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60화 (60/200)
  • < 새로운 던전 2 >

    경기도 평택과 오산의 중간쯤에 새로운 형태의 던전이 하나 있었다.

    한국에서 일곱 번째로 나타난 던전이었는데, 그 던전은 모두 열 곳의 길드가 모여서 관리하고 있었다.

    원래는 맡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찌어찌 운이 닿아서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열 군데의 길드 안에는 태성, 블루드래곤, 명성, 클라우드, 치료사 길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김지혜와 악연이 있는 길드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호시탐탐 김지혜를 비롯해 가디언스에 들어간 다른 여자 각성자들을 노리고 있었다.

    물론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일단 재앙 때의 활약으로 다들 어느 정도 유명해졌고, 뒤에 던전 브레이커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일을 벌이기가 껄끄러워졌다.

    아무튼 이들은 성향이 비슷한 길드 다섯 군데를 더 모아서 뉴타입 던전을 할당받고자 갖은 로비를 했다.

    사실 각성자 관리청 직원들에게 뇌물을 소나기처럼 살포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번을 계기로 나중에라도 하나 얻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진행했다.

    한데 놀랍게도 덜컥 던전을 할당받은 것이다.

    뇌물을 잔뜩 받은 직원 하나가 열 개의 길드가 동시에 관리하기로 한 것이 큰 점수를 받았다고 귀띔해줬다.

    “그야 말로 신의 한 수였어.”

    태성 길드의 마스터인 허태성이 캔맥주 하나를 꿀꺽꿀꺽 비우고는 말했다.

    그들은 지금 뉴타입 던전 근처에서 간단한 회식을 하는 중이었다.

    좀 과할 정도로 많은 각성자가 던전 근처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뉴타입 던전을 할당받으면서 여기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열 개 길드가 모두 지기로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길드의 전력 대부분을 이쪽에 투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던전은 그 정도 투자를 할 가치가 분명히 있었다.

    물론 정상적으로는 이익을 얻기 힘들다. 마석이나 괴물의 부산물을 각성자 관리청이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해 판매해야만 한다.

    각성자 관리청에서 가격을 후려치는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까.

    아무튼 뉴타입 던전을 할당받은 이후부터 열 개 길드의 수익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이대로 몇 달만 더 던전을 유지할 수 있어도 그동안 로비로 들어간 돈의 수백 배가 넘게 벌어들일 것이다.

    물론 최대한 뽑아먹고 또 뽑아먹을 것이다. 그러려고 이렇게 과한 인원을 투입한 것 아니겠는가.

    허태성은 기분 좋게 맥주캔 하나를 더 비웠다.

    “야, 가서 안주 좀 더 가져와라.”

    근처에 있던 직원 몇 명이 바쁘게 움직여 부지런히 안주를 날랐다.

    좀 떨어진 곳에서 요리사 모자를 쓴 사람 몇 명이 고기도 굽고 요리도 하고 있었다.

    애초에 길드원 대부분을 이리로 데리고 올 때부터 이 근처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제법 준비를 했다.

    일단 제대로 본전을 뽑을 때까지는 강행군을 할 예정이었기에 각성자는 아니지만 길드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잔뜩 데려왔다.

    물론 그 직원들은 던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내지만.

    지금도 술판이 벌어진 장소는 던전에서 많이 떨어진 장소였다.

    “지금 들어간 애들 언제 나오지?”

    허태성의 물음에 옆에서 같이 술을 마시고 있던 부길드장이 시계를 확인했다.

    “네 시간 남았네요. 우리가 다음다음 차례니까 한두 시간 정도 마시고 정리하는 게 낫겠습니다. 안 그래도 예전보다 전투가 빡센데 술 취한 채로 들어갈 수는 없죠. 안 그렇습니까?”

    “맞아. 두 시간만 더 마시고 정리하자.”

    허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도 던전에 한 번 들어갈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해질 때가 몇 번이나 있었다.

    그만큼 안에 있는 괴물들과의 싸움이 위험했다.

    이 던전은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예전에는 보통 던전 하나에 한 종류의 괴물이 나왔고, 많이 나와도 세 종류를 넘지 않았다. 물론 보스는 예외로 두고.

    한데 이 던전은 일단 지금까지 발견한 괴물의 종류만 해도 열 종류가 넘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종도 있을 테니 정말 많다.

