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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97화 (97/200)
  • < 밤의 파티 2 >

    강하진은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지금 벌어지는 일에 대해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제이슨과 윌리엄, 그리고 스팬서와 제니퍼, 마지막으로 조원영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듯했다.

    스팬서와 조원영은 여전히 황수영과 정아연에게 작업을 걸고 있었다.

    한데 두 사람의 눈빛에 어렸던 경계심이 조금씩 옅어지는 게 확연히 보였다.

    강하진은 지금 이 안에 자욱하게 퍼진 마력의 향이 저 두 사람의 경계심을 없애는 원인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분석을 좀 해보고 싶었지만 이대로 두면 저 두 사람이 오늘 몹쓸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그쪽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에게 다가가면서 윤경민을 확인했는데, 윤경민은 의외로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눈빛에 드러난 호기심과 경계심, 긴장감이 여전했다.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니 다들 점차 눈빛에 친밀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이 마력의 향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해주는 건 아니지만 경계심을 풀어주고 친밀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자리에서는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상당한 재력과 영향력, 그리고 능력을 갖춘 자들이었다.

    그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는다면 앞으로 디펜더스가 활동하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될 테니까.

    ‘윤경민은 의외네.’

    사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은밀히 수작을 부리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윤경민은 전혀 그런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마음을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강하진은 윤경민 쪽을 계속 보다가 눈이 마주친 순간 얼른 손짓을 했다.

    윤경민이 의아한 표정으로 강하진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강하진이 향하는 방향을 보고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눈에도 조원영과 스팬서의 수작질이 훤히 보였으니까.

    정작 당하고 있는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는 셈이었다.

    이 역시 마력의 향에 노출된 효과였다.

    윤경민이 걸음을 서둘렀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즐겁게들 나누고 계십니까?”

    그런 말을 하며 슬쩍 그 자리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조원영과 스팬서가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작업이 아주 순조롭게 잘 이뤄지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훼방꾼이 둘이나 나타났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중요한 얘기 중이니 잠시 자리를 비켜 달라고 말하려는 찰나, 강하진이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저도 좀 같이 즐거우면 좋겠네요. 두 분만 너무 즐기시는 거 아닙니까?”

    강하진이 평소답지 않은 말을 하며 끼어들자 황수영과 정아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기분 좋게 눈웃음치며 강하진을 맞이했다.

    “내내 혼자만 계시더니 이제 좀 심심해지셨나 봐요?”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식도락을 좀 즐겼습니다. 이제 파티를 즐겨야죠.”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며 은밀히 마력을 뿜어냈다.

    주변을 장악하고 있는 묘한 마력을 밀어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나타났다. 정아연과 황수영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처음 상태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크흠.”

    조원영이 불편한 헛기침을 하며 강하진과 윤경민을 번갈아 바라봤다.

    반면 스팬서는 벌써 한 발 물러난 상태였다.

    상황을 단숨에 파악한 것이다.

    ‘A-마켓을 흔들 수 있는 찬스였는데, 좀 아쉽군.’

    그는 정아연이 A-마켓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굳이 여기에 초대한 것이기도 했고.

    원래 정아연은 초대 명단에 없었는데, 스팬서가 강력하게 요청해서 명단에 끼워 넣었다.

    그녀를 얻거나 어떤 식으로든 타격을 줄 수 있다면 A-마켓을 흔들 수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그 틈을 타 DM을 단숨에 성장 시키면 향후 가문에서 자신의 입지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게 되었으리라.

    그걸 방해한 윤경민과 강하진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옆에 있는 조원영처럼 말이다.

    조원영은 지금 온갖 복잡한 감정을 다스리느라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두 분은 어디 소속입니까? 보아하니 던전 브레이커는 아닌 것 같은데······.”

    윤경민이 얼른 나서서 말했다.

    “우리는 가디언스에서 왔습니다.”

