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95화 (95/200)

< 박물관에서 2 >

강하진은 일행들을 질리게 했다.

일단 그날 밤을 샜다.

박물관에 들어간 것은 점심을 먹고 좀 시간이 지난 뒤였다.

한데 오후와 저녁을 모조리 박물관에 투자한 것도 모자라 밤을 지새웠으니 다들 얼마나 지겨웠겠는가.

그냥 밤을 샌 것도 아니었다.

밤을 샌 것도 모자라 다음날 오전과 오후를 몽땅 박물관에 투자했다.

그러니 아무리 강하진을 좋아하더라도 질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하진은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다음에 또 이 박물관에 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았다.

그러니 그 전에 확인할 수 있는 건 모두 확인하고, 얻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얻어 둬야만 했다.

박물관에서 현재 침식 중인 유물의 수는 총 87개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 완료가 임박한 유물은 모두 3개였다. 물론 만혈창을 제외한 수였다.

그 세 개의 유물도 모두 중간에 가로채기를 해서 능력치와 스킬, 칭호를 빼앗아왔다.

두 개는 정말 별 거 아닌 아이템이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제법 쓸 만했다.

글자조차 알아볼 수 없는 석판에서 이것저것 해서 12의 능력치를 뽑아냈고, ‘안정’이라는 스킬을 얻었다.

[안정(P)]

[잠을 잘 때, 심신이 차분해지고 회복력이 소폭 증가한다. 불면증이 올 확률을 약간 줄여준다.]

그리고 굉장히 거창하게 생긴 전신갑옷으로부터 힘과 체력을 각각 3씩 얻어냈고, ‘건조’라는 스킬을 얻었다.

[건조(P)]

[전신갑옷을 입어도 땀이 나지 않는다. 젖은 몸이 평소보다 약간 더 빠르게 마른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스킬 두 개를 얻었다.

마지막 유물은 책이었다.

양피지를 엮어서 만든 책이었는데, 척 보기에도 굉장한 역사가 깃들어 있는 듯했다.

위의 두 유물과 달리 이 책은 만혈창과 마찬가지로 이름이 부여되어 있었다.

[현자의 서]

[현자 100명의 손을 거쳐서 탄생한 책. 각 현자의 마음과 지식이 깃들어있다. 정신력+100, 마력+100, 스킬 ‘기술강화’를 쓸 수 있다. 칭호 ‘다섯 수레의 책을 읽은 자’를 부여한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진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걸 중간에서 가로챘다.

[기술강화(P)]

[모든 스킬의 위력을 10% 강화한다.]

스킬을 많이 가진 강하진으로서는 이런 식의 패시브 스킬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아마 굉장히 유용한 스킬이 될 것이다.

[다섯 수레의 책을 읽은 자]

[현자의 서를 소유한 사람은 예외 없이 많은 책을 남겼다. 그렇게 남긴 모든 책을 모아 다섯 수레를 가득 채웠다. 하나하나 특별한 책이며, 그걸 모두 읽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혹은 그 모든 현자가 인정하는 책을 소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속독, 고속영창, 명경지수]

무려 스킬이 세 개나 붙어 있는 칭호였다.

[속독(A)]

[책을 빨리 읽을 수 있다. 숙련도에 따라 최소 2배에서 10배까지 빨라진다. 스킬 ‘갈취’에 도움을 준다.]

[고속영창(P)]

[스킬의 발현 속도를 10% 향상시킨다.]

[명경지수(P)]

[항상 차분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스킬 실패 확률을 낮춰준다. 모든 패시브 스킬의 성능을 소폭 높여준다.]

깜짝 놀랄 정도로 대단한 스킬들만 모아 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었다.

더구나 첫 번째 갈취 대상이었던, 만혈창으로부터 힘을 가로챌 때와는 달리 그 뒤로는 전혀 고통도 없었다.

아무래도 스킬로 자리를 잡으면서 그렇게 된 듯했다.

어쨌든 그런 것들을 받았으니 박물관을 쉽게 떠날 수 있겠는가.

