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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59화 (59/200)
  • < 새로운 던전 1 >

    강하진은 최대길의 금고에 모양이 똑같은 다른 팔찌를 넣어두고 원래 있던 팔찌는 아공간에 넣고 빠져나왔다.

    그나마 팔찌가 흔한 스타일이라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유동훈에게 가서 똑같은 모양의 팔찌를 만들어달라고 한 다음 다시 방문해야 했을 테니까.

    모양은 똑같지만 능력치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강하진이 대신 넣은 팔찌에는 정말 아무 능력이 없었으니까.

    마력이 살짝 깃들어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 특성도 능력도 없는 팔찌였다.

    그래서 던전에서 사냥을 하다보면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아이템이기도 했고.

    물론 그걸 얻는다고 기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끔 패션 악세사리로 착용하기도 하는데, 각성자보다는 오히려 일반인들이 더 많이 쓰는 아이템이었다.

    생각해보니 자주 아이템으로 발견되는 팔찌와 모양이 똑같은 것도 일부러 그렇게 한 듯했다. 그래야 튀지 않을 테니까.

    아무튼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엿보기 스킬이 없는 이상, 모양만 똑같으면 내용물이 바뀌었는지 아닌지 당장은 알 수 없을 테니까.

    설마 마력금고가 털렸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 침입했다는 걸 확인한 즉시 특별한 조치를 취하긴 하겠지만.

    강하진은 침입의 역순으로 빠져나가면서 오늘 확인한 복종의 팔찌에 대해 생각했다.

    마르바스의 명령이 입력되어 있다고 해서 그게 뭔지 확인했더니 힘을 키우면서 영향력 있는 인재가 되라는 명령이었다.

    그나마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대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또한 아무리 흔한 아이템이라도 대충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최대길이 갖고 있던 건 복종의 팔찌지만, 복종의 반지나 목걸이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허리띠나 옷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 방심은 금물이다.

    마력이 느껴지면 그게 뭐든 다 확인해야만 한다. 반사적으로 말이다.

    어쩌면 이미 마르바스의 하수인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모든 하수인이 최대길과 같은 명령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혼란을 야기하는 놈도 있을 것이고, 또 던전을 방치하도록 유도하는 놈도 있을 수 있다.

    생각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러웠다.

    ‘일단······ 이걸 추적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지.’

    진흙벌레의 더듬이로 만든 위치추적기처럼 이걸 추적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면 대처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길드본부에 도착했다.

    일단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니, 명인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응? 무슨 일이야?”

    명인혁은 일단 벌떡 일어나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부터 했다.

    “오셨습니까.”

    이제 좀 편하게 대해도 될 법한데, 명인혁은 언제나 강하진을 어려워했다.

    “보고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보고? 뭔데?”

    “제영 그룹 관련된 사항입니다.”

    “제영?”

    “예. 제영, 화신 애들이 암흑가에서 손을 뗐습니다.”

    “아예?”

    “예.”

    신라랑 ATG는 애초에 암흑가 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 DM과 대놓고 연계한 한국 기업과 길드들이 암흑가에서 손을 뗀 셈이었다.

    “암흑가가 많이 무너지긴 했지만 쓸모가 많을 텐데?”

    “그래서 제가 좀 더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원하실 때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조치해 뒀습니다.”

    가디언스 아래에 뒀다는 뜻이 아니라 조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뒀다는 말이었다.

    아마 그들은 명인혁에게 조종되더라도 다들 자신의 의지로 움직였다고 믿을 것이다.

    “아무튼 그놈들이 이렇게 갑자기 손을 떼는 것이 좀 꺼림칙해서 자세히 조사를 해봤습니다.”

    강하진은 흥미로운 눈으로 명인혁을 쳐다봤다.

    정보를 담당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렇게나 실력을 발휘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확실히 대단한 재능이었다.

    “일본 쪽으로 자금과 사람을 이동 중인 정황을 다수 포착했습니다.”

    “일본?”

    “DM이 한국에서 손을 떼려는 징조로 판단했는데, 그 부분은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조사하기가 애매해서 더 진전이 없습니다.”

