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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16화 (116/200)
  • < 제니퍼의 정체 2 >

    강하진은 산처럼 쌓인 마석을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중에서 정신 속성을 가진 마석을 골라내야 한다.

    강하진이 모든 마석을 다 가져오라고 한 이유는 정신 속성 마석이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었다.

    마석 광산의 부스러기 마석은 공간 속성이 제일 많고, 빙결, 불, 전격, 바람 등의 속성이 그 바로 아래를 균일하게 구성하고 있었다.

    그 아래에 빛과 어둠 속성이 있고, 정신 속성은 그보다 더 아래에 있었다.

    그러니까 100 개 중에 정신 속성이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정도 비율이었다.

    그러니 가디언스 전원에게 정신방벽을 만들어 주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마석을 뒤적여야하겠는가.

    ‘이참에 분류를 해볼까?’

    공간 마석을 뽑아내는 시스템처럼 다른 속성의 마석도 분류해 낼 수 있도록 자동화 과정을 만들어 놓으면 생각보다 일이 금방 끝날 수도 있었다.

    강하진은 심호흡을 하고 마석의 산에 다가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여러 개의 통에 마석을 하나씩 분류해 넣기 시작했다.

    언제 끝날지 모를, 단순 반복 노동이 시작되었다.

    * * *

    이원중은 긴장한 표정으로 강하진의 방에 있는 소파에 엉덩이 끝만 살짝 걸친 채 앉아 있었다.

    강하진이 부른다는 말에 하던 일을 중단하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하지만 강하진은 아직 없었다.

    이원중이 너무 빨리 오는 바람에 시간이 약간 안 맞은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이원중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내가 뭔가 잘못했나? 왜 다른 정령사는 안 부르고 나만 부른 거지? 혹시 파견이라도 나가나? 설마 길드에서 나가 달라고 하시는 건 아니겠지?’

    안 그래도 소심한 이원중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니 그야 말로 끝이 없었다.

    그렇게 지하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정신이 거의 멘틀을 지났을 무렵, 강하진이 들어왔다.

    “이원중 씨? 왜 그러고 계십니까?”

    이원중은 한껏 움츠린 어깨에 고개를 거의 테이블에 박을 정도로 숙인 채 앉아 있었다.

    마치 대죄인이 석고대죄하기 직전의 모습 같았다.

    “마, 마스터! 오, 오셨습니까!”

    이원중이 얼른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요즘 많이 바빠서 힘드셨죠?”

    “어우, 아닙니다! 바빠서 행복했습니다!”

    이원중은 그렇게 말하고는 안절부절못했다. 인사를 하고 나니 다시 불안감이 고개를 든 것이다.

    소심한 이원중은 자신을 왜 부른 거냐는 질문도 차마 하지 못했다. 그저 강하진이 말을 꺼내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렇게 자존감이 낮고 소심한 이원중이야말로 서큐버스들의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이원중 씨, 요즘 만나는 여자 있죠?”

    이원중이 화들짝 놀라 강하진을 바라봤다.

    “헤, 헤어지겠습니다!”

    이원중의 반응에 오히려 강하진이 놀랐다.

    설마 단박에 헤어지겠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서큐버스가 이원중을 공략하기 시작한 지 시간이 제법 지났다. 지금쯤 되면, 타인이 서큐버스를 떼 놓으려고 시도라도 할 시, 강한 반발을 하기 마련이었다.

    한데 그런 시도도 하기 전에 헤어지겠다니. 이건 절대 평범한 반응이 아니었다.

    강하진은 묘한 시선으로 이원중을 쳐다봤다.

    “정말로 헤어지실 겁니까?”

    “마스터께서 원하신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그 여자한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할 테니까요.”

    이원중의 확신 어린 말에 강하진은 속으로 정말 크게 놀랐다.

    설마 다른 사람도 같은 반응일까? 왠지 정말로 궁금해졌다.

    “그 여자랑 헤어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오늘 만나자고 한 건 드릴 선물이 있어서입니다.”

    “예? 저, 저 같은 놈한테 마스터가 선물을 주신다고요?”

    강하진은 얼른 준비한 팔찌를 꺼냈다.

