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93화 (93/200)
  • < 제이슨과 윌리엄 >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윌리엄의 어조와 태도는 굉장히 정중하고 기품이 넘쳤다.

    앞에 서 있던 황수영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릴 뻔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들어오세요.”

    황수영의 허락에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와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의 시선은 얼핏 부드러워 보였지만, 깊은 곳에 숨겨진 날카로움이 때때로 번득였다.

    “세 분은 제가 잘 알겠는데, 이쪽 한 분은 아직 모르겠군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소개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저는 윌리엄 버밍테일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계시는 이 호텔의 오너이기도 하죠.”

    지목 받은 윤경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 상대가 윌리엄 버밍테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호, 호텔왕······.”

    “그런 별명으로 친구들이 불러주기도 합니다만······ 전 그냥 제 이름으로 불리는 게 더 좋습니다.”

    “아, 저, 저는 윤경민이라고 합니다. 가디언스의······.”

    윌리엄이 눈을 번득이며 말을 끊었다.

    “아! 가디언스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분이로군요. 안 그래도 초대장을 하나 더 보냈어야 하나 자책했는데,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윤경민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나 함부로 왔다고 쫓겨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환대를 해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그리고 살짝 뒤쪽에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강하진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윌리엄이 잘 쓰는 수법 중 하나였다.

    사실 애초에 윤경민을 초대할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그가 생각하기에 가디언스의 운영자 정도는 격이 떨어진다고 판단했을 테니까.

    하지만 저런 식으로 띄워주면 보통은 자연스럽게 그의 추종자 대열에 발을 들인다.

    물론 한 번으로 그렇게 되진 않지만, 저거 말고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바로 윌리엄이었다.

    대충 윤경민과 윌리엄의 인사가 마무리 되자, 이번엔 제이슨이 나섰다.

    “이렇게 다들 초대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이슨은 호기심 어린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걸 즐기며 말을 이었다.

    “일단 내일 밤 파티가 열리기 전까지 푹 쉬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한 가지에 대해 고민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고민?”

    황수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이슨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 현재 지구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제이슨이 말에 동의했다.

    던전이 계속 열리고 터지는 걸 반복하면 결국 지구에 세워진 인간 문명은 무너지고 말 테니까.

    “그래서 책임감을 갖고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당연하다.

    “제가 이번에 초대하신 분들은 다들 강력한 힘이나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외에 수십 명의 인재를 더 초대했습니다. 내일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게 될 겁니다.”

    황수영과 정아연의 눈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그리고 강하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전 디펜더스라는 조직을 만들 겁니다. 말 그대로 지구를 지키는 조직이죠.”

    “디펜더스······.”

    황수영이 홀린 듯 몽롱한 눈으로 제이슨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저런 말에 잘 넘어가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반면 정아연은 냉정하고 계산적인 시선으로 제이슨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눈빛 깊은 곳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머릿속으로 지금 제이슨이 한 말을 끊임없이 곱씹으며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행이 제이슨의 말을 곱씹고 있는 동안 강하진은 자연스럽게 윌리엄과 제이슨의 정보를 엿봤다.

    과연 예전과 얼마나 달라졌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

    강하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정보가 떠오르지 않아?’

    제이슨도 그렇고 윌리엄도 그렇고 전혀 정보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강하진의 스킬이 사라진 것처럼.

    강하진은 확인하기 위해 황수영의 정보를 확인했다. 이번엔 아주 자세한 정보가 떠올랐다.

    엿보기 스킬은 잘못되지 않았다.

    강하진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러는 사이 제이슨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튼 그런 조직이 생긴다는 걸 염두에 두시고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해 주셨으면 합니다.”

    “뭘 고민하라는 거죠?”

    정아연의 물음에 제이슨이 빙긋 웃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세계를 지킬 수 있을지, 우리 디펜더스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에 대해서죠.”

    “전 아직 함께 가겠다고 결정한 적이 없는데요?”

