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타입 던전 공략 >
강하진은 3일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명인수의 스킬을 봐줬다.
명인수의 스킬은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위험하다.
그리고 더 성능이 좋은 마력 포션이 필요했다.
아니, 성능 문제가 아니라 쓰임새가 다른 포션이 있어야 한다.
명인수의 스킬은 다른 스킬과 다르게 소모 마력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니 비상 상황에서 마력을 보충해줄 수 있는 포션이 필요했다.
지금 당장은 포션을 먼저 마시고 스킬을 쓴 다음 포션 하나를 더 마시는 식으로 때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상황에 따라 정보를 뽑아내고 거기에 소모되는 마력의 양을 정확히 기록했다.
3일 동안 스킬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나중에는 명인수가 포션 때문에 배가 불러서 더 스킬을 못 쓰겠다고 우는 소리를 할 정도였다.
물론 그렇게 되면 화장실로 보내서 뱃속에 든 걸 모조리 빼내고 다시 시작했다.
명인수는 강하진이 무언가에 꽂혀서 집중하기 시작하면 얼마나 지독해지는지 이번에 아주 뼈에 사무칠 정도로 깨달았다.
아무튼 그 덕분에 제법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명인수에게는 스킬을 쓸 때 이렇게 미리 정해진 스킬이 아니면 절대 쓰지 못하도록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한 다음 명인수를 명인혁에게 보냈다.
이제부터 가디언스의 정보력은 그 어떤 조직보다 위에 있을 것이다.
명인수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강하진이 굳이 명인수 옆에 붙어서 스킬 쓰는 걸 같이 확인하고 기록하고 도와준 이유는 그것이 강하진에게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명인수의 스킬은 좀 더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쓰는 스킬이었다.
다른 스킬은 처음부터 시스템이 딱 정해서 몸에 심어주는 식인데, 이 [정보갈취]는 달랐다.
마치 강하진의 엿보기 스킬과 비슷했다.
그래서 명인수가 스킬을 쓸 때마다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가진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말이다.
명인수의 스킬도 마력보다 더 고차원적인 힘을 쓰는 것이 확실했다.
좀 더 그 힘에 익숙해졌다. 아니, 가까워졌다. 분명히.
이번에 강하진이 얻은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범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걸 확인했다.
명인수가 알아낸 정보는 대부분 각성자나 던전과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일반인의 이름이나 직업, 그리고 위치. 그가 가진 재산이나 인간관계 등등.
그 모든 정보를 얻어내는 데 시스템의 힘이 작용했다.
즉, 시스템의 힘은 비단 각성자뿐 아니라 이 세상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강하진이 가진 엿보기 스킬이 더 성장하면 각성자뿐 아니라 일반인의 정보도 확인이 가능해질지 모른다.
고작 3일뿐인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하진과 명인수, 그리고 가디언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시간이었다.
* * *
“그놈은 좀 어때?”
최대길은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피곤한 얼굴로 부하에게 물었다.
최대길의 곁에 올 수 있다는 건 그가 신뢰한다는 뜻이었고, 그건 암시장의 주요인사라는 의미였다.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사전 조사 중이라는데 일단 최대한 협조하는 중입니다.”
“잘 도와줘. 보니까 능력은 제법 있는 놈이야. 지창기가 애지중지한 이유가 있었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괜찮으십니까? 잠은 제대로 주무시는 게 좋습니다.”
최대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이라는 게 말이야, 자고 싶다고 바로 잘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번에 처음으로 깨달았어. 제길.”
최근 최대길은 상당히 불안정했다. 몸만 그런 게 아니라 정신도 많이 무너져 있었다.
사실 그동안은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최선호, 최선우와 싸울 때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세상 모든 일이 자신의 계산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설사 좀 벗어난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조치할 수 있다고 여겼고.
한데 이번에 그 믿음이 깨지는 일이 벌어졌다.
절대 털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던 은신처 하나가 탈탈 털렸기 때문이다.
종로 쪽에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곳이었는데, 워낙 자신 있어서 거기에 가장 중요한 보물까지 보관했다.
한데 거길 털렸다.
암호를 모르면 엘리베이터도 올라가지 않고, 비상계단도 없는 곳인데, 거길 들어왔다.
엘리베이터의 천장을 뚫고 기어 올라와서 말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감춰둔 장소를 귀신 같이 찾아내서 마지막 장소까지 도착했다.
