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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11화 (111/200)
  • < 과거의 잔재 1 >

    강하진은 36시간 동안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다.

    황수영은 그것도 불만이었다. 무려 5일이 넘게 기다리게 한 주제에 돌아오자마자 또 이렇게 기다려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이젠 걱정하지 않고 가디언스 길드원들과 던전에 가서 사냥을 했기에 그나마 나았다.

    강하진은 깨자마자 황수영의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게 다 걱정에서 나온다는 걸 알기에 묵묵히 웃으며 들어주었다.

    결국 황수영은 제풀에 나가 떨어졌다. 고작 30분 만에 말이다.

    “역시 사람은 안 하던 건 못하는 법이에요.”

    잔소리도 해본 사람이 잘 한다. 황수영은 잔소리를 하기 보다는 행동을 먼저 하는 사람인지라 잔소리에 서툴렀다.

    그런데도 30분이나 했다는 건 그만큼 쌓인 게 많았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그 30분으로 모든 걸 털어낸 황수영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강하진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남은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여전히 가디언스는 프랑스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밖에 나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엔조가 상당히 힘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하는 건, 그에게도 나름의 노림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당분간은 관광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하더라도 열기가 어느 정도 식은 뒤에나 가능했다.

    강하진은 눈을 반짝이는 황수영을 보며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고 싶군요. 이렇게 배고파 본지가 정말 오랜만인 거 같습니다.”

    “아!”

    황수영은 그제야 강하진이 정말 오랫동안 굶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미, 미안해요. 그것부터 먼저 챙겼어야 하는데······ 그나저나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잖아요. 일단 물부터 마시는 게 좋겠어요.”

    “괜찮습니다. 그냥 아무거나 먹어도.”

    “예? 안 돼요! 거의 일주일을 굶었는데 막 먹으면 큰일 나요!”

    강하진이 빙긋 웃었다.

    “전 괜찮습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호텔의 식당에 앉아 음식을 먹었다.

    굉장히 훌륭한 요리가 끊임없이 나왔는데, 강하진은 그걸 모조리 먹어치웠다.

    그냥 먹는 게 아니라 마력까지 동원해서 음식을 씹고 분쇄해서 삼켰다.

    소화에도 마력을 이용했다.

    회귀 전에 하도 이런 일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익힌 기술이었다.

    강하진은 온몸에 에너지가 차근차근 차오르는 걸 느끼며 음식 먹는 속도를 조금씩 줄였다.

    그걸 지켜보던 황수영이 질린 얼굴로 물었다.

    “정말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강하진 씨랑 있으면 매번 놀라는 게 일인 거 같네요.”

    황수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도 조금씩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걱정이 가시니 배가 고파왔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식사에 열중했다.

    강하진은 고기를 씹으면서 박물관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과거의 잔재를 현 시스템에 편입시키는 데 성공한 그 순간을 말이다.

    이제 루브르 박물관은 현재의 시스템에 편입되었다.

    그 얘기는 더 이상 현재의 시스템으로부터 막무가내로 힘을 뽑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

    어쩐지 침식이 완료된 아이템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 싶었다.

    유물이 그 힘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너무나 당연했다. 애초에 그 정도 힘이 주어질 만한 아이템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루브르에서 만들어진 아이템은 과한 힘을 담고 있었다.

    더 과한 힘을 빼돌려서 무작정 쑤셔 넣은 결과였다.

    과거의 잔재가 그런 일을 한 것은 남은 힘을 자신이 품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존재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현재의 시스템에 편입되었으니까.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힘은 시스템이 제공해줄 것이다. 대신 그 역시 시스템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걸 해결한 대가로 강하진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존재의 관리 권한을 얻었다.

    [마력 제작소]

    [가능성 있는 물건의 잠재력을 일깨워 마력을 부여하는 장소. 모든 것은 시스템의 의지에 따른다.]

    앞으로는 무지막지한 아이템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었다.

    또한 강하진은 그곳의 관리자가 되었다.

    [특별 관리자]

    [과거의 잔재였다가 새롭게 시스템에 편입된 존재의 관리 자격을 가진 자. 관리 목록에 등록된 존재에 따라 능력치가 주어진다. 관리목록 : 마력 제작소(마력+200, 마력회복)]

    [마력회복]

    [마력의 회복속도가 10% 높아진다.]

