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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89화 (89/200)
  • < 페이크 던전의 비밀 2 >

    카르난의 다리를 잡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일단 기습이 완벽하게 먹혔고, 기습과 동시에 날린 [낙뢰]가 나머지 한 놈을 잠깐 경직시킨 것이 큰 효과를 발휘했다.

    강하진은 그놈들 역시 꼬리가 있는 쪽으로 가져가서 마석을 뽑고 몸을 묶어 땅에 묻었다.

    그 전에 정보를 집중해서 확인했지만 꼬리에서 얻어낸 정보 이상은 얻지 못했다.

    다리 다음에는 양 팔을 마주쳤다.

    카르난의 팔은 활을 들고 있었다.

    팔까지 잡았을 때, 강하진은 몸통이 어디 있는지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이놈들은 던전 중심을 감싸듯 빙 둘러 있었다.

    마치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정해진 듯했다.

    물론 그 주변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그 범위가 제법 넓어서 활동 자체에는 별 상관이 없었지만.

    몸통은 마법사였다.

    팔이나 다리와 달리 혼자 있었기에 상대하기는 훨씬 편했다.

    강하진은 문득 저놈들이 한데 모여 있었으면 싸우기 정말 까다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탐색과 정찰을 담당하는 놈, 탱커이면서 무술을 하는 놈, 그리고 활을 쓰는 놈에 마법사까지.

    기습도 통하지 않을 테고, 탱커를 상대하면 마법과 활이 날아오고 가끔 검이 기습적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런 놈들과 싸운다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그나저나 그 모든 걸 혼자 갖고 있던 카르난이라는 마족은 대체 뭐야?’

    마르바스에게 충성 서약을 한 마족 기사라고 했다.

    마족 기사는 강하진도 많이 싸워봤다.

    하나하나가 치 떨릴 정도로 강한 놈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검술이 뛰어나고 강력한 체력과 육체를 갖고 있긴 하지만, 저렇게 다양한 능력을 가진 마족 기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지위가 높은 기사였나보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던전을 유지하기 위해 희생했으니 회귀 전에도 마주칠 일이 없었을 테고.

    어쨌든 카르난의 조각난 몸 여섯 개를 다 모았다.

    이제 이놈들을 한데 모아서 더 자세한 정보를 뽑아낼 차례였다.

    될지 안 될지 아직 모르지만.

    * * *

    [가상 던전의 근원]

    그것이 여섯 개의 몸을 모두 모았을 때, 강하진이 확인한 정보의 제목이었다.

    [마족 기사 카르난의 힘과 권능, 육체를 여섯으로 나눠 배양해 제작한 던전의 근원. 특별한 배양법에 의해 권능, ‘투영’이 깃들었다.]

    그것이 첫 번째 정보였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이 페이크 던전의 근원이 바로 이놈들이었다.

    두 번째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가상 던전의 근원이 완벽하게 녹아들면, 가상 던전은 정보의 통로가 된다.]

    그걸 확인한 강하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르바스가 왜 이런 짓을 벌이나 했는데, 정보를 주고받기 위함이었다.

    설마 일본에 통신 시설을 구축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였을 줄은 몰랐다.

    만일 그렇게 되면 현재 지구에서 암약하고 있는 복종의 팔찌를 소유한 마르바스의 권속들에게 직접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상황을 보고 받아 전략이나 전술을 실시간으로 수정할 수도 있고 말이다.

    회귀 전에는 이 던전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터지지도 않고 안에서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분명 마르바스의 계획도 성공했을 것이다.

    ‘마르바스와 대체 어떻게 소통을 해서 계약을 했는지 궁금했는데, 이것 때문이었군.’

    아무튼 이제 목적을 알았으니 던전만 닫으면 된다.

    한데 어떻게 하면 투영이라는 권능을 소멸할 수 있는지를 아직 알 수 없었다.

    그저 죽이는 걸로는 안 된다는 걸 모아놓고 보니 알 수 있었다.

    이들이 권능의 근원이긴 하지만, 이들을 죽인다고 해서 이미 뿌리 내린 권능이 사라지지 않는다.

    강하진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권능을 없앨 수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봐야 나오는 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카르난이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사실 신기한 놈이긴 했다.

    귀족도 아니고 고작 기사일 뿐인데 권능까지 갖고 있다.

    게다가 가지고 있던 스킬은 어찌나 다양한지 결코 평범한 기사의 수준은 아니었다.