    명인혁은 아직 확실치 않다고 했지만 저 정도로 얘기를 꺼냈으면 가능성이 높았다.

    만일 정말로 저들의 시선이 일본으로 향했다면, 신경 쓸 일이 하나 줄어든 셈이다.

    “자세한 자료는 여기 정리해 뒀습니다.”

    명인혁은 두툼한 서류뭉치를 공손히 내밀었다.

    강하진이 그걸 받아 책상 위에 놓자, 명인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좀 묘한 던전이 나타난 모양입니다.”

    “묘한 던전?”

    강하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걸 몇 번이나 절감했는데 또 놓치고 있었다.

    역시 회귀 전의 기억이 점점 또렷해지는 건 약간 문제가 있었다. 계속 그쪽에 기준을 두게 되니 말이다.

    “포탈의 모양이 다르다고 합니다. 아직 통제가 너무 심해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포탈의 모양이 기존의 타원형이 아니라 커다란 구체라고 합니다.” “구? 그러니까 모양이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라는 뜻이네?”

    “맞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강하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드디어 진짜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나온 던전은 말 그대로 튜토리얼에 가깝다. 몇몇 던전은 튜토리얼이라기엔 너무 난이도가 높긴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런 던전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아예 안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빈도가 훨씬 낮다.

    나타나는 던전 대부분이 강력한 괴물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던전이 나타난다. 방금 명인혁이 말한 것 같은 구형의 던전 말이다.

    포탈의 모양이 구형이기 때문에 터질 때의 임팩트도 확실하다.

    일단 폭발을 통해 근처를 초토화시킨 후에 괴물들이 나타나니까.

    아마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또 안이하게 처리할 공산이 컸다.

    제대로 된 재앙도 겪지 않았으니 더더욱 그러리라.

    회귀 전에는 재앙 때문에 던전만 봐도 다들 경기를 일으키고 서둘러 처리했다.

    하지만 지금은 재앙을 너무 쉽게 처리했다.

    그 여파를 최소화 하는 것이 중요했다.

    ‘가이아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나올지도 확인해야겠어.’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다.

    가이아의 선택을 받은 자들도 살펴봐야 하고, 복종의 팔찌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던전도 꾸준히 사냥해야 하고 말이다.

    레벨을 더 올려야 한다.

    회귀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레벨이긴 하다. 벌써 300을 넘겼으니까.

    하지만 아직 모자랐다.

    “요즘 각성자들 분위기는 어때?”

    “별로 안 좋습니다. 오히려 예전이 더 나았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많이 늘었습니다.”

    거대 길드와 대기업의 횡포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각성자들 중에 레벨업 한계가 너무 낮아서 제대로 던전을 도는 게 불가능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에 강하진이 눈을 빛내자 명인혁이 얼른 덧붙였다.

    “윤경민 이사님이 그런 각성자들을 많이 확보해 두셨습니다.”

    강하진이 만족스럽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업 못하는 반쪽짜리 각성자들은 쓸 데가 많다. 미리미리 확보해 둬야 한다.

    어쨌든 던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큰 장점이니까.

    ‘슬슬 마석 광산을 가동시킬 수 있겠군.’

    이제 아공간을 만들어 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처음에는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아공간을 이용해 밀수도 시도할 것이고, 도둑질에도 이용하고 시체 유기에도 써먹고, 각종 범죄에 이용하려는 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아공간 제작 회사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난을 고스란히 뒤집어 쓸 것이고.

    하지만 차차 나아진다. 결국 방법이야 나오기 마련이니까.

    강하진은 아공간 제작 기술과 함께 아공간 내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장비도 함께 제작할 계획이었다.

    회귀 전에도 쓰던 장비였다.

    아공간으로 인해 벌어진 혼란을 단숨에 정리해버린 장비이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장비를 강하진이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강하진은 그때도 호구였다.

    공익에 쓰기 위해 만들었기에 제작법을 정부에 제공한 것이다.

