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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15화 (115/200)
  • < 제니퍼의 정체 1 >

    필리핀 원정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애초에 필리핀 정부에서 원했던 괴물의 밀도를 20% 낮춰야 한다는 목표를 훌쩍 넘어서 절반 정도의 괴물을 처리해 버린 것이다.

    물론 처음 작전, 그러니까 가디언스와 외국인 각성자 부대, 그리고 필리핀 각성자 부대가 괴물을 모아서 처리하고 뒤이어 사냥을 한 것만 따지면 20%가 맞다.

    하지만 그 작전을 할 때, 평소 필리핀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용병 각성자들이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것이 큰 변수가 되어 성과를 크게 뻥튀기 시켰다.

    사실 가디언스와 필리핀 각성자 부대, 그리고 정아연과 윤경민이 끌어온 외국인 각성자들을 다 합해봐야 그 수가 얼마나 되겠는가.

    기존 필리핀에서 활동하던 용병 각성자의 수가 열 배 이상 더 많았다.

    말하자면 이번 일은 그 열 배가 넘는 외국인 용병 각성자들과 함께 작전을 펼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성과가 뻥튀기 될 수밖에.

    게다가 가디언스가 얻은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가디언스는 첫 번째 작전 이후, 노선을 바꿔 다른 각성자들을 구하고 다녔다.

    사냥 보다는 구호 활동에 더 전념한 것이다.

    당연히 평소보다 무리해서 사냥을 하는데다가 괴물들이 날뛰고 있으니 위험한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렇게 위기에 빠진 각성자들을 가디언스가 나서서 구해줬다.

    포션까지 아낌없이 나눠주고 사냥을 독려하니 각성자들도 그 이후로는 조심해서 괴물을 사냥해 더 큰 성과를 얻어냈다.

    그야 말로 윈윈 전략이었다.

    용병 각성자들은 더 많은 사냥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 좋고, 가디언스는 그들에게 인기를 얻어 좋고 말이다.

    필리핀 정부는 가디언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괴물의 영역 내로 던전 공략팀을 주기적으로 보내기로 했다.

    괴물의 밀도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던전을 공략하는 거였으니까.

    가디언스는 필리핀을 떠나기 전에 괴물의 영역 내에 자리 잡은 뉴타입 던전 세 군데를 닫아주었다.

    강하진이 함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필리핀에서 이 일을 하려면 훨씬 더 많은 인원과 치밀한 작전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그걸 끝으로 가디언스는 필리핀을 떠났다.

    * * *

    필리핀에서의 성공은 가디언스의 위상을 한 계단 위로 올려주었다.

    그 뒤로는 가디언스의 해외 활동이 훨씬 편해졌다.

    강하진과 윤경민은 해외 공략에 대한 계획을 치밀하게 수립했다.

    강하진과 가디언스가 함께 움직여야 할 곳, 그리고 가디언스만 따로 가도 되는 곳, 가디언스를 나눠서 보내도 상관없는 곳, 그리고 강하진 혼자 갈 수 있는 곳으로 나눠서 정리했다.

    초반에는 함께 움직여야 하는 큰일을 위주로 작전을 수행했고, 뒤로 갈수록 가디언스의 인원을 나눠서 갈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보냈다.

    중요한 건 실패해선 안 된다는 점이었다.

    가디언스를 성공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것이 강하진과 윤경민의 첫 번째 목표였다.

    그리고 그 목표는 차근차근 이뤄져갔다.

    성과가 이어질수록 가디언스 길드원들의 실력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신입 길드원 수급도 원활하게 이어졌다.

    가디언스의 위상이 높아지니, 신입으로 지원하려는 각성자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그 중에서 인성과 실력을 함께 만족하는 사람을 뽑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한국에서만 길드원을 뽑지 않았다.

    가디언스는 세계로 손을 뻗었다.

    특히 한 번 도움을 주었던 나라를 위주로 각성자를 모집해 덩치를 키워 나갔다.

    그렇게 평범하지만 치열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강하진은 오랜만에 명인혁을 만났다. 최근 좀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는 윤경민도 함께였다.

    최근 더욱 바빠졌는데도 왠지 촉이 안 좋다며 참석한 것이다.

    “길드원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거야 항상 있던 일 아닌가? 우리 길드원은 지금 아주 똘똘 뭉쳐 있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윤경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명인혁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남자 길드원만 노리고 있습니다. 접근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여자들입니다.”

    “아름다운 여자라······ 그래도 우리 길드원이 미인계에 넘어갈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단순한 미인계 같지 않습니다. 일단 이걸 보시죠.”

