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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00화 (100/200)
  • < 아공간 >

    정아연은 방금 새로 작성한 계약서를 찬찬히 확인했다.

    끝내주는 제품이 나왔지만, 원자재를 강하진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니 공정한 계약이 이뤄질 리 없었다.

    그건 충분히 감안하고 왔다.

    A-마켓의 경영진에서도 그저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만 했을 뿐, 계약 조건에 대해서는 정아연에게 몽땅 일임해 버렸다.

    그 말은 지나치게 불공정한 계약을 맺으면 정아연에게 타격이 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강하진은 그렇다고 해서 A-마켓과 지극히 공정한 계약을 할 생각은 없었다.

    강하진이 애초에 레모노의 송곳니를 독점했을 때의 목표는 A-마켓이 연구자를 모아 집중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그리고 두 번째가 강화석이 쓸데없는 사람에게 가는 걸 막는 것이었고.

    애써서 강화석을 만들었는데 그게 디펜더스에게 공급되면, 강하진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계약서에 그 부분을 명시했다.

    그리고 디펜더스는 DM과 밀접한 관계였기에 A-마켓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었다.

    정작 레모노의 송곳니의 판매 가격은 그리 높지 않게 책정했다.

    송곳니를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강화석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한 사람당 최대 30개의 강화석을 쓸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사실 가장 효과적인 건 다수가 하나씩 복용하는 것이다. 처음 복용했을 때 최상의 결과가 도출되니까.

    물론 강하진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대부분의 강화석은 가디언스에서 쓸 것이다.

    한 사람당 30개를 쓸 생각은 없지만, 최소 10개 이상은 쓸 계획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하시네요. 원래 우리가 갖고 있던 걸 독점하고 연구도 우리가 다 했는데 이득은 제일 많이 가져가시니.”

    정아연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제법 밝았다.

    이 정도면 경영진에서 보기에도 굉장히 좋은 계약이었으니까.

    일단 개당 단가가 말도 안 되게 쌌다.

    하나 구입할 때마다 하나의 강화석을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그때 들어가는 송곳니는 강하진이 제공하기로 했으니 사실 큰 손해는 아니었다.

    강하진에게 남은 송곳니의 수가 17만 개쯤 되니, A-마켓이 최종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강화석의 수는 85000개쯤 된다.

    개당 1억에 팔아도 사겠다는 각성자가 줄을 설 것이다. 1억이 뭔가 2억이나 3억에 팔아도 살 것이다.

    끝없이 쓸 수 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수량도 한정되어 있으니 가치는 갈수록 올라갈 것이다.

    아무리 비싸도 각성자는 강화석을 원할 수밖에 없었다.

    각성자의 수입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데다가, 던전이 점차 위험해져서 능력에 대한 갈증이 다들 심각하니까.

    “아무튼 이렇게 좋은 거래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아연이 환하게 웃으며 계약서를 챙겼다.

    이제는 계약을 이행하는 일만 남았다.

    “강화석을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까?”

    “아뇨. 제작 자체는 쉽다고 했어요. 그렇게 하려고 연구 진짜 많이 했거든요. 과정을 줄이면 줄일수록 성능이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불량률도 현저히 사라졌고요.”

    “역시 A-마켓에 맡기길 잘했네요.”

    그건 진심이었다. 만일 강하진이 그걸 떠안고 연구했다면 아마 아직도 제대로 된 개발물이 안 나왔을지 모른다.

    게다가 이렇게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도 못했을 테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탁월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정아연 같이 좋은 동료도 만났고 말이다.

    “A-마켓 분위기는 좀 어떻습니까? 거기서도 디펜더스를 아는 사람들이 제법 있죠?”

    “분위기야 별로죠.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은 다 안다고 보시면 돼요.”

    “아무래도 DM쪽이니까 신경 쓰는 사람이 많겠군요.”

    “심각할 정도로 많아요. 그래서 이번 강화석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어요. 솔직히 아까 그 문구는 굳이 계약서에 안 넣었어도 괜찮았을 거예요. 굉장히 경계하고 있거든요.”

