 던전을 겪으면서 레벨도 급등했다.

    조만간 500레벨을 넘을 것 같았다. 아마 이번 재앙을 다 정리하고 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차를 폭발시키고 숨어서 기관총을 쏘면 훨씬 상대하기가 수월하다.

    오히려 더 무서운 건, 은밀히 숨어서 조용히 내지르는 칼질이었다.

    예전 최영진이 썼던 그림자 관련 스킬처럼 암습에 특화된 스킬을 써서 기습하는 것이 가장 골치 아프다.

    ‘멕시코에서 일을 벌일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괴물과 싸우고 있을 때 일이 터질 것 같았다.

    역시나 미리 대비하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마침 차가 멈췄다. 강하진은 차에서 내렸다.

    좀 떨어진 곳에 탱크와 포를 중심으로 진지를 구축한 군대가 보였다.

    “일단 군대에 신고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시죠.”

    페드로는 자신이 할 일에 충실했다.

    차에서 내리면서 미리 신호를 보냈다. 이제 자기 할 일은 끝났다. 군대에 말해서 강하진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돌아가면 끝이다.

    페드로는 중간에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강하진이 묘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페드로는 슬그머니 그 시선을 피했다.

    “후우. 저 미친 괴물들이 몽땅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강하진이 씨익 웃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페드로는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어가는 강하진의 뒷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 * *

    강하진은 군대의 포위망을 지나쳐 도시 쪽으로 걸어갔다.

    때맞춰 도시 내부에 있는 각성자 부대와 교대하기 위해 나선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강하진과 함께 도시 쪽으로 이동했다.

    강하진은 굳이 서두르지 않았다. 언제 어떤 식으로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니 되도록 차분하고 여유 있게 대처해야 한다.

    어쩌면 함께 움직이는 이 각성자 부대에도 디펜더스의 손길이 닿은 자가 있을지 모른다.

    아니,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강하진을 습격하는 데 손을 보탤 것이고.

    강하진은 그 모든 상황을 고려하느라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걷는 데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함께 가는 각성자들은 좀 달랐다.

    그들은 강하진과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즐겼다.

    강하진은 각성자들 사이에서는 굉장한 유명인이었다.

    슬슬 강하진의 버프를 경험한 각성자들이 여기저기 전하는 말이 제법 퍼진 상태였다.

    한 번 받으면 노예가 된다느니, 중독성 때문에 차라리 안 받고 버티는 게 낫다느니, 죽어도 좋으니 한 번만 더 받아봤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돌고 있었다.

    좀 이상한 방향으로 과장된 경향이 약간 있긴 했지만 강하진은 그걸 굳이 조절하지 않았다.

    지금은 영향력을 한껏 펼칠 때였다.

    그래야 조만간 시작할 디펜더스를 좀 더 제대로 가로막을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좀 의외이긴 했다.

    이번 재앙을 통해 디펜더스가 나서서 존재감을 떨칠 거라고 예상했는데, 디펜더스는 아직도 조용했으니까.

    ‘어쩌면······ 날 먼저 제거한 다음 차근차근 입지를 다지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강하진을 제거하는 데 성공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가디언스는 강하진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길드였다.

    그러니 강하진이 사라지면 구심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즉, 디펜더스가 흡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아마 그들이 강하진을 해치웠다는 증거만 남기지 않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물론 강하진은 절대 당할 생각이 없었지만.

    “저기, 도시에 들어가면 우리한테도 버프를 줄 겁니까?”

    각성자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사실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올 줄 알았는데, 다들 굉장히 조심하고 있었다.

    “그럴 겁니다.”

    강하진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각성자 무리를 찬찬히 훑어봤다.

    자연스럽게 엿보기 스킬을 발동했고, 그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세계 평균에 해당하는 각성자들이었다.

    아마 현재 도시 내부에 있는 각성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그러니 이렇게 계속 지지부진한 교착상태가 이어지고, 그나마도 위태로운 것이다.

    특별한 강자가 몇 명만 끼어 있어도 전황이 지금과는 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강하진은 이곳에 있는 모든 각성자를 특별한 강자로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강하진이 무서운 것이다.

    어느새 도시에 도착했다.

    채 도시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일단의 괴물 무리가 달려들었다.

    “벌써 시작이군. 왠지 괴물이 더 늘어난 거 같지 않아?”

    “글쎄.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같은 게 아니라 늘어났을 것이다.