만일 거기에 있던 것이 마력 금고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그 보물을 털렸을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최대길은 온몸이 덜덜 떨렸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자신이 지금 있는 이 장소도 누군가에게 털린 건 아닐까?
금고를 여는 순간 자신을 습격해 보물을 가져가려는 건 아닐까?
그런 불안에 잠겨 있으니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모든 걸 한 방에 해결하는 방법은 자신이 각성자가 되는 것뿐이었다.
각성을 하고 레벨을 30에 맞춘 다음, 보물을 착용하면 모든 게 끝난다.
힘을 얻고 젊음을 되찾고, 모든 병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최고의 성장 잠재력까지 얻게 된다.
그래서 예전 강하진이 말했던 아이템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했다.
몇 번이나 무리수를 뒀고, 그리고 몇 번이나 실패를 겪어야 했다.
심지어 사기도 당했다.
물론 사기 친 놈은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리고 슬슬 강하진에 대한 의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혹시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 아니면 그 아이템을 갖고 있으면서 자신을 떠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럴 때, 그놈을 찾아냈다. 예전 지창기가 밑에 두고 개처럼 부리던 그림자를.
그놈은 자신의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그림자라고 부르라고 할 뿐.
그놈이 아주 어릴 때부터 지창기가 거둬서 키웠다.
중간에 각성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창기가 아주 가까이 두고 부리는 호위나 적을 찌를 칼이 되었을 것이다.
한데 각성을 해버리는 바람에 쓰임새가 달라졌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스킬이 너무 훌륭했으니까.
그놈의 삶은 지창기의 소유나 다름없었다. 지창기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했고, 어떤 생각을 하든, 또 어떤 행동을 하든 그 중심에는 지창기가 있었다.
한데 그 지창기가 죽어버렸다.
그림자의 선택은 아주 단순했다. 지창기를 죽인 놈을 찾아 죽이기로 한 것이다.
지창기는 조직 간의 전쟁에서 죽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그 죽음 자체가 석연치 않았다.
지창기는 상당한 실력의 각성자였다. 그냥 다른 어중이떠중이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레벨도 제법 높았고.
한데 그런 조직 간의 항쟁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리가 없다고 여겼다.
어쩌면 그저 그림자가 지창기를 너무 크게 보고 있어서 내린 판단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진심으로 그렇게 여겼고, 싸움 현장을 샅샅이 조사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누군가 그 전쟁에 개입한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흔적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사실 그 난장판에서 그런 흔적을 찾아낸 것이 대단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창기에 대한 그림자의 집착과 집념이 만들어낸 성과이리라.
그런 그림자를 최대길이 찾아내 데려왔다.
지창기의 복수를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최대길은 그림자를 강하진에게 보냈다. 굉장히 유력한 놈인데 증거가 없으니 찾아보라고. 겸사겸사 강하진이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템까지 가져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림자는 지금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강하진에게 접근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강하진에게 암시장 지분을 나눠주기로 하신 건 어떻게 처리할까요?”
“일단 시간을 더 끌어야지. 우리도 언제까지 어둠에 묻혀서 살아갈 수는 없잖아. 슬슬 위로 올라가야지.”
“그럼 암시장을 버리시는 겁니까?”
“버리긴 왜 버려? 이원화 하겠다는 거지.”
“그럼······ 암시장의 규모를 좀 줄이시려는 거군요.”
“둘 다 하려면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강하진 그놈한테 나눠줘도 좀 덜 아깝지.”
“솔직히 전 아예 안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럴 수야 없지. 가디언스, 생각보다 대단한 길드야. 괜히 척 져서 좋을 거 없어. 관계는 부드럽게 유지해야지.”
“그럼 그렇게 알고 미리 준비 해두겠습니다.”
“그래. 그림자 놈이 하는 일 하나하나 세심히 파악해서 보고하고.”
“예. 염려 마십시오. 지금도 그놈 옆에 셋이나 붙여뒀습니다.”
사내가 물러가자, 최대길의 표정이 다시 불안해졌다.
잠을 자려고 애썼지만, 결국 자지 못했다.
* * *
각성자 관리청장이 경질되고, 그의 정치 생명도 같이 끝나 버린 후, 남은 세 개의 뉴타입 던전의 공략 준비가 급물살을 타고 이뤄졌다.
