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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52화 (52/200)
  • < 암시장의 주인 2 >

    현재 한국 암시장은 세 명이 지배하는 체제였다.

    하지만 암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건 최대길이었다. 그가 암시장의 50%는 장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나머지는 최선호와 최선우가 나눠 가진 셈이었는데, 그 둘의 지분은 똑같았다.

    사실상 한국 암시장을 여기까지 이끌어 발전시킨 사람은 최대길이었다.

    최선호와 최선우가 아무 역할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두 사람이 없었어도 어차피 한국 암시장은 여기까지 성장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 암시장에 DM 같은 외국의 힘이 침투하지 못한 것 역시 최대길의 힘이었다.

    또한 한국 암흑가에서 암시장을 넘보지 못하게 된 것도 모두 최대길이 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최대길은 최선호와 최선우에게 충분한 힘을 실어주었고,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돌아온 결과를 보면 진짜 헛웃음이 나오죠.”

    최선호와 최선우가 손을 잡고 최대길을 몰아내기로 한 것이다.

    그걸 위해 외부의 힘까지 빌렸고 말이다.

    강하진은 의아했다. 왜 이런 얘기까지 자신에게 공개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표정 보니까 제 말을 반만 믿는 모양이군요.”

    비슷하다. 사실 반 보다는 더 많이 믿고 있지만, 어쨌든 전부 믿는 건 아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하는 말을 어떻게 다 믿는단 말인가.

    “뭐, 그럴 거라 예상하고 한 말이니까 괜찮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반만 믿으세요.”

    최선호가 DM에 암시장을 갖다 바친다는 건 알고 있다. 회귀 전에는 그랬다.

    이번에도 아마 그럴 것이다. 시기도 좀 빨라졌고.

    “그놈들은 암시장의 절반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순간적인 동원력은 그 이상일 겁니다. 그놈들도 투자를 받았을 테니까요.”

    최대길은 심각한 표정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서늘했다.

    “암시장을 이용해 봤으니 그게 얼마나 큰 위협인지 아시겠지요?”

    강하진도 그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최대길의 손은 잡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덥석 잡을 수는 없었다.

    “그들이 과연 A-마켓을 먼저 칠까요?”

    강하진의 질문에 최대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거 아닙니까. 내가 당하면 다음은 그쪽 차례가 될 테니까요.”

    “최대길 씨가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준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어둠의 세계에 믿을 만한 조력자를 하나 두시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 않습니까?”

    “믿을 만한 조력자라면 그렇지요.”

    당장 암흑가에서 벌어지는 일만 해도 암시장의 힘을 빌리면 훨씬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게 선결 조건이로군요.”

    최대길은 이미 그 부분까지 생각하고 찾아왔는지 여전히 여유로웠다.

    “일단 믿어보시죠. 함께 일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저에 대해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제 목줄을 쥘 방법도 찾아낼지 모르고요.”

    거기까지 말한 최대길이 품에서 USB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놓고 강하진을 향해 슥 밀었다.

    “솔직히 던전 정보 같은 걸 드리고 싶었는데, 요즘에는 암시장 쪽으로 떨어지는 할당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하다니까요?”

    대기업과 거대 길드가 가져가는 할당량이 상당히 많다는 뜻이었다.

    좋은 현상은 아니었다.

    “일단 돈을 좀 준비했습니다. 안에 계좌정보 몇 개 들어있으니까 나중에 확인해 보시죠.”

    최대길은 품에서 서류를 꺼냈다. 계약서였다.

    “일단 말은 안 믿으실 테니, 계약서라도 작성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강하진은 계약서를 살펴봤다.

    갑은 강하진이었고, 을은 최대길이었는데, 암시장의 주인이라는 점까지 명시되어 있었다.

    “이거 오히려 내 족쇄 채우는 거 아닙니까? 공개되면 나만 곤란할 거 같은데?”

    “어이구, 철저하기도 하셔라. 일단 내용을 확인하고 다시 얘기합시다.”

    강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용을 확인했다. 별 거 없었다. 향후 암시장과 최대길은 강하진과 가디언스 길드의 요청 사항을 모든 노력을 다해 들어줘야 한다는 계약서였다.

    계약서 내용은 일방적이었다. 암시장이라는 문구만 없으면 강하진과 가디언스에게만 유리한 계약이었다.

    물론 이 계약서를 믿을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였지만.

    “허어, 보아하니 아직도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이군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대한 뒤통수 맞을 일을 피하고 싶을 뿐이죠. 솔직히 암시장 권력다툼에 날 이용하는 거나 다름없잖습니까?”

    최대길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본질은 그거죠. 권력다툼.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권력다툼의 결과에 따라 이쪽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하진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최대길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나중에 따라붙을 보상도 고려를 해야 하고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보상?”

    “암시장의 권력.”

    의외의 대답이었기에 강하진은 입을 다물고 최대길을 쳐다봤다.

    “탐나는 보상 아닙니까?”

    최대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 *

    최대길이 돌아간 다음, 강하진은 명인혁과 윤경민을 불렀다.

    그리고 정아연을 호출했다.

    명인혁과 윤경민이 먼저 강하진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마 정아연은 올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고 무작정 불렀으니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 해도 바로 몸을 빼기 힘들 것이다.

    거리도 좀 있고.

    일단 정아연이 오기 전에 두 사람과 먼저 상의를 했다. 어쨌든 정아연은 A-마켓 소속이고, 이 두 사람은 가디언스, 즉 강하진의 사람이었으니까.

    모든 설명을 들은 두 사람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제가 암시장 쪽에 더 신경을 써보겠습니다.”

    명인혁의 말에 강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암시장 쪽은 A-마켓이랑 내가 해결한다. 너는 하던 일에 집중해. 그쪽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

    명인혁은 자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 하던 일도 암시장 일과 연장선상에 있긴 하다. 최대길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가 변수이긴 하지만.