    당시 돈이야 썩어 넘칠 만큼 많고, 그걸 쓸 시간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욕심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진짜 등신 같은 호구였어.’

    생각을 정리한 강하진은 명인혁을 보며 말했다.

    “새 던전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거야. 그거 좀 찾아봐. 다른 놈들이 찾아서 장악하고 있으면 위치랑 크기 확인해두고.”

    “크기 말입니까?”

    강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크기. 앞으로 던전은 크기가 중요해질 거야. 위험할수록 크기가 클 테니까. 혹시 이번 던전은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

    “지름 2미터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2미터면 작은 편이다. 그 정도 던전은 별로 어렵지 않다. 다만 방치하면 답이 없다.

    새로운 던전은 기존 던전보다 훨씬 빨리 터지니까.

    ‘마지막 던전이 어느 정도였더라? 3킬로미터였나?’

    정확하진 않지만 3킬로미터를 약간 넘었을 것이다. 그 던전을 클리어 하면서 정말 많은 각성자가 죽어 나갔으니까.

    ‘생각해보니 그때 죽은 사람들······ 그 새끼들이 선별해서 넣은 건지도 모르겠네.’

    아니, 확실할 것이다.

    함께 들어간 모든 사람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수십 명 단위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천 명 가까이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당장 기억나는 사람만 떠올려도 다들 강하진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자들이었다.

    강하진 한 명을 위해 마련한 함정이 아니라 분리수거를 위해 마련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더 지시하실 사항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던 강하진이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응? 어. 그래. 가 봐. 내가 말한 거 꼭 좀 알아보고.”

    “예. 염려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들고 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아, 혹시 여론을 형성해야 할 일이 있으시면 미리 말씀해 주십시오.”

    “여론? 예전 재앙 일어나기 전에 A-마켓에서 한 것 말이야?”

    “예. 저도 그때 한 발 걸쳤었는데, 이제 그때보다 훨씬 잘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실 때 말씀해 주십시오.” 강하진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든든하네.”

    정말로 든든했다.

    명인혁은 뿌듯한 표정으로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물러갔다.

    * * *

    “새로운 타입의 던전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각성자 관리청장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물었다.

    “기존 던전보다 훨씬 강력한 괴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럼 기존보다 더 많은 각성자가 팀을 이뤄서 사냥을 해야겠군요.”

    “예. 현재 일곱 개의 뉴타입 던전이 발견되었고, 대기업과 거대 길드 쪽에 할당해 줬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냥을 진행 중인데, 큰 무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그리고 뉴타입 던전에서 구한 마석의 질이 굉장하다고 합니다.”

    “그래요? 좋은 소식이네요.”

    최근 마석 시세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각성자가 많이 늘어났고, 사냥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마석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나왔다.

    한데 마석을 이용한 에너지 개발에 성공하면서 그쪽으로 어마어마한 마석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중에야 가격이 안정되겠지만 지금은 꾸준히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질 좋은 마석을 구할 수 있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그나저나 설마 그놈들 뉴타입 던전도 예전처럼 유지 하네 어쩌네 하는 건 아니겠지요?”

    관리청장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굉장히 난감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걸 본 관리청장이 버럭 소리쳤다.

    “지금 정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일 터진 지 얼마나 됐다고! 우리 아직도 임시청사에 있는데, 그걸 벌써 잊었습니까!”

    관리청장의 호통에 차장이 얼른 수습했다.

    “절대 일 터지지 않게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습니다. 이번에 사고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자신들이 다 지겠다고 확실히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 서면으로 남겼습니까?”

    “받아내겠습니다.”

    관리청장이 식은땀을 흘리는 자들을 하나하나 노려봤다. 마치 눈에서 레이저라도 뿜어져 나가는 듯했다.

    “담당한 사람이 책임지고 서면으로 확답 받아요. 그거 못했는데 사고 터지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서 각자 책임지게 만들 테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받아먹은 돈이 워낙 많아서 과연 서면 약속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무조건 해야지.

    회의가 끝나자마자, 참석했던 사람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잘리느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래의 생존이 달린 문제였기에 발바닥에 불이 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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