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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98화 (98/200)
  • < 디펜더스 1 >

    제이슨은 윌리엄과 단상 위에 나란히 서서 파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티를 시작한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다.

    “뭔가······ 예상과 좀 다르군.”

    제이슨의 말에 윌리엄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좀 당황스러워. 저기서 껄떡대는 두 놈도 정말 거슬리고.”

    윌리엄의 시선이 닿은 곳에 조원영과 스팬서가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여자 한 명에게 달라붙어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하지만 보아하니 별 성과는 못 거둘 듯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도 좀 이상했다.

    저 정도로 애썼으면 한두 명 정도는 얼마든지 데리고 위로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위에는 언제든 즐길 수 있도록 모든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설사 어떤 취향을 가졌더라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애초에 이 호텔은 그런 용도로 쓰는 장소였으니까.

    “저 둘이 못난 건지, 아니면 여기에 온 여자들의 경계심이 지나치게 높은 건지······.”

    피스네리프의 등불이 비록 굉장히 뛰어난 아이템이긴 하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빛이 닿은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어주고 친밀감을 심어주지만 경계심이 지나치게 높거나, 친밀감이 생길 여지가 아예 없을 정도로 적개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다.

    여기 참석한 사람들이 적개심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 경계심이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저 둘 때문에 분위기가 더 이상해지는 건지도 모르겠군.”

    일단 윌리엄은 스팬서와 조원영에게 화살을 돌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제법 타당한 추론이었다.

    하지만 제이슨의 의견은 좀 달랐다.

    “그것도 그렇지만 저쪽도 만만치 않게 문제가 있어.”

    제이슨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강하진 일행이 있었다.

    “가디언스에서 온 손님들이로군. 저 남자가 제일 문제인 건가?”

    윌리엄이 말한 사람은 윤경민이었다.

    윤경민은 잔뜩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간신히 만든 친밀감이 다 윤경민에게로 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만들어낸 친밀감은 전부 제이슨과 윌리엄을 비롯한 디펜더스에게 집중되도록 조절해 두었으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군. 한 번 더 돌아다녀야겠어.”

    제이슨의 말에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군. 이대로라면 정말 시간만 날리는 꼴이 될 테니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방치하면 준비는 디펜더스에서 하고 과실은 가디언스가 따먹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최소한 그건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제이슨과 윌리엄이 다시 홀로 내려가 사람들 사이에 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관망만 하던 제니퍼도 슬그머니 움직였다.

    그녀의 외모에 홀린 남자들이 그녀가 다가올 때마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뭔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분위기는 계속 그대로였으니까.

    그렇게 모두의 예상에서 벗어난 채 파티가 막바지로 흘러갔다.

    * * *

    강하진은 결국 무식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자신이 쓸 수 있는 마력을 모조리 동원해 피스네리프의 등불을 감싸고 또 감싸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감싼 채 마력을 고정시키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추가로 들어가야 한다.

    당장 그 정도 마력을 가진 건 아니었기에 수시로 마력 포션을 마셔줘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CCTV에 나오면 곤란하니까.’

    마력포션을 마시는 장면이 CCTV에 녹화되기라도 하면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이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일이 틀어진 것에 대한 원인 분석을 할 테니까.

    물론 아무리 그래도 강하진이 아이템을 못 쓰게 만들었다고 여기지는 못하겠지만, 뭔가 수상한 시선을 보낼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건 곧 강하진을 굉장히 귀찮게 만들 테고.

    ‘베스트는 감정을 다시 해서 아이템을 버리는 건데.’

    아마 마력을 감싼 채 제대로 고정하면 아이템의 효과가 아예 없어져 버릴 것이다.

    피스네리프의 등불이 그냥 평범한 등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아니지. 그렇게 되면 마력도 충전이 안 될 테니까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리겠군.’

    강하진은 부디 그런 판단을 하길 바라며 마력을 보내고 또 보냈다.

    그리고 마력이 떨어질 때쯤, CCTV의 사각을 만들어내서 마력 포션을 마셨다.

    그걸 무한히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반복했을까. 결국 선명한 마력의 막이 느껴졌다.

    물론 강하진의 마력이 이어져 있기에 느껴지는 것이지 여기서 마력을 끊어버리면 단숨에 그 느낌조차 사라져 버릴 것이다.

