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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80화 (80/200)
  • < 일본에서 벌어진 일 1 >

    일본에서 던전 공습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한국의 던전 공습이 끝나고 한창 각성자들이 뭉쳐서 술독에 빠져 있을 때, 강하진은 오랜만에 느긋하고 여유로운 휴식 중이었다.

    강하진은 침대에 가까운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누워서 이번에 얻은 아이템을 확인 중이었다.

    [마르바스의 약속]

    [마르바스가 구름독수리 왕을 위해 준비한 약속의 증표. 마르바스의 권능, ‘번식’이 담겨있다.]

    강하진은 반지의 정보를 확인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회귀 전에는 안 그러더니 이번에는 마르바스가 왜 이렇게 많이 개입하는지 모르겠다.

    강하진은 일단 정보에 나온 ‘번식’이라는 권능을 확인해봤다. 봉인 된 게 아니라 명확히 이름이 명시되어서 그런지 확인이 가능했다.

    [번식]

    [마물이 번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권능. 완벽한 권능을 얻으면 마물에서 새로운 종의 마족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런 것까지 걸고 구름독수리의 왕을 불러낸 거였어?”

    아마 완벽한 권능을 전해주면 마르바스는 그 권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정말 큰 보상이고 약속이었을 것이다.

    강하진은 이 약속의 증표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어쨌든 이건 굉장히 귀한 아이템이었다. 마르바스의 권능 일부가 깃들어 있기도 하고.

    ‘마르바스의 권능이라······.’

    이 반지에서는 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신비로운 힘이 깃들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실체가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강하진은 문득 이걸 이용하면, 자신이 회귀 후부터 관심을 가지는 마력보다 격이 높은 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난 김에 바로 해봤다.

    모든 감각을 집중해 반지를 살펴봤다.

    당연히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계속 지날수록 조금씩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시작은 반지에 새겨진 문양 중 하나였다.

    거기서 뭔가 마력과는 전혀 다른 힘이 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동안 때 아닌 감각 수련을 했다.

    집중하고 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뭔가 가로막고 있던 얇은 막 같은 것 하나가 퐁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온몸이 갑자기 상쾌해졌다.

    그리고 집중이 깨졌다.

    강하진은 방금 얻은 무언가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천천히 눈을 뜬 강하진은 다시 한 번 반지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봤다.

    아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특별한 힘이 느껴졌다.

    아마 그게 마르바스의 권능이리라.

    “앞으로도 제법 도움이 되겠어.”

    이 반지는 수련 목적으로 쓰기로 결정하고 다시 아공간에 넣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권능은 그동안 강하진이 알아내려고 애쓰던 그 힘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강하진의 예상으로 그것은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힘이었다.

    그걸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시스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고, 그걸 더 잘 이용할 수 있게 되리라.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이렇게 회귀하게 된 이유나 지구에 던전이 열리는 이유도 알게 될지 모르고.

    ‘그나저나······ 마르바스의 창에 걸린 봉인을 풀어야 하나?’

    봉인을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 각성자의 피를 먹이기만 하면 되니까.

    각성자의 피는 헌혈을 통해 구하고 말이다.

    사실 시간만 꾸준히 투자하면 가디언스와 던전 브레이커만으로도 충분히 봉인을 푸는 데 필요한 피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과연 이 창의 봉인을 풀어도 되느냐였다.

    제무르를 심문해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 창은 마르바스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만든 아이템이었다.

    이 안에 담긴 권능도 결국은 그와 관계되어 있을 테고.

    그런데 무작정 봉인을 풀면 강하진이 나서서 마르바스를 도와주는 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 전에 충분히 생각해서 결정해야 한다.

    강하진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일단 지금은 쉬기로 했으니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강하진은 소파에 누워 TV를 켰다.

    마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일본에 일어난 던전 공습에 대한 뉴스였다.

    “난리 났군.”