    “아하, 가디언스. 아주 좋은 길드죠.”

    조원영의 표정에 살짝 비웃음이 걸렸다. 하지만 그 비웃음은 나왔던 것보다 더 빨리 사라졌다. 조원영은 윤경민과 황수영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래서 여기 오셨군요. 던전 브레이커의 길드 마스터를 잘 모셔야 할 테니까.”

    그 말에 황수영의 표정이 확 굳었다.

    오히려 윤경민이나 강하진은 별 반응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비춰지려고 의도한 바가 제법 있었으니까.

    다만 요즘은 가디언스의 위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설마 조원영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 있던 스팬서가 깜짝 놀란 눈으로 조원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하진을 초대자 명단에 넣은 사람이 바로 제이슨이었다.

    그는 가디언스의 힘과 잠재력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제이슨은 지금의 던전 브레이커를 만드는 데 가디언스가 상당히 큰 힘이 되었다고 단언했다.

    사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가디언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그동안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다만 활동 영역이 좀 좁았기에 세계적인 인지도는 많이 낮은 편이었다.

    그리고 마스터인 강하진에 대한 역할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좀 있었고.

    하지만 그것 역시 빠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조원영이 그런 말을 한 건 기분이 나빠서도 있지만, 가디언스의 활약이 알려지는 시기에 일본과 미국에서 여러 일을 겪느라 주위에 눈을 돌릴 시간이 없어서였다.

    오늘 파티를 기점으로 슬슬 주변도 확인하고 여러 정보도 파악할 계획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직전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하하. 이 친구가 좀 취했나봅니다. 부디 지금 한 말은 잊어주십시오. 아무래도 저희는 좀 쉬어야겠군요.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스팬서는 얼른 조원영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여기 더 있어봐야 좋은 꼴 보긴 힘들겠다고 여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원영을 위해서는 훌륭한 선택이 되었지만, 디펜더스를 위해서는 악수를 둔 셈이었다.

    두 사람이 멀어지자, 강하진이 얼른 일행에게 손짓해 더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그리고 주변에 마력이 들어오지 않는 걸 꼼꼼히 확인하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분위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위기요? 뭐가 이상한데요?”

    황수영이나 정아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너무 티 나게 둘러보지 마십시오. 의심 받을 수도 있으니까.”

    “예? 의심이요?”

    황수영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음모론에 너무 심취하신 거 아니에요?”

    정아연 역시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저도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강하진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도 있었다. 윤경민이었다.

    “저도 아까부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예? 정말요?”

    윤경민까지 진지하게 그런 말을 하니 더 이상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강하진이나 윤경민이나 이런 일로 농담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자 심호흡 한 번 하시고 진지하게 주위를 살펴보세요. 분명히 뭔가 이상할 겁니다.”

    황수영과 정아연은 그제야 좀 더 진지하게 주변을 살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다들······ 처음보다 많이 친해졌네요?”

    “특히 디펜더스들과요.”

    디펜더스들이 모든 사람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대화를 주도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고작 그것만으로 변화했다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친밀감이 높아졌다.

    “설마······ 뭔가 이상한 짓을 한 건가요? 이 안에?”

    “비슷합니다.”

    세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하진이 대번에 그걸 지적했다.

    “다들 표정 관리하세요.”

    세 사람은 얼른 표정을 풀었다.

    “우리가 멀쩡한 건······ 강하진 씨 덕분인가요?”

    “네.”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대로 여기서 계속 기다리면 되나요?”

    “비슷합니다.”

    세 사람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 새 같은 눈빛과 표정이었다.

    “당분간 우리는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어딜 가든 누구와 얘기를 나누든. 여기서 벗어나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질 테니까.”

    황수영과 정아연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까 강하진이 적절히 끼어들지 않았다면 저기서 다른 여자들한테 또 수작을 부리고 있는 조원영과 스팬서의 먹잇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거면 되나요?”