    몇몇 스킬은 조각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애초에 굉장히 숙련도가 높다는 뜻이었다.

    강하진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카르난 자체에 집중해 정보를 뽑아봤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다. 카르난 역시 마르바스의 권속이기에 정보 수집이 원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그의 육체가 있어서인지 결국 조금씩 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카르난에 대한 정보를 엿볼 수 있었다.

    [카르난]

    [마르바스 휘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기사. 작위 수여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배신했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그 후 충성 서약의 대가로 몸이 조각난 채 마르바스에게 귀속되었다. 죽음의 순간 마르바스와의 군신관계를 스스로 끊었다.]

    강하진은 카르난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냈다. 이놈은 마르바스의 기사였지만, 스스로 그 관계를 끊어버렸기에 엄밀히 따지면 마르바스와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카르난을 이용하면 더 깊은 정보를 얻어낼 수도 있다는 뜻인가?’

    그리고 강하진은 카르난이 스스로 군신관계를 끊었다는 문장을 몇 번이나 강조해서 읽었다.

    어쩌면 저 문장에 이번 일을 해결할 열쇠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각 조각의 마석은 이미 모두 뽑았다.

    이대로 두면 저들을 다 죽어버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던전이 통신 시설로 변하는 걸 막을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가만, 그럼 머리는 어디 있는 거지?’

    각각 카르난의 꼬리, 다리, 팔, 몸통이었다.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머리가 없었다.

    가상 던전을 지탱하는 여섯 개의 기둥이 저거라고 했지, 그게 카르난의 모든 것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강하진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머리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았다.

    * * *

    일본을 탈출한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 국민이었다. 그리고 외국에서 도와주기 위해 방문한 각성자가 일부 있었다.

    그 각성자들은 미국의 도움으로 각자의 나라에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연락을 받은 각국의 각성자 담당부서에서 미국으로 직원을 파견 보냈다.

    안전하게 각성자를 돌려받기 위함이었다.

    이번에 일본 사태에 지원한 각성자들은 대부분 수준이 높았다.

    애초에 레벨도 높고 좋은 스킬을 보유한 각성자들이 지원했다.

    일본의 상황이 상당히 어려웠기에 실력이 없는 각성자는 아예 지원할 엄두도 내지 못했으니까.

    그런 각성자를 미국의 사탕발림에 빼앗기기라도 하면 곤란했기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본인들은 다른 나라의 각성자들이 자국의 담당자와 연락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박탈감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그건 상황을 이렇게 만든 기존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였다.

    레벨이 높은 각성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일본인들은 미국에 도착하는 즉시 행동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다.

    그리고 그 계획에 배에 함께 타고 있는 미국 측 요원들이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 약속을 해주었다.

    그렇게 다짐하고 계획을 세우다보니 어느새 미국에 도착했다.

    일본인들은 일단 대표단을 구성했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함과 동시에 기자회견을 통해 먼저 탈출한 일본 정부를 부정하고 자신들이 진짜 일본의 대표임을 주장했다.

    당연히 일본 정부가 미리 빼돌려 가져간 막대한 자금과 물자 역시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길고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강하진은 던전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사실 중심부에서부터 반경 3킬로미터 정도 까지는 아예 괴물이 들어오지 않았기에 별 고생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페이크 던전은 상당히 거대했다.

    그리고 규모가 큰 만큼 서식하는 괴물의 수와 종류도 굉장히 많았다.

    강하진은 당장 급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이면서도 나중에 차근차근 저 괴물들을 다 잡으면 레벨을 정말 많이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뿐이겠는가.

    일본 자체가 지금 거대한 던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던전이 터져서 튀어나온 괴물들이 나라 전체에 흩어져 있다.

    강하진은 앞으로 꾸준히 일본을 살필 계획이었다.

    앞으로도 일본에 계속 던전이 열릴 가능성이 높았다.

    마르바스가 이쪽 상황을 명확히 알 수 있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겠지만, 통신이 안 되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일본은 앞으로도 계속 던전이 터질 것이고 괴물의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터진 던전에서도 괴물이 나올 것이고, 나온 괴물들도 번식을 할 테니까.

    한국의 상황이 회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아졌기에 당분간은 큰일이 터지지 않을 것이다.

    그 얘기는 던전이 모자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때 일본에 오면 된다. 여긴 정말 괜찮은 사냥터니까.