현자의 서로부터 힘을 갈취한 것이 첫째 날 새벽 2시쯤이었으니, 그 뒤로는 그저 유물을 살펴보고 낮은 진행률에 안타까워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 중에서는 진행률이 상당히 높아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은 것들도 몇 개나 있었다.

95% 정도였는데, 99%인 것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또 99%가 된 지 얼마나 되었는지 가늠이 안 된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며칠, 혹은 몇 주일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 시간 내내 여기서 지낼 수는 없으니 눈물을 머금고 그냥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예술품이나 유물에 그렇게 관심이 깊은 줄은 몰랐어요.”

황수영도 그렇고 정아연도 마찬가지로 강하진을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강하진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녀들이 보기에 강하진은 오직 레벨업과 던전을 닫는 것에 모든 삶을 집중한 사람 같았으니까.

그런 사람이 이런 고상한 취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윤경민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그동안 마스터에 대해서 굉장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만간 길드 본부에 미술품 몇 개 정도는 구비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강하진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려다가 윤경민의 표정과 눈빛을 보고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기대감이 눈빛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저러다가 박물관이나 미술관 짓자고 덤벼드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그건 또 그것대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하진은 고개를 돌려 멀어져가는 박물관을 잠시 눈에 담았다.

솔직히 회귀 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유물이 변해서 만들어진 아이템의 성능이 떨어졌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확인한 바로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만혈창이나 현자의 서 같은 아이템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결코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뛰어난 제작 스킬이나 부여 스킬을 가진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인생작을 만들어도 저 정도의 아이템을 제작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마 회귀 전에도 저랬나?’

그랬는데 저들이 정보를 감추고 교란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대단한 일이었다.

‘좀 더 알아봐야겠어.’

강하진은 어떤 이유로 저 박물관에서 유물이 아이템으로 변하는지 알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시간이 좀 더 있으면 어떻게든 감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박물관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황수영이 그걸 보고는 말했다.

“그렇게 아쉬워요? 이거 한국 돌아가면 박물관 순회부터 해야겠네. 시간 정말 없지만 같이 가드릴게요. 저런 데에는 혼자 가면 재미없는 법이거든요.”

“혼자 조용히 즐길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보니까 작품 하나하나 굉장히 세심하게 들여다보시는 것 같던데. 보통 사람은 그거 기다려 주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하물며······.”

정아연이 차마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황수영을 바라봤다.

이 중에서 가장 성격이 급해서 작품 하나를 볼 때 몇 초만 지나도 지루해서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자고 재촉하던 사람이 바로 황수영 아니었던가.

“하면 다 할 수 있어요. 내가 나중에 써먹으려고 여기서는 일부러 기를 모은 거라니까요?”

일행은 황수영의 말도 안 되는 궤변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프랑스 쪽도 한 번 확인해 보고 싶군요.”

강하진의 말에 정아연이 눈을 빛냈다.

“제가 한 번 접촉해볼게요. 솔직히 그냥 구경만 하는 정도면 가능할 것도 같으니까요.”

이럴 때 A-마켓이 가진 인맥과 힘이 유용해진다. 그리고 정아연은 그걸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었고.

강하진이 기대감 넘치는 눈빛으로 정아연을 쳐다봤다.

정아연은 그 눈빛을 마주보며 어떻게든 그 일을 성공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일행을 태운 차가 빠르게 달렸다. 박물관에서 시간을 너무 쏟은 나머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 *

파티는 호텔의 지하에 마련된 거대한 홀에서 열렸다.

사실 지하에 이런 장소가 있을 거라고는 호텔을 밖에서 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 호텔의 면적보다 월등히 넓은 장소였으니까.

호텔 지하 깊은 곳에 마련된 홀이었는데, 보안이 굉장히 철저한 장소였다.

몇 단계나 되는 보안 시스템을 거쳐야 도착할 수 있는 장소였는데, 매 단계를 지날 때마다 그 철저함에 강하진 일행도 상당히 놀랐다.

“굉장하네요.”

그게 정아연이 홀에 들어서자마자 내뱉은 첫 마디였다.

또한 나머지 일행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했다. 다들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홀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샴페인 잔을 들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안면이 있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강하진 일행은 일단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한국에서라면 모를까 세계로 나온 이상, 강하진 일행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으니까.

