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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94화 (94/200)
  • < 박물관에서 1 >

    ‘진행이 너무 느려.’

    38%에서 침식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한참동안 거기 서서 뚫어져라 그릇을 노려봤지만, 마치 더 이상 올라가지 않을 것처럼 변하지 않았다.

    결국 고개를 젓고 그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결과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몇날 며칠을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강하진은 그 뒤로 또 침식이 이뤄지는 유물이 없는지 찾아봤다.

    물론 그러면서도 하나하나 유물마다 엿보기를 통해 더 깊은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의 유물을 차근차근 확인하던 강하진이 두 번째로 걸음을 멈춘 것은 멋들어진 창 앞이었다.

    원래 이 박물관에 있던 창은 아닌 듯했다.

    또한 유럽 쪽이 아니라 아시아 쪽에서 쓰이던 무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졸졸 따라다니던 니콜라스가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원래 개인 소장품으로 갖고 있던 물건입니다. 오래전 중국에서 쓰던 창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주 유명한 장수가 쓰던 거라고 하는데, 솔직히 증명된 바는 없습니다.”

    보아하니 자발적으로 기증한 것 같지는 않았다.

    강하진이 창을 유심히 살피고 있자, 니콜라스가 또 말을 걸었다.

    “무기에 관심이 많으신가봅니다. 하긴, 각성자는 대부분 무기에 관심이 많긴 하죠.”

    강하진이 이 창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침식이 다 끝나가기 때문이었다.

    [침식 중]

    [침식 진행 중. 99%.]

    무려 99%다. 저 99%가 언제부터 99%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이대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침식이 끝날 것 같았다.

    강하진은 그 순간을 확인하고 싶었다.

    과연 침식이 끝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그리고 어떤 작용에 의해 저 유물이 아이템으로 변하는 걸까?

    그동안 열심히 연마해 온 감각이 어쩌면 이번에 제대로 역할을 해줄지 모른다.

    각성자가 각성하는 순간, 그러니까 일반인이 시스템과 연결되는 순간은 암시장의 주인, 최대길을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지금은 물건이 시스템과 연결되는 순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강하진이 움직이지 않고 창만 확인하자, 나머지 일행들이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는지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니콜라스도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이렇게 따로 움직이시면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죠. 여기 강하진 씨가 워낙 이 창을 사랑하시니.”

    니콜라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나머지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창을 다 구경하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오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하고서.

    물론 강하진을 그냥 방치하진 않았다. 다른 직원을 불러 강하진 옆에서 끝까지 함께 기다리라고 지시를 내렸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결국 한 시간이 지나자, 함께 기다리던 직원이 하품을 하고는 질린 눈으로 강하진과 창을 번갈아 바라봤다.

    대체 저 창에 뭐가 있기에 저렇게 눈을 못 떼고 바라보는 건지 궁금했다. 물론 그 궁금증은 지루함이 금세 날려 버렸지만.

    다들 그렇게 지루해 했지만, 강하진은 그렇지 않았다.

    계속 집중하다보니 창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조금씩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침식의 과정을 감각으로 포착해낸 것이다.

    아마 이 창이 침식의 끝자락에 와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리라.

    저쪽에 있던 38%짜리 토기를 계속 지켜봤다면 이런 성과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침식이 차츰차츰 진행해 가는 과정을 감각으로 파악하는 것은 강하진에게 있어서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매력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성장의 기회이기도 했다.

    ‘끝이다!’

    강하진은 침식의 마지막 순간을 확인했다.

    시스템이 저 창에 연결되는 정확한 타이밍을 파악한 것이다.

    그동안 어찌나 집중해 있었는지, 마치 그 연결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강하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허공을 움켜쥐었다.

    [만혈창]

    [만 명의 피를 먹은 창. 만 명의 피와 혼이 깃들어 있다. 체력+100, 힘+100, 민첩+100, 마력+100, 생명력+5000, 스킬 ‘천참만륙’을 쓸 수 있다. 칭호 ‘만인참’을 부여한다.]

    강하진은 깜짝 놀랐다. 정말 어마어마한 무기 아닌가.

    이제야 영국에서 왜 박물관을 이렇게나 철통처럼 경계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아이템이 계속 나온다면 누구라도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으리라.

    강하진은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시스템의 끈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저 창은 아이템이 되지 않았다.

    강하진이 아이템으로 변하는 순간을 포착해서 잠시 막아둔 셈이었다.

    ‘아깝다.’

    저 창을 그냥 내버려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저걸 가져간다면 강하진이 써도 되고, 아니면 창을 주무기로 쓰는 황수영이 써도 된다.

    아마 황수영이 쓰면 정말 날아다닐 것이다.

    안 그래도 마력이 모자라서 허덕이는데 마력까지 늘려주고, 정신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를 100이나 올려주는 창을 쥐면 얼마나 대단한 힘을 발휘하겠는가.

    그렇게 시스템의 끝자락을 손에 쥔 강하진은 아쉬움과 욕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걸 가만히 쳐다봤다.

    ‘음?’

    강하진은 깜짝 놀랐다.

    손에 쥔 시스템의 끝이 손바닥을 간질이기 시작한 것이다.

    손이 간질거렸지만 끝까지 쥔 주먹을 펴지 않았다.

    이젠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했는데, 강하진은 그것도 참아냈다.

    처음에는 단지 아쉬워서 그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좀 다른 기분이 들었다.

    고통이 점점 커졌다.

    이젠 칼로 손을 그어버리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 상처를 칼로 쑤시고 마구 휘젓는 듯했다.

    갑자기 고통이 커져서 하마터면 손을 펼 뻔했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참아냈다.

    이어진 고통은 방금 전과 차원이 달랐다.