    어쨌든 레벨은 올려야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던전의 중심부에 도착한 강하진은 일단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그곳에는 군데군데 석상이 서 있었다.

    석상이 갑자기 괴물로 변해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석상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시스템과 아예 연결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강하진은 석상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크기가 10미터쯤 되는 거대한 석상이었는데, 모습이 상당히 낯익었다.

    “카르난이네.”

    전부 카르난의 모습과 아주 흡사했다. 다만 자세가 다를 뿐이었다.

    어떤 건 검을 들고 있었고, 어떤 건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또 어떤 건 마치 마법이라도 쓰는 듯한 자세였다.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어떤 건 책을 읽고 있었고, 어떤 건 앉아 있기도 했다.

    정말 다양한 상황과 자세를 표현한 석상들이었다.

    괜히 석상을 여기에 갖다놨을 리가 없다. 분명히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강하진은 석상들을 찬찬히 다시 한 번 살피고 또 멀리 떨어져서 전체적으로 살펴보기도 했다.

    그리고 석상의 비밀 하나를 알아냈다.

    모든 석상이 자세는 다르지만 시선의 방향이 같았다.

    그러니까 모든 석상이 한 군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까지 석상에 구현해놓은 것이다.

    그 장소는 석상들이 있는 곳에서 20미터쯤 떨어진 곳이었다.

    강하진은 거기로 가봤다.

    그리고 석상의 시선이 정확히 가리키는 바닥을 팠다.

    얼마 파지 않았는데 제법 커다란 돌궤짝이 나왔다.

    그냥 궤짝이 아니었다. 전체에 복잡한 마법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당연히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었고, 강하진은 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봉인의 궤]

    [두뇌와 영혼을 묶어서 봉인할 수 있는 상자. 표면을 조절해 두뇌와 영혼의 파장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

    역시나 있었다. 아마 이 안에 카르난의 머리가 들어 있을 것이다.

    굳이 봉인까지 한 이유는 카르난이 군신관계를 끊은 것과 관계가 있을 테고.

    이 궤짝은 한 번 봉인하면 다시 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애초에 밀봉한 상태로 마법진을 새기는 방식이었다. 마법진에 의해 이음새조차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강하진은 [분쇄]를 두른 손바닥을 휘둘러 궤짝을 때렸다.

    쩡!

    놀랍게도 반탄력이 뿜어져 나와 [분쇄]의 힘을 튕겨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분쇄]가 아예 먹히지 않은 건 아니었다. 분명히 데미지가 들어갔다.

    “한두 방으로는 안 되겠네.”

    강하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분쇄]를 써서 봉인의 궤를 때렸다.

    쩡! 쩡! 쩡! 쩡! 쩡!

    [분쇄]의 힘이 반탄력을 파고들어 궤짝에 닿기 시작했다. 그러자 궤짝 표면에 금이 갔고, 자연스럽게 반탄력도 줄어들었다.

    쩡! 쩡! 쩡!

    그렇게 몇 번 더 때리자 결국 반탄력이 사라지며 궤짝이 부서지고 말았다.

    퍼석!

    봉인의 궤는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머리 하나가 나타났다.

    카르난의 머리였다.

    놀랍게도 살아 있었다. 카르난은 강하진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르난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인간?”

    카르난의 눈동자가 강하진을 위아래로 훑었다.

    “정말 인간이군.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나?”

    강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다른 계의 존재와 대화를 하면 시스템이 개입한다.

    시스템의 힘은 위대하다. 전혀 위화감 없이 카르난과 대화할 수 있었다.

    “알아들을 수 있다.”

    강하진의 말을 들은 카르난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차원을 뚫는 데 성공한 모양이군. 시스템이 통역에 개입하는 걸 보면 말이야.”

    “그걸 구분할 수 있나?”

    카르난이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

    그렇게 대답한 카르난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내 상태가 좋지 않군. 여긴 어디지?”

    그렇게 묻던 카르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거······ 내 권능이 엉뚱하게 쓰인 모양이군.”

    강하진은 말하지 않고 가만히 카르난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럴 때 굳이 말을 많이 해서 이쪽 정보를 넘길 필요가 없었다.

    “마르바스, 이 미친놈이 대체 내 몸으로 무슨 짓을 한 거야?”

    확실히 군신관계를 그냥 끊은 건 아닌 모양이다.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면.

    강하진은 슬슬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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