    게다가 괴물 중에는 서로 연계를 해서 공격하는 놈들도 있었다.

    그런 놈들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빡센지 한 번 싸우고 나면 식은땀으로 푹 젖곤 했다.

    “이럴 때 예전 그년들이 아쉽단 말이야.”

    “누구 말입니까? 아, 김지혜요?”

    “그래. 김지혜 말고도 몇 명 더 있었잖아.”

    “이제 다들 유명해져서 데려오고 싶어도 못 데려오는 거 아닙니까.”

    “아니지. 언젠가는 데려와야지. 이럴 때 써먹으면 좋잖아. 잘 때도 데리고 자고 사냥도 같이 하고.”

    “그럼 저도 좋죠. 그때 놓친 애들 다 미인이었잖습니까. 안 그래도 아쉬워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우리 길드뿐 아니라 다른 길드에서 놓친 애들도 다 모여 있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어디랬지? 가디언스?”

    “네. 가디언스 길드요. 뒤에 A-마켓이 있고, 던전 브레이커랑 손잡은 가디언스요.”

    “그렇게 열심히 설명 안 해도 다 알아 이 새끼야.”

    “혹시나 사고 치실까봐 그러죠. 사고 치시더라도 아직은 아닙니다. 알고 계시죠?”

    “알아, 알아. 그러니까 이렇게 빡세게 사냥하는 거 아냐. 이 던전 마무리하고 다음 던전 하나만 더 할당 받으면 슬슬 준비할 수 있지 않겠어?”

    “다음, 다음이요. 다음은 안 됩니다. 그 다음이어야지.”

    “하, 이 새끼 빡빡하게 구네. 알았어, 인마.”

    두 사람이 그렇게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꾸우우우웅!

    멀리서 들려온 폭음이었는데, 갑자기 거센 바람이 주변을 확 휩쓸고 지나갔다.

    콰우우우우! 허태성과 부길드장은 날아가려는 몸을 제어하려고 바닥에 손을 콱 박아 넣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둘 같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집기가 날아다녔고, 각성자건 일반인이건 가리지 않고 바람에 휩쓸려 나뒹굴었다.

    간이 숙소로 준비한 막사와 컨테이너도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찌그러지고 부서졌다.

    “뭐,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허태성이 경악한 목소리로 외치며 바람이 날아온 방향, 그러니까 폭음이 들려온 곳이자 던전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

    “야, 야. 카, 칼 들어! 칼 들라고!”

    허태성은 그렇게 외치며 자신의 무기를 찾았다. 다행히 술을 마시는 와중에도 장비는 걸치고 있었다.

    간신히 몸을 가누고 정신을 차린 각성자들은 허태성이 바라본 곳에 시선을 한 번 주고는 화들짝 놀라 다급히 장비를 갖췄다.

    던전이 있던 곳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다들 암담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괴물이 그들을 그대로 덮쳤다.

    * * *

    난리가 났다.

    뉴타입 던전이 터진 것이다.

    그 어떤 전조도 없이 터져 버렸기에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두 개밖에 안 터졌다는 건데, 그럼에도 피해가 막심했다.

    여론도 같이 터져 버렸다.

    불과 얼마 전에 던전으로 인해 그렇게 심각한 사태를 겪고도 또 던전에서 이익을 뽑아내겠다고 그걸 유지하다가 터트렸으니 얼마나 말이 많겠는가.

    대기업과 거대 길드 위주로 던전을 할당한 것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던전을 할당하지 않고 각성자라면 누구나 던전에 자유롭게 들어가 사냥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여론이 불같이 일어났다.

    더 이상 던전을 그냥 남겨두는 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행위라는 주장을 담은 글이 곳곳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던전 브레이커의 인기가 또 한 번 급상승했다.

    오산과 평택 사이에 있던 뉴타입 던전의 폭발로 인해 쏟아져 나온 괴물들을 던전 브레이커가 완벽하게 막아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는 던전 브레이커와 가디언스의 합작이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알려졌다.

    황수영은 이건 절대 말이 안 된다고 자신이 진실을 알리겠다고 했지만 강하진이 말렸다.

    아직 가디언스는 외부에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조금 더 나중에, 힘과 세력을 더 키운 다음 천천히 드러낼 예정이었다.

