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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08화 (108/200)

< 루브르 박물관 1 >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더라는 얘기가 딱 들어맞는 아침이었다.

던전에 들어가 사냥하는 것처럼 오랫동안 싸우진 않았지만, 혹시나 포위망에 구멍이 뚫릴까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심력을 쏟고 긴장을 했더니 간밤에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잤다.

황수영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기지개를 켜고 피로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씨익 웃고 침대를 벗어났다.

일단 빛이라도 좀 쬐어야겠다 싶어서 커튼을 쫙 열었는데,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다시 커튼을 닫았다.

“이게······ 뭐지?”

황수영은 고개를 휘휘 저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다시 커튼을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만 열었다.

호텔 앞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호텔 앞에 모여 있었다. 피켓이 여기저기 보였는데, 내용은 고맙다, 사랑한다부터 시작해서 결혼해 달라는 것까지 별의 별 게 다 있었다.

마치 아이돌 콘서트에 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든 것이 황수영과 강하진, 그리고 가디언스에게 향해 있었다.

엔조가 작정을 하고 그들을 밀어준 것이다.

프랑스의 다른 각성자들도 함께 그걸 막아냈지만, 사실 강하진 일행이 먼저 나서서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기의 요인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강하진과 황수영은 물론이고 가디언스의 길드원까지 전부 외모가 뛰어났다.

가디언스에는 여자 길드원이 많은데 이번에는 성비를 맞춰서 각 열 명씩 데려왔다. 한데 그 스무 명 모두 미남미녀였다.

똑같이 고마운 사람이고 영웅이면, 아무래도 외모가 뛰어난 쪽에 마음이 더 쏠릴 수밖에 없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플러스 요인이 된 것이다.

엔조는 그 모든 걸 이용해 언론 플레이를 했다. 가디언스를 프랑스의 은인으로 아주 잘 포장해 놓은 것이다.

그것이 고작 하룻밤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내막을 알 리 없는 황수영으로서는 갑작스러운 이 사태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이거 뭐야······ 저래서 밖으로 나갈 수는 있는 거야?”

오늘부터는 약간의 관광 일정이 있었다. 애초에 여기 오기 전부터 중요한 일 하나만 처리하고 남은 시간에는 관광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가디언스 길드원들을 어떻게 따돌리고 강하진과 둘이서 다닐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잠들었는데, 저래서야 어떻게 밖을 돌아다닌단 말인가.

황수영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대충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물론 호텔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고, 강하진의 방으로 갈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니 마침 가디언스의 다른 길드원들도 하나둘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현재 있는 층 전체를 가디언스가 쓰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다들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딘가 민망하면서 또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하면서 그리고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한 복잡한 표정이었다.

“다들 목적은 똑같나보네요.”

황수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얼른 강하진의 방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강하진이 기척을 느끼고 알아서 문을 열어준 것이다.

“다들 들어오세요.”

강하진의 말에 가디언스 길드원들이 얼른 황수영의 뒤를 따라서 강하진의 방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그리고 방안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엔조를 발견하고는 흠칫했다가 각자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 피곤하실 법도 한데, 역시 가디언스로군요. 다들 얼굴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하하하.”

엔조는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제 일로 엔조의 위상이 급격히 상승했으니까.

그동안은 그저 실력 좀 좋은 협회장의 아들 정도의 위치였는데, 이젠 파리를 지켜낸 사람이 되었으니까.

“다들 좀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제가 마음이 급해서 좀 서둘렀습니다.”

“언론에 어제 일을 쫙 뿌린 건가요? 저희들 사진까지 해서?”

황수영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사진은 안 뿌렸습니다. 그저 한국에서 온 각성자들이 프랑스를 구했다는 사실을 부각시켰을 뿐입니다.”

황수영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엔조를 바라봤다.

“정말입니다. 나머지는 극성스러운 사람들이 알아서 진행한 일일 뿐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도록 약간 부추기긴 했지만, 지금 한 말은 어디까지나 진실이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역시 인터넷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많더군요. 한국에 있는 기사부터 시작해서 모든 정보를 싹싹 긁어서 프랑스에 쫙 뿌려 버렸습니다.”

