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재앙 2 >
미하일은 질린 눈으로 저 멀리 펼쳐진 괴물 무리를 내려다봤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높은 언덕 위였다. 덕분에 시야가 확 트여서 멀리까지 확인이 가능했다.
문제는 시야가 닿는 곳에 온통 괴물뿐이라는 점이었다.
“어······ 아무리 봐도 수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시간이었다.
강하진은 처음에는 걷다가 이내 뛰기 시작했는데, 러시아의 약한 각성자들이 딱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달렸다.
그렇게 2시간을 달리니 다들 퍼졌는데,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이 아공간에서 꺼내 나눠준 포션을 먹고 다시 쌩쌩해졌다.
바닥났던 체력을 쫙 올려주는 포션이었다. 더불어 정신도 약간 고양되었고.
한데 언덕 위에서 괴물 무리를 내려다보고 나니,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에 보이는 괴물의 수만 해도 수만 마리는 되는 듯했다.
설마 강하진이 말했던 거대한 규모의 괴물 무리가 이 정도 규모를 말하는 건지는 몰랐다.
“우리가······ 저 괴물들이랑 싸울 수 있겠습니까?”
미하일의 말에 강하진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비교적 규모가 작으니까 별로 어렵지 않을 겁니다.”
“예? 저게 작은 규모라고요?”
“입구에서 아직 가까운 곳이니까요. 더 깊이 들어가면 열 배가 넘는 규모의 괴물 무리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미하일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열 배라고요? 저기 보이는 괴물만 해도 수만 마리는 될 것 같은데······ 우리는 고작 1100명뿐입니다.”
산술적으로 한 명당 수십 마리의 괴물을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강한 각성자는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1100명의 각성자 중에는 저 아래에 있는 괴물 한 마리와 싸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각성자도 잔뜩 섞여 있었다.
“싸우다보면 레벨도 올라갈 테고 경험도 쌓일 테니 괜찮습니다.”
절대 안 그럴 거 같았지만, 미하일은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강하진의 눈이 너무나도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순간적으로 강하진의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자, 그럼 슬슬 시작하죠.”
강하진의 말에 가디언스는 익숙하게 전투 준비를 했다. 각자 무기를 뽑고, 돌진 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그 위에 각종 버프가 쏟아졌다.
강하진의 버프는 러시아 각성자 부대에도 공평하게 쏟아졌다.
그동안 여러 차례 강화된 데다가 숙련도까지 잔뜩 올라서 엄청난 효율을 자랑하는 강하진의 버프는 받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대단했다.
“이, 이건······!”
특히 미하일의 놀람은 엄청났다.
그는 버프를 받은 순간, 이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시간 없으니 얼른 가죠.”
가디언스가 먼저 돌진을 시작하자, 미하일이 얼결에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천 명에 달하는 러시아 각성자들이 잔뜩 흥분해서 달려갔다.
그들은 온몸에 끓어오르는 힘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내 괴물 무리와 격돌했다.
반쯤 기습에 가까운 공격이었기에 괴물 무리의 일각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크워어어어어어!”
곳곳에서 포효가 쏟아졌다. 괴물들이 각성자들의 존재를 감지하고 달려들었다.
그때부터가 진짜 싸움의 시작이었다.
미하일은 정신없이 괴물과 싸웠다.
버프가 한 순간도 끊이지 않게 계속 들어왔기에 싸움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일단 싸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자신이 러시아 각성자 부대를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해 버렸다.
그저 전투에 온몸을 맡겨 버렸다.
몸 곳곳에서 피가 튀었다. 아무리 대단한 버프를 받았어도 이렇게 많은 괴물과 싸우니 부상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근처에서 새하얀 빛이 폭발했다.
치료폭탄이었다.
미하일은 몸의 상처가 사라지고 체력과 기력이 돌아오는 걸 느끼며 히죽 웃었다.
아까 강하진이 했던 말이 그제야 떠올랐다. 그는 지금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러시아 각성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 * *
가디언스는 러시아 각성자들과는 좀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애초에 강하진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기에 버프와 힐링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어떤 식으로 연계하면 더 큰 효율을 낼 수 있고, 더 큰 파괴력을 낼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가디언스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아나는 괴물이 없었다.
지금 상대하는 괴물들은 이 던전 안에서 비교적 약한 놈들이었기에 전투 자체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언질을 받았다.
다섯 번째 전투 까지는 러시아 각성자들의 적응을 위한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러시아 각성자들과 되도록 떨어진 곳에서 싸웠다.
이 많은 괴물을 러시아 각성자들이 전부 상대할 수는 없으니 수를 많이 줄여줘야 한다.
가디언스는 딱 그 정도로만 싸웠다.
그렇게 첫 번째 전투가 끝났다.
* * *
미하일을 비롯한 러시아 각성자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고양감과 성취감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이 싸움 한 번으로 레벨을 몇 개나 올렸는지 모른다. 또한 이번 싸움을 통해 얻은 전투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것이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해볼 만하겠죠?”
강하진의 물음에 미하일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대단한 경험을 했습니다. 어쩌면······ 이 던전 닫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에 강하진이 살짝 눈을 빛냈다.
미하일도 던전을 닫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모양이었다.
“던전을 닫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까?”
미하일의 표정이 굳었다.
“어렵다기보다는······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일단 규모가 너무 큽니다. 이 던전을 시간 내에 전부 탐색하고 괴물을 처리하고 코어를 부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특히 방금 싸웠던 괴물 무리를 본 다음에는 그 가정이 확신으로 변했다.