    지금 이 사실은 그때 알려도 늦지 않다. 아니, 오히려 묵혀두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어쨌든 오산-평택 뉴타입 던전의 폭발로 인한 피해는 그곳을 담당하던 열 개 길드의 각성자들에게 집중되었다.

    심지어 그 길드에서 데려온 일반인 직원들조차 아무도 죽지 않았다.

    던전 브레이커 길드가 얼마나 세심하고 완벽한 일처리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에 관한 무수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황수영은 그 기사를 하나하나 찾아 읽으면서 앞에 앉은 강하진을 힐끔힐끔 훔쳐봤다.

    “그냥 대놓고 보시죠. 왜 사람을 몰래 봅니까?”

    “누가 몰래 봤다고 그래요? 안 봤거든요? 저 지금 기사 읽는 거 안 보이세요?”

    “보입니다. 저 눈 좋습니다. 눈동자 움직이는 것도 다 보일 정도니까요.”

    “아이씨, 진짜.”

    황수영은 기사를 띄운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툭 내려놨다. 그리고 방금 전의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싹 지운 깊어진 눈빛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설마 여기까지 예상하고 벌이신 일이에요?”

    “뭘 말입니까?”

    황수영이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 사람들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러고 있네요. 애초에 그 열 개 길드에 던전을 할당하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렇죠?”

    강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그 일의 대가로 A-마켓에 레모노의 송곳니 500개를 이미 전달했다.

    “중소 길드를 뒤에서 들쑤시고 움직인 흑막이 여기 있는 것도 모르고. 그렇죠?”

    이번에 터진 던전은 두 개인데, 둘 다 담당하던 길드나 대기업 말고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사후 대처가 너무 훌륭했기 때문인데, 한쪽을 던전 브레이커가 막았다면 다른 한 쪽은 중소 길드 연합이 맡았다.

    정말 많은 중소 길드에서 각성자를 무더기로 보내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 괴물을 물샐 틈 없이 틀어막았다.

    그 정도로 했으니 여론을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여론을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데. 그렇죠?”

    강하진이 황수영을 보며 빙긋 웃었다.

    “억측은 여기까지만 하시죠.”

    “지금 눈동자 흔들리는 거 봤어요.”

    “안 흔들렸습니다. 억측의 연속이로군요. 아무튼 이걸로 정말 괜찮겠습니까?”

    강하진의 물음에 황수영이 부드럽게 눈웃음을 쳤다.

    “그럼요. 이렇게 여유로운 밥 한 끼와 차 한 잔. 이보다 더 훌륭한 대가가 어디 있겠어요?”

    던전 브레이커가 처음부터 강하진의 말대로 미리 던전 근처에 가서 대기했던 건 아니었다.

    사실 미리 던전이 터질 거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누구라도 그런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길드의 전력을 움직여야 하는데, 정작 언제까지 대기해야 하는지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황수영은 강하진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는 걸 대가로 제시했다. 당연히 강하진도 무리한 부탁만 아니면 들어주겠다고 했고.

    그리고 일이 모두 끝난 후, 황수영이 요구한 대가가 바로 이 자리였다.

    밥 한 끼와 차 한 잔.

    밥은 조금 전에 제법 분위기 좋은 곳에서 먹었고, 지금은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강하진은 황수영을 가만히 쳐다봤다.

    왜 윤경민이 회귀 전에 황수영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조금씩 이해가 갔다.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다. 매력적이기도 했고.

    물론 그렇다고 황수영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생각은 없었다.

    아직 자신에게는 할 일이 많이 남았으니까.

    “왜요? 제 눈동자가 또 움직였어요?”

    황수영이 웃으면서 말하자, 강하진이 피식 웃었다.

    “이제야 좀 사람 같네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짓자, 황수영이 말을 이었다.

    “그동안 강하진 씨를 보고 있으면 여유가 요만큼도 없더라고요. 항상 미래를 대비하고 예측하고 움직이고. 사람은 기계가 아니에요.”

    강하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황수영을 쳐다봤다.

    “설마 이 자리를 만든 게 저를 위해서였습니까?”

    황수영이 크게 웃었다.

    “아하하하. 무슨 그런 말이 다 있어요. 당연히 내가 좋아서 원한 자리지.”

    황수영이 굉장히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유혹이 담긴 시선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자, 이제 나랑 좀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요?”

    강하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