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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96화 (96/200)
  • < 밤의 파티 1 >

    회귀 전, 강하진이 속해 있던 팀 가디언스에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제이슨과 스팬서와 마찬가지로 미국 출신이었는데, 굉장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또한 누구든 한 번 보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가 더 유명한 사람이기도 했다.

    강하진이 회귀할 무렵에는 팀 가디언스 소속 모두가 전 세계적인 인지도와 인기를 자랑했다.

    세계를 구하는 각성자들이라는 홍보 문구를 달고 사는 사람들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모든 팀원이 동등한 인기를 누리는 건 아니었다.

    그 중에는 비교적 인기가 덜한 사람이 섞여 있었다.

    지창기나 조원영이 그랬다.

    강하진은 그래도 팀의 구심점 같은 존재였고, 굉장히 유니크한 능력을 보유했기에 상당히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팀의 그 누구도 지금 강하진에게 다가오고 있는 저 여자, 제니퍼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혼자 오셨나 봐요?”

    제니퍼가 특유의 화사하면서도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강하진에게 인사했다.

    “아뇨. 일행이 있습니다.”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며 다른 무리에 섞여 있는 세 사람을 정확히 찾아 한 명, 한 명 확인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앞에 있는 제니퍼가 그들에게 관심을 주거나 고개를 돌려 찾아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고독을 즐기고 싶은데 제가 방해하는 건 아니죠?”

    제니퍼는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그렇게 물었다.

    강하진은 순간 방해된다는 말을 해서 저 여자의 미소를 지워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지금 그렇게 해서 관계를 뭉개 버릴 이유는 없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저 음식이 맛있어서 좀 즐기고 있었어요.”

    제니퍼가 손뼉을 짝 치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맛있죠! 저도 먹어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윌리엄이 작정 하고 준비했다는 말에도 그냥 시큰둥했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강하진은 제니퍼의 말을 들으며 그녀의 정보를 확인했다.

    ‘안 나오는군.’

    역시나 제니퍼에게도 엿보기 스킬이 먹통이었다.

    이제 슬슬 왜 이러는 건지 확인이 필요했다. 어떻게 확인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실례가 아니라면 어디서 오신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 저는 제니퍼라고 해요. 미국에서 왔고요. 저기 있는 제이슨이랑은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에요. 제이슨 알죠? 유명하니까.”

    “알죠. 미국의 영웅 아닙니까. 이 파티를 기획한 사람이기도 하고.”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며 파티장을 슥 둘러봤다.

    “그리고 디펜더스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죠.”

    제니퍼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강하진을 바라봤다.

    “제니퍼도 디펜더스의 일원인가요?”

    “물론이죠. 처음 디펜더스를 만드는 자리에 저도 참석했답니다.”

    제니퍼는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말했다.

    워낙 외모가 뛰어난지라 무슨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해도 잘 어울렸다.

    강하진은 그녀가 왜 굳이 여기에 와서 자신에게 말을 걸었는지 대충 눈치챘다.

    이건 일종의 영업활동이었다.

    혼자 있으니 디펜더스에 들어가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해 약간의 유혹을 곁들이러 온 것이다.

    자신을 보고서도 영입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남자는 없을 테니까.

    “처음 디펜더스를 만드는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설마 제니퍼와 제이슨 둘이서 만든 건 아니죠?”

    강하진이 농담을 살짝 섞어서 묻자, 제니퍼가 그걸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는지 훨씬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 봤다면 아찔했으리라.

    하지만 강하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예뻐도 오랫동안 보면 결국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강하진은 이미 회귀 전에 그녀의 외모에 정신없이 휘둘린 경험이 몇 번이나 있었다.

    결국 나중에는 학을 떼고 다신 그녀와 사적으로 얽히지 않겠다고 혼자 맹세를 할 정도였다.

    “사실 비밀이라서 전부 얘기해 줄 수는 없어요.”

    제니퍼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강하진에게 한 발 더 다가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 자리에 윌리엄이랑 미국 대통령이 함께 있었어요.”

    제니퍼는 얼른 원래 있던 자리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강하진의 표정을 힐끗 살폈다.

    방금 했던 귓속말은 그녀가 자주 쓰는 방법 중 하나였다. 여기 당한 남자들은 대부분 꼼짝도 못했다.

    여기에는 그녀가 가진 스킬이 살짝 가미되니까.

    강하진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보고는 제니퍼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 나중에 또 봐요. 저기서 절 애타게 부르고 있네요. 다음에는 미국에서 보면 좋겠네요.”