저런 괴물 무리가 무수히 있다면 그 어떤 나라가 도와줘도 절대 던전을 닫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강하진의 버프를 받은 이후, 그 생각이 변했다.
“자,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다음 사냥감을 향해 출발합시다.”
“예? 벌써요? 이제 10분 쉬었습니다만······.”
“앞으로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휴식은 10분입니다.”
미하일이 멍하니 강하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가디언스를 데리고 출발했으니까.
미하일은 허겁지겁 일어나 러시아 각성자들을 닦달해 그들을 일으키고 출발했다.
더 늦으면 가디언스를 잃어버릴 것 같아서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던전 사냥의 성패는 오직 가디언스에 달려 있었다.
그들을 놓친다면 러시아 각성자 부대는 끝장이었다.
미하일이 따라붙자, 강하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속도를 높였다.
러시아 각성자들은 이를 악물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했다.
그렇게 두 번째 괴물 무리를 만났다.
첫 번째보다 훨씬 더 많은 괴물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미하일은 온몸에 들어오는 버프의 감각에 정신이 하늘 높이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마치 강제로 몸에 남은 힘과 기력을 뽑아내는 듯한 감각 때문이었다.
어쨌든 싸움을 시작했고, 러시아 각성자들은 첫 번째 괴물 무리와 싸울 때보다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연이어 괴물 무리를 토벌해 나갔다.
미하일과 러시아 각성자들의 얼굴이 그 때마다 조금씩 핼쑥해졌다.
* * *
“설마 그거 드론입니까?”
“맞습니다.”
미하일이 놀란 눈으로 강하진 앞에 놓인 드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설마 이거 정말로 작동합니까?”
미하일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던전 안에서 전자장비를 쓰는 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모든 던전에서 전자장비가 먹통인 건 아니었다.
어떤 던전은 전자장비가 원활히 작동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공개 던전이 그렇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진짜는 이 뉴타입 던전이었다.
뉴타입 던전에서는 전자장비가 먹통이 된다,
그냥 먹통이 되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먹통이 됨과 동시에 망가져 버린다.
한데 드론이라니.
“이런 게 있으면 미리 쓰시지 그러셨습니까.”
“작동시간에 한계가 있습니다.”
미하일은 신기한 눈으로 드론을 바라봤다. 작동시간을 얘기하는 걸 보니 정말로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대략적인 던전의 윤곽을 확인하려고 잠깐 쓰는 겁니다. 자, 같이 확인하시죠.”
강하진의 말에 미하일이 신기한 눈으로 눈앞에 떠오르는 입체적인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이 드론의 카메라로 찍은 화면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이건 전자장비가 아닙니다.”
“예? 그게 무슨······.”
드론 주위를 마력이 회전했다. 그리고 드론이 붕 떠올랐다.
순식간에 하늘 높이 올라간 드론의 모습에 미하일이 눈을 크게 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드론의 성능이 아니었다.
“자, 화면을 보시죠.”
상공 높은 곳에서 찍은 화면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니 마치 지도 같았다.
굉장히 광활한 지도가 펼쳐졌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지도 군데군데를 채우고 있는 괴물 무리가 보였다.
미하일은 할 말을 잃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괴물 무리를 사냥했는데, 아직도 이렇게나 많이 남아 있다니,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오래 쓰지 못하니 일단 빠르게 확인하겠습니다.”
강하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드론이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입체적으로 구성된 화면이 드론의 경로에 따라 빠르게 바뀌었다.
미하일은 그걸 보며 기가 질렸다.
지금까지 처리한 괴물 무리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아직 무지막지할 정도로 많은 괴물 무리가 남아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따로 떨어진 괴물들도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작은 괴물 무리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거대한 규모의 괴물 무리가 너무 많았으니까.
“이걸······ 과연 전부 정리할 수 있을까요?”
미하일이 회의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뒤에서 화면을 같이 지켜보던 몇몇 각성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연이은 승리로 한껏 올라갔던 사기가 다시 바닥까지 떨어졌다.
강하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당장은 사기가 떨어지겠지만, 일단 다시 괴물 무리에 뛰어들면 정신없이 싸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내 드론이 추락했다.
그때까지도 드론은 던전의 끝에 도달하지 못했다.
“정말 큰 던전이로군요.”
미하일이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는 확실히 깨달았다. 이 던전은 절대 닫을 수 없다는 것을.
아마 전 세계의 모든 각성자들이 힘을 모아 도와줬다면 가능했을까?
‘그 정도면 가능했을지도······.’
이번 재앙에 대한 정답은 아마 그거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시작합시다.”
강하진의 말에 미하일과 러시아 각성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의 얼굴에 방금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볼 때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이 드리웠다.
아직 얼마나 있을지 모를 괴물보다 당장 육체와 마력, 정신력이 한계에 달할 정도로 몰아치는 강하진의 사냥이 더 두려웠다.
그건 코앞에 닥친 현실이었으니까.
“자, 아까 영상을 봤으니 괴물들 위치는 대충 확인했으리라 믿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부터 칩니다. 출발!”
강하진이 빠르게 내달렸다.
그리고 가디언스가 그 뒤를 따랐다.
수십 번이나 반복해서 본 그 광경에 미하일은 속이 울렁거렸다.
어쩌면 이번에도 싸우다가 한계를 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다섯 번이나 넘은 한계를 또 말이다.
미하일과 러시아 각성자들은 반쯤 울상이 되어 멀어져가는 가디언스의 뒤를 따라 열심히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