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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62화 (62/200)
  • < 가디언스의 신입 길드원 1 >

    면접은 빠르게 진행 되었다.

    주로 윤경민과 정아연이 질문을 했고, 가끔 황수영이 날카롭게 짚고 넘어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강하진은 시종일관 가만히 앉아서 앞에 앉은 각성자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사실 윤경민은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한, 굉장히 복잡한 심경이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면접을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황수영과 정아연을 부르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자기 혼자 저 많은 사람을 면접하고 거기서 옥석을 골라내는 건 죽었다 깨도 불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정아연과 황수영의 도움 덕분에 걸러낼 사람과 뽑을 사람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쭉 면접이 진행되었고, 이내 잠시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면접 대기자들은 길드에서 제공하는 장소로 가서 차와 간식을 먹고 마시면서 천천히 긴장을 푸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30분 정도 쉬기로 했고, 면접자들이 근처에서 다 사라지자마자 황수영이 강하진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한 마디도 안 하실 수가 있어요?”

    그 말에 정아연과 윤경민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진을 바라봤다.

    세 사람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강하진을 바라보자, 그 눈빛 자체가 압박이 되었다.

    하지만 강하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세 분이 아주 잘 하시는데 제가 거기에 굳이 숟가락 얹어서 뭐 합니까. 그냥 이대로 하면 되겠던데요?”

    “예에?”

    다들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우와! 대박 뻔뻔해!”

    황수영이 황당한 눈으로 그렇게 말하자, 강하진은 빙긋 웃었다.

    정아연은 그런 강하진을 가만히 지켜보며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아는 강하진은 절대 이렇게 시간 낭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잘 하는 사람에게 깔끔하게 맡겨 버리는 사람이었다.

    운경민이 그 적절한 예다.

    정아연이 보기에 윤경민은 길드의 운영 책임자 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권한을 갖고 있었다.

    아마 강하진이 없어도 가디언스가 돌아가지만, 운경민이 없다면 가디언스는 절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저런 식으로 한 사람에게 힘과 권한을 몰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한 사람이 그걸 다 감당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가 딴 맘을 먹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견뎌낼 자신도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런 강하진이 과연 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려고 나왔을까?

    결코 그럴 리 없다.

    정아연은 좀 더 깊어진 눈으로 강하진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번엔 또 뭘 보여주시려고 이러시는지 기대되네요.”

    정아연의 말에 황수영이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이내 흠칫 놀랐다.

    “지금 나만 나쁜 년 만드시는 거예요?”

    황수영이 도움을 요청하는 표정으로 윤경민을 바라봤다. 하지만 윤경민은 이미 태세를 전환한 지 오래였다.

    “전 언제나 마스터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황수영은 입만 뻐끔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자, 여기서 이러지들 마시고 가서 커피라도 한 잔씩 마시고 오죠.”

    강하진이 나서서 분위기를 정리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면접이 시작되었다.

    한동안 처음과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강하진은 입을 꾹 다문 채 면접자들을 가만히 쳐다보는 일만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강하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앞에 앉은 이원중이라는 사람은 서류가 형편없었다.

    지금 면접관들이 확인하는 서류는 각성자 관리청에서 뽑아온 서류였다.

    원래는 안 되지만 다른 루트를 통해서 각성자가 확인할 수 없는 관리청에서만 보관하는 서류까지 뽑아왔다.

    잠재력도 낮고 등급도 낮은 각성자였다.

    기본적으로 각성자 관리청에서 특수한 장비를 통해 매기는 등급은 제법 정확하다.

    각성자 등급은 얼마나 빨리 레벨을 올릴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리고 잠재력 등급은 한계 레벨과 관련이 있었다.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한계 레벨은 1000으로 다 똑같았다.

    하지만 잠재력이 낮은 사람은 레벨이 올라갈수록 레벨업 속도가 더뎌진다.

    결국 한계에 도달하지 않아도 레벨업 속도가 너무 느려서 한계나 다름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회귀 전의 강하진도 거기에 걸려서 능력이나 스킬에 비해 비교적 레벨이 낮았던 것이고.

    어쨌든 눈에 확 띄는 스킬이 없는 한, 잠재력과 각성자 등급이 둘 다 낮으면 길드에서 뽑아 쓰기가 어렵다.

    이런 사람이 버려진 각성자가 되는 것이다.