    강하진은 마력의 막이 완벽하게 안정된 것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마력을 끊었다.

    이제 피스네리프의 등불은 강제로 강하진의 마력을 지워버리지 않는 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 할 것이다.

    “후우.”

    강하진은 한숨 돌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대체 언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까. 너무 피스네리프의 등불에 집중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강하진에게 한 번쯤 말을 걸어볼 법도 한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강하진에게 뭔가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기도 했지만, 윤경민이 분위기를 워낙 제대로 주도하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윤경민에게 집중하느라 강하진에게 시선을 빼앗길 틈이 없었던 것이다.

    강하진은 그런 윤경민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것이다.

    ‘저런 사람이었나?’

    아무튼 좋아 보였다.

    강하진은 굉장히 홀가분했다. 처음 묘한 마력이 홀을 가득 메웠을 때는 이걸 어떻게 처리하나 막막했는데, 막상 모든 걸 처리하고 나니 기분이 굉장히 상쾌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열심히 디펜더스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제이슨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표정이 별로였다. 일이 뜻대로 안 풀릴 때 사람들이 흔히 짓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회귀 전에는 제이슨이 저런 표정을 짓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한데 저러고 있는 걸 보니 통쾌하기도 하고, 또 놀랍기도 했다.

    역으로 생각하면, 회귀 전의 제이슨은 대부분의 일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고 갔다는 뜻이었으니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사실 슬슬 파티를 끝내야 할 시간임에도 끝내지 않은 채 질질 끌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에 피곤함과 지루함이 깃들기 시작한 지도 제법 되었다.

    더 시간을 끌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걸 알기에 제이슨 일행은 어쩔 수 없이 파티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밤의 파티가 아침이 되어서야 끝났다.

    * * *

    파티가 너무 길어졌기에 다들 객실로 돌아가 잠깐 눈을 붙였다.

    원래 아침에 자면 깊게 잠들기 어려운 법이다.

    쌓였던 피로만 살짝 풀고 다시 나온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강하진 일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이슨 일행은 돌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인사를 나눴다.

    중요한 인물에게는 디펜더스 네 명이 전부 가서 인사를 하고, 중요도가 좀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대표로 한 명씩만 가서 인사를 했다.

    참여한 사람의 수가 적지 않으니 그렇게 해야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보낼 수 있었다.

    강하진 일행은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쪽이었다.

    그리고 강하진을 담당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제니퍼였다.

    제니퍼는 묘한 눈으로 강하진에게 다가갔다.

    뒤에 다른 일행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강하진에게 바짝 붙었다.

    “함께 시간을 못 보내서 정말 아쉽네요. 다음에 한국에 한 번 놀러갈 건데, 그때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강하진이 뭐라고 대답할지 잠시 머뭇거린 사이 황수영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나중에 꼭 놀러오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 테니까. 우리 강하진 씨는 워낙 바쁘셔서.”

    제니퍼가 눈을 살짝 치켜뜨고 황수영을 바라봤다.

    노려보는 거였는데도 워낙 아름다우니 노려보는 것 같지 않고 마치 유혹하는 것 같았다.

    황수영이 비킬 생각을 하지 않자 제니퍼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황수영, 정아연, 윤경민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흐응. 좋아요. 나중에 꼭 안내 부탁드려요. 기대할 테니까.”

    제니퍼는 윤경민을 향해 살짝 윙크를 하고는 휙 돌아서서 가버렸다.

    사뿐사뿐 걸어서 멀어져 가는데, 뒷모습도 어찌나 예쁜지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좋아요?”

    윤경민은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예? 뭐, 뭐가 말입니까?”

    황수영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윤경민이 당황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아까 윙크 받으니까 좋아서 움찔움찔 하던데.”

    “예? 제가요? 오해입니다.”

    “뭐, 오해라고 치죠.”

    황수영이 이번엔 강하진을 바라봤다.

    “저 여자, 예쁘긴 진짜 예쁘네요. 이름이 제니퍼라고 했죠?”

    “외모만 보다간 큰 코 다칠 겁니다. 독 바른 가시를 품은 여자니까.”

    강하진의 어조는 굉장히 담담했다. 아니, 담담하다기보다는 차가웠다.

