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디언스의 해외활동 2 >
필리핀 정부가 대대적인 괴물 사냥을 예고했다. 정확한 시각을 공표한 건 아니었지만 보름 내에 시작한다고 공표했다.
그 발표가 나자마자, 필리핀에서 상주하며 괴물 사냥을 하던 각성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강하진이 예상한 그대로 행동했다.
빡세게 사냥을 해서 한몫 단단히 잡은 다음에, 필리핀 정부의 괴물 사냥이 진행되는 동안 발을 빼기로 한 것이다.
처음부터 바쁘게 움직였기에 발표 후, 3일쯤 지나자, 사냥을 나서는 각성자의 수가 평소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그 시각 기습적으로 괴물 소탕 작전을 시작했다.
강하진은 필리핀 정부 소속 각성자들과 함께 있었다.
여기서 버프를 통해 급한 불을 끄고 나면, 외국 각성자들이 있는 쪽으로 바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이미 헬기도 준비되어 있었다.
몰려오는 괴물을 막아내는 게 아니라, 괴물의 영역으로 들어가 사냥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보면 더욱 위험했다.
필리핀 각성자를 이끄는 사람은 군인 출신 각성자였다.
리또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였는데, 정신감응을 통해 다수에게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가 각성자들을 지휘하는 것 역시 그 능력 때문이었다.
물론 지휘 능력이 상당하기도 했고.
리또는 강하진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싸움은 자신들이 한다. 다수의 싸움은 한 사람이 전황을 좌지우지 할 수 없는 법이다.
이 싸움의 결과는 철저히 리또 자신의 지휘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제 출발할 겁니다. 준비하십시오.”
리또의 말에 강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죠. 그리고 괴물이 많이 몰려올지도 모르니 미리 대비해 두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리또가 피식 웃었다.
“이 밀림을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뭐······ 알아서 하시죠.”
아마 지금까지 알던 밀림과는 좀 다르겠지만, 강하진은 굳이 그런 걸로 말다툼을 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사냥을 시작하면 알게 될 일이다. 이 밀림의 괴물을 굳이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리또의 지휘를 받은 각성자들은 일사불란하게 밀림으로 진입했다.
아직까지는 밀림 초입인지라 시야도 제법 트여 있었고, 위험 요소도 없었다. 당연히 괴물도 없었고.
하지만 그건 강하진이 [매혹의 향]을 쓰기 전까지만 그랬다. 밀림에 들어서자마자 최대치로 뿜어낸 [매혹의 향]이 구석구석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
리또는 크게 당황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당황해도 그는 할 일을 했다.
“전투준비!”
리또는 모든 정신감응 능력을 이용해 각성자들에게 상황을 주지시키고 각자의 임무를 다시 한 번 심어주었다.
그때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밀림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괴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다들 공포에 질린 눈으로 괴물들이 달려드는 모습을 바라봤다.
강하진은 정확히 그 순간 버프를 쏟아냈다.
그동안 몇 번의 업그래이드를 통해 훨씬 강력해진 강하진의 버프는 몸에 스며듦과 동시에 육체와 정신, 마력을 끝없이 고양시켰다.
“으어어어어!”
다들 알 수 없는 괴성을 질렀다. 온몸에서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쏟아내는 함성이었다.
꽈과광!
그 상태로 괴물과 격돌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올라간 신체 능력에 적응하지 못해 오히려 괴물들에게 당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치료폭탄]이 새하얀 빛무리와 함께 펑펑 터졌다.
다친 상처가 순식간에 나으니 각성자들은 더욱 힘을 내서 싸웠다.
괴물의 수가 엄청났는데도, 각성자들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강하진은 두 번째 버프를 뿌렸다.
첫 번째 버프는 [용의 축복]과 [사신의 축복]을 동시에 거는 거였고, 두 번째로 준비한 버프는 [단계 상승]이었다.
스킬의 위력이 10%나 늘어나는 버프였으니, 팽팽하던 전황을 단숨에 밀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단계 상승]의 유일한 약점이 마력 소모인데, 강하진의 마력이 워낙 높아진 상태인지라 마력 포션 몇 개로 모든 각성자들의 단계를 높여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싸움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강하진은 그 상황에서 직접 전투에 끼어들었다.
어쨌든 상황을 빨리 정리할 수 있으면 좋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 이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일정이 있었으니까.
어느새 [매혹의 향]으로 끌어들인 괴물들이 모조리 쓰러졌다.
이제부터는 진짜 사냥을 시작할 차례였다.
“전 여기까지입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강하진의 말에 리또가 기겁을 했다.
방금 그 달콤한 버프의 맛을 보여주고 여기서 발을 뺀다고? 그건 절대 안 될 말이었다.
“일정이 또 있어서요. 이제부터는 신중하게 사냥을 하셔야 합니다.”
강하진의 말에 리또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도 지금 이곳의 전투보다는 필리핀 전체의 상황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까 무례하게 군 점, 사과드립니다.”
리또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별 말씀을. 전 아까 일은 다 잊었습니다.”
강하진은 씨익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런 게 다 빚이다. 말 한 마디로 필리핀 각성자 부대의 대장에게 마음의 빚을 얹었다면 남는 장사 아닌가.
* * *
강하진이 두 번째로 찾아간 각성자 부대는 해외에서 온 자들이었는데, 딱히 정해진 지휘자가 없어서 몇 부대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각 부대 간의 연계는 제법 괜찮았다.
필리핀 밀림에 괴물이 굉장히 많았고, 강력한 개체도 제법 있어서 함부로 나대다간 죽을 게 뻔하니 다들 서로 조심하는 것이다.
강하진은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다고 봤다.
일단 괴물의 파도를 한 번 겪은 다음, 본격적으로 사냥을 할 때는 말이다.