관리청은 길드의 규모나 소속 각성자의 수준까지 모두 고려해서 세 던전에 골고루 분배했다.
그리고 같은 날 세 던전을 동시에 공략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번 공략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아니, 관심을 집중 시키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다 썼다.
이번 공략 자체를 대대적인 이벤트로 만들어서 그동안 바닥까지 떨어진 관리청의 신뢰를 되찾고자 한 것이다.
관리청에서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던전 공략일이 되었다.
* * *
“그래도 우리, 같은 조에 배정되어서 다행이에요.”
이지영의 말에 황수영이 피식 웃었다.
“그게 그냥 된 걸까?”
이지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언니가 손 써주신 거예요?”
황수영이 저 쪽에서 길드원들과 열심히 대화중인 윤경민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윤경민 이사님이요?”
“아주 탐나는 인재야. 솔직히 가디언스만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든 빼냈을 텐데.”
“우리도 절대 안 빼앗길 거거든요?”
“나한테 관심 좀 있는 거 같던데? 원래 미인계가 제일 강력하다는 거 알지?”
“저도 미인계 쓸 줄 알거든요?”
이지영의 반응에 황수영이 큭큭 웃고는 저 멀리 던전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슬슬 들어갈 모양이네. 농담 따먹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준비해야지.”
“네.”
다들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아직 던전의 끝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광활한 던전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많은 인원이 들어간다고 해도 반드시 던전을 닫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럴 때 정말 큰 힘이 될 텐데, 왜 안 온 거지?”
“누구요? 우리 마스터요?”
“그럼 누구겠어?”
그때 김지혜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같이 오시지는 않았지만 힌트는 좀 주셨어요.”
“힌트?”
황수영의 눈에서 일순 날카로운 광채가 일어났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강하진이 준 힌트가 평범할 리 없었다.
“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는 말해줄 거지?”
“그럼요. 안에 들어가면 알려드릴게요. 길드는 달라도 하나잖아요, 우리는.”
“그 말을 강하진 씨가 해줬으면 정말 감동했을 텐데.”
“우리 마스터가 해주신 말씀인데요?”
“뭐? 정말?”
“제가 왜 그런 걸로 농담을 하겠어요. 사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마스터의 허락이 없었으면 그런 중요한 힌트를 말씀드리기 어렵죠.”
“그건 그렇지.”
황수영은 이미 힌트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어딘가 들뜬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지혜는 저렇게 나사 하나 빠진 상태로 던전에 들어가도 괜찮을지 고민했지만, 그런 걱정은 잠시 후 말끔히 날아갔다.
황수영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기세를 뿌리며 던전으로 들어갔으니까.
그렇게 뉴타입 던전 공략이 시작되었다.
* * *
강하진이 이번 뉴타입 던전 공략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별다른 이슈 없이 던전을 닫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최근 가디언스와 던전 브레이커는 물론이고 다른 길드나 각성자들도 급격히 성장 중이었다.
그래서 강하진은 뉴타입 던전 공략에 참여하는 대신, 다른 위협을 제거하기로 했다.
사실 이번에 공략하는 뉴타입 던전들은 닫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아마 아무리 빨리 공략하더라도 최소 보름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보급 문제로 시간이 늘어지면 시간이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어쩌면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이번 던전 공략은 각성자 관리청이 그야 말로 작정하고 벌이는 이벤트였다.
그래서 비단 뉴타입 던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재앙을 전후해서 각성자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그러니 세 개의 뉴타입 던전이 그 모든 각성자를 소화할 수는 없었다.
남은 각성자의 수가 그보다 훨씬 많았다.
그 남은 각성자들은 지금 전국으로 흩어져 남아있는 일반 던전 공략에 투입되었다.
그것 역시 다양한 홍보를 통해 알려지고 있었다.
그래서 강하진이 노리는 건 전혀 다른 던전이었다.
조만간 위협이 될 만한 던전 말이다.
아직은 없지만 곧 뉴타입 던전 하나가 더 나타날 것이다.
시기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리 멀지 않았다.
‘회귀 전이랑 상황이 너무 달라져서 시기 파악이 너무 어려워.’
그래도 위치는 알고 있으니 수시로 확인하면 되리라.
강하진은 길드 본부를 나섰다.
한데,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몸에 살짝 닿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닿은 건 없지만, 느낌이 그랬다.
강하진은 표정 관리를 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