    마력이 200 증가했고, 마력회복이 빨라지는 스킬을 얻었다. 하지만 그건 부가적인 성과에 불과했다.

    진짜는 마력 제작소의 관리자가 되었다는 그 자체니까.

    앞으로 마력 제작소는 강하진의 허락이 없으면 더 이상 아이템을 생산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언제까지 제작을 막을 수는 없지만, 충분히 의미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중지시킬 수 있었다.

    굳이 강하진과 가디언스에 호의적인 프랑스의 마력 제작소를 멈출 생각은 없지만.

    게다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앞으로 루브르 박물관이 제작하는 아이템 역시 관리자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일시적으로 성능을 떨어뜨리거나, 증폭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영구히 그걸 망가뜨리거나 업그레이드 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했다.

    더 중요한 건, 이미 시스템에 편입되기 전에 제작된 아이템도 관리 대상이라는 점이었다.

    마력 제작소가 만든 아이템에는 흔적이 남는데, 관리 자체가 그 흔적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딴 생각을 하면서 먹다 보니 반쯤 기계적으로 음식을 입에 넣고 씹고 삼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좀 많이 먹었나?’

    슬쩍 눈치를 살피니 요리를 하는 사람이나 서빙 하는 사람들이 다들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놀란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직 배가 고팠다.

    ‘영국 일정을 조율해 봐야겠어.’

    더 많은 걸 먹어치워야 한다. 그래서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져야만 한다.

    음식을 씹어 삼키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 * *

    제이슨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태블릿을 손가락으로 찍찍 긁으며 기사를 읽고 있었다.

    가디언스에 관한 기사였다.

    엔조가 포장을 워낙 잘하는 바람에 가디언스에 관한 소식이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 소식 중 한 자락이 미국에 도착한 것이다.

    “프랑스 각성자 협회가 가디언스에 무한한 지지와 협조를 약속한다고? 이런 젠장!”

    당장은 프랑스뿐이었지만, 가디언스의 향후 활동 상황에 따라서 다른 나라도 거기에 충분히 포함될 수 있었다.

    “고약하게 됐군. 선수를 빼앗겼어.”

    제이슨 앞에서 똑같은 기사를 읽고 있던 윌리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 계획이 계속 어긋나는 동안 다른 놈이 과실만 쏙 따먹은 느낌이야.”

    이번엔 스팬서였다.

    스팬서는 지난 파티 이후로 짜증이 가시지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DM이 A-마켓의 강력한 대항마가 되었어야 한다.

    한데 일본 사태에 발을 너무 깊숙하게 들이는 바람에 강력한 제동이 걸려 버렸다.

    그 상황에서 A-마켓이 새로운 판매 아이템을 계속 추가하는 바람에 점점 더 위축되고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가디언스에서 새로 만든 유통망도 문제였다.

    아니, 그게 오히려 A-마켓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DM이 A-마켓을 따라잡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부분이 바로 고급화 전략이었다.

    A-마켓은 던전과 관계된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지만 딱히 명품 전략을 쓰지는 않았다.

    DM은 그 부분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제법 성과를 낼 거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한데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가디언스에서 명품 이미지를 세워 버렸다.

    DM은 가디언스에도 밀려 버린 것이다.

    위아래로 치이다 보니 사업이 계속 위축되었다.

    그것이 지금 DM의 상황이었다. 그러니 짜증이 안 날 수 있겠는가.

    그 돌파구가 바로 여기 디펜더스인데, 가디언스에 또 밀려 버렸으니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에게 개별 접근하는 건 어떻게 되었죠?”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제니퍼의 물음에 제이슨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성과가 전혀 없어.”

    “전혀 없다고요? 그게 말이 되나요?”

    “강하진을 중심으로 아주 똘똘 뭉쳐있어. 접근한 부하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젓더군. 강하진 그놈, 겪으면 겪을수록 아주 대단한 놈이야.”

    “지금이 그놈 칭찬할 때야? 대책을 마련해야지, 대책을. 내가 여기에 뭘 걸었는지 알면서 이러고 있는 거야?”

    스팬서의 짜증에 제이슨이 담담히 대답했다.

    “여기서 너보다 적게 베팅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 흥분하지 말고 너도 대책을 고민해 봐.”

    “끄응.”

