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재앙 1 >
러시아에 입국한 가디언스는 강하진을 제외하고 총 100명이었다.
가디언스는 해외 활동을 준비하면서 인원 확충에 굉장히 공을 들였다.
그래서 최근에는 가디언스의 길드원 수가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
국적도 다양했고, 실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강하진은 러시아에 딱 100명만 데리고 왔다.
가디언스에서 고르고 골라 뽑은 각성자였기에 실력은 아주 확실했다.
김지혜는 그 부분이 좀 의아했다.
“러시아의 던전이 굉장히 크지 않나요?”
“직경이 500미터쯤 되니까 기록적이죠. 일본에 나타났던 던전보다 훨씬 크니까.”
“그렇다면······ 너무 조금 온 거 아닌가요? 새로 들어온 길드원까지 전부 데려와도 모자랄 것 같은데······.”
그건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들은 그들대로 할 일이 있습니다.”
러시아 던전이 터지면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괴물을 쏟아낼 것이다.
그 위협으로부터 세상을 지켜야 한다.
이번에 남은 자들이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물론 한국은 신경 안 써도 된다.
한국은 실종자를 많이 잡아낸 덕분에 실제 괴물 사태가 터졌을 때도 고작 일곱 마리의 괴물만 나타났다.
그리고 한국에는 황수영이 이끄는 던전 브레이커가 있었다.
이제 던전 브레이커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길드가 되었다.
황수영은 길드 운영에는 별 재능이 없었지만, 그녀를 가끔 도와줄 수 있는 윤경민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윤경민은 가디언스의 그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던전 브레이커까지 신경 써 주었다.
잠을 좀 줄이면 된다고 했다는데, 솔직히 이젠 그가 뭘 하든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말해도 안 들을 테니까.
던전 브레이커 역시 규모가 커지면서 많은 운영진이 있었고, 윤경민이 주는 약간의 도움만으로 길드를 성장시키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던전 브레이커가 한국 최고의 길드가 되고, 가디언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 내에 깔려 있던 각성자 관련한 병폐들이 조금씩 개선되었다.
그러다보니 이제 한국은 손꼽히는 각성자 강국이 되었다.
현재 가디언스의 길드원은 500명을 훌쩍 넘는다.
그러니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이 400명 이상 남아 있었다. 게다가 지금도 꾸준히 인원을 늘리고 있었다.
그들은 적당한 수로 나뉘어 세계 곳곳에 파견 나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곳에 나타난 괴물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조만간 그런 괴물이 아니라 던전이 터져서 튀어 나오는 괴물과 싸우게 될 것이다.
회귀 전에 제이슨의 가디언스가 하던 일을 이제 강하진의 가디언스가 대신 하는 것이다.
강하진은 그때보다 훨씬 더 잘 해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디언스를 마중 나온 사람은 미하일이라는 각성자였다. 그는 페데로프의 심복이기도 했다.
“이렇게 러시아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미하일은 일단 감사 인사부터 하고 가디언스를 던전에서 비교적 가까운 도시에 있는 호텔로 안내했다.
던전이 워낙 거대했는지라 호텔에서도 충분히 그 위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단하네요.”
김지혜가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가디언스의 수뇌부가 강하진의 방에 모여 있었다. 다들 김지혜와 똑같은 표정으로 던전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크기의 던전이었기에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은근한 두려움과 함께 위압감이 느껴졌다.
“저게 터지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상상도 안 가네요.”
“지금 우리가 있는 이 호텔도 사라질 겁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고작 지름 2미터짜리 던전이 터져도 주변을 휩쓰는 마력 폭풍 때문에 근처가 초토화된다.
하물며 저건 무려 500미터짜리다.
던전에서 가까울수록 더 피해가 크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마 이 호텔이 있는 도시가 버티는 건 정말 어려울 것이다.
“과연 우리가 저 던전을 닫을 수 있을까요?”
강하진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힘들 겁니다.”
“예? 정말요?”
김지혜는 강하진이 너무 단호히 말해서 깜짝 놀랐다.