그런 강하진 일행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사람은 윌리엄이었다.

“드디어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자, 이쪽으로 오시죠. 소개해 드릴 분들이 잔뜩 있으니까요.”

윌리엄은 자연스럽게 강하진 일행을 곳곳에 소개해 인사를 나누게 하고, 무리에 섞여들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일행을 하나씩 떨어뜨려 놨다.

그 일 역시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인사를 나누고 약간의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일행 중 한 명이 무리에 좀 더 깊이 어우러지게 만들고는 나머지 일행을 데리고 슬쩍 빠져나오는 식이었다.

그렇게 모두 사라지자, 윌리엄 옆에는 강하진만 남았다.

“박물관에서 굉장히 뜻깊은 시간을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즐거우셨다니 다행이로군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아시다시피 박물관의 작품을 자주 바꾸거든요. 아마 다음에는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강하진은 그저 빙긋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보고 싶지만, 그렇게 해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아마 윌리엄과 제이슨의 제안을 거절하면 다시는 박물관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몰래 들어간다고 해도 문제였다. 박물관 내부에는 무수한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내부 관리도 정말 철저히 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 정도 아이템이 꾸준히 나타나면 누구라도 철저해지겠지.’

생각에 잠긴 강하진의 모습에 윌리엄이 물었다.

“어떻게, 제가 드린 제안은 생각을 좀 해보셨습니까?”

“아직 고민 중입니다.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미국과 영국 쪽의 힘이 많이 개입되어 있으니 주변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요.”

윌리엄의 말에 강하진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사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죠. 예를 들면 귀화라거나.”

그 말에 윌리엄이 손뼉을 짝 쳤다.

“오, 그런 방법도 있었군요. 아주 괜찮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고민해 주셨으면 합니다. 귀화라는 선택지가 가지는 득과 실을 잘 따져서 말이지요.”

강하진은 윌리엄의 반응을 보고 판단을 내렸다.

저들이 원하는 건 강하진이 아니라 가디언스였다.

당연히 강하진의 힘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가디언스라는 출중한 길드의 지원을 원하는 것이다.

강하진이 귀화하면 가디언스를 잃을 수도 있으니 신중하라는 충고를 해주는 것이고.

‘서포터로 결정한 모양이군.’

회귀 전에 팀 가디언스를 중심으로 촘촘하게 짜인 서포터들이 문득 떠올랐다.

사실 그 서포터 자리에 들어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서포터는 개인이 될 수도 있고, 길드가 될 수도 있으며, 기업이 될 수도 있었다.

다만 개인이 그 자리에 앉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굉장한 실력과 재력이 있어야 하니까.

개인 자격으로 서포터가 되었다는 건, 팀 가디언스에 결원이 발생했을 때 우선적으로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무튼 윌리엄과 제이슨이 강하진을 서포터로 점찍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건 무조건 거절할 생각이었다.

사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좀 고민했다. 적의 심장부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서포터라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서포터들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범위는 정말 좁다. 딱 필요한 정보만 제공하니까.

지금 상황에서 강하진이 거기 가봐야 시간 낭비였다.

다른 서포터처럼 큰 이익을 바라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튼 세계 평화를 위한 일이니 대승적 차원에서 잘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죠.”

강하진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윌리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자리를 떴다.

그에게는 강하진 말고도 인사할 사람이 넘쳤으니까.

졸지에 혼자 떨어지게 된 강하진은 약간 구석진 곳에 서서 홀을 찬찬히 둘러봤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보다 그들을 시중드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음식을 나르고 샴페인을 제공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파티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까지.

‘음식 수준이 훌륭하군.’

솔직히 좀 놀랐다. 마력을 기반으로 만든 음식이었다.

각성자들은 훨씬 훌륭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반인들도 상당한 수준으로 즐길 수 있는 음식이었다.

‘일반인까지 즐길 수 있는 마력 기반 음식이 언제쯤 개발되었었지?’

강하진은 회귀 전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래도 너무 빨리 나온 것 같아서였다.

역사가 달라졌거나, 아니면 애초에 이들이 지금쯤 개발했는데 공개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게 강하진이 요리를 음미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아주 잘 아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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