    명인혁이 보여주는 건 동영상이었다. 하나가 아니라 몇 개의 동영상이었는데, 제목이 사람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가디언스 길드원을 몰래 찍은 동영상이었다.

    윤경민이 그걸 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일단 동영상부터 확인을 했다.

    첫 번째 동영상을 본 윤경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리고 바로 두 번째 동영상을 플레이했다.

    두 번째 동영상이 끝나자, 표정이 더 굳었고, 세 번째 동영상을 보고 나자 더 이상 굳을 수 없을 정도로 굳었다.

    “대체 뭐지? 우리 애들이 왜 이러는 거야?”

    다들 하나같이 평소 절대 볼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대편에 앉은 여자의 외모가 아름답긴 했다. 셋 전부 각각 다른 국적의 길드원이었는데, 여자 역시 마찬가지로 국적을 맞춘 듯했다.

    한데 여자와 마주앉은 순간부터 얼굴이 확 풀어지더니 대화가 끝날 때까지 약간 바보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여자가 돌아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고 말이다.

    “어떻습니까? 심각하지요? 보여드린 건 세 명뿐이지만, 사실 수십 명에게 동시에 접근했습니다. 물론 전부 다른 여자입니다.”

    명인혁은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문제는 이 중에 몇 명이 다른 길드원을 동시에 만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표정 보니까 잘못하면 길드원끼리 칼부림 날 수도 있겠는데?”

    윤경민이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흠칫 놀랐다.

    말이 씨가 된다고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서였다.

    “이것만 가져온 거 아니지? 날 불렀다는 건 좀 더 조사가 진행되었다는 뜻 맞지?”

    “맞습니다.”

    강하진의 물음에 명인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인수가 레벨을 많이 올렸기에 망정이지 이번에 이거 조사하다가 마력이 고갈될 뻔했습니다.”

    강하진이 깜짝 놀라 명인혁을 쳐다봤다.

    “마력 고갈? 인수 마력이 이제 제법 될 텐데?”

    그냥 레벨만 올린 게 아니라 강화석으로 끝까지 강화를 해주었다. 그래서 마력이 굉장히 높아졌다.

    그런데도 마력이 고갈될 뻔했다니. 대체 어떤 정보를 얻었기에 그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이번 일의 배후에 제니퍼라는 여자 각성자가 있습니다.”

    강하진의 눈이 번득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윤경민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작 그 사람 이름 하나 알아낸 것 때문에 마력이 고갈 될 뻔했다고?”

    명인혁이 고개를 저었다.

    “배후를 캐내려고 했는데, 같이 더 많은 정보가 딸려 나왔습니다.”

    “더 많은 정보? 그러니까 제니퍼의 배후 같은 거 말이야?”

    “아뇨. 제니퍼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정체? 미국 각성자 아니야? 실력과 외모가 아주 뛰어난.”

    윤경민이 아는 정보는 거기까지였다. 물론 그건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디펜더스의 일원이고, 거기에는 제이슨과 윌리엄, 스팬서가 멤버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테고.

    “제니퍼는 서큐버스 일족의 여왕입니다.”

    “제니퍼가 서큐버스 퀸이라고?”

    강하진과 윤경민이 놀란 눈으로 명인혁을 쳐다봤다.

    확실히 이건 정말 놀라운 정보였다.

    서큐버스 퀸이라니. 상상도 못한 결과 아닌가.

    혹시 그게 그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던 이유일까?

    그렇다면 제이슨이나 윌리엄도 비슷한 경우일까?

    강하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확실히 현 디펜더스의 멤버를 생각하면 세력이 없는 사람은 제니퍼 뿐이다.

    하지만 만일 제니퍼가 서큐버스 퀸이라면 충분한 세력을 가진 셈이었다.

    “그럼 우리 길드원들에게 접근한 여자들도 전부 서큐버스?”

    “네. 맞습니다.”

    다른 여자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 역시 막대한 마력이 들어갔지만, 그래도 제니퍼 만큼은 아니었다.

    확실히 서큐버스 퀸과 일반 서큐버스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었다.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길드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명인혁의 말에 강하진과 윤경민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비상 상황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강하진이 입을 열었다.

    “일단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다 잡아서 죽여 버리는 건데, 그건 곤란하겠죠?”

    강하진이 강렬한 눈빛으로 윤경민과 명인혁을 번갈아 쳐다봤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맹렬히 저었다.

    “절대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당연히 안 된다. 강하진도 그럴 생각은 없었고. 그냥 답답해서 한 번 해본 말이었다.

