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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07화 (107/200)
  • < 뤽상부르 공원의 던전 >

    던전에서 나간 엔조는 다급히 전화부터 돌렸다.

    황수영이 말한 대로 되었으니 이제 자신이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그냥 던전만 나타났어도 들어줄 약속이었는데, 전해준 정보의 진위여부까지 직접 몸으로 확인했으니 더더욱 철저히 지킬 생각이었다.

    엔조는 일단 아버지인 협회장에게 연락을 해서 정보가 진짜라는 걸 말해줬다. 자신의 레벨이 하나 올랐다는 사실도 함께 전했다.

    프랑스 각성자 협회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각성자들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뤽상부르 공원으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물론 그 지시를 듣고 말고는 각성자의 자유였지만, 협회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움직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할 각성자는 거의 없었다.

    더구나 그 주체가 협회장의 아들이자 프랑스 협회의 미래라 일컬어지는 엔조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수많은 각성자들이 뤽상부르 공원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던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던전이 좀 작은 거 같지 않아?”

    “같은 게 아니라, 확실히 작아. 반 정도 되는 거 같네.”

    “그럼 안 위험한 거 아닌가? 너무 많이 모이는 거 같은데?”

    다들 눈살을 찌푸렸다.

    각성자 협회가 과잉 대응을 하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아마 이대로 별 일 없이 넘어가 버리면 결국 엔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엔조는 그걸 감안하고도 직접 움직여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뤽상부르 공원에 모인 각성자의 수는 500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리고 빠르게 움직여 일반인을 공원에서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사전에 강하진, 황수영과 약속한 사항이었다.

    이제 마지막 순서가 남았다.

    엔조는 각성자들에게 이 뤽상부르 공원의 던전을 닫을 때까지 강하진의 지시를 따르라고 말했다.

    당연히 반발이 튀어나왔다.

    “저따위 작은 던전은 우리 팀만 들어가도 충분히 닫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각성자 하나가 비아냥거리며 말하자, 강하진이 그를 서늘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닫는 데 몇 시간이 필요하지?”

    “뭐?”

    “한 시간 안에 닫을 수 있나?”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강하진은 대답 대신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한 시간 반 남았다.

    고작 1시간 30분 만에 이 많은 각성자를 모은 것이다.

    엔조의 능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회귀 전에도 엔조와는 좀 아는 사이였다. 그는 제법 괜찮은 서포터였으니까.

    특히 프랑스 쪽은 거의 엔조가 절반 정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비아냥거리는 저 각성자, 샤를이 나머지 절반을 장악하고 있었다.

    둘은 서포터 내에서도 항상 대립했다.

    ‘그러고 보니 이 일로 샤를이 튀어 올랐다고 했지?’

    이 뤽상부르 공원의 던전이 갑자기 터지고, 그걸 수습하는 과정에서 샤를이 엄청난 공을 연달아 세웠다.

    괴물의 보스를 샤를의 팀이 처리한 것이다. 그것도 수많은 시민들이 보고 있는 와중에.

    그때부터 샤를의 인기가 치솟았고, 그는 그걸 완벽하게 이용해서 디펜더스, 당시의 가디언스에 엔조보다 먼저 붙었다.

    그것이 그나마 있던 엔조와 샤를의 차이를 없애 버렸다.

    만일 엔조가 먼저 가디언스에 들어갔다면 전혀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엔조의 성향 상, 가디언스의 정책이 마음에 안 들어서 가디언스의 가입을 뒤로 미루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건 회귀 전의 일이고, 이제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뤽상부르 공원의 던전에서 나오는 괴물을 완벽하게 틀어막을 테니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강하진과 가디언스가 서 있을 테니까.

    “그러는 당신은 한 시간 안에 저 던전을 닫을 수 있나?”

    “당연히 못 하니까 이러고 있지.”

    “뭐? 이 미친······!”

    “앞으로 네 시간.”

    “뭐?”

    강하진은 샤를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나머지 각성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앞으로 네 시간만 내 지시에 따르면 된다. 그 다음은 너희 마음대로 해.”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하진은 그 와중에 말을 이었다.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신기하게 강하진의 말은 각성자들의 귀에 그대로 꽂혔다.