    “이겁니다.”

    이원중은 마치 세게 만지면 부서지기라도 할 것처럼 소중하게 팔찌를 받았다.

    “차 보시죠.”

    “가, 가, 감사합니다!”

    이원중은 그렇게 외치고는 팔찌를 착용했다.

    순간 머리가 확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

    “어떻습니까? 머리가 좀 맑아졌죠?”

    “예! 저, 정말 놀랍습니다!”

    강하진은 신중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정신방벽을 세워주는 팔찌입니다. 정신에 관계된 스킬을 막아주는 거죠. 하지만 그걸 차고 있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강하진은 그 뒤로 이원중에게 현재 가디언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이원중은 설명을 들으며 정말 크게 놀랐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위해 이런 대단한 아이템을 선물한 강하진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설명을 모두 들은 이원중은 이제부터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살겠다고 다짐하고는 돌아갔다.

    강하진은 밖으로 나가는 이원중의 뒷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지금 이원중에게는 서큐버스의 매혹보다 강하진에 대한 감정이 훨씬 우위에 있었다.

    이건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은 잠들기 전까지 가디언스 길드원들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다.

    물론 전부 남자였다.

    남자가 다 끝나면 그 다음에 여자로 이어질 것이다.

    아무래도 지금은 남자가 더 위험했으니 우선적으로 남자에게 아이템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을 하나씩 만날 때마다 강하진은 자신이 준비한 정신방벽의 아이템이 보험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명도 예외 없이 강하진이 원한다면 여자와 그만 만나겠다고 말한 것이다.

    아마 진심어린 관계가 아니라 매혹에 의한 관계이기에 그런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가디언스에 들어와 강하진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서큐버스의 매혹에 당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사실 말이다.

    “덕분에 마석 분류 작업만 빡세게 했네.”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모든 길드원에게 정신방벽을 선물해 주었고, 유동훈이 장비를 만들 때 써먹을 수 있도록 마석을 속성 별로 분류해서 전해줬으니까.

    아마 앞으로 가디언스에서 만들어 내는 장비의 성능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 * *

    제니퍼는 택시를 타고 인천공항을 벗어났다.

    택시 운전수는 제니퍼의 매혹에 홀려 마치 그녀의 운전기사처럼 행동했다.

    그녀가 원한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니퍼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설마 실패할 줄이야.’

    그냥 실패가 아니라 완벽한 실패였다.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윤경민에게 작업을 거는 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제니퍼는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릴 것 같았다.

    계획이 실패하는 바람에 디펜더스 내에서의 입지도 약간이나마 흔들렸다.

    물론 자신에게 정신없이 휘둘리는 스팬서가 있는 한, 아무 문제도 없겠지만.

    이내 택시가 가디언스 근처에 도착했다.

    제니퍼는 택시에서 내린 다음 기사에게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그는 아마 인천공항에 도착할 무렵에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리고 어리둥절하겠지. 기름도 없고 기억도 온전치 않을 테니까.

    물론 그딴 건 제니퍼가 알 바 아니었다.

    지금 그녀의 눈은 가디언스 본부 건물에 꽂혀 있었다.

    저기 있는 길드원을 하나라도 만나야 했다. 그래야 왜 계획이 이따위로 망가졌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때마침 가디언스에서 어눌하게 생긴 사내 한 명이 나왔다. 그에게서는 제법 강한 마력의 향이 느껴졌다.

    “응? 물의 정령사네? 게다가 제법 강력하고, 잠재력도 뛰어나. 좋은 사람을 얻을 수 있겠어.”

    제니퍼는 천천히 걸어 가디언스 본부에서 나온 물의 정령사, 이원중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제니퍼가 아주 능숙한 한국말로 이원중에게 접근해 인사부터 했다.

    이원중은 제니퍼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저 얼굴을 한 번 본 것뿐인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 멋진 각성자님,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이, 이, 이원중입니다.”

    “어쩜, 이름도 멋지네요. 잠깐 커피 한 잔 마실 시간 있나요? 없으면 정말 슬플 거 같은데······.”

    제니퍼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짓자, 이원중이 얼른 대답했다.

