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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87화 (87/200)
  • < 신경 쓰이는 것 2 >

    “저도 같이 갈 거예요.”

    “저도요.”

    강하진이 남겠다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우르르 앞으로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김지혜와 이지영을 비롯한 가디언스를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이었다.

    황수영은 진심으로 여기 남겠다고 말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사실 그녀는 그럴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다 내던져버리고 강하진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자기만 바라보고 따라오는 사람들을 배신하는 꼴이 된다.

    그리고 이번 작전을 위해 같이 따라왔던 정아연은 도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가디언스의 다른 길드원들은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이해하지 못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스터께서 위험 속에 들어가시는데 우리가 그걸 구경만 하고 있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강하진을 은인으로 생각하는 이원중이 슬그머니 나서서 그렇게 말하자, 같은 시기에 길드에 들어온 정령사들이 나란히 그 옆에 섰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을 시작으로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이 하나씩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다들 같은 이유였다.

    그걸 본 강하진이 빙긋 웃었다.

    갑자기 회귀 전, 그러니까 죽기 직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을 살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혼자서 가야 한다.

    “여러분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이거 정말 민망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기분이 참 묘하네요.”

    강하진의 말에 다들 빙긋 웃었다. 아마 자신들도 같은 경험을 하면 그럴 테니까.

    그리고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만일 반대의 상황이 되면 강하진이 먼저 나서서 이렇게 해줄 거라는 믿음이 말이다.

    “하지만 그 마음만 받겠습니다.”

    “안 돼요!”

    김지혜가 외쳤다. 하지만 강하진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다들 기다리지 않습니까.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세요. 출발해야죠. 전 절대 죽지 않습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충분히 몸을 뺄 수 있는 스킬이 있으니까요.”

    그들도 강하진이 얼마나 강한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개인이 강한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강하진이 그들의 걱정을 안다는 듯이 빙긋 웃으며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저도 이게 없었으면 아마 일본에 남겠다는 생각은 안 했을 겁니다.”

    강하진이 꺼낸 건 묘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마치 줄이 없는 활 같이 생겼다. 아니, 다시 자세히 보니 활처럼 생긴 손잡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거대한 마석이 떡 박혀 있었다.

    맹세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마석이었다. 대체 저게 몇 단계일까?

    그동안 마석을 가장 많이 접했을 정아연 역시 처음 보는 크기의 마석이었다.

    “이 마석······ 대체 몇 단계죠? 아니, 어디서 구한 거예요? 이런 건 나올 수가 없는데······.”

    강하진이 빙긋 웃었다.

    “재앙 때 운 좋게 구한 겁니다.”

    혼돈의 마물을 죽이고 나온 마석이었다. 회귀 전에는 혼돈의 마물이 뱉은 마석은 9단계가 최고였다.

    한데 이 마석은 그걸 넘어섰다.

    유동훈에게 구해준 마석 측정장비로 측정해본 결과 10단계 마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아직까지 10단계를 측정할 수 있는 장비가 없어서 그저 추측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현존하는 마석 중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마석임에는 분명했다.

    그 마석을 고작 손잡이에 박아 넣은 것이다.

    “안전하게 몸을 보호하면서 바다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장비입니다.”

    “뭐라고요?”

    정아연이 경악한 눈으로 장비와 강하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소리쳤다.

    “10단계 마석을 잠수 장비에 썼다고요?”

    정아연이 기겁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10단계 마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잠수 장비에 쓴단 말인가.

    그 정도라면 아무리 대단한 장비를 만든다고 해도 6단계, 아니, 5단계 마석이면 충분했다.

    “일본에서 한국까지 헤엄쳐 가야 하는데, 그게 보통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10단계 마석이······ 이렇게 허무하게······.”

    강하진이 빙긋 웃었다.

    자신도 10단계 마석을 이렇게 쓰고 버릴 생각은 없었다.

    사실 이 장비는 마석을 갈아 끼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번에만 쓰고 이 마석은 다시 빼서 다른 데 쓰면 된다.

    일반적으로 마석은 장비에 한 번 들어가면 재활용이 극히 어렵다. 장비에 새긴 술식과 장치들이 마석을 침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석을 장비에서 제거하는 것도 쉽지 않고.

    하지만 유동훈은 그 제약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이게 바로 그 첫 번째 작품이고.