만일 그렇다면 이렇게 애쓸 이유가 뭐란 말인가. 어차피 터질 거라면 말이다.
“우리가 할 일은 피해를 최소로 줄이는 겁니다.”
“피해를 최소로 줄인다고 하기에는······ 던전 주변에 대한 방비가 너무 허술한 거 아닐까요?”
강하진은 러시아 측에 각성자 전력을 대부분 던전 내부 토벌에 집중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연히 러시아에서도 그걸 받아들였고.
그들은 이 던전을 무조건 닫을 생각이었으니 그 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전력을 집중해서 던전을 닫을 확률을 높이는 건 좋지만, 뒤를 생각하지 않은 계획이기에 혹시라도 던전이 터지면 그 피해가 막심할 것이다.
한데 그 계획을 세운 당사자인 강하진이 저렇게 말하니 당황스러웠다.
“준비는 충분히 했습니다. 던전 주변 도시를 조만간 다 비우기로 했으니까요.”
“하지만 터진 다음 쏟아져 나올 괴물들은 어쩌고요?”
강하진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시선을 던전 쪽으로 돌렸다.
김지혜는 그 모습에서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설마 이번 던전은 터지더라도 괴물이 안 나오는 건가요? 그저 마력 폭풍만 대비하면 되나요?”
강하진은 살짝 눈을 빛내며 김지혜를 쳐다봤다.
굉장히 눈치가 빠르다. 대체 방금 한 대화의 어느 부분에서 저걸 캐치해 냈을까?
“맙소사! 정말이군요!”
김지혜가 경악하자, 강하진이 검지를 입술에 댔다.
“쉿. 아직 비밀입니다.”
김지혜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전력 낭비 아닌가요? 차라리 다른 길드원처럼 다른 곳에서 던전을 닫는 것이······.”
“제가 언제 괴물이 안 나온다고 했습니까?”
“예? 방금······.”
“아직 비밀이라고만 했을 뿐이죠. 괴물은 나옵니다. 다만,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 뿐이지.”
김지혜의 눈빛이 혼란스러워졌다. 대체 저건 또 무슨 소리인가.
“괴물이 나오긴 하는데 여기가 아니라고요? 이해할 수가 없네요.”
“이미 조치했지 않습니까.”
김지혜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설마 가디언스를 곳곳에 흩어 놓으신 게 그 때문인가요?”
“진짜 눈치 빠르시네요.”
강하진은 김지혜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보고는 다시 던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던전 안에 있는 괴물을 얼마나 많이 사냥하느냐에 이번 재앙이 어느 정도 규모가 될지 결정됩니다. 그러니 일단 안에 들어가면 미친 듯이 싸워야 합니다.”
김지혜가 한껏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시선도 다시 거대한 던전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니 불필요한 대화였다. 자신은 강하진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 * *
가디언스는 러시아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자고난 후, 곧장 던전으로 향했다.
던전 근처에 있는 도시에서는 한창 피난이 이뤄지고 있는 중이었다.
강하진이 워낙 강력하게 요청했기 때문에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러시아와의 관계가 좀 껄끄러워졌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왠지 안전을 볼모로 갑질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던전을 닫을 수만 있다면 굳이 이런 피난도 필요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들의 눈에는 던전을 못 닫을 거 같으니 미리 준비하는 걸로 보였다.
그로 인해 가디언스를 보는 시선이 좀 바뀌었다.
처음보다 훨씬 못미더운 시선이 많이 추가되었다.
과연 이대로 가디언스에 맡겨도 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물론 별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금 이 상황에서 러시아를 도와줄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고, 러시아 역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아직도 실종자가 변해서 만들어진 괴물을 모두 처리하지 못했다.
러시아 각성자 부대 중 제법 많은 수가 그 괴물을 처리하기 위해 출동한 상태였다.
어쨌든 실제 작전은 러시아 각성자 부대가 주축이 되고, 가디언스는 어디까지나 조력자였다.