    “그 다음에는 나랑 싸우고 싶다면 싸움도 받아주고, 술을 마시고 싶다면 술도 마셔주지. 어때? 고작 네 시간인데, 그것도 못 참는 사람 있나?”

    순식간에 소란이 잦아들었다.

    각성자들이 강렬한 눈빛으로 강하진을 노려봤다.

    특히 앞에 있는 샤를의 눈빛은 무시무시했다.

    “좋아. 네 시간만 참아주지. 하지만 그 다음에는 나랑 먼저 싸워야 할 거야.”

    강하진은 피식 웃고는 나머지 각성자들을 둘러봤다.

    “다들 인정하면 그렇게 하지.”

    샤를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시선은 강하진에게서 저 멀리 서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엔조에게로 옮겨갔다.

    “좋아, 참지. 네 시간.”

    강하진은 각성자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을 불러 앞으로 할 일을 지시했다.

    이제 저들의 지휘권을 얻었으니 진형을 배치할 시간이다.

    그저 던전을 포위하기만 한다고 끝이 아니다. 적절한 인원 분배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강하진에게는 그걸 누구보다 잘 해낼 능력이 있었다.

    모든 각성자의 정보를 훤히 꿰고 있는데다가, 회귀 전에 이런 싸움은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해봤으니까.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이 강하진의 지시를 받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강하진은 그들에게 적절히 지시를 내리며 진형을 차근차근 짜 나갔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 * *

    강하진은 던전 앞에 서서 주위를 슥 둘러봤다.

    진형이 제법 잘 짜여졌다.

    엿보기 스킬을 통해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고 어느 쪽이든 전력이 떨어지거나 과하지 않게 맞췄다.

    또한 스킬이 서로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분배했다.

    하지만 사실 이것만으로는 모자란다.

    회귀 전에는 이 던전에서 다섯 종류의 괴물이 나왔는데, 그놈들이 공원을 넘어 파리 시내로 들어가 난장판을 만들었다.

    무수한 사람이 죽었고, 많은 차와 건물, 도로가 부서졌다.

    물적, 인적 피해가 천문학적이었다.

    하지만 괴물 자체가 강력한 건 아니었다.

    물론 아무리 그렇더라도 뉴타입 던전의 괴물이었다. 방심하는 순간 끝장난다.

    또한 지금 짠 이 진형과 포위망을 철저히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여기서 한 쪽이 밀려나기라도 하면 그대로 포위망이 와해될 것이다.

    그때부터는 진흙탕 싸움이 시작된다.

    고작 이 정도 수의 각성자로는 진흙탕 싸움에서 괴물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다.

    ‘일단 처음 던전이 터질 때의 마력 폭발을 중화시키는 게 중요해.’

    던전이 작으니 마력 폭발의 범위도 좁고, 위력도 약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현재 촘촘하게 짜 놓은 진형을 뒤로 밀어내면서 뭉개버릴 수 있다.

    그 뒤에 이어진 괴물의 돌격을 막아내기 버거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마력 폭발을 막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사실 그 다음부터는 강하진이 자신의 역량으로 어떻게든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강하진에게는 버프와 힐링이 있으니까.

    시선을 옆으로 슬쩍 돌리니 몸을 풀고 있는 황수영이 보였다.

    프리롤을 맡은 황수영에게도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아마 위험한 상황이 오면 그녀의 힘이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왜요? 위기가 다가오니까 갑자기 제가 예뻐 보이기라도 해요?”

    황수영이 강하진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씨익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든든합니다.”

    강하진의 대답에 황수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건 정답이 아니에요.”

    강하진은 빙긋 웃었다. 요즘은 회귀 직후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회귀 전보다 오히려 더 여러 감정이 풍부해진 기분이었다.

    사실 회귀 전에는 오직 던전을 세상에서 지운다는 목표 하나로 달렸고, 회귀 직후에는 복수심으로 달렸다.

    한데 지금은 그 두 가지 감정이 왠지 많이 희석되었다.

    그 사이에 다른 감정들이 하나둘 스며들어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건 황수영 덕분이기도 했고, 정아연 덕분이기도 했다.

    또한 가디언스 소속 여러 동료들의 지분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이 회귀 전보다 훨씬 좋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하진이 고개를 돌려 던전을 쳐다봤다.

    “슬슬 시작될 것 같군요.”

    강하진의 말에 황수영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볍게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이 각자 맡은 자리에 서서 주변 각성자들을 일깨웠다.