    제이슨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건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원하는 건 그저 조언 정도입니다. 다들 출중한 능력자들이시니 어떤 조언이든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제이슨과 윌리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 밤까지 편안히 쉬십시오. 필요하신 거 있으면 바로바로 말씀하시면 대부분 원하시는 대로 해드릴 겁니다.”

    윌리엄이 한쪽에 있는 전화기를 힐끗 보며 말했다.

    황수영이 다급히 물었다.

    “저기, 혹시 박물관에 갈 수 있을까요?”

    박물관이라는 말에 윌리엄이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더없이 우아하고 젠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언제는 원하실 때 저기 있는 전화를 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황수영이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두 손을 맞잡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윌리엄은 그런 황수영을 다시 한 번 눈에 담고는 제이슨과 함께 방에서 나갔다.

    황수영은 양 손을 허리에 척 얹고는 일행을 둘러봤다.

    마치 자신이 아니었다면 절대 박물관을 구경하지 못했을 거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 이제 박물관으로 갑시다. 뜸 들일 거 없이 당장 갈까요? 내일은 파티가 있다고 하니까 우리, 미루지 말죠.”

    다들 그 말에 동의했다.

    강하진도 일단 제이슨과 윌리엄에 대한 생각은 한쪽으로 치웠다. 이건 나중에 충분히 시간을 들여 고민해 봐야할 문제였다.

    상념을 털어내고 나니 박물관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금세 그 자리를 채웠다.

    사실 회귀 전에도 영국의 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한 유물들이 아이템으로 변했었다.

    하지만 강하진은 그런 데 별로 관심이 없었다.

    굳이 유물이 변해서 만들어진 아이템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다. 언제나 세계 최고의 아이템을 쓸 수 있었으니까.

    또한 당시에는 강하진이 쓰던 아이템보다 유물이 변해서 만들어진 아이템의 성능이 많이 떨어졌다.

    항상 사선을 넘나들며 괴물과 싸우는 강하진이 성능 떨어지는 아이템에 관심을 가질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달랐다.

    감정사가 측정한 아이템의 가치와 그 아이템이 가지는 진짜 가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리고 강하진에게는 그걸 똑바로 바라볼 능력이 있었다.

    왠지 두근거렸다.

    * * *

    박물관으로 가는 동안 일행의 대화 주제는 디펜더스로 고정되어 있었다.

    “할 수 있으면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쨌든 던전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그게 최고잖아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전 그 사람들을 완벽히 믿을 수가 없네요. 뭔가 다른 속셈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속셈을 갖고 있든 말든 우리는 그저 던전만 없앨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요? 솔직히 지금도 누구나 속셈 한두 개는 갖고 있잖아요. 안 그래요?”

    “그 속셈이 뭐냐에 달려있죠. 어쩌면 이걸 이용해서 세계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려는 속셈일 수도 있어요. 우린 다 그 사람들 노예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요.”

    “에이, 너무 앞서나갔다.”

    황수영이 피식 웃으며 손을 휙 내저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얘기를 듣는 강하진은 그렇게 편안히 웃을 수가 없었다.

    정아연은 제법 정확히 디펜더스의 목적을 꿰뚫고 있었다.

    “앞서나가는 게 아니에요. 디펜더스에 합류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쟁쟁한 가문이나 회사가 발을 걸쳤을 거예요. 그렇다면 절대 괜한 얘기가 아니죠.”

    강하진은 그 얘기를 들으며 자신은 왜 회귀 전에 저런 생각을 못 했을지 생각해봤다.

    그때는 오직 던전을 닫는 것에 매몰되어 있었다.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그놈들이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지.’

    강하진이 그렇게 던전으로부터의 해방에만 집착하게 된 것 자체가 예전의 동료들이 그런 식으로 유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해서 이용할 때까지 충분히 이용하고 다시 성격이나 정신을 되돌리기 어려우니 그냥 없애 버린 거고 말이다.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이긴 하지.’