    “자, 아무튼 이렇게 안전하게 돌아갈 장비도 있으니 다들 걱정 마시고 한국에서 편안히 생활하고 계세요. 금방 돌아갈 테니까.”

    그럼에도 다들 걱정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 이것까지 보여줄 생각은 없었는데.”

    강하진은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아공간에서 또 다른 장비를 하나 꺼냈다.

    이번에는 오히려 조금 전보다 약간이나마 더 큰 크기의 마석이 박혀 있는 장비였다.

    새 기술을 개발한 유동훈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다들 커다란 마석이 박혀 있는 완갑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깨부터 팔뚝까지 모두 감쌀 수 있게 만들어진 완갑이었는데, 마석은 어깨와 팔꿈치 사이에 박혀 있었다.

    “이, 이건 대체 뭔가요? 아니, 어떻게 이런 마석이 또 있을 수 있죠?”

    정아연의 경악어린 외침에 다들 공감했다.

    대체 이 사람은 뭐란 말인가.

    “우연히 구했습니다.”

    이 마석은 스켈레톤 엠페러를 죽이고 나온 마석이었다.

    혼돈의 마물이 남긴 마석보다 오히려 좀 더 컸다. 하지만 그래도 10단계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마석이었다.

    측정은 제대로 못했지만, 강하진은 마력을 통해 확실히 비교해서 구분할 수 있었다.

    “괜찮죠? 절 위험에서 보호해줄 장비입니다. 웬만한 공격은 다 튕겨낼 수 있죠.”

    강하진이 완갑을 착용하고 마력을 흘려 넣자, 완갑 주변에 뿌연 방어막이 생겨났다.

    척 보기에도 정말 단단해 보였다.

    사실 방어 말고 공격에 대한 기능도 들어 있지만, 그건 굳이 알려주지 않았다.

    다들 할 말을 잃고 강하진을 바라봤다.

    “그래도 걱정되신다면······.”

    황수영이 나서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제 됐어요. 우리가 가면 확실히 방해된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녀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말도 안 되게 강한 사람이 저런 장비를 갖추고 있는데, 거기 끼어봐야 짐 덩이만 될 뿐이다.

    안전을 위해 따라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안전을 해치게 될 테니 그냥 쿨하게 보내주는 것이 정답이었다.

    “잘 다녀오세요. 조심하시고요.”

    정아연이 먼저 나서서 강하진에게 인사했다. 그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제가 드린 부탁 잊지 않았죠?”

    정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맡겨주세요. 저 아시잖아요.”

    강하진이 빙긋 웃었다.

    “잘 알죠. 그래서 믿고 있는 거고요.”

    두 사람 사이에 뭔가 둘만 아는 대화가 오가자, 황수영이 강하진과 정아연을 번갈아 바라봤다.

    “뭔데 그래요?”

    “별 거 아니에요. 그저 미국에서 할 일이 하나 생겨서 그런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정아연이 황수영에게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아우, 얄미워.”

    황수영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고는 강하진을 바라봤다.

    “아무튼 조심해서 다녀와요. 한국은 걱정 마시고. 제가 든든하게 지킬 테니까.”

    “믿고 다녀오죠.”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주위를 슥 둘러봤다. 그러면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과 한 번씩 눈인사를 나누고는 돌아서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촤악!

    손잡이 모양의 장비가 어떤 건지 다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정석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강하진을 부드럽게 감싸 물이 전혀 침입하지 못하게 보호해줬다.

    보아하니 숨쉬기에도 아무 문제가 없는 듯했다.

    잠깐 물보라가 일어나나 싶더니 어느새 강하진이 뭍에 오르고 있었다.

    배와 항구의 거리가 최소 1킬로미터는 넘는데도 순식간에 도착하는 걸 보고는 다들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 장비라면 일본에서 한국까지 오는 데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바다 위에서 길을 찾는 건 또 다른 문제였지만, 그것 역시 강하진이 알아서 해결했을 거라 믿었다.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길을 찾을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 * *

    항구에 도착한 강하진은 일단 잠수 장비부터 아공간에 넣었다.

    완갑은 구경시켜주는 김에 미리 착용하고 와서 번거로움을 살짝 덜었다.

    이번에 잘 사용해 보고, 개선점을 체크해 유동훈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기본적으로는 잘 작동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말이다.

    완갑도 그렇고 잠수 장비도 그랬다.