    “나중의 일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겁니다. 혹시 A-마켓의 대주주들이 디펜더스에 붙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에이, 설마 그러려고요.”

    정아연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아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파티에서 겪었던 그 요상한 힘이 개입되기라도 하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정아연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놀란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그럼 유통망을 따로 만드신 이유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을 뿐입니다.”

    정아연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녀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반짝이는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유통망 확장하실 계획 없으신가요? 아무래도 보험을 몇 개 들어놓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그녀가 팔을 걷고 도와주겠다는 걸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강하진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가디언스의 아공간 판매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작품들이 단숨에 팔려나갔다.

    판매 방식은 경매였는데, 경매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로 높은 가격에 팔렸다.

    아공간이라는 건 그 정도 가치가 있었다.

    첫 번째 판매는 비밀리에 이뤄졌다.

    물론 비밀이라고 해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영국의 파티에서 만났던 자들을 통해 경매 사실을 알려 알음알음 퍼져나가게 만들었으니까.

    구매에 성공한 자들은 지극히 만족했다.

    희소성도 희소성이지만 아공간의 유용함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이번에 판매한 아공간의 크기는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0미터쯤이었다.

    물론 아공간의 모양이 정육면체인 건 아니었고, 그냥 그 정도 크기의 공간이 있다고 보면 된다.

    무게 제한은 없었기에 굉장히 유용했다.

    또한 아공간에 음식을 넣어두면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되기에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아공간을 구매한 부자들은 하나같이 생각했다. 이건 각성자들이 쓰면 정말 유용하겠다고.

    아공간에 무기나 생존을 위한 물품, 식량, 포션 등을 넣어가지고 다니면 던전에서 사냥하기가 얼마나 편해지겠는가.

    일단 보급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되니 더 오랫동안 던전에서 사냥이 가능해지는 건 물론이고, 중간에 쉬거나 잠을 잘 때도 훨씬 쾌적한 생활이 가능해진다.

    이번에 아공간을 구입해 간 사람들은 다수의 각성자로 구성된 조직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 사냥에 아공간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당연히 할 수밖에 없었다.

    아공간에 대한 문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윤경민은 입이 찢어질 정도로 좋아했다. 찢어진 입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아 그대로 굳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어이구, 우리 고객님들이 이렇게 많으셨구나.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어. 으흐흐흐.”

    윤경민이 그러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던 강하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윤경민의 눈 밑에 드리운 다크서클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몸에 쌓인 피로가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인 듯했다.

    아공간 판매를 시작한 이후 더 심해졌다.

    강하진은 윤경민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설마 또 절 놀라게 할 만한 일거리를 찾아오신 겁니까?”

    윤경민의 눈에서 일순 광채가 일어났다.

    강하진은 그걸 보며 질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이 사람의 뇌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기에 모든 걸 일로 연결한단 말인가.

    “건강은 괜찮습니까?”

    윤경민이 환하게 웃으며 알통을 만들듯 팔뚝을 꽉 접었다. 물론 그딴 건 없었다. 앙상한 팔뚝이 애처로웠다.

    “전, 건강 빼면 시체입니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지금 그냥 시체처럼 보입니다만······.”

    그냥 시체가 아니라, 이대로 방치하면 뼈다귀가 될 것 같았다. 가디언스에 스켈레톤 한 마리가 나타났다고 뉴스에 나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건강에 시간을 조금만 투자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그럴 시간 없습니다.”

    어찌나 단호히 말하는지 강하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을 한다고 치면, 준비하고 씻고 하다보면 두 시간은 걸립니다. 일주일이면 14시간, 한 달이면 60시간, 1년이면 730시간이죠. 그 시간에 잠을 자는 게 더 나을 거 같지 않습니까?”

    물론 그 시간에 잠을 잘 리 없지만 말이다.

    “아니, 전 그렇게 매일 시간을 빼라는 게 아니라 초기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시간을 빼달라는 거였습니다.”