    혹시나 하고 떠보려던 황수영이 당황해서 움찔 놀랐을 정도였다.

    “저 여자랑 무슨 일 있었나요?”

    정아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던 여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 생에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지. 벌어지지도 않을 일이고.’

    한데 이번 파티를 겪고 나니, 수상한 점이 굉장히 많았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조사가 필요할 듯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도 이만 돌아가죠.”

    짧았던 일정이 끝났다.

    * * *

    한국으로 돌아온 강하진 일행은 한 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는 황수영과 정아연, 윤경민 외에 명인혁도 함께였다.

    그렇게 모인 이유는 디펜더스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 초대를 받아 영국으로 출발할 때만 해도 이런 모임을 갖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제이슨은 좋은 이미지를 가진 각성자였고, 디펜더스라는 팀의 결성 이유도 굉장히 좋았으니까.

    한데 막상 가서 확인하고 나니, 굉장히 의심스러웠다.

    지구를 던전으로부터 지키겠다는 건 표면적인 이유이고, 그 이면에 다른 목적이 여러 가지 숨겨져 있는 듯했다.

    일단 모여서 처음 나눈 얘기는 파티의 회상이었다.

    그때 있었던 기억을 하나하나 모아서 다시 되새겼다. 경험을 공유하지 못했던 명인혁에게도 상황 설명이 필요했는데 그렇게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대체 뭘 원하는 걸까요?”

    황수영의 의문에 정아연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당연히 지배죠. 완벽한 지배.”

    “뭘요? 전 세계를?”

    “거기 모였던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아예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던데요? 대부분 각성자랑 깊이 연관된 사람들이었던 거 기억나죠?”

    “그렇긴 했죠.”

    “각성자를 완벽하게 틀어쥐고 통제할 수 있으면 충분히 지배가 가능해요.”

    던전을 미연에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각성자뿐이다.

    그러니 각성자를 통제하면 던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도 아마 쉽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강하진의 말에 다들 그를 바라봤다.

    “이번에 그들의 마음을 얻어낸 건 디펜더스가 아니에요.”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고 윤경민을 쳐다봤다.

    “가디언스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파티에서 윤경민의 활약상을 코앞에서 지켜봤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아마 거기 있던 사람들 중 윤경민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함께 무언가 사업을 하자고 제안서를 보내면 당장 허락할 것만 같았다.

    이들이 오늘 모인 이유는 정확한 상황 파악과 대비였다.

    상황은 어느 정도 파악했으니 이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딱히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일단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움직이자고요? 어떻게요?”

    “디펜더스만 지구를 지키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우리도 지키면 되죠. 따로따로.”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강하진의 말을 곱씹었다.

    말은 쉽지만 아마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척 보기에도 디펜더스에는 돈 많고 강한 가문과 기업이 여럿 끼어 있었으니까.

    반면 이쪽에는 정말 별 거 없었다.

    “일단 A-마켓을 움직이는 건 제가 맡을게요. 디펜더스에 DM이 있으니 A-마켓은 그냥 내버려 둬도 이쪽에 붙긴 하겠지만요.”

    “그럼 난 뭘 하면 되나요?”

    황수영이 반짝이는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강하진은 단호히 대답했다.

    “강해지면 됩니다.”

    “제일 자신 있는 거네요.”

    강하진은 고개를 돌려 명인혁을 쳐다봤다.

    “앞으로 디펜더스 쪽의 정보도 모아야 하는데, 가능하겠어?”

    명인혁이 씨익 웃었다.

    “안 그래도 여유가 남아서 뭔가 다른 일이 없나 찾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됐네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주는 게 나아. 그래야 대책을 세우지.”

    명인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직 괜찮아요. 솔직히 인수가 합류한 다음부터 일이 너무 쉬워져서 정말 여유가 많이 생겼어요. 나중에 혹시 힘들게 되면 꼭 말씀 드리겠습니다.”

    강하진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지막으로 윤경민을 쳐다봤다.

    “이제 진짜 시작해야겠습니다.”

    윤경민의 눈에서 일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준비는 이미 다 끝났습니다. 언제 시작할까요?”

    뭐라고 말해주지 않았는데 아공간 사업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지금 당장 시작하죠.”

    윤경민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온통 열망으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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