    괴물들은 상황이 맞아 떨어지면 번식을 하니까.

    그냥 일반적인 짐승들이 번식하는 걸 생각하면 안 된다. 어떤 괴물은 분열을 통해 순식간에 개체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나기도 하니까.

    달려드는 괴물의 수는 30마리 정도였다. 모습은 사자에 가까웠는데, 특이하게도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다.

    사자 머리와 몸통에 인간의 팔다리가 달려 있다고 할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온몸의 근육이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모습이 굉장히 아름다우면서도 위협적이었다.

    현재 강하진과 함께 있는 각성자의 수는 70명. 그들은 촘촘히 전투 대형을 갖췄다.

    일단 원거리 능력자가 각종 스킬을 쏟아냈다.

    불꽃과 바람, 얼음과 강철로 이루어진 화살들이 무수히 쏟아져 괴물을 덮쳤다.

    콰과과과광!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괴물의 돌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탱커다.

    일행의 절반이 탱커로 이루어져 있었다.

    도시 내에서 일정 지역을 점거하고 버티려면 탱커가 가장 중요했다.

    멕시코의 모든 각성자가 이 도시에만 매달릴 수 없기에 탱커 위주로 각성자를 모아 도시에 투입한 것이다.

    꽈과광!

    폭음과 함께 괴물 무리의 돌진이 막혔다.

    아직 도시에는 채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괴물에 발이 묶이면 곤란하다.

    강하진은 일단 버프부터 뿌렸다.

    “어헉!”

    “이게 바로!”

    각성자들이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힘을 냈다.

    괴물들이 단숨에 밀려나고,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각성자들은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스킬을 쏟아내 괴물을 처리해 버렸다.

    순식간에 괴물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도시 쪽에서 괴물 무리가 또 나타나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쪽 멀리서 꼬리를 물고 달려오는 괴물 무리가 어렴풋이 보였다.

    기나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 * *

    강하진은 각성자 무리와 함께 행동했다.

    현재의 각성자들은 도시 내에 있는 다른 각성자 부대와 교대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그러니 교대를 기다리는 각성자 부대가 있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가는 도중 아직 교대 시기가 되지 않은 각성자 부대를 몇 번이나 만났다.

    물론 거리는 제법 떨어져 있었지만, 괴물들이 잔뜩 모여 있어서 위치를 확인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강하진은 그걸 볼 때마다 버프가 닿는 사정거리까지 다가가 모든 버프를 걸어주고 돌아왔다. 치료폭탄은 덤이었다.

    일단 버프를 받은 각성자 무리는 단숨에 몰려든 괴물을 처리해 버렸다.

    다른 괴물이 몰려오기 전에 휴식을 취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만나는 각성자 부대마다 버프를 걸어주다 보니 이동 속도가 약간 늦어졌다.

    하지만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어느새 교대할 각성자 부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원래는 이렇게 만나면 도시 외곽에 대기 중인 군대에서 포격을 통해 괴물 무리를 흩어 놓는다.

    정밀한 사격을 이용해 괴물 무리의 바깥쪽을 타격하고, 그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또 포탄을 쏟아서 괴물을 그쪽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포격이 각성자들을 다치게 해선 안 되기에 굉장히 정밀한 사격 기술이 필요했는데, 멕시코의 군대는 그걸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지금까지는 그랬지만, 강하진이 합류한 이상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강하진의 버프를 받아 지금 싸우고 있는 괴물들을 싹 쓸어버리면 되니까.

    아마 지금까지 중 가장 여유로운 교대가 될 거라고 다들 기대했다.

    강하진이 막 버프를 주려는 순간, 포탄들이 하늘을 까맣게 메웠다.

    분명히 포를 쏘지 말라고 무전을 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포탄을 발사한 것이다.

    한데 지금까지와 달리 포탄의 수가 너무 많았다.

    강하진은 그걸 보며 디펜더스가 뭘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미친놈들.’

    저게 여기 다 떨어지면 강하진뿐 아니라 이곳에 있는 각성자들도 모두 당한다.

    괴물은 오히려 살아남을 공산이 컸다. 애초에 저런 화약 공격이나 물리 공격에 강한 놈들이니까.

    아마 살아남은 괴물들이 빈사 상태에 빠진 각성자들을 공격해 이곳은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이내 포탄이 그곳에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꽈과과과과과광!

    거대한 불꽃과 화염, 그리고 소음과 연기, 흙먼지가 자욱하게 사방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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