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펜더스 2 >
제이슨은 현 디펜더스의 멤버를 모았다.
둥그런 테이블에 윌리엄, 스팬서, 제니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이슨은 그들을 보며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 파티는 실패야.”
윌리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냥 실패가 아니라 아주 대 실패야. 이대로라면 힘은 우리가 들이고 과실은 엉뚱한 놈이 따먹게 생겼어.”
엉뚱한 놈이라는 건 가디언스였다.
사실 제이슨이 가디언스에서 가장 눈여겨보고 있던 사람은 강하진이었다.
그는 강하진이 버프 능력자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각성자 중에서도 버퍼가 제법 있었지만 괜찮은 버퍼를 찾는 건 정말 어려웠다.
제이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어떤 버퍼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포섭해 놓고, 차츰 성향을 파악해서 적절히 써먹으려고 했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가디언스라는 길드 역시 먹음직스러웠고.
한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전혀 제이슨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말이다.
“그 윤경민이라는 자가 혼자서 주도하고 있는 건가?”
“일단 표면적으로는 그렇더군.”
“표면적이라고? 그럼 실제는 다르다는 뜻인가?”
윌리엄이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뜻이야. 겉으로 보기에는 혼자서 망둥이처럼 날뛰고 있는 게 분명한데, 길드 마스터가 미치지 않고서야 고작 부하 직원에게 그 정도로 큰 권한을 줬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 실제로는 강하진이 주도하고 있는데, 윤경민을 내세워서 위장한 것이겠군.”
“그런 셈이지.”
윌리엄의 말에 스팬서와 제니퍼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더 말이 되니까.
“그럼 윤경민이라는 자를 포섭해도 큰 효과를 보긴 힘들겠어.”
“일을 좀 덜 열심히 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
윌리엄의 말에 제니퍼가 나섰다.
“아마 어려울 거예요. 그 강하진이라는 사람, 보통이 아니니까.”
다들 그녀를 바라보자, 제니퍼가 말을 이었다.
“제 스킬을 정면으로 견뎌낸 사람이에요. 아마 정신력이 상당할 거예요. 그리고 정신력이 강한 사람은 그런 자잘한 수에 흔들리지 않아요. 아마 이중 삼중으로 대비를 해뒀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퍼의 스킬이 남자에게 제대로 꽂히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알기에 미리미리 대비책을 한두 가지씩 마련해 놓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그녀와 함께 하기가 어려우니까.
한데 그걸 정면으로 버텨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대비책이 있거나······ 심지가 곧거나 둘 중 하나겠군.”
그리고 어느 쪽도 상대를 쉽게 봐선 안 된다는 뜻이다.
“아무튼 우리가 준비했던 첫 번째 파티는 물 건너갔고······ 이제 어떻게 하지?”
기존에 세웠던 계획을 필연적으로 수정해야만 한다.
원래는 이제부터 디펜더스의 존재를 정식으로 발표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날 파티에 초대했던 자들의, 더 정확히는 그들의 배경이 되는 조직의 힘이 필요했다.
당장 시작하는 데에도 필요했고, 향후 활동을 이어가는 데에도 필요했다.
그들을 이용해서 서포터라고 통칭하는 디펜더스의 하위 조직을 구성하려고 했으니까.
“일단 발표는 뒤로 미뤄야겠어.”
“그래야지. 지금 나서봐야 그저 그런 다른 거대 길드와 다를 게 없을 테니까.”
그건 곤란했다. 디펜더스는 세상의 모든 관심과 화제를 독차지한 상태에서 빵 터트려야 한다.
그래야 영향력을 극대화 할 수 있을 테니까.
제이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아주 뻔하다.
“가디언스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해. 먼지 한 톨까지 샅샅이 털어.”
“재미있겠군. 이건 각자 진행하는 걸로 하지.”
원탁에 앉은 네 사람의 눈에 호승심이 떠올랐다.
당장은 디펜더스의 리더가 제이슨이지만, 언제 바뀌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경쟁자였다.
* * *
전 세계를 던전 공습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이후, 더 많은 각성자들이 나타났다.
물론 그렇다 해도 여전히 각성자는 드물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각성자 보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정도가 되었다.
일이 터질 때마다 각성자들이 나서서 싸웠기 때문에 유명한 각성자들은 연예인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가 올라가기도 했다.
황수영이 대표적인 예였다.
그녀의 인기 요인은 건강미 넘치는 아름다운 외모였다.
정작 당사자는 인기를 좀 귀찮아했지만.
황수영이 바라는 건 인기가 아니라 힘이었다.
언제나 사냥에 몰두했고, 그로 인해 쭉쭉 올라가는 레벨을 보며 기쁨을 느끼는 스타일이었다.
각성자가 늘어나고, 던전에서 나온 마력 기반 물건들이 세상에 퍼지고,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세상도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일단 마석을 이용한 에너지 연구에 성공하면서 공해가 전혀 없는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상용화까지는 약간 시간이 걸리겠지만, 덩치 큰 기업들이 우르르 달라붙었으니 생각보다 금방 이뤄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세상이 변해가니, 기업도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세상에서 던전을 제외하고는 뭔가 해볼 수 있는 게 많지 않으니까.
그렇게 빠르게 세상이 던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던전 공습 덕분이었다.
그로 인해 세상에 많은 던전 관련 물자가 풀렸고, 그걸 이용한 연구가 예전에 비할 바 없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었다.
사실 던전은 몇 년 전부터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있었다.
관련 상품도 제법 나왔고.
그것이 토대가 되어 막대한 물량이 풀린 지금, 활짝 꽃 피운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본격적인 던전 시대에 접어든 순간,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이 있었다.
바로 가디언스였다.
가디언스는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길드였지만, 던전 관련 사업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책임자는 윤경민이었고.