    누군가 강제로 손을 찢어버리는 듯했다. 그저 통증만 일어나는 건데도 칼로 베는 것보다 훨씬 잔혹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손을 잘라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깜짝 놀라서 손을 봤지만 멀쩡히 붙어 있었다. 한데 분명히 누군가가 잘라냈다.

    손이 사라진 느낌이 아주 선명했다. 통증은 당연히 따라왔다.

    이번에는 손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손목이 아팠다. 손이 사라지는 바람에 통증이 위로 올라온 듯했다.

    그것이 점점 이어졌다.

    다음에는 팔뚝이 사라졌고, 그 다음에는 팔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리고 어깨가 뜯겨 나갔고, 마지막으로 누군가 심장을 뽑아내는 듯했다.

    가슴을 찌르는 격통에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강하진은 끝까지 모든 과정을 버텨냈다.

    고통은 길고 힘들었지만, 마지막 과실은 달콤했다.

    [침식된 시스템 정보를 흡수합니다.]

    강하진의 망막에 그 글귀가 떠오른 순간, 모든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또한 사라졌던 팔과 손의 감각이 마치 원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되돌아왔다.

    강하진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꽉 쥔 주먹에는 조금 전까지 시스템의 끝자락이 잡혀 있었다. 한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허공을 쥐고 있을 뿐이었다.

    강하진은 손을 풀었다. 어찌나 꽉 쥐고 있었는지 손에서 살짝 쥐가 나려고 했다.

    시선을 이동해 전시된 창을 쳐다봤다. 그리고 정보를 확인했다.

    아무 정보도 떠오르지 않았다.

    침식 중이라는 정보도, 또 그것이 끝났다는 정보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원래라면 시스템과 연결 되어 특별한 힘을 품었어야 하는 창이 평범한 창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라진 힘이 어디로 간 걸까?

    강하진은 자신의 정보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들어왔다. 좀 특이한 형태로.

    일단 칭호와 스킬이 분리되어서 들어왔다.

    ‘만인참’이라는 칭호가 생겨났고, ‘천참만륙’이라는 스킬이 목록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스킬 두 개가 생겨났다.

    [갈취(A)]

    [시스템이 부여하는 힘을 가로챈다. 정확히 시스템이 힘을 부여하는 순간을 포착해야 쓸 수 있다.]

    [능력 포개기(P)]

    [갈취를 통해 가로챈 힘을 저장해 원래 능력치에 쌓는다. 현재 저장 상황 : 체력+100, 힘+100, 민첩+100, 마력+100, 생명력+5000]

    그걸 확인하니 좀 얼떨떨해졌다.

    ‘설마 아이템의 부가 능력을 가로챌 수도 있는 거였어?’

    물론 아무 아이템이나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정확히 시스템과 연결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 거지만, 어쨌든 사기에 가까운 스킬이었다.

    ‘그리고 스킬이 이렇게 쉽게 생기는 거였어?’

    어떤 일을 무작정 반복한다고 그게 스킬이 되지는 않는다. 특별한 조건 여러 개를 만족해야 비로소 토대가 만들어지고, 그 위에 스킬이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알려진 스킬도 거의 없었다.

    스킬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스템으로부터 내려 받는 것이다.

    한데 강하진은 돌발 상황에서 특정한 행동을 통해 스킬을 만들어냈다.

    강하진은 고개를 휘휘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그리고 만혈창에 붙어 있던 칭호와 스킬을 확인했다.

    [만인참]

    [만 명의 인간을 죽여 그 피를 모두 마신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혹은 그때 쓴 무기를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정신력+30, 살기방출.]

    [천참만륙]

    [한 번의 칼질에 여러 번의 공격을 담을 수 있다. 최소 10회에서 최대 10000회까지 가능하다. 공격 방향은 불규칙하며, 1000회 이상의 공격을 담았을 시 ‘격류’가 자동으로 펼쳐진다.]

    이건 직접 써먹어 봐야 효용을 알 수 있을 듯했다.

    만일 여러 번 공격하는 것이 한 순간에 일어나는 거라면 정말 유용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거라면 상황에 따라 쓰기 위험할 수도 있었다.

    강하진은 칭호와 스킬에 따라오는 다른 것들도 다 확인했다.

    [살기방출]

    [만 명을 죽여 쌓은 살기를 일시에 방출한다. 살기에 노출된 사람은 움직임이 제한된다. 성공률은 정신력 차이와 숙련도에 따른다.]

    [격류]

    [격렬한 마력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마력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살기방출은 정말 쓸모가 많을 것이 분명한 스킬이었다.

    성공률이 정신력 차이에 기인한다는 것도 좋았다. 강하진은 다른 사람에 비해 정신력이 월등히 높은 편이니까.

    일단 사람을 상대로 하면 거의 무조건 쓸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격류는 직접 써보지 않고는 효과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것 역시 나중에 천참만륙을 쓰면서 확인해 봐야 할 듯했다.

    어쨌든 잠깐 기다린 것치고는 얻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물론 그걸 얻기 위해 굉장한 인내가 필요하긴 했지만.

    강하진이 가만히 서서 주먹을 쥐기도 하고 고개를 젓기도 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박물관 직원이 결국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괜찮으십니까?”

    “아, 네. 괜찮습니다. 이제 이건 다 구경했으니 다른 유물을 보러 가고 싶군요.”

    강하진은 정신을 차리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이내 빙긋 웃으며 다음 장소로 안내를 했다.

    “일행 분들은 제법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쪽으로 바로 가시겠습니까?”

    “아뇨.”

    강하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하나하나 다 살펴보면서 갈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직원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자, 이쪽입니다.”

    강하진은 그 뒤로도 계속 유물을 하나하나 세심히 확인했다.

    혹시나 방금 전 같은 대박을 또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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