    “일단은요. 방법을 좀 찾아봐야하니 절 가려주세요. 자연스럽게.”

    “누구한테서 가려요?”

    “제이슨.”

    강하진이 보기에 여기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단연 제이슨이었다.

    레벨이 높고 강력한 능력을 가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의 촉이 가장 예민해 보였다.

    아마 여기서 뭔가 이상이 생기면 제이슨이 가장 먼저 알아차릴 것이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강하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사람은 위치를 살짝살짝 바꿨다.

    자연스럽게 제이슨으로부터 강하진이 가려졌다. 이제 그가 어디로 고개를 돌리건 강하진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도록.

    그리고 강하진은 본격적으로 분석을 시작했다.

    이럴 때 가장 유용한 스킬은 단연 엿보기였다. 공기 중에 퍼진 마력의 정보도 확인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건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이 마력의 원천을 찾아내야 할 듯했다.

    강하진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감각을 극도로 예리하게 세웠다.

    어쨌든 원인은 마력이니 마력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소스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강하진의 눈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찾았다.’

    역시나 외부 멀리서 이런 마력을 보낼 수는 없었다. 마력 발생기는 홀 안에 있었다.

    그것도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바로 마력의 원천이었다.

    강하진은 곧장 샹들리에, 아니, 마력의 원천을 엿보기로 확인했다.

    [피스네리프의 등불]

    [마계의 보석 장인 피스네리프가 제작한 등. 마력을 충전해 놓으면 마력이 다할 때까지 ‘우정의 빛’을 내뿜는다.]

    엿보기로 확인하니 우정의 빛이 닿는 범위까지 알 수 있었다. 딱 이 홀을 간신히 채울 정도였다.

    [우정의 빛]

    [빛에 닿은 사람들 사이의 경계심을 허물고 친밀감을 쉽게 높인다. 오래 닿을수록 효과가 점점 좋아진다.]

    원인을 파악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저걸 어떻게 막느냐였다.

    샹들리에에 달려 있어서 모든 사람이 저 빛을 맞고 있었다.

    강하진은 문득 지금 자신이 일행을 마력으로 감싼 것처럼 저 샹들리에 자체를 마력으로 감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저쪽으로 이동하죠.”

    강하진의 말에 일행이 흠칫 놀랐다.

    “벌써 끝난 거예요?”

    “설마 방법이 없어서 포기하신 건 아니죠?”

    “그런 거 아니니까 일단 갑시다.”

    강하진이 먼저 앞장서자, 나머지 일행이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조금 걸어 정확히 샹들리에 아래에 섰다.

    강하진은 즉시 마력을 뿜어내 샹들리에를 자신의 마력으로 감쌌다.

    ‘된다.’

    자연스럽게 우정의 빛을 마력으로 감싸 안았다. 이제 더 이상 이 홀에는 우정의 빛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 내뿜은 것만으로도 제법 효과가 남아 있었기에 분위기가 금세 반전되지는 않았다.

    일단 생성된 친밀감은 그렇게 빨리 사라지지 않는다.

    어쨌든 시간이 필요했다.

    강하진과 일행은 그 자리에서 다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번엔 진심으로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그러자 그걸 본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끼어들었다.

    이내 제법 큰 무리가 되어 즐거운 대화가 오갔다.

    이 상황을 가장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은 윤경민이었다. 그는 우정의 빛 때문에 하다가 만 인맥 다지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강하진은 자신이 감싼 마력의 막을 계속 유지할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저걸 아예 망가뜨릴 방법은 없나?’

    아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중에 뭔가 위화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았다.

    우정의 빛을 계속 그대로 뒀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달았겠지만, 시작도 제대로 못했기에 오히려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디펜더스의 수작에서 지켜냈지만, 앞으로 또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지켜내려면 저 아이템을 없애야만 한다.

    강하진은 일행이 즐겁게 대화하는 걸 구경하며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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