    윤경민이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꿈뻑꿈뻑하며 강하진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각성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윤경민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각성. 이 얼마나 매력적인 단어란 말인가.

    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각성이라는 건 오직 타고난 재능만이 가능하게 해주는 재능의 선물이었다.

    일반인들이 최근 가장 원하는 꿈이 바로 각성이었다.

    오죽하면 최대길이 각성을 위해서 암시장의 힘을 일본에 투자했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겠습니까? 하아, 각성하면 좋지요. 레벨 조금 올려서 체력에 몰빵하면 잠도 줄일 수 있고, 잘 지치지도 않을 테고. 여차하면 포션이라도 마시면 다시 일 할 수 있고. 정말 생각만 해도 즐겁네요.”

    강하진은 저 얘기를 들으니 과연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건강 때문에 윤경민이 쓰러지는 것보다는 저렇게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절대 오래 버티지 못한다.

    강하진은 시스템 접속권을 꺼냈다.

    이걸로 최대길을 각성시켰고, 이제 두 명의 각성자를 더 만들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윤경민에게 쓸 생각이었다.

    “하나 약속해 주세요.”

    “뭘 말입니까?”

    “각성하면 일단 레벨부터 올리겠다고요. 제가 직접 버스를 태워드릴 테니, 제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레벨을 올리겠다고요.”

    윤경민이 피식 웃었다.

    “아이고, 그런 약속이야 얼마든지 해드리죠. 그런데 들고 계신 건 뭡니까? 설마 그걸로 제 머리를 때리거나 그러시려는 건 아니죠?”

    강하진은 빙긋 웃고는 시스템 접속권을 사용해 윤경민에게 ‘천 리길도 한 걸음부터’를 부여했다.

    윤경민의 표정이 갑자기 확 달라졌다.

    “어어? 이, 이게 뭐야?”

    “이제 걸을 준비 되셨습니까?”

    윤경민은 홀린 듯한 표정으로 강하진을 바라보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 천 리까지 가려면 제법 오래 걸릴 테니, 얼른 레벨 올리러 갑시다.”

    강하진은 막무가내로 윤경민을 끌고 갔다.

    일단 가볍게 50레벨 정도로 만든 다음 강화석을 이용해 능력치를 뻥튀기 시켜주면 될 듯했다.

    ‘가는 김에 인수도 데려갈까?’

    생각해보니 이번 기회에 명인수의 레벨도 좀 더 올려주면 좋을 듯했다.

    ‘그럼 가는 김에 새로 영입한 정령사들도 데려가서 레벨을 좀 올려두면 좋겠네.’

    최근이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좀 지났지만, 어쨌든 이원중을 비롯한 정령사들의 활약이 상당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그들도 데려가서 레벨을 좀 올려두면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한 명 한 명 떠올리다보니 어느새 인원이 부쩍 늘어났다.

    ‘아예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다 데려가자. 그나저나 그 정도 인원을 다 수용할 수 있는 던전이 있으려나······.’

    강하진은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밖으로 가려면 저쪽으로 가야 하는데······.”

    뒤따라가던 윤경민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던전 좀 찾으려고요.”

    “아······ 명인혁 군에게 가시는 거군요.”

    명인혁은 이제 더 이상 윤경민이 도와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는 오히려 윤경민이 가끔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그가 하는 일의 특성 상, 양질의 정보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되니까.

    윤경민과 함께 명인혁을 찾아간 강하진은 테이블에 놓인 커다란 지도를 볼 수 있었다.

    지도 위에는 검은 구슬이 달린 핀이 곳곳에 꽂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던전의 위치였다.

    강하진은 던전들의 위치를 보자마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위치만 딱 보고 회귀 전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오, 이거 던전 위치가 꼭 별자리 같군요.”

    던전의 수는 모두 12개였다.

    “이건 북두칠성이고, 이건 카시오페이아네요. 이야, 어떻게 이렇게 절묘하지? 이 자리에 북극성 하나 있으면 딱이네요.”

    윤경민이 두 별자리의 중간쯤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자리에 던전 하나가 나타난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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