엔조가 씨익 웃으며 황수영과 가디언스들을 둘러봤다.

“저도 이제 알았는데, 다들 한국에서는 아주 유명하신 분들이더군요.”

황수영은 그제야 사태의 전말을 이해한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런데 우리 마스터 사진도 있나요? 아마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아, 정말 그렇더군요. 그래서 제가 직접 찍어서 올렸습니다.”

“예에?”

다들 깜짝 놀라 엔조와 강하진을 번갈아 바라봤다. 혹시라도 저 말에 강하진이 화를 내면 어쩌나 해서였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강하진이 화내는 모습을 한 번 보고 싶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강하진은 한 번도 화를 내거나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을 한 번쯤 보고 싶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다들 강하진을 바라보자, 강하진이 굉장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제공한 사진입니다. 제법 잘 나왔더군요.”

다들 입을 쩍 벌리고 강하진을 바라봤다.

“아니, 대체 왜 갑자기······.”

“선점이 가장 쉬우니까요.”

“선점이요?”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 명만은 눈을 크게 떴다.

“디펜더스!”

“맞습니다. 그들이 하려던 일을 제가 먼저 시작했습니다.”

강하진은 한 층 강해진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봤다.

“그게 앞으로 가디언스가 움직일 방향이기도 합니다.”

가디언스 길드원들은 그 말과 눈빛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강하진이 그걸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일정은 박물관 방문으로 잡았는데, 다들 루브르 어떠십니까?”

가디언스 길드원들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사람이 저렇게 많아서 제대로 된 관광을 하긴 글렀다.

한데 프랑스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정말 유명한 곳이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은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아마 거기라면 별다른 방해 없이 관광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의 눈에 황수영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전 사양할게요. 오늘은 피곤해서······.”

그걸 본 길드원들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라면 다른 사람은 전부 포기하게 만들고 자기만 따라붙겠다고 무슨 수든 썼을 사람이다.

한데 저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게다가 이유가 피곤해서?

이 중에서 가장 피곤하지 않을 사람을 한 명만 꼽으라면 단연 황수영일 텐데도?

그제야 다들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화살이 날아가 버렸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즉시 박물관 출입에 대한 문제를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다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테니까요.”

엔조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해 버렸다.

그러고는 강하진을 보며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아하, 생각해보니 두 분은 영국 박물관에도 다녀오셨죠? 아마 루브르에 가 보시면 분명히 차이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영국 놈들이 제대로 된 유물을 전시해 뒀을 리가 없으니까요. 우린 모든 걸 제대로 공개해 드릴 겁니다.”

엔조가 씨익 웃으며 길드원들을 슥 둘러봤다.

그들은 강하진과 황수영이 영국 박물관에 함께 갔었다는 얘기를 들은 시점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다.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단 말인가.

“아, 한 가지만 주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두를 주목하게 한 엔조가 신중히 말했다.

“루브르는 현재 보안을 위해 함부로 문을 열지 않습니다. 일단 들어가실 때나 나오실 때는 모든 분이 함께여야 합니다. 영국에서도 경험해 보셨을 테니, 두 분은 익숙하시죠?”

황수영이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휙 내저었다.

“아유, 전 안 간다니까요? 그렇게 처리하신 거 맞죠?”

“어? 안 가신다고 하셨습니까?”

황수영의 안색이 확 변했다.

“장난하지 마세요. 죽여 버리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엔조가 식은땀을 흘렸다.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제가 프랑스의 영웅들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대접하겠습니까? 황수영 씨도 그냥 같이 가시죠. 중간에 언제든 나올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황수영은 여전히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영국에서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같이 가시죠. 혹시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강하진까지 그렇게 말하니 황수영도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결국 절대 하지 않을 거라던 선택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뭐, 그러죠.”

* * *

“어떻습니까? 루브르를 중심으로 여기까지는 아예 아무도 못 들어가게 막아놨습니다. 보안도 정말 철저하죠.”

다들 질린 눈으로 4미터는 되어 보이는 장벽을 올려다봤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

“영국에서 보셨으면 아시지 않습니까. 충분히 이럴 가치가 있다는 걸.”

“솔직히 전 별로 그런 건 못 봐서······.”