    강하진을 제외한 나머지 면접관들도 다들 그렇게 판단했다.

    의례적인 질문 몇 가지를 한 다음 대충 끝내고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리고 막 그러려는 순간 강하진이 나섰다.

    “이원중 씨라고 했죠?”

    “네? 네. 맞습니다.”

    사실 이원중은 면접관의 분위기만 보고도 자신이 여기서 떨어질지 아닐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보통은 자신의 스펙으로 면접까지 오기도 어려웠다.

    이제 슬슬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이번에 떨어지면 다른 진로를 모색하거나, 아니면 좀 많이 위험하지만,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로 활동할 생각이었다.

    이원중은 긴장한 표정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어쩌면 왜 너 따위가 입사원서를 넣어서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느냐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비아냥을 들어본 경험도 있고.

    그래서 무슨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말자고 멘탈을 다잡고 있었다.

    한데 전혀 엉뚱한 질문이 나왔다.

    “요즘 명치가 뻐근하거나 하지 않습니까?”

    “예? 며, 명치요?”

    이원중은 또 당황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싶다가 퍼뜩 떠오르는 게 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긴 합니다만, 그거야 사람마다 다······.”

    “갑자기 누가 뒷골을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고요?”

    “예? 뒷골이 땡기거나 아프지는 않습니다만······.”

    지금 병원에 온 걸로 착각해도 되는 건지 역으로 묻고 싶었지만, 자신은 을이고 저쪽이 갑이니 참고 넘어갔다.

    강하진의 뜬금없고 엉뚱한 질문에 황수영과 정아연, 윤경민도 아연한 표정이었다.

    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다.

    하지만 강하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아프다는 게 아니라 느낌말입니다. 느낌. 그냥 그런 느낌 들 때 없어요?”

    “예? 느낌이요?”

    이원중은 그때부터 좀 진지해졌다. 남들한테 말하면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은 얘기 아닌가.

    누가 나 때린 것 같아. 근데 아프지는 않고 느낌만 있네?

    “있나보네요.”

    이원중이 대답하지 못하자 강하진이 그렇게 말하고는 씨익 웃었다.

    “이원중 씨, 혹시 물 좋아하십니까?”

    “예? 술이요?”

    “아니, 물이요.”

    면접에서 술 좋아하냐고 묻는 사람은 많이 겪어봤다. 하지만 물 좋아하냐는 말은 처음이었다.

    근데 문제는······.

    “네. 좋아합니다.”

    진짜 물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집에 가면 항상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그 안에서 몇 시간이고 잠겨 있으니까.

    “합격입니다.”

    “예?”

    저 예라는 말은 한 사람이 한 게 아니었다. 네 사람이 동시에 한 말이었다.

    “저기, 마스터, 저 좀 잠시만······.”

    결국 윤경민이 나섰다.

    회의실에 딸려 있는 작은 방으로 강하진을 데려간 윤경민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로 이원중 씨를 뽑으실 겁니까?”

    “네.”

    “아까 그 질문들 때문에요?”

    “아뇨.”

    “예?”

    윤경민은 거기서 당황했다. 그럼 아까 그 말도 안 되는 질문은 다 뭐란 말인가.

    하지만 강하진은 진심이었다. 아까 그 질문은 그냥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한 거였고, 이원중을 뽑은 진짜 이유는 그가 [당당하게 엿보기]로 확인한 시스템의 정보 때문이었으니까.

    이원중에게는 이런 칭호가 있었다.

    [정령의 사랑을 받는 자]

    [정령이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물의 정령, 레타우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물의 정령이 계약을 기다리고 있다.]

    당연히 저런 건 각성자 관리청에서 알아낼 수 없다.

    거기서 측정한 등급도 다 잘못된 거고. 진짜 등급은 물의 정령과 계약한 순간부터 전혀 달라지니까.

    [레타우]

    [물의 정령. 이원중에게 이름을 받았다.]

    원래 정령에는 이름이 없다. 한데 레타우라는 물의 정령은 이원중에게 이름을 받아 그에게 귀속되었다. 계약을 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계약만 시켜주면 된다.

    윤경민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왜 뽑으신 겁니까?”

    “내가 왜 면접에 참여하는지 궁금했죠?”

    “네.”

    “이러려고 그런 겁니다. 서류에 기록할 수 없는 걸 확인하려고요.”