    그 뒤에 적당한 이름을 붙이고 단계가 낮춘 마석을 장착해서 판매하기로 되어 있었다.

    강하진은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가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또한,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어느새 저 멀리 괴물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완벽하게 토벌한 것이 아니라 항구만 정리하고 방어선을 친 다음 사람들의 퇴각만 도왔기 때문에 괴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강하진이 굳이 일본에 온 건, 신경 쓰이는 것이 있어서였다.

    회귀 전에는 그냥 받아들이고 넘어갔는데, 이번에 일본에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쭉 파악하다보니까 왠지 잘 짜인 각본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일본 정부 중 누군가는 어쩌면 이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정아연에게 미국의 일을 부탁한 것이다.

    일본 정부에 뭔가 의심스러운 정황이 없는지 확인해 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회귀 전과 달리 일본의 그 거대한 던전을 봤을 때, 계속 신경이 쓰였다는 것이다.

    그 던전은 분명히 페이크, 터지지 않는 던전이었다.

    회귀 전에는 그랬다. 강하진이 죽기 전까지 터지지 않고 유지되었다.

    던전 코어도 없었다.

    어찌 보면 일반 던전 중, 광산과 비슷하다.

    코어도 없는데, 각성자만 들어갈 수 있고, 터지지도 않으니까.

    강하진은 그 던전을 확인해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리해서까지 여기에 온 것이다.

    ‘마력은 충분하니까.’

    강하진은 [은폐]를 썼다.

    사실 이 스킬이 있기에 위험할 일이 없다고 자신한 것이다. 웬만한 상황이라면 괴물과 굳이 얽히지 않고 지나갈 자신이 있었다.

    강하진이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거대 던전까지의 거리였다.

    괴물 때문에 도로도 다 부서졌으니 차를 이용할 수도 없다. 그저 걷고 뛰면서 가야 한다.

    강하진은 GPS를 통해 위치를 확인했다. 연동된 스마트폰에 지도와 목표의 위치가 찍혔다.

    “후우.”

    심호흡을 한 강하진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강하진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항구를 벗어나 도심으로 향했다.

    그냥 달릴 뿐인데 자전거로 열심히 달리는 것보다 더 빨랐다.

    점점 더 속도가 붙었다. 달리는 데 마력을 조금씩 섞어 쓰기 시작한 것이다.

    강하진은 [은폐]가 깨지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며 달리는 데 마력을 흘려 넣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달려가니 괴물이 아예 없는 곳이 나왔다. 아주 긴 평지가 이어지는 곳이었다.

    강하진은 아공간에서 잠수 장비를 꺼냈다.

    이 장비에 괜히 10단계짜리 마석을 쓴 게 아니었다.

    강하진은 손잡이를 잡고 마력을 흘려 넣어 장비를 작동시켰다.

    후와앙!

    거대한 바람의 힘이 일어나더니 강하진을 살짝 띄우고 그대로 밀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강하진의 몸이 쭉 나아갔다.

    강렬한 마력이 일으키는 반응에 [은폐]가 깨졌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여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다시 괴물이 서식하는 장소를 지나게 되었다.

    하지만 강하진은 무시하고 그냥 그곳을 지나쳤다.

    괴물들이 빠르게 흘러가는 마력을 감지하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괴물들보다 강하진이 훨씬 빨랐다.

    강하진을 억지로나마 쫓을 수 있는 괴물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괴물을 떨어뜨린 다음에 강하진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저 괴물들을 전부 달고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빠른 괴물은 보통 힘이 약하기 마련이다.

    강하진은 완갑에 마력을 보냈다.

    우우웅!

    완갑이 진동하며 새하얀 마력을 토해냈다.

    10단계의 마석이 뿜어낸 마력이 고스란히 완갑을 타고 흘러가며 차근차근 증폭되었다.

    강하진이 달려오는 괴물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콰우우우우우!

    새하얀 빛이 쭉 뻗어나갔다. 그 빛에는 소름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마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이내 괴물에 닿은 마력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투화학!

    달려오던 괴물들이 모조리 잘려 나갔다. 괴물 한 마리가 수백 조각으로 잘리는 광경은 괴기스럽기 그지없었다.

    부서진 괴물의 잔해를 힐끗 쳐다본 강하진이 다시 출발했다.

    이대로라면 생각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부드러운 마력에 휩싸인 강하진의 몸이 허공에 살짝 떠서 쭉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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