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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10화 (110/200)
  • < 루브르 박물관 3 >

    “아직도 박물관에서 안 나왔다고요? 오늘이 며칠 째인지 아세요?”

    황수영의 표정에는 황당함과 분노가 적절이 버무려져 있었다.

    하지만 엔조는 정말 억울했다.

    “안 나오겠다고 하시는데 어쩝니까. 이젠 말을 걸기도 무섭습니다. 근처에만 가도 칼날에 살갗이 베이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먹지도 자지도 않고 닷새나 거기 있었는데. 그러니까 먹을 거라도 좀 갖다 주면 좋잖아요.”

    “그게 규정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지라······.”

    엔조가 정말 난감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사실 엔조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은 각성자 협회장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루브르 박물관은 중요한 곳이었으니까.

    거기에 맞물린 기관과 정치인, 그리고 기업과 가문이 너무나도 많았다.

    규정을 바꾸거나 그걸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였다.

    뭐 하나를 하려고 하면 그들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황수영도 하도 답답해서 말을 이렇게 할 뿐, 이 일로 엔조가 얼마나 애썼는지 잘 알고 있었다.

    ‘대체 거기서 뭘 하는 거야.’

    황수영은 답답한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제가 거기 들어가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

    엔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강하진 씨가 나올 때까지는 못 들어갑니다. 그게 규정이니까요. 그리고 저도 이제 못 들어갑니다.”

    지금 강하진 곁에는 엔조 대신 다른 협회의 각성자가 붙어 있었다.

    그 역시 강하진에게 호의적이긴 했지만, 엔조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엔조가 나온 이후 두 번째로 들어간 사람이었다.

    그들 역시 거기 들어가면 자지도 먹지도 않아야 하니,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엔조가 사흘을 버텼고, 그 다음 각성자가 이틀을 버텼다.

    그리고 몇 시간 전에 세 번째 각성자가 들어간 것이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대체 어떻게 그 정도로 버틸 수 있는 걸까요?”

    “그걸 알면 저도 거기 같이 있었겠죠.”

    황수영은 지루하다는 이유로 박물관에서 나온 걸 후회 중이었다.

    설마 강하진이 이렇게 오랫동안 버틸 줄은 몰랐다.

    지금 이 방에는 황수영과 엔조만 있었다. 하지만 곧 20명의 가디언스 길드원들도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지금 던전에 나가 있었다.

    강하진이 돌아오는 걸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지금 이 시점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한 것이다.

    황수영도 처음에는 같이 움직였다. 그때만 해도 강하진이 이렇게 오랫동안 안 돌아올 줄 몰랐으니까.

    프랑스의 던전은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사흘을 넘긴 순간부터, 정확히는 엔조 혼자 박물관에서 나온 뒤로는 걱정이 되어서 던전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멀쩡하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황수영의 시선이 루브르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물론 보이진 않았지만.

    * * *

    다들 그렇게 걱정하고 있는 동안 강하진은 굉장히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유물을 보면서 그것들이 가진 힘의 패턴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하나로 모이는 듯한 묘한 경험을 했다.

    그건 마치 의미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책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내용을 이해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패턴이 가지는 규칙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렇게 패턴의 규칙이 뇌리에 새겨진 순간, 그걸 토대로 시스템과 새로운 연결고리 하나가 생겨났다.

    지금 강하진은 그 연결의 과정에 놓여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는지라 아무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근처에서 지켜보는 프랑스 협회의 각성자는 별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강하진이 유물 하나를 앞에 두면 최소 30분에서 최장 3시간까지 미동도 않고 집중한다는 걸 알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데 이번에는 사실 평소와 같지 않았다.

    [침식 68% 진행 중]

    시스템과의 연결이 침식이라는 형태로 지금 강하진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68%까지 오는 데 거의 3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시간이 대충 한 시간 반 정도라는 얘기다.

    그때까지 저 각성자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료하게 지켜보기만 하면 괜찮은데, 혹시 말을 걸거나 건드리면 곤란했다.

    아니, 솔직히 그렇게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강하진도 아직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지 모르고, 또 어쩌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런 변수를 애초에 차단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다행히 협회의 각성자는 하품만 쩍쩍 하고 별다른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 와서 강하진에게 인사를 한 뒤로 한 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여기 오기 전에 상부에서 단단히 지시를 받았다.

    절대 강하진을 방해하지 말라고.

    위에서도 박물관에 들어간 강하진이 오랫동안 나오지 않아서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뒷감당이 어려워진다.

    그 덕분에 아주 무사히 침식이 완료되었다.

    강하진은 시스템과의 새로운 연결고리 하나를 더 얻었다.

    [시스템과 연결되었습니다.]

    [칭호 ‘예비 관리자 후보의 자격을 얻은 자’를 획득했습니다.]

    [칭호 ‘시스템의 흔적을 발견한 자’를 획득했습니다.]

    [스킬 ‘패턴 분석’을 획득했습니다.]

    망막에 정보가 주르륵 떠올랐다. 하나하나가 심상치 않았다.

    일단 스킬부터 확인했다. 그게 제일 무난해 보였으니까.

    [패턴 분석(P)]

    [시스템이 남긴 패턴을 빠르게 분석할 수 있다. 분석 속도는 숙련도에 따른다.]