    저들은 전부 정확한 신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함부로 죽이면 일이 커진다.

    특히 국적이 미국 쪽의 각성자들은 건드리면 일이 커진다.

    “어쨌든 정신 공격이니 그걸 막아내는 아이템이 있으면 좋을 텐데요.”

    “혹시 우리 가디언스 공방에서 그런 물건 못 만들까요?”

    유동훈의 실력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서큐버스의 정신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드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아 보였다.

    명인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수한테 정보를 뽑아보라고 할까요?”

    강하진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너무 위험해.”

    사실 이건 간단한 해결책이 있긴 하다.

    [정신방벽]이라는 스킬을 익히면 된다. 아니면 그 스킬이 깃든 아이템을 착용하거나.

    회귀 전에는 마족을 상대로 싸우기 전에 반드시 얻어야만 하는 스킬이었다.

    마족 중에는 정신 공격을 하는 놈들이 많아서 [정신방벽] 없이는 절대 전투에 끼어들 수 없었다.

    [정신방벽]이 모든 정신 공격을 막아주는 건 아니었다.

    일단 숙련도도 중요했고, 방벽을 얻은 뒤에 효과를 계속 추가해야 한다.

    오랜만에 단순노동의 시간이 돌아왔다.

    강하진은 윤경민을 보며 말했다.

    “마석 광산 운영은 잘 되고 있습니까?”

    “예? 마석 광산이요? 물론입니다. 아공간 판매는 지금 속도 조절 중이라서 아직 재료 수급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습니다.”

    강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공간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닙니다. 광산에서 부스러기 마석, 선별 후 남는 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아공간을 만들 때는 공간 속성의 마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석 광산에서 나오는 마석이 전부 공간 속성 마석은 아니었다.

    상당히 다양한 속성이 깃들어 있었다. 그 중 공간 속성의 비율이 상당히 높을 뿐이지.

    그 많은 마석 중에서 공간 속성만 뽑아내는 시스템을 구축했기에 마석 광산에서 공간 속성 마석만 강하진에게 가져올 수 있었다.

    “일단은 다 모아놓고 있습니다. 왠지 버리기는 너무 아까워서요. 꼭 쓸 데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가끔 유동훈 씨가 요청하기도 하고 해서요.”

    “잘 됐네요. 그거 전부 저한테 가져오세요.”

    “예? 전부요? 야, 양이 만만치 않습니다만······.”

    “일단 가까이 있는 것부터 싹 모아오세요. 나머지는 차츰차츰 옮기죠.”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마석 광산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에 골고루 퍼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강하진이 하려는 일이니 반드시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서큐버스 얘기가 나온 직후 내린 지시이니 반드시 해결책이 거기 있을 것이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일단 한국에 있는 것부터 한 시간 안에 싹 모아오죠.”

    윤경민이 오랜만에 불끈거리는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하진은 후다닥 나가는 윤경민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 할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곤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명인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 수 있을까요?”

    “별 거 아니야. 방패 하나씩 만들어 주려고.”

    물리적 방패가 아니라 정신적 방패를 말이다.

    * * *

    디펜더스의 모임, 제이슨과 윌리엄은 묘한 시선으로 제니퍼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공했다고?”

    “성공이나 다름없다고요.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제니퍼의 자신만만한 말에 제이슨과 윌리엄은 서로를 바라봤다.

    “설마 이렇게 간단히 해결할 줄은 몰랐군.”

    “솔직히 가디언스만 무너뜨리면 강하진이야 어떤 식으로든 처리가 가능한 거 아니겠어요? 내가 가져도 되고.”

    제니퍼가 매혹적인 혀를 살짝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그녀의 탐욕이 혀와 입술을 통해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스팬서가 얼른 끼어들었다.

    “그래서 언제 끝날 거 같은데? 지금 난 아주 곤란해졌다고.”

    “기다려요. 윤경민이라는 자는 생각처럼 만만치 않으니까요. 일단 바닥을 흔든 다음에 차근차근 공략해야 돼요.”

    “뭐가 됐든 좋으니까 서둘러줘. 가디언스를 내가 먹을 수만 있으면 A-마켓 따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 버릴 수 있으니까.”

    “그래요?”

    “당연하지. 명품 라인을 완벽하게 구성하고 나면 아래쪽을 공략하는 건 시간문제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말이지.”

    스팬서의 자신만만한 말에 제니퍼가 요염하게 웃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윤경민한테 통할 거 같아요?”

    스팬서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제니퍼의 미소가 더욱 요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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