    스팬서는 결국 한 발 물러났다. 제이슨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자신의 모든 걸 디펜더스에 걸었다.

    무조건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판이었고.

    “이 모든 게 가디언스 때문이라면······ 가디언스를 없애거나 포섭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 아닌가요?”

    제니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제가 한 번 움직여 보죠. 가디언스에도 남자는 있을 테니까.”

    제니퍼는 섬뜩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써야겠죠? 좀 무리를 해서라도.”

    그러니 나름의 각오를 하고 있으라는 말이었다.

    제이슨을 시작으로 모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디펜더스가 하려던 일을 먼저 시작한 가디언스를 처리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 * *

    강하진은 루브르에서 원하던 걸 얻은 후 바로 귀국했다.

    프랑스의 일을 시작으로 가디언스는 세계로 나갈 계획이었다.

    이 일은 좀 서둘러야 한다.

    디펜더스가 절대 그냥 구경만 하고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방해를 할 것이고, 또 그들 역시 같은 일을 조만간 시작할 것이다.

    그 전에 최대한 자리를 잡아 둬야만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과 비슷한 걸 몇 번 더 하는 것이다.

    인상적이면 인상적일수록 좋다.

    좀 더 조직적이고 효과적으로 움직일 필요성이 있었다.

    한국에 도착하니 공항이 시끌시끌했다.

    프랑스에서의 일이 한국에도 대대적으로 알려진 것이다.

    물론 명인혁과 윤경민의 작품이었다. 정아연도 한 손 거들었고.

    상당히 많은 기사가 풀렸고, 프랑스 현지 반응까지 곁들여 굉장한 관심을 끌었다.

    프랑스는 이제 살짝 관심이 꺾였는데, 한국은 오히려 더 타오르고 있었다.

    공항에 기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바로 기자회견 자리가 마련되었고, 강하진과 황수영 위주로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강하진은 아주 능숙하게 기자들을 상대했다.

    옆에 있던 황수영이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자리는 강하진에게 아주 익숙했다. 회귀 전에 일상처럼 하던 일이었으니까.

    그때는 전 세계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반쯤은 착각이었지만.

    기자회견을 간단히 끝내고 나중에 인터뷰까지 약속하고서야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디언스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황수영이 강하진을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뭐예요. 왜 그렇게 능숙해요?”

    “뭐가 말입니까?”

    “난 또 그동안 말을 잘 못해서 피해 다니는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네요?”

    강하진은 그저 웃기만 했다.

    여기서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경험이 많아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라?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웃음이네요?”

    강하진은 황수영이 생각보다 촉이 좋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 * *

    강하진은 돌아오자마자 윤경민을 만나 향후 가디언스의 해외 활동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영국 박물관에 방문할 수 있도록 힘을 써보라는 지시도 내렸다.

    윤경민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일들을 착착 처리해 나갔다.

    사실 안 될 거라고 여겼는데, 영국 박물관 일정을 잡아온 것이다.

    가디언스의 해외 활동이야 어차피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지금은 그저 준비 단계였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 전에 아공간 재료를 여기 꽉 채워 주시면 됩니다.”

    윤경민이 거대한 창고 사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 양이 좀 많네요?”

    “영국 박물관에 들어가는 게 그리 쉬울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아공간 다섯 개 팔아주기로 하고 받은 약속입니다.”

    고작 아공간 다섯 개로 영국 박물관을 얻어냈다면 정말 크게 남는 장사였다.

    “잘하셨습니다.”

    강하진의 말에 윤경민이 씨익 웃었다.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방문 예정일은 열흘 후입니다. 시간이 아주 넉넉하니 충분히 이 창고를 채울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뭐······ 그 정도야 해드려야죠.”

    “그럼 지금 바로 가시죠.”

    “지금 바로요?”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10일 후에 박물관에 도착해야 한다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강하진은 그제야 눈을 크게 뜨고 테이블에 놓인 사진과 윤경민을 번갈아 쳐다봤다.

    왠지 저기 가면 영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다시 여기 돌아오기 어려울 듯한 예감이 들었다.

    윤경민의 싱글벙글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혼자 일을 워낙 많이 하고 있으니 고작 이 정도를 하기 싫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일단 인혁이 좀 만나고 가죠. 시킬 일이 있으니까요.”

    “그러시죠.”

    왠지 웃는 얼굴이 얄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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