가디언스는 이렇게 던전 세상이 열리기 전부터 꾸준히 준비를 해왔다.
짧은 기간에 준비한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들로 무장했지만, 중요한 건 미리 준비했다는 점이었다.
가디언스는 마력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상품을 판매했는데, 하나하나 명품이 아닌 게 없었다.
그래서 소수의 부자들에게 판매망을 구축했고, 훨씬 귀한 물건의 경우 경매를 이용하기도 했다.
사실 그것만 해도 가디언스의 이름을 알리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쳤는데, 가디언스는 또 다른 폭탄 하나를 준비하고 있었다.
윤경민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테이블에 나란히 놓인 물건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각각 팔찌, 반지, 목걸이, 허리띠, 핸드백, 백팩이었다.
세공은 물론이고 디자인도 굉장히 세련되고 아름다운 물건들이었다.
“드디어······!”
윤경민이 강하진에게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오매불망 기다리던 사업을 드디어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테이블에 놓인 물건들은 장인의 손길을 거쳐 제작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강하진이 알려준 비법을 가미해 아공간이 깃들었다.
강하진은 아공간 제작법에 대한 보안을 정말로 철저히 했다.
이번 생에는 절대 호구처럼 아공간 제작법을 공개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기에 평소보다 훨씬 철저히 관리했다.
핵심이 되는 재료의 가공은 오직 강하진만 할 수 있게 했고, 그렇게 잔뜩 재료를 만들어 전해주면 그걸 이용해 아공간을 제작하도록 했다.
대량생산을 하려면 할 수도 있었지만 당분간은 희소성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제법 커다란 공간 마석을 이용해 아공간을 제작했다.
나중에 아공간이 더 널리 퍼지면 부스러기 마석을 이용해 간단히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었다.
부스러기 마석을 이용한 아공간은 굉장히 쓸모가 많았다.
일단 마석의 크기가 작기에 작은 수납공간을 무수히 확보하는 게 가능하다.
그걸 장비에 응용하면 아주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수십 자루의 비수가 보관된 허리띠라든가.
강하진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연구까지 진행 중이었다.
공간의 마석을 공격이나 방어에 응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었다.
아공간과는 개념이 좀 달라서 연구가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있기에 꾸준히 노력 중이었다.
어쨌든 오늘은 아공간 판매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이 테이블에 있는 물건들은 경매를 통해 팔려나갈 것이다.
발표와 동시에 경매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영국에서의 파티에 참석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을 이용해 강력한 홍보를 할 수 있었으니까.
“자, 가볼까?”
시간이 되었다. 윤경민은 물건을 챙겨들고 경매장의 문을 활짝 열었다.
* * *
아공간을 발표하고 있는 시각, 강하진은 정아연을 만나고 있었다.
그녀는 A-마켓에서 개발한 강화석 최종판을 들고 왔다.
드디어 강화석이 최종 진화를 마치고 등장한 것이다.
“이걸 만드느라 남은 재료를 거의 다 썼어요. 더 이상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건 누구도 모르지만, 그러려면 레모노의 송곳니가 얼마나 더 필요할지 알 수 없다.
자원이 한정된 이상, 최대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정도에 멈추기로 한 것이다.
“대단하군요.”
강하진은 감탄어린 눈으로 테이블에 놓인 강화석을 내려다봤다.
이 강화석의 재료로 레모노의 송곳니가 쓰였다는 걸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
이건 그냥 새까만 광택이 흐르는 작은 보석이었다.
[강화석]
[레모노의 송곳니에 담긴 속성을 최대한 끌어내 만든 보석. 섭취하는 것으로 그 안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 중복해서 섭취할 때마다 효과가 줄어든다. 30회 중복 가능하다. 섭취 시 모든 능력치가 각각 최소 30에서 최대 60까지 랜덤하게 오른다. 오르는 수치는 철저하게 운에 따른다.]
굉장했다.
아니, 그저 굉장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능력치가 최소 30에서 60까지 오른다니 말이다.
게다가 하나만 섭취해도 모든 능력치가 올라간다. 최소 30에서 최대 60까지.
그걸 30회나 중복해서 쓸 수 있다니!
하지만 저 설명은 잘 뜯어봐야 한다. 강화석은 쓸 때마다 효과가 줄어들고 최대 30회까지 쓸 수 있다.
그 말은 30번 째 강화석을 섭취하면 능력치가 0이나 1만 올라갈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30 이상이 오르겠지만, 그 다음에는 29, 그 다음에는 28······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0에서 1이 오를 것이다.
그래도 그 수를 다 더하면 말 그대로 능력치를 뻥튀기할 수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 강화석을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오직 강하진만 갖고 있었다.
“이 강화석의 효능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까?”
“일단 감정사를 동원해서 확인은 해봤는데······ 30회를 중복해서 쓸 수 있고, 섭취할 때마다 능력치가 올라간다는 것, 그리고 중복해서 섭취하면 효능이 떨어진다는 것 정도를 알아냈어요. 아무래도 더 능력 있는 감정사를 섭외해야 할 것 같아요.”
A-마켓에서 일하는 감정사의 수준이 낮을 리 없다. 아마 업계 최고 수준의 감정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감정사를 섭외한다는 건 아마 그냥 하는 말이리라.
강하진은 메모지에 강화석의 정보를 빼곡하게 채웠다.
“그동안의 도움에 대한 호의로 드리는 겁니다.”
강하진이 메모를 내밀자, 그걸 확인한 정아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어떤 감정사보다 세밀한 감정이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메모와 강하진을 번갈아 바라봤다.
“가, 감정 스킬도 갖고 계셨어요?”
강하진이 씨익 웃었다.
“비슷합니다. 자, 그럼 이제 슬슬 계약을 진행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