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를 가르며 >
페이크 던전을 닫고 나니, 더 이상 강하진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 없었다.
마르바스는 페이크 던전이 닫혔는지 모르니 계속 통신이 뚫리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회귀 전보다는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
여러모로 진행 속도가 빨라서 점점 마음이 급해지고 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약간이나마 여유를 찾았다.
강하진은 바다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는데, 굳이 [은폐]를 쓰지 않았기에 괴물을 자주 만나야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달려드는 모든 괴물을 처리해 버렸다.
일본 전역에 흩어진 괴물의 수준은 제법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강하진의 레벨업에 제법 도움이 되었다.
엄청난 수의 뉴타입 던전이 터지면서 쏟아낸 괴물도 강했지만, 그렇게 나온 괴물들이 영역 다툼을 하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더 강력한 괴물로 진화한 놈들이 있었다.
그런 놈들은 뉴타입 던전 안에서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진화하면서 레벨도 대폭 오르지만, 일단 죽여 놓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쓸모가 많다.
진화하는 과정에서 온몸에 충만한 마력이 깃들었으니 육체의 어느 하나 평범한 게 있겠는가.
아무튼 제대로 사냥을 못하고 페이크 던전을 닫는 바람에 뭔가 모자란 듯하고 찜찜했는데, 그걸 대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무수한 괴물을 잡고 몇 차례나 레벨업을 하면서 한국 쪽 방향에 위치한 항구에 도착했다.
처음 일본에 올 때 들어왔던 항구는 아니었다.
그 항구는 태평양 쪽에 있다. 미국으로 난민을 보내야 하기에 그쪽 항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강하진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반대쪽에 있는 항구로 왔다.
이제 바다만 지나가면 다시 한국이다.
강하진은 GPS를 확인해 방향을 잡았다.
벌써 일본에 온 지 보름이 넘었다.
정작 페이크 던전을 닫을 때까지는 며칠 안 걸렸는데, 그 이후에 괴물을 사냥하면서 이동하는 바람에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다.
빨리 한국에 돌아가 좀 쉬고 싶었다. 그리고 가디언스의 동료들도 보고 싶었다.
미국으로 간 일본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고 싶었고.
아마 명인혁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놨을 것이다.
강하진은 바다를 가르기 위해 가져온 장비를 꺼냈다.
그리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콰아아아아!
어마어마한 속도로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아마 한국까지는 불과 몇 시간 걸리지 않을 것이다.
* * *
강하진이 도착한 곳은 남해 쪽에 있는 작은 해변이었다.
굳이 번잡한 장소에 도착해 사람들 시선을 끌기 싫어서 일부러 한적한 곳으로 왔다.
한데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아는 사람들을 만났다.
강하진은 깜짝 놀라 그들을 쳐다봤다.
가디언스의 각성자들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신입 길드원이었다.
“마스터, 어서 오십시오. 일단 물기부터 말려드리겠습니다. 레타우, 부탁해.”
기다리던 자들 중 물의 정령사 이원중도 있었다.
고양이 형태를 하고 있던 물의 정령 레타우가 꼬리를 휘둘러 물줄기를 쏘았다.
그러자 그 물줄기가 강하진의 몸을 한 차례 휘감아 소금기와 모래를 먼저 싹 빨아들인 다음, 뽀송뽀송하게 물기를 날려 버렸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아우, 말도 마십시오. 윤경민 이사님이 어찌나 닦달을 하시던지 어제부터 남해 쪽에 파견 나와 있었습니다.”
“어제부터요? 대체 제가 어디로 올지 알고요?”
“마스터가 어디 계신지 계속 확인했습니다.”
이원중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위성을 이용해 계속 일본에 있는 강하진을 살펴봤다는 뜻이다.
“이동 방향을 통해 도착 지점을 예측했습니다.”
강하진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일본에 있는 거대 던전을 닫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원중이 존경이 듬뿍 묻어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머지 길드원들도 다들 비슷한 표정과 눈빛이었다.
강하진은 그걸 계속 받고 있기가 너무 부담스러워 얼른 움직였다.
“아무튼 마중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얼른 돌아가죠. 빨리 쉬고 싶네요.”
“어이쿠, 제가 눈치도 없이 너무 시간을 끌었군요. 마스터를 뵌 게 너무 반갑고 좋아서······ 하하. 자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헬기를 준비해 놨습니다.”
“헬기요?”
하나 필요한 거 같다는 얘기를 지나가듯 하긴 했는데, 설마 벌써 그걸 구했을 줄은 몰랐다.
“마스터께서 지시하셨다고 들었는데, 아니었습니까?”