    윤경민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냥 앉아만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왠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과연 강하진이 그냥 뽑은 사람이 어떤 대단한 걸 보여줄지 말이다.

    “그럼 이원중 씨는 따로 분류해 놓겠습니다.”

    “그러세요. 이제야 면접이 좀 재미있어지네요.”

    강하진은 신 나서 다시 면접장으로 돌아갔다.

    윤경민은 그런 강하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피식 웃었다.

    “하긴, 저러니까 오히려 어울리네.”

    * * *

    면접이 끝날 때까지 강하진이 즉석에서 뽑은 사람은 총 세 명이었다.

    나머지는 평범하게 면접관들이 점수를 매겨서 뽑았다.

    강하진은 면접이 끝나자마자 따로 분류한 세 사람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황수영과 정아연도 강하진을 따라갔다. 대체 왜 그들을 뽑았는지 너무나 궁금했으니까.

    그들은 강하진의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셋 다 초조한 얼굴이었는데, 합격이라는 말을 듣고 여기까지 오면서도 아직 그걸 믿지 않았다.

    세 사람 다 그동안 겪은 일이 제법 많았다.

    각성을 했는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건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차라리 각성을 하지 않았다면 더 행복하게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니 지금까지 다 장난이었다고 돌아가라고 해도 그럴 수 있었다.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상처를 받긴 하겠지만.

    그렇게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화들짝 놀라 바라보니 아까 면접을 보던 면접관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있었다.

    다들 황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부터 했다.

    “자자, 다들 편안히 앉아요. 아, 우리 계약서는 썼던가요?”

    “아, 아뇨.”

    “윤 이사님, 계약서 갖고 계시죠?”

    “네. 여기 있습니다.”

    세 사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럼······ 이제 우리 정말로 가디언스의 길드원이 된 겁니까?”

    “네. 나중에 무르시면 곤란합니다. 위약금을 굉장히 많이 책정했으니까요.”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세 사람 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걱정이 들었다.

    대체 자신들처럼 쓸모없는 각성자를 데리고 뭘 하려는 걸까? 설마 실험체로 쓰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자, 일단 이원중 씨부터 시작하죠. 이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예? 저, 저요?”

    이원중이 쭈뼛거리며 강하진에게 다가갔다.

    지금이 아니라면 주을 수 없는 금덩이 같은 사람이다.

    보통 정령사는 그냥 각성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계약이 된다. 하지만 모든 정령사가 그러는 건 아니었다.

    이원중이 아주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자리에 있는 나머지 두 사람도 그렇듯이.

    이유는 정령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좁은 마력 통로로 정령의 힘이 지나갈 수 없어서 계약이 막힌 것이다.

    명치가 뻐근한 건 정령의 힘 때문이고, 뒷머리를 때리는 느낌이 드는 건 답답해진 정령이 진짜로 뒷머리를 때렸기 때문이다.

    이런 정령사가 계약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꾸준한 수련을 통해 마력 통로를 넓히는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자연스럽게 정령과 계약이 이뤄진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금 강하진이 하려는 것이다.

    “자, 시작합니다. 그냥 편안히 몸을 맡기시면 됩니다.”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고 이원중의 명치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리고 속성부여를 통해 조심스럽게 이원중의 명치에 물 속성 통로를 개설했다.

    차선을 임시로 하나 더 늘린 셈이었다.

    이원중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어, 어어?”

    계약이 이뤄지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정령에 대해 알게 된다.

    이원중은 정령사가 되었다.

    강하진은 계약이 이뤄지자마자 손을 떼고 말했다.

    “아직 무리하면 안 됩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거 잊지 마시고 정령과 교감하면서 자주 소통하세요.”

    그렇게 하면 정령의 힘 때문에 마력통로가 자연스럽게 커진다.

    이 방법의 장점은 수련 자체가 정령과의 소통이기 때문에 완성되었을 때, 정령의 힘을 훨씬 더 잘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령의 모습이 보이도록 하는 것이 아마 괜찮은 수련법이 될 겁니다.”

    강하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원중의 어깨에 물로 이루어진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뺨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는 물 고양이의 모습을 다들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남은 두 합격자의 눈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그 두 사람은 간절한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자신들도 저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너무 뛰어서 꼭 갈비뼈를 부수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날 가디언스는 물, 바람, 땅의 정령사를 얻었다.

    당장 전력에 포함시킬 수는 없지만, 미래에는 그 어떤 정령사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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