    간결한 설명이었다. 아마 유물에 남은 힘의 패턴을 뇌리에 새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스킬인 모양이었다.

    이제 새로 얻은 두 개의 칭호를 확인할 차례였다.

    [예비 관리자 후보의 자격을 얻은 자]

    [예비 관리자 후보가 되기 위한 세 개의 자격 중 하나를 얻은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정신력+100, 마력+100]

    올라가는 능력치가 상당했다.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보통 좋은 칭호에는 좋은 스킬이 붙어 있는데, 그런 건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예비 관리자 후보라······.’

    관리자도 아니고 고작 예비 관리자의 후보가 되는 데도 세 개의 자격이 필요하다.

    그 중 하나가 유물에 새겨진 힘의 패턴을 이용해 시스템과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앞으로 그런 걸 두 번이나 더 해야 예비 관리자 후보가 되는 것이다.

    고작 후보가 그럴 진대, 예비 관리자가 되려면 또 얼마나 대단한 걸 해내야 할지 아찔하다,

    하지만 그걸 보면 관리자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관리자라는 건 무언가를 관리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렇다면 과연 뭘 관리하는 존재일까?

    ‘시스템.’

    당연히 시스템이다.

    과연 시스템을 관리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강하진은 고개를 휘휘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그런 걸 미리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아직 세 개의 자격 중 고작 하나 얻었을 뿐이니까.

    그것도 아주 우연히.

    강하진은 남은 하나의 칭호도 확인해봤다.

    [시스템의 흔적을 발견한 자]

    [과거의 시스템이 남긴 흔적을 발견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이 칭호를 소유한 자는 과거의 시스템이 남긴 흔적을 추가로 찾아내야만 한다. 모든 능력치+50]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왠지 저 칭호를 보고 있으니 거기에 뭔가 다른 내용이 추가적으로 달려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럴 때 써먹으려고 [당당하게 엿보기] 스킬이 있는 것이다.

    집중에 집중을 더한 결과 뒤에 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시스템의 흔적을 발견한 자에게는 다른 흔적을 찾아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시스템과의 연결이 강제로 끊어진다. 흔적을 하나 찾을 때마다 흔적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흔적의 권리?’

    강하진은 문득 자신이 이번에 발견한 과거 시스템의 흔적이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처음에는 유물이라고 여겼다.

    유물의 패턴을 확인하다가 시스템과 연결되었고, 칭호를 얻었으니까.

    한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여기였어! 루브르 박물관!’

    이 박물관이 바로 과거 시스템의 흔적이었다.

    그렇다는 건, 영국의 박물관도 마찬가지로 과거 시스템의 흔적이라는 뜻이었다.

    강하진은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자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협회의 각성자가 다가왔다.

    “혹시 찾으시는 유물이 따로 있으십니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강하진이 고개를 저으려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물었다.

    “이 박물관의 중심이 어디입니까?”

    “중심이요?”

    그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중심은 유리 피라미드 아닐까 싶군요.”

    강하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걸음을 옮겼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각성자가 강하진을 유리 피라미드 아래쪽으로 데려갔다.

    강하진은 정확히 피라미드 중심 아래에 섰다.

    그러자 느낌이 확 왔다.

    이게 바로 시스템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걸 찾은 거였다.

    무수한 패턴으로부터 도출되어 머릿속에 새겨진 바로 그 패턴이 정확히 이곳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 서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과거 시스템의 흔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건 이미 사라진 시스템의 잔재였다.

    말 그래도 유적지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현 시스템의 힘을 갈취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의 유물이 왜 시스템에 침식되고, 그 결과 아이템이 되는지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이 여기서 뭘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강하진에게 주어진 의무는 이 과거 시스템의 잔재를 현 시스템에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잠시 심호흡을 하던 강하진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협회의 각성자는 대체 저 사람이 왜 저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오랫동안 굶고 잠을 안 자서 뭔가 이상이 온 건가?’

    그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에 고민했다.

    이대로 강하진을 강제로 데리고 나가야 하는 거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다시 눈을 뜬 강하진이 그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밖으로 나가고 싶군요.”

    강하진의 말에 각성자가 눈을 크게 떴다.

    “즉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각성자는 앞장서서 걷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가서 제일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음식을 준비해 드릴까요? 아니면······.”

    “일단 동료들부터 만나고 싶군요. 아무래도······ 걱정이 많을 테니까요.”

    각성자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다들 정말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마 연락이 갔을 테니 여기서 나가시면 바로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두 사람은 기분 좋게 루브르 박물관에서 나갔다.

    * * *

    박물관에서 나간 강하진은 일단 동료들을 만난 뒤,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황수영은 분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한바탕 잔소리라도 쏟아내야 하는데, 그걸 채 하기도 전에 강하진이 쓰러져 잠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아오, 억울해!”

    이렇게 멀쩡하게 나올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덜 걱정할 것을. 그리고 가디언스 길드원들이랑 같이 사냥이나 다닐 것을.

    그래도 황수영은 잠든 강하진의 모습을 보고는 슬그머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뭔가······ 더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래 굶어서 그런가? 나도 이참에 다이어트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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