    강하진은 이미 저렇게 될 걸 알고 있었기에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일본에 떨어진 던전의 수는 무려 150개가 넘었다.

    한국에 떨어진 던전의 수가 고작 25개였던 것에 비하면 무려 6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였다.

    산술적으로 한국이 동원한 각성자의 6배가 필요하다는 건데, 일본에 그 정도 각성자가 있을 리 없었다.

    한국도 국내 거주하는 대부분의 각성자가 나서서 간신히 막아냈는데 말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그 와중에 몇 개의 던전이 터졌다. 그러니 일본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막막하겠는가.

    아마 저게 다 터지면 일본은 그냥 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걸 다 막아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일본은 지금 전 세계를 향해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다들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제영 그룹이 일본에 투자했다고 했지?”

    강하진이 그걸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아마 제영 그룹도 그렇고 이번에 거기 대대적으로 투자한 DM도 그렇고 큰 타격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투자한 게 있으니 쉽게 버리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이 택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일본으로 각성자들을 불러들이려 하겠지.’

    그들이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일본 정부가 알아서 그렇게 할 테니 살짝만 도와줘도 충분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막대한 보상을 내걸고 세계의 각성자를 모집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각성자 관리청에서도 일본에 도움을 주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한국은 던전 공습이 끝났으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해서 많은 각성자들이 고민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나라의 각성자들이 얼마나 모이느냐가 중요했다.

    수가 너무 적으면 아예 안 가는 게 나으니까.

    “일단 지금 쉬고 있을 때가 아니긴 하네.”

    강하진은 TV를 끄고 밖으로 나갔다.

    이럴 때 가장 먼저 움직일 사람부터 말려야 한다.

    * * *

    “예? 가지 말라고요? 왜요?”

    황수영이 뚱한 표정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위험합니다.”

    강하진의 간단한 대답에 황수영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원래 위험한 거거든요?”

    “황수영 씨는 이번 일, 막아낼 거라고 생각합니까?”

    “어떻게든 막아내야죠. 설마 가디언스는 안 가나요?”

    “안 갑니다.”

    “실망인데요? 다른 데는 몰라도 가디언스는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면 다시 못 돌아올 겁니다. 그래도 갈 겁니까?”

    황수영이 피식 웃었다.

    “다시 못 오긴 왜 못 와요? 막아내면 되지.”

    “일본 정부에서 못 나가게 할 테니까요.”

    이러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억측이 너무 심한데요?”

    절대 억측이 아니다. 회귀 전에 일어났던 일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니까.

    일본은 결국 던전 공습을 막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적절한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다른 나라의 각성자를 이용해서 일본 정부를 지켜낸 것이다.

    일본 정부는 타국의 각성자들이 돌아가는 걸 막았다.

    그들이 돌아가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반발이 심했지만, 그들도 그냥 나가 죽을 수는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괴물과 싸웠다.

    하지만 그건 한계가 있었다.

    각성자가 더 추가되지 않는 상황에서 던전이 더 열렸고, 그것들이 터지면서 방어선이 무너진 것이다.

    일본 정부의 선택은 아주 간단했다.

    자국의 각성자와 타국의 각성자를 버림패로 이용해 일본에서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그 와중에 버림패로 선택할 각성자를 분류하는 치밀함까지 보여줬다.

    일본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국가나 소속의 각성자들은 따로 빼돌려 함께 일본에서 나갔으니까.

    그게 회귀 전,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강하진은 차분히 회귀 전에 일어난 일을 마치 예측한 것처럼 설명했다.

    황수영은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도 굳이 가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장담하죠. 가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겁니다.”

    강하진이 워낙 단호히 말했는지라 황수영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 지금까지 강하진이 마치 예언자처럼 예측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더 고민스러웠다.

    솔직히 긴가민가한데, 강하진의 설명을 들으면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은 기분이 계속 들었다.

    “아우, 모르겠다!”

    황수영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강하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위험한 후회보다는 안전한 후회가 나을 겁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도와주시죠.”