    함정도 제대로 팠고 말이다.

    만일 마지막 던전이 아니라 좀 더 수월한 곳에서 그런 일을 벌였다면 절대 그렇게 쉽게 강하진을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정아연은 계속해서 일행에게 경각심을 일깨웠다.

    절대 간단히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리고 윤경민이 슬그머니 거기에 편승했다.

    사실 윤경민도 정아연과 같은 생각이었지만, 황수영을 대놓고 반대할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슬슬 그쪽으로 흘러가자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꺼낼 수 있었다.

    “저도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디펜더스에 누가 들어가기로 했는지도 모르고, 이번 파티에 누가 참석했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일단 그것부터 확인하고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윤경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수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뭐라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풍기는 분위기에서 진한 서운함이 느껴졌다.

    윤경민이 크게 당황해 입을 텁 다물고 황수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어느새 박물관에 도착했다.

    “경계가 진짜 삼엄하네요.”

    정아연은 놀란 눈으로 박물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빙산의 일각만 봤을 뿐이었다.

    황수영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표정이 싹 굳었다.

    “그냥 삼엄한 정도가 아니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피는 각성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강하진이 거기에 덧붙였다.

    “주변 건물에 저격수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건물마다 수십 명씩 있군요.”

    “대체 이 안에 뭐가 있기에······.”

    정아연이 질린 표정을 중얼거렸다.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저러는 겁니다. 알았으면 딱 거기에 맞는 경계만 했겠죠.”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일행이 그런 대화를 나누며 서성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가디언스에서 나오신 분들입니까?”

    “맞습니다.”

    윤경민이 얼른 대답하자, 사내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반갑습니다. 미리 연락을 받았습니다. 박물관 안내를 도와줄 니콜라스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일행은 니콜라스의 안내를 받으며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기대감 넘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강하진은 그렇지 않았다.

    ‘저 사람도 정보가 안 보여.’

    강하진은 제이슨과 윌리엄이 방문한 이후, 만났던 모든 사람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대부분 잘 열렸다.

    아니, 전부 잘 열렸다. 한데 여기서 막힌 것이다.

    니콜라스라는 사람의 정보가 보이지 않았다. 각성자가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몸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너무나 선명했다.

    ‘확실히 이건 심각하네.’

    지금까지 강하진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단연 엿보기 스킬이었다.

    한데 그게 막힌 것이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그리고 이제부터 그걸 찾아내야 한다. 어쩌면 이 박물관에 그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강하진은 좀 더 집중해서 박물관을 구경해 보기로 했다.

    박물관 안에 들어오니 사방에 유물이 쫙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 같은 건 별로 안 보이네요?”

    “박물관 사태 이후 전시물을 많이 교체했습니다.”

    이 공간을 이용해 아이템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림이 아이템으로 바뀐 경우는 없었으니 그림은 다 치우고 대신 유물을 갖다 놓은 것이다.

    그림은 따로 전시관을 지어 그쪽으로 싹 옮겨 두었다.

    조만간 개장을 할 예정이었다.

    어쨌든 그건 굉장한 관광의 소스였으니까.

    강하진은 박물관에 들어온 순간부터 엿보기 스킬을 끊임없이 썼다.

    예전 암시장에 처음 갔을 때보다 더 여러 번 써야만 했다.

    혹시 몰라 썼던 물건에 몇 번이나 다시 쓰기도 했다.

    가끔은 집중해서 살피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스킬이 먹히지 않았다. 즉, 시스템과 연결되지 않은 물건들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천천히 하나씩 공들여 확인하고 있을 때, 강하진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유물이 나타났다.

    그건 깨진 그릇이었다.

    “청동기 시대의 토기로군요.”

    강하진이 워낙 관심 있게 보니 니콜라스가 다가와 슬쩍 말을 걸었다.

    하지만 강하진은 니콜라스의 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침식 중]

    [침식 진행 중. 38%.]

    침식이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현재 이 토기가 아이템으로 변하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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