    제니퍼는 그 말을 남기고 저 멀리서 열심히 손짓하고 있는 남자에게 총총총 걸어갔다.

    강하진은 제니퍼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봤다.

    사실 표정이 굳었던 건, 그녀가 스킬을 썼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회귀 전에도 종종 썼던 스킬이기에 알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스킬이 있는 줄도 모르고 당했었지만.

    ‘조건이 까다로워서 그렇지 걸리면 정말 답 안 나오지.’

    그녀가 쓰는 스킬의 이름은 ‘매혹’이었다.

    매혹은 상당히 특이한 스킬이었다. 스킬 하나에 패시브와 액티브가 동시에 존재하니까.

    기본적으로 보유자의 매력을 많이 높여주는 패시브가 걸려 있고, 액티브로 쓸 때는 상대를 유혹해 미약한 복종심을 심어주는 스킬이었다.

    액티브로 쓸 때의 조건이 귓속말이었는데, 거리에 대한 제한까지 있어서 저걸 쓸 때는 거의 귓가에 입술이 닿을락말락할 정도까지 다가가야만 했다.

    그러니 복합적인 효과 때문에 스킬이 더 잘 먹히는 것이고.

    기본적으로 강하진은 정신력이 높기 때문에 제니퍼가 쓰는 매혹 스킬에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매혹의 단점 중 하나가 바로 정신력이 높은 사람에게 적용시키기 어렵다는 것과, 미리 매혹에 대해 알고 대비하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었으니까.

    ‘온 보람이 있네. 제니퍼까지 만났으니까.’

    이제 회귀 전에 자신의 뒤통수를 때린 여섯 명 중에서 스팬서만 만나면 전부 만나는 셈이다.

    ‘그나저나 조원영은 뭐 하고 있으려나.’

    일본에 투자한 각성자와 던전 관련 사업은 쫄딱 망했고, 간신히 목숨만 붙어서 미국으로 도망쳤다는 것까지 확인하고는 잠깐 신경을 껐다.

    제영 그룹도 최근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관심에서 멀어졌다.

    조원영이 다시 일어나서 디펜더스에 합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

    그래도 신경을 아예 끄면 안 된다. 그건 방심으로 이어지니까.

    강하진은 한국으로 돌아가면 조원영에 대해서 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홀의 문이 열리고 조원영이 들어왔다.

    ‘조원영까지 초대한 거야?’

    조원영은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들어온 사람도 강하진이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스팬서였으니까.

    이제 회귀 전 자신의 뒤통수를 쳤던 여섯 명을 모두 확인했다.

    조원영과 스팬서가 들어오자, 강하진 때처럼 윌리엄이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한데 세 사람 사이가 생각보다 제법 각별한 느낌이었다.

    그저 의례적인 인사만 나누는 걸로 보이지 않았다.

    ‘설마 조원영이 디펜더스에 합류하는 건가?’

    그렇게 무너졌는데도 디펜더스에 합류하게 된다면 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어쩌면 조원영에게 그가 가진 능력이나 배경 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윌리엄과 인사를 나눈 조원영은 황수영과 정아연을 발견하고는 그녀들에게 접근했다.

    그의 눈에 어린 탐욕이 멀리서도 확연히 보였다.

    잠자리를 같이 하고 싶은 욕망과 그녀들이 가진 능력에 대한 욕망이 적절히 버무려진 탐욕이었다.

    보아하니 윌리엄과 스팬서를 비롯한 몇 사람이 붙어서 조원영의 욕망을 부추기고 도와주는 듯했다.

    강하진은 잠시 한심한 눈으로 그걸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조원영의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막혀 있어?’

    조원영의 정보도 확인이 불가능했다. 분명히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의 정보는 예전에 지창기와의 만남을 가졌을 때 슬쩍 확인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원영의 능력은 대단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 다른 각성자들에 비하면 상당했지만, 예전 가디언스에 있었을 때와 비교하면 너무나 모자랐다.

    어쨌든 중요한 건 당시에는 분명히 조원영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한데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강하진은 조원영 옆에 있는 스팬서의 정보도 확인해봤다. 마찬가지로 막혀 있었다.

    역시 제이슨은 엿보기 스킬을 막는 능력을 보유했다.

    그게 엿보기를 막기 위함인지, 아니면 다른 능력인데 부가적으로 엿보기까지 막는 건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무래도 후자겠지.’

    아무튼 앞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모아야 한다. 문득 명인수가 떠올랐다.