    다들 영문을 몰랐지만, 워낙 그걸 주도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심각했기에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그 순간 던전이 폭발했다.

    콰우우우우!

    거대한 마력의 폭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각성자들은 깜짝 놀랐지만 이를 악물고 그걸 버텨냈다.

    한데 놀랍게도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다들 눈을 크게 뜨고 던전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그 자리에 서서 양 손을 뻗고 있는 강하진의 모습이 보였다.

    강하진의 양 손에는 각각 커다란 마석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그 마석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각성자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제야 자신들이 이걸 버틸 수 있는 이유를 알아차린 것이다.

    저 마석 두 개를 희생해 마력 폭발의 위력을 줄인 것이다.

    ‘저거 몇 단계짜리지?’

    빠르게 줄어들었는데도 저 정도 크기라면 원래는 대체 얼마만 했단 말인가.

    이내 마력 폭풍이 끝났다.

    각성자들은 조금도 원래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다.

    마력 폭풍이 끝났지만 안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포효와 함께 괴물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자리를 지켜! 절대 뚫리면 안 돼! 허어억!”

    누군가가 발악하듯 외쳤는데, 이상한 신음이 붙어 버렸다.

    하지만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들 그의 심정을 절절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강하진의 버프가 들어온 것이다.

    온몸에 힘이 끓어 넘쳤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들뜨는 마음을 강하진의 담담한 한 마디가 차갑게 가라앉혔다.

    “아직 시간 남았습니다. 내 지시, 반드시 이행하세요.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각성자들이 결연한 눈으로 무기를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도시를 지키기 위한 괴물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꾸어어어엉!”

    단말마와 함께 거대한 괴물이 천천히 쓰러졌다.

    쿠웅!

    온몸이 새까만 거인이었는데, 제대로 힘도 못 쓰고 죽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던전에서 나온 마지막 괴물이었다.

    괴물을 죽인 사람은 강하진이었고.

    그곳에 모인 모든 각성자들이 경외의 시선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심지어 처음 강하진에게 비아냥거렸던 샤를마저 강하진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의 눈빛 깊은 곳에는 경외와 두려움, 그리고 극심한 질투가 뒤섞여 있었다.

    강하진은 쓰러진 거인을 뒤로하고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15분 남았으니 마지막 지시를 내립니다. 다들 주변 정리하고 쉬세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만세를 외쳤다.

    뿌듯한 고양감이 온몸에 휘몰아쳤다.

    자신들이 파리를 지킨 것이다.

    담담히 그걸 지켜보는 강하진 곁으로 황수영이 다가왔다.

    오늘 황수영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다. 아마 강하진이 이렇게나 강력하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샤를의 질투어린 시선은 오직 황수영에게 집중되어 있었을 것이다.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황수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만일 강하진이 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아마 파리가 난장판으로 변했으리라.

    “그래도 어떻게든 막아냈을 겁니다.”

    “당연하죠. 대신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겠죠. 사람들도 많이 죽었을 테고요.”

    황수영의 말에 대꾸한 건 강하진이 아니라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엔조였다.

    “맞습니다. 두 분께서는 정말 큰일을 해주신 겁니다. 우리 파리의, 아니 프랑스의 은인입니다.”

    엔조는 방금 전의 상황을 각성자 협회에 보고했다. 그리고 앞으로 강하진이 하는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물관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를 넌지시 했더니 얼마든지 구경해도 좋다는 허가까지 떨어졌다.

    “자자,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일단 가시죠. 힘든 싸움을 했으니 휴식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좀 쉬고 싶네요. 하하하.”

    엔조의 말에 강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정리가 끝나면 다 같이 쉬죠. 다들 고생 많이 하셨는데.”

    그 말에 엔조가 눈을 빛냈다. 강하진이 원하는 게 뭔지 대번에 파악한 것이다.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맞습니다. 모두 힘을 모아서 단숨에 끝내버리죠.”

    엔조가 팔을 걷어붙이고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강하진과 황수영도 함께 그것을 도왔다.

    수백 명의 각성자들이 아무도 꾀부리지 않고 일을 하니 순식간에 정리가 끝났다.

    그렇게 뤽상부르 공원에서의 전투가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강하진과 가디언스, 그리고 황수영은 파리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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