황수영의 말에 엔조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흥, 영국 놈들이 다 그렇죠. 핵심은 빼돌리고 쭉정이만 잔뜩 보여준 모양이군요.”

물론 그 쭉정이들이 강하진에게는 더 좋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여기에서는 더 자세한 정보를 오랫동안 확인할 수 있을 테니 기대감이 정말 컸다.

“자, 이쪽입니다.”

장벽 위에는 곳곳에 CCTV가 달려 있었다. 또한 높은 망루가 여러 개 있어서 그야 말로 철통같은 감시를 했다.

각성자들로 구성된 순찰대까지 있어서 장벽 주위를 불규칙하게 이동하면서 감시한다고 하니, 정말 보안에 어느 정도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바깥도 이 정도인데, 내부는 더 심하겠네요.”

“물론입니다. 이걸 위해서 이 주변을 싹 정리했으니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 이상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그 말에 다들 눈을 반짝였다.

루브르에 대한 소문은 다들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 근방의 건물을 싹 밀어서 이런 방벽을 둘렀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뽑아낸다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아이템이 쏟아지고 있단 말인가.

“궁금하긴 하네요.”

황수영은 그 말로 기대감을 표현하고는 걸음을 서둘렀다.

역시나 방벽 안쪽의 경계도 엄청났다.

사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보안 검색대를 몇 번이나 지나쳐야했고, 들어갈 때는 그 어떤 장비도 착용하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루브르에서 제공하는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했다.

“사실 이 규정은 생긴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옷을 받아들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황수영에게 엔조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공간 때문에 생긴 규정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제야 황수영이 아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공간을 들고 이 안에 들어오면 위험하긴 하다. 각 유물마다 보안이 철저하게 되어 있을 테지만, 열 손으로 도둑 한 손 못 막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공간 판매자가 여기 떡하니 계시니 딴 말도 못하겠네요.”

황수영이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 * *

확실히 루브르는 영국 박물관보다 훨씬 대단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영국에서는 핵심을 모두 감추고 껍데기만 보여준 것이고, 루브르는 자랑하듯 모든 걸 내보여준 것이다.

일단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좌우로 쫙 진열된 물건들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전부 아이템화가 끝난 유물들이었다. 게다가 감정서까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강하진은 그것들을 찬찬히 확인했다. 물론 엿보기 스킬을 통해서.

‘저게 가장 눈에 띄긴 하는데······.’

[암흑의 장검]

[어둠의 힘이 깃든 장검. 소유하고 있으면 어둠 속성을 다룰 수 있게 된다. 힘+45, 민첩+40, 스킬 ‘어둠의 장막’을 쓸 수 있다.]

어둠의 장막이라는 스킬이 깃들어 있긴 하지만, 영국에서 강하진이 가로챈 아이템에 비하면 수준이 너무 낮았다.

[어둠의 장막]

[어둠 속성을 순간적으로 증폭해 상대의 시야를 가린다.]

스킬도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천참만륙]과 비교하면 너무 떨어진다.

당시 강하진이 가로챘던 패왕의 창이나 현자의 서 같은 경우 칭호까지 부여해주지 않았던가.

우연히 좋은 아이템을 손에 넣었다고 하기에는 그 빈도가 너무 높았다.

그리고 여기 모인 아이템의 수준이 너무 낮았고. 일단 능력치 상승 폭도 절반이 채 안 되지 않은가.

암흑의 장검 말고 다른 아이템은 다들 수준이 훨씬 떨어졌다.

강하진은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천천히 유물을 구경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강하진과 달리 다른 사람들은 감정서를 확인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우와, 이런 아이템이 나온단 말이에요? 이 정도면 거의 우리 공방에서 나오는 최상급 아이템이랑 비슷한 수준 아냐?”

가디언스 길드원 중 하나가 호들갑을 떨며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여 인정했다.

한데 그 말을 걸러 들을 수 없는 사람이 함께 있었다.

“자, 잠깐만요. 가디언스 공방에서 이런 물건을 만들 수 있다고요?”

엔조가 경악한 눈으로 가디언스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경매로 팔고 있는 걸로 아는데, 모르셨어요?”

엔조의 머릿속에서 가디언스에 대한 평가가 새로 쓰여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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