“아니, 얘기를 한 건 맞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이원중이 빙긋 웃었다.
“하긴, 윤경민 이사님께서 워낙 일처리가 빠르시긴 하죠.”
이건 그냥 빠른 정도가 아니었지만 강하진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걸로 감정을 표현했다.
강하진은 이원중의 안내로 헬기가 착륙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헬기를 타고 서울로 출발했다.
제법 길었던 일본 원정이 끝났다.
* * *
서울에 도착한 강하진은 윤경민부터 만났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본에서 활약하신 건 제가 영상으로 잘 저장해 놨습니다.”
영상을 저장해 놨다는 말에 강하진이 깜짝 놀랐다. 설마 그렇게까지 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던전을 결국 혼자서 닫으셨더군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 다들 난리입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사실 그 안에서 얻은 것도 별로 없고요.”
“어우, 운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합니까? 다 우리 가디언스의 마스터께서 출중하신 실력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강하진은 윤경민이 계속 낯간지러운 말을 하자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신입 길드원들이 마스터를 직접 모시고 싶다고 해서 헬기까지 딸려서 보내드렸는데, 어떠셨습니까? 우리 길드의 미래를 보신 소감은.”
“······윤경민 씨가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에이,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시간에 사냥을 하면 얼마나 이득인데. 아무리 신입이라도 훌륭한 전력이라는 거 알고 계시잖습니까.”
강하진은 의외의 사실에 속으로 좀 놀랐다.
윤경민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신입 길드원들이 마스터께 보내는 신뢰와 존경은 상상 이상입니다. 아마 첫 사냥을 같이 한 것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더불어 강하진이 직접 영입한 세 명의 정령사가 주변에 뿌리는 영향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강하진은 인생을 구제해준 은인이었기에 그들이 강하진을 대하는 자세는 정말로 남달랐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신입 길드원들이 직접 윤경민에게 요청해 강하진을 마중하러 나간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강하진의 행적을 윤경민이 먼저 흘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긴 했지만.
“우리 대 가디언스의 마스터께서 워낙 공사다망하셔서 이런 부탁드리기가 참 민망하네요.”
“네? 부탁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윤경민이 하는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줄 생각이었다. 웬만하면 말이다.
“네. 설마 뒤에 또 일정 있으신 거 아니죠?”
“네.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좀 쉬려고 합니다.”
더불어 새로 얻은 스킬도 제대로 확인해 보고, 이번에 얻은 정보도 좀 정리하고 말이다.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말씀해보세요.”
되도록 들어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하자, 윤경민이 얼른 대답했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아니, 끝난 지 벌써 오래 됐습니다.”
“뭐가요?”
“아공간 말입니다.”
강하진의 이마에 식은땀이 살짝 배 나왔다.
그러고 보니 계속 일이 터져서 아공간 제작이 연이어 미뤄지고 있었다.
아공간을 만들기만 하면 얼마나 대박을 칠지 너무나 눈에 훤히 보이는 상황인지라 윤경민의 몸이 달아오를 만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만들겠습니다. 얼른 시작하는 걸로 하죠.”
“감사합니다. 정말 기대 중입니다. 벌써 채굴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질 좋고 큰 마석을 여러 개 구했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윤경민은 버려진 각성자를 고용해서 마석 광산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철저히 비밀을 지키고 있었다.
광산을 일정 깊이 이상 파고든 순간 더 큰 마석이 발견되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더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큰 마석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비밀이 알려지면, 아마 더 광산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질 테니까.
아니, 차라리 그것뿐이면 낫다. 이미 얻은 광산까지 빼앗길 위험이 있었다.
이 비밀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아무튼 윤경민은 이번에 얻은 마석 세 개를 테이블 위에 착착 내려놨다.
거의 4단계에 육박하는 마석들이었다.
게다가 전부 공간 속성이 깃들어 있었다.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아공간의 재료였다.
“이 정도 마석이면 어느 정도 아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요?”
“컨테이너 열 개 정도 크기는 나오겠네요. 이런 마석이 많습니까?”
“그럴 리가요. 아주 드뭅니다. 아시다시피 대부분은 부스러기입니다.”
아무리 깊이 파고들어도 나오는 마석의 대부분은 부스러기다. 큰 마석이 어쩌다 하나씩 섞여서 나올 뿐이다.
그래서 큰 아공간을 많이 제작해서 판매하려면 광산을 많이 확보해야만 한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운경민이 정중히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명인혁이 들어왔다.
“무사히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강하진도 상대하기 어려운 윤경민이 나가고 명인혁이 들어오자 굉장히 반가웠다.