    “되, 되, 됩니다! 당연히 됩니다. 저쪽에 맛있는 커피숍이 있으니 따라오십시오.”

    이원중은 가디언스 본부로 다시 들어갔다.

    이 빌딩 1층에 가디언스에서 직접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이 있었다.

    마력을 이용해 만드는 커피였기에 각성자들 사이에서는 인기 만점인 곳이었다.

    제니퍼는 잠깐 멈칫했지만, 무슨 일이 있겠냐 싶어서 이원중을 따라갔다.

    적당한 자리에 커피를 한 잔씩 앞에 두고 마주앉았다.

    제니퍼는 생각보다 뛰어난 커피의 맛과 향에 상당히 감탄했다. 윌리엄의 호텔에서 내주는 커피와 비교해도 전혀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커피였다.

    그녀는 이원중을 보며 일단 매혹부터 썼다.

    한데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제니퍼는 당황했다. 자신은 서큐버스 퀸이다. 서큐버스 퀸의 매혹은 서큐버스의 매혹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데 고작 각성자 나부랭이에게 통하지 않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그리고 매혹을 쓰는 순간, 이원중의 팔찌가 반응해 정신방벽을 펼쳤고, 그걸 이원중이 알아차리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이원중의 표정이 변했다.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설마······!”

    제니퍼는 짜증이 담긴 눈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원중 앞에 물로 이루어진 고양이가 나타나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냈다.

    촤아아악!

    하지만 제니퍼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녀는 손톱만 한 수천 마리의 박쥐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작은 박쥐는 조금 이동하다가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이원중은 그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얼마든지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자신만 해도 물로 된 고양이를 다룬다. 그러니 박쥐로 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그렇게 상황을 인정하고 나니, 방금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지금 가디언스를 노리던 자를 놓친 것이다.

    이원중은 분한 표정으로 방금 전까지 제니퍼가 앉아 있던 자리를 노려봤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쿵쿵 때리면서 자책했다.

    “그렇게 예쁜 여자를 조심하자고 다짐했는데, 이렇게 쉽게 당하면 대체 어쩌자는 거야!”

    길드 본부 밖에서 그 광경을 몰래 지켜보던 제니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짧은 시간에 벌써 대비책을 만들었다고? 이거······ 절대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녀의 시선은 이원중의 손목에 있는 팔찌에 꽂혀 있었다. 아까 매혹을 걸 때, 틀림없이 저 팔찌가 반응했다.

    제니퍼는 한동안 이원중의 팔찌를 노려보다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강하진과 윤경민은 이원중의 보고를 받고 CCTV 녹화 화면을 확인했다.

    “제니퍼로군요.”

    윤경민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디펜더스가 어둠의 손길을 뻗은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직접 올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아마 어떤 식으로든 명확히 확인하고 싶었을 겁니다.”

    제니퍼는 불확실한 걸 정말 싫어했으니까.

    “어쨌든 정신방벽의 팔찌에 대한 건 알아냈다고 봐야겠군요.”

    “그렇겠죠.”

    하지만 저 팔찌가 없을 때도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이 절대 서큐버스들에게 넘어가지 않았다는 건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가 나중에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걸 보니 디펜더스 쪽에서 애가 닳긴 했나봅니다.”

    “조만간 그쪽도 세계 구호 사업을 시작할 겁니다. 요즘 서포터들도 제법 모은 모양이니까요.”

    “그 부분이 좀 아쉽게 됐습니다. 몇 군데 더 빼돌릴 수 있었는데 말이죠.”

    윤경민은 미리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디펜더스가 손을 뻗으려는 기업이나 조직에 작업을 했다.

    그들을 가디언스 쪽으로 끌어오거나 아니면 디펜더스의 손을 잡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선점했으니 그걸 쫓아오는 것도 아마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가디언스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활약 중이었다.

    사안이 크면 강하진이 직접 움직이고, 작은 사안들은 가디언스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조만간 큰일이 터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큰일이라면······ 설마 파리에서 있었던 것 같은 일 말입니까?”

    강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훨씬 큰일입니다.”

    윤경민이 크게 긴장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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