다른 어떤 나라가 돕기 위해 왔더라도 마찬가지로 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강하진 역시 그런 처사에 딱히 불만이 없었다.
어차피 저 안에 들어가면 모든 인식이 싹 바뀔 테니까.
버프의 맛을 한 번 보기만 하면, 그 뒤로는 절대 강하진의 말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겪은 모두가 그러했듯이.
러시아에서 던전을 닫기 위해 보낸 각성자의 수는 천 명이 넘었다.
사방으로 괴물을 처리하고 곳곳에서 생겨난 일반 던전을 닫느라 전력이 흩어진 걸 고려하면 정말 바닥까지 싹싹 긁어낸 전력이었다.
당연히 정예는 아니었다.
정예라 할 수 있는 각성자는 200명 정도였고, 나머지 중 300명 정도가 그럭저럭 밥값을 하는 각성자였다.
그 외의 나머지는 어중이떠중이였고.
하지만 강하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 던전을 닫는 건 불가능하다.
아마 안에 들어가서 사냥을 진행하다보면 들어간 모든 각성자가 그걸 느낄 것이다.
이 던전을 시간 내에 닫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건 마르바스가 작정을 하고 준비한 재앙이었다.
이 던전을 닫을 유일한 방법은 전 세계가 하나로 힘을 모으는 것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은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이번 재앙을 잘 넘기고 가디언스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서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그리고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재앙이 재앙인 이유는 이것 때문에 세계가 혼란에 빠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거대 던전이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각성자 부대를 지휘하는 자는 역시 미하일이었다.
가디언스가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자였는데, 러시아 각성자 중에서 그가 가장 강했다.
레벨도 제일 높았고, 스킬도 강력했다.
아무튼 미하일의 태도는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그는 강하진이 던전 공략 전에 도시의 시민들을 대피 시킨 점을 굉장히 높게 샀다.
사실 그가 보기에 그건 쉽게 내릴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그 일이 의구심 섞인 시선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걸 가디언스 정도 되는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생각할 수 있다.
한데 강하진은 그걸 감수한 것이다. 오직 혹시 있을지 모를 실패에 대비해서 말이다.
아무튼 러시아 각성자 부대를 이끌고 던전에 들어간 미하일은 일단 강하진부터 찾았다.
강하진과 가디언스는 던전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미하일은 강하진에게 다가갔다.
“이제 어떤 식으로 사냥을 하면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던전이 너무 광활해서 시간 내에 닫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 대피시키지 않았습니까. 우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면 됩니다.”
강하진의 말에 미하일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일단 목표부터 설정합시다. 우리 목표는 괴물의 수를 최대한 줄이는 겁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사냥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괴물의 수가 줄어들 것이다.
그 과정에서 코어를 찾아 부수면 던전을 닫을 수 있을 테고.
몇 개의 코어가 있을지 모르지만.
강하진의 작전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는 규모가 큰 괴물 무리를 찾아 분쇄하는 방식으로 싸울 겁니다.”
미하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그저 이동 중에 만나는 모든 괴물을 처리하면 될 것 같은데······.”
“그거야 당연합니다. 제 얘기는 이동 방향 설정에 관한 문제입니다.”
미하일이 좀 황당한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저 말이 성립하려면, 거대한 규모의 괴물 무리가 있는 장소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깊이 정찰을 보내서 장소를 확인하거나.
하지만 이 던전에서 정찰대를 운용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다. 전력 분산의 위험도 있고.
“전력을 나누실 계획이십니까?”
강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대규모 괴물 무리와 싸우려면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전력 분산은 없습니다.”
미하일은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하겠습니다. 아직 시행착오를 통해 계획을 수정할 시간 정도는 있을 테니까요.”
강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일단 첫 번째 목표는 저쪽에 있습니다.”
강하진이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100명의 가디언스가 그 뒤를 따랐다.
미하일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러시아 각성자 부대를 이끌고 그 뒤를 따라갔다.
두 번째 재앙의 시작인 러시아 던전 공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