“그래. 한국에는 별 일 없었지? 인수도 잘 있고?”
“예. 인수는 요즘 아주 신 났습니다. 전부 마스터 덕분입니다.”
강하진은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명인혁을 볼 때마다 이놈을 구해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능력이 뛰어나서만은 아니었다. 회귀 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이런 녀석이 그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이 가끔은 믿기지 않을 때가 있었다.
“요즘 한국에는 별다른 이슈가 없습니다. 굉장히 안정적입니다.”
“그래?”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좀 아쉬웠다.
안정적이라는 말은 회전이 원활하다는 뜻이다.
던전이 나타나면 그걸 파악하고 각성자가 출동해 던전을 닫는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지면 안정이 찾아온다.
지금 한국이 딱 그런 상태였다.
이럴 때는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슬슬 외국으로 눈을 돌릴 때가 왔다.
외국 쪽에는 쓸 만한 사냥터가 정말 많다.
이번 던전 공습을 모든 나라가 막아낸 건 아니었다.
일본 만큼은 아니더라도 거의 헬게이트가 열린 거나 다름없는 상황인 국가가 제법 많았다.
특히나 던전을 발견하기 어려운 지형을 가진 나라들은 던전 공습을 제대로 막아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런 나라들은 대부분 외국의 각성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놨다.
알아서 들어와서 사냥하고 알아서 부산물을 챙겨 가라는 식이었다.
그런 나라는 당연히 정부가 나서서 부산물과 마석 거래를 주도하고 있었다.
폭리를 취하지는 않지만 그저 중간에서 유통 과정에 끼어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는 그렇게 얻은 이득으로 국가를 재건하는 데 쓰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관련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어쨌든 그런 나라를 찾아다녀도 된다.
강하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명인혁의 보고가 이어졌다.
“현재 미국으로 건너간 일본인들이 기존 정부를 부정하고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상황은 어때?”
“당연히 기존 정부가 훨씬 유리합니다. 그들에게는 막대한 자금과 물자가 있으니까요. 나중에 도착한 일본인들이 그 자금과 물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싸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 미국은?”
“일단은 관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밀히 손을 쓸 준비를 하는 걸로 파악됩니다.”
“손을 쓴다고? 암살이라도 하려나?”
“그런 과격한 수는 아니고 그저 힘을 조금 실어주는 정도입니다.”
“그런 식이면 애초에 싸움이 안 되는 거 아냐?”
처음 일본을 탈출한 일본 정부는 군대까지 일부 끌고 갔다. 뛰어난 각성자도 다수 데리고 갔고.
나중에 간 사람들의 수가 비록 많긴 해도 일반인이 다수이니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힘도 없고 돈도 없는데 뭘 가지고 싸운단 말인가.
“그래서 말씀인데······ 제가 살짝 끼어들어도 되겠습니까?”
강하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명인혁을 쳐다봤다.
“네가 끼어든다고? 어떻게?”
“균형만 맞춰보려고 합니다. 기존 일본 정부에 붙어있는 자들 중에서 불만을 가진 자들을 포섭해서 반대쪽에 넘겨주는 식으로요.”
“그게 가능해?”
“네.”
강하진은 정말 놀랐다. 저 얘기는 벌써 미국 쪽에도 정보원을 뿌려놨다는 뜻이다.
“윤경민 이사님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아무리 윤경민이 도와줬다고 해도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윤경민이랑 같이 붙어서 시너지가 일어난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해봐. 그런데 그렇게 해서 우리가 얻을 게 있나?”
얻을 건 있다. 명인혁의 경험이다. 하지만 명인혁이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는 건, 경험만을 위한 건 절대 아닐 것이다.
“나중에 혹시 모를 일이 있을 때, 우리를 위해 미국에서 힘을 써 줄 세력을 키워놓으려고 합니다.”
강하진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스케일이 갑자기 커졌네. 그래도 되기만 하면 아주 끝내주겠어.”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내가 더 고맙지.”
미국에는 나중에 강하진의 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개개인의 힘도 강하지만 배경이 되는 힘 역시 막강하다.
아마 명인혁이 하는 일이 잘 된다면 나중에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얘기가 마무리 될 때쯤 아까 나갔던 윤경민이 다시 들어왔다.
강하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윤경민이 얼른 뭔가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초대장입니다.”
“초대장?”
강하진이 그걸 받아 확인해보니, 카드가 든 봉투였고, 위쪽 구석에 받는 사람이 강하진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아래쪽 구석에 보낸 사람이 있었다.
보낸 사람은 제이슨이었다.
회귀 전에 세계 최고레벨이었던 바로 그 제이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