강하진은 강제로 각성자들을 한데 모았다.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보였지만 무시하고 전투 준비를 지시했다.
여전히 불만을 가지고 지시에 따르지 않는 각성자들이 있었지만 싹 무시했다.
“지금 준비 안 하시면 곧 후회할 겁니다.”
그 말에 다들 피식피식 웃었다. 심지어 강하진의 지시에 따라 전투 준비를 마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강하진이 [매혹의 향]을 써서 괴물을 불러들이자, 다들 표정이 확 변했다.
“이런 젠장! 괴물이야!”
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괴물의 발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전투준비를 한 각성자들이 다급히 전열로 나섰다. 그리고 나머지 각성자들이 전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급해서 손이 헛나가 오히려 시간이 더 걸렸다.
이내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암담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강하진이 일단 버프를 걸고 앞으로 나가서 [천참만륙]을 썼다.
콰콰콰콰콰콰!
최근 틈 날 때마다 연습을 해서 숙련도가 제법 오른 [천참만륙]이 전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괴물들이 잘게 쪼개져 흩어졌다. 마치 폭발하는 것 같았다.
강하진의 검격에는 전격이 실려 있었다.
꽈르르르릉!
사방으로 벼락이 쏟아져 나갔다.
쿠구구구구궁!
괴물들이 나뒹굴었다. 그리고 뒤이어 달려오던 괴물들이 거기 걸려 넘어졌다.
잠시 시간을 벌었다.
“뭐 하고 있습니까! 다들 공격!”
강하진의 외침에 각성자들이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와아아아아!”
괴성에 가까운 기합을 내지르며 공격을 쏟아냈는데, 강하진이 걸어준 버프의 영향으로 평소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강하진은 뒤로 한 발 물러나 [단계 상승]을 걸었다.
그 뒤로는 필리핀 각성자 부대의 전투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강하진은 시간이 끝날 때마다 딱딱 버프를 써줬고, 적절한 상황에 치료폭탄을 터트려 각성자들의 목숨을 구해냈다.
그러면서도 가장 앞장서서 치열하게 싸웠다.
전투가 끝나자, 다들 경이로운 시선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이곳에 있는 건 세계 각국에서 모인 각성자들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상위에 속한 각성자들이었기에 최상위 각성자들과도 제법 접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각성자도 강하진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이런 각성자는 처음이었다.
강하진은 그들에게 처음 나뉘었던 대로 나누어서 사냥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사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강력한 각성자 무리가 사방을 들쑤시고 다니면 괴물들 역시 난폭하게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괴물들을 아직까지 사냥 중인 용병 각성자들이 상대하게 될 테고.
강하진이 처음에 그렸던 커다란 그림이 서서히 완성되어갔다.
* * *
강하진의 합류에 가디언스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강하진이 끌어들인 괴물 무리를 보며 환호성이 비명으로 바뀌었다.
물론 훌륭하게 막아냈다.
지난 두 번의 전투를 경험하고서 가디언스와 함께 싸우니, 가디언스가 얼마나 대단한 길드인지 알 수 있었다.
정말 훌륭했다.
특히 강하진의 버프를 받아들이고 치료폭탄을 이용하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게 바로 딱딱 맞아 떨어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덕분에 강하진도 신 나게 싸울 수 있었다.
너무 흥이 오른 나머지 다른 곳에서는 한 번에 끝낸 [매혹의 향]을 세 번이나 썼다.
결국 가디언스가 지쳐 나가 떨어졌다.
그제야 강하진은 자신이 너무 흥을 냈다는 걸 깨닫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쉬는 동안 강하진은 김지혜와 앞으로의 작전에 대해 의논했다.
“이제부터는 사냥을 하는 다른 각성자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가려고 합니다.”
김지혜가 눈을 빛냈다.
“위험한 사람을 구해주라는 뜻이죠? 가디언스의 이름으로.”
“맞습니다.”
척하면 척이었다. 이렇게 해외 원정을 나온 이유가 뭐겠는가. 다 가디언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디펜더스가 나서기 전에 그들이 밟을 발판에 미리 올라서 있기 위함이었다.
‘여러모로 영국에 방문하길 잘했어.’
그게 이 모든 일의 첫 번째 단추였다. 거기에 윤경민을 데려간 것이 신의 한 수였고.
덕분에 디펜더스가 먹으려던 첫 번째 서포터 그룹을 가디언스가 가로챘다. 아니, 윤경민이 가로챘다.
그리고 프랑스 사태를 이용해 가디언스를 세상에 제대로 알렸다.
프랑스를 아군으로 끌어들인 건 당연했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착착 진행 중이었다.
이제 마음에 걸리는 일 몇 가지만 해결하면 아마 끝까지 문제될 게 없을 듯했다.
‘레벨을 더 올려야 돼.’
첫 번째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는 채 300레벨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 꾸준히 레벨을 올려 이제는 400 레벨을 훌쩍 넘었다.
조만간 회귀 전의 레벨을 넘어설 것이다.
거기에 각종 스킬과 칭호가 강하진의 힘을 몇 단계 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마르바스를 이기지 못한다.
‘그래도 저들이 있으니까.’
강하진에게는 가디언스가 있다.
100명이나 되는 길드였다. 거기에 윤경민이 더욱 인원을 늘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아마 마르바스를 상대할 때쯤이면 수가 수백 명, 어쩌면 천 명이 넘게 늘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모자란다.
마르바스도 회귀 후, 뭔가 달라졌으니까.
변수를 줄이려면 세력을 더욱 키워야 한다. 그리고 필리핀 원정은 그 과정 중 하나였다.
“자, 이제 슬슬 가봅시다. 팀을 잘 짜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죽거나 다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강하진은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가디언스 길드원들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자, 그럼 구호활동을 시작하러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