    특정 인물의 상태창을 확인하는 데 들어가는 마력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마력 증가 아이템이라도 잔뜩 구해다 줘야겠어.’

    강하진이 살짝 굳은 표정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오늘 파티의 목적은 디펜더스의 존재를 모인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훌륭하게 이뤄졌다.

    미리 마련된 단상 위에 제이슨이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얘기를 시작했다.

    앞으로 디펜더스가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발표가 이어지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디펜더스가 그저 던전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함만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

    대놓고 그렇다고 말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세계를 근본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구조를 짤 수도 있다는 걸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었다.

    파티의 진행은 제이슨이 맡고 있었다.

    그는 시종일관 능숙하고 여유로웠다.

    강하진은 문득, 어쩌면 회귀 전에도 이와 비슷한 파티가 열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철저한 제이슨이 아무 사전 준비도 없이 가디언스 같은 위험하면서도 규모가 큰 일이 벌였을 리 없으니까.

    ‘난 처음부터 배제 대상이었던 모양이로군.’

    그러니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었겠지.

    강하진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담담했다.

    그러는 사이 제이슨의 말이 모두 끝나고, 회귀 전 팀 가디언스였던 사람들이 하나씩 제이슨 옆으로 다가갔다.

    윌리엄과 스팬서, 그리고 제니퍼가 제이슨 주변에 서서 좌중을 내려다봤다.

    “아직 디펜더스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제이슨의 말에 그들을 올려다보는 모든 사람들이 눈을 번득였다.

    아직 저 자리에 함께 설 기회가 남아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제이슨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앞으로 최소 세 명, 많게는 다섯 명까지 더 뽑을 계획입니다.”

    회귀 전에는 저기서 강하진, 조원영, 지창기 이렇게 세 명을 더 뽑았나보다.

    아마 강하진의 존재가 굳이 더 많은 인원을 뽑을 필요가 없게 만들었으리라.

    버퍼와 힐러를 동시에 영입한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더 많이 뽑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황수영도 후보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조원영이 붙어서 공을 들이는 걸 보면 말이다.

    ‘하긴, 황수영 정도면 충분히 거기 들어갈 만하지.’

    다른 이레귤러들을 아직 못 만나봐서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황수영이 다른 이레귤러들보다 훨씬 강할 확률이 높았다.

    그녀는 계속 강하진과 함께 했으니까.

    “혹시 디펜더스에 합류하지 못했다고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구를 지켜야 합니다. 직접적으로 앞에 나서서 싸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겁니다. 디펜더스는 그 모두와 손잡고 함께 갈 것입니다.”

    제이슨이 열심히 밑밥을 깔고 있었다.

    아마 여기 참여한 사람 중 대부분은 역할과 이익을 나눠받을 것이다.

    ‘그리고 디펜더스에 충성하게 되겠지.’

    디펜더스가 본격적인 활동을 언제 시작할지 모르지만, 회귀 전보다 상당히 빨라졌다.

    대부분이 빨라졌지만, 디펜더스는 유독 심했다.

    강하진은 제이슨의 연설과 나머지 디펜더스 멤버들의 인사를 가만히 지켜보며,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차근차근 다시 점검했다.

    * * *

    제법 길었던 디펜더스에 대한 설명회가 끝나고, 다시 대화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삼삼오오 모여서 샴페인 잔을 들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처음과 사뭇 달랐다.

    디펜더스에 대한 발표가 이들에게 열기를 심어준 것이다.

    분위기는 굉장히 뜨겁고 어딘가 들떠 있었다.

    강하진은 일행들이 어쩌고 있는지 하나하나 살폈다.

    윤경민은 알아서 잘 하고 있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여기저기 끼어들어 열심히 대화를 주도했다.

    그는 가디언스라는 길드를 운영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가디언스가 벌이는 사업을 총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인맥을 터놓으면 사업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기에 정말 열심히 하고 있었다.

    강하진의 시선이 이번엔 황수영과 정아연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은 같이 있었다.

    문제는 그녀들과 함께 있는 사람이었다.

    조원영과 스팬서가 열심이 옆에서 입을 털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오늘 밤의 역사를 이뤄보겠다고 애쓰는 중이었다.

    ‘자신감이 대단한데?’

    두 사람의 표정에는 무조건 성공한다는 자신감이 꽉 차 있었다.

    저 정도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잠시 후 강하진은 그 자신감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주변에 자욱한 마력의 향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강하진은 반사적으로 마력을 차단했다. 표정이 한껏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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