    “또 뭘요.”

    “중소 길드 연합에 당부해 주세요. 가지 말라고.”

    황수영이 입을 떡 벌렸다.

    “제가 그것도 해야 돼요? 그 사람들이 제 말을 들을 리가 없잖아요!”

    “들을 겁니다. 그들에게 황수영 씨와 던전 브레이커는 자신들이 꿈꾸는 미래니까요.”

    “우와, 닭살! 어떻게 표정 하나 안 바뀌고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황수영이 팔뚝을 마구 비비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하진은 그런 황수영의 반응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너무 대놓고 움직이면 안 됩니다. 갈 사람은 가게 둬야 하니까요.”

    “예? 갈 사람이요?”

    “제영 그룹이 아마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본전 생각이 절실할 테니까요.”

    “아하, 알겠어요.”

    황수영은 알았다고 대답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럴 때 보면 강하진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고.

    * * *

    강하진은 황수영을 말린 다음 정아연에게 연락해 A-마켓도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 철수하는 것도 생각해 보라고 했다.

    당연히 정아연은 그 말에 당황했다.

    현재 일본은 A-마켓과 DM이 굉장히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DM이 좀 더 우세했다.

    DM은 작정하고 밀어붙였다. 일본을 시작으로 전 세계 던전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야심을 슬쩍 드러낸 것이다.

    이 상황에서 A-마켓이 발을 빼면 말 그대로 손해만 잔뜩 보고 빠져나오는 셈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런 걸 보고하기도 곤란했다.

    강하진은 굳이 애써서 설득하지 않았다. 그저 말해주고 그렇게 할지 말지는 오직 A-마켓의 선택에 맡겼다.

    사실 정아연에게 말을 하면서도 그녀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봤다.

    한데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정아연이 강하진의 말을 너무나 순순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녀의 고민은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 하느냐였지, 받아들이느냐 마느냐가 아니었다.

    그냥 무시하기엔 그동안 강하진이 보여준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아마 정아연이 어떤 식으로 보고를 해도 A-마켓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힘을 뺄 가능성은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DM이 기회를 잡으면 파죽지세로 몰아칠 텐데, 그렇게 하면 DM의 피해가 훨씬 커질 테니까.

    회귀 전에는 아예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하다 보니 이렇게 일본까지 이용하게 되어 버렸다.

    아무튼 그렇게 정아연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한 다음, 강하진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최대길이었다.

    강하진은 이번 기회에 암시장도 한 번 꺾어놓기로 했다.

    그래야 향후 암시장을 장악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

    * * *

    최대길은 호기심과 두려움, 그리고 기대감과 분노가 뒤섞인 기묘한 눈빛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우연히요.”

    강하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최대길에게 더 큰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다.

    마치 널 찾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것 같았고.

    최대길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가만히 보며 강하진이 선수를 쳤다.

    “보내주신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그 선물이 그림자, 최영진이라는 걸 알지만 최대길은 모른 척했다.

    “선물? 전 그런 걸 보낸 적이 없습니다만······ 혹시 받고 싶은 선물이 있으신 거라면 미리 말씀을 해주시지요. 최대한 구해볼 테니.”

    강하진이 피식 웃었다.

    “보답하는 차원에서 나도 선물을 하나 준비했는데. 받아 보시겠습니까?”

    최대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강하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선물을 준비했다는 게 협박이 되는 줄은 몰랐군요.”

    최대길은 그제야 아차 했다. 사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초보적인 실수였다.

    한데 강하진 때문에 너무 당황하고 압박이 느껴져서 저질러 버렸다.

    이래서야 자신이 그림자를 보냈다고 시인하는 꼴 아닌가.

    강하진은 빙긋 웃으며 품에서 구슬 하나를 꺼냈다.

    “혹시 감정사 구하실 수 있습니까? 확인해 보시면 아주 흥미 있을 만한 물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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