    “이거······ 상황이 너무 팍팍 변하니까 따라가기가 버겁네요. 일단 길드 규모를 키우는 일은 좀 느슨하게 하고 정보 쪽 지원을 늘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사업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음, 그거 말인데요. 꼭 A-마켓을 이용할 이유가 있습니까?”

    강하진이 말하는 새 사업은 유동훈이 제작하는 장비를 판매하는 사업이었다.

    유동훈은 정말 그쪽으로는 독보적인 능력을 가진 제작자였다.

    벌써 일정 수준의 장비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느 정도 완성했다.

    유통망만 있으면 언제든 만들어 팔 수 있었다. 재료도 잔뜩 모아 놨으니까.

    문제는 유통망 구성이 쉽지 않다는 건데, 윤경민은 이번 기회를 이용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장 A-마켓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쪽에서 강화석 연구를 진행 중이니까. 나중에 제대로 된 강화석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손을 잡아야 합니다.”

    “A-마켓을 버리자는 얘기가 아니라 이용하자는 얘깁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암시장 쪽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A-마켓과 암시장을 동시에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음지와 양지를 아우르는 제법 괜찮은 유통망을 구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당장 A-마켓을 버리는 건 윤경민도 반대였다.

    지금 A-마켓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DM이라는 놈들은 너무 수상했다.

    그리고 강하진의 태도를 봤을 때, 필시 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무너뜨릴 때까지는 A-마켓을 이용해야 한다.

    A-마켓이 좋은 파트너가 되면 끝까지 함께 가도 상관없고 말이다.

    “그럼 일단 방향을 그쪽으로 잡고 진행해 보죠. 장비부터 시작하고, 시간을 많이 두고 진행하겠지만, 나중에 아공간도 판매할 테니 미리 준비해 두세요.”

    윤경민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맡겨만 주십시오. 아주 멋지게 해내겠습니다.”

    윤경민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히죽히죽 웃었다.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대충 논의가 마무리될 무렵 정아연이 들어왔다.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죠?”

    정아연은 들어오자마자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황수영이 없다는 걸 확인한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강하진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이해해 주세요. 저, 정말로 급한 일들 전부 미루고 왔으니까요.”

    강하진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그러길 잘했다고 여길 겁니다.”

    “정말요? 그럼 진짜로 그런지 봐야겠네요.”

    “DM과 관계된 일입니다.”

    그 말에 정아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DM과 A-마켓은 이제 유통 전쟁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어느 하나 소홀히 넘길 수 없었다.

    “DM이 한국 암시장을 움직였습니다.”

    정아연이 깜짝 놀랐다.

    “설마 암시장을 이용해서 우릴 치겠다는 건가요?”

    그녀의 머릿속으로 암시장을 이용해 벌일 수 있는 일들이 툭툭 떠올랐다.

    당장 암시장의 지저분한 각성자들을 이용해 A-마켓을 직접 공격해 물건을 털어가는 생각부터 떠올랐다.

    A-마켓의 방비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지만, DM이 그 뒤에 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한국 암시장이 그렇게 가벼운 존재였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네요.”

    “암시장에 내분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암시장 전체가 DM이랑 손잡은 건 아니고, 대충 반쯤?”

    “반이라도 위험한 건 변함없어요. 특히 한국 암시장은.”

    정아연은 문득 의아한 표정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신 거죠? 가디언스의 정보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암시장 내부의 일을 알아내는 건 정말 쉽지 않을 텐데요.”

    “암시장에서 직접 알려준 겁니다.”

    “예에?”

    정아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이내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농담은 아닌 것 같고······ 강하진 씨가 엉뚱한 사람한테 속았을 리도 없고······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암시장의 주인이 직접 날 찾아와서 도와달라더군요.”

    “대체 왜요?”

    짧은 질문이었지만 굉장히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강하진은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아니, 해줄 수 없었다. 솔직히 자신도 최대길이 왜 찾아온 건지 명확히 알지 못했으니까.

    “일단 우리는 암시장을 이용하는 쪽으로 움직이죠. 사실 벌써 그쪽의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도움을 받았다고요?”

    “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니라 A-마켓 쪽이지만요.”

    “우리 쪽이요? 그게 무슨······ 설마!”

    “그 설마가 아마 맞을 겁니다. A-마켓에서 DM쪽에 붙은 자들의 명단을 입수했어요.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 명단은 최대길이 넘겨준 USB안에 들어 있었다. 일종의 깜짝 선물이었다.

    “그게 가능하다고요? 암시장이 그 정도로 대단할 줄은 미처 몰랐네요.”

    “운이 좋았다고 말을 하더군요. 하지만 그게 꼭 운만으로 될 일은 아니니 알아서 판단하시죠.”

    아마 암시장은 특성상 정보에 굉장히 민감할 것이다.

    합법적인 사업이 아닌 만큼 정부나 다른 거대 조직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필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일단······ 내부 단속을 좀 해야겠네요. 이게 전부가 아니라니 몽땅 뿌리 뽑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적을 움츠리게 하는 효과는 있겠죠.”

    “아마 더 꽁꽁 숨을 겁니다.” “그게 당장은 더 나을 수도 있어요.”

    강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단기적으로는 그게 나을 수도 있다.

    이번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시간이 문제겠군요.”

    정아연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대한 서둘러야 해요.”

    “그럼 당장 계획부터 짭시다. A-마켓 쪽은 정아연 씨가 알아서 정리하세요.”

    “그러죠.”

    정아연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일을 가디언스에게 몽땅 맡길 수는 없었다.

    A-마켓에서 상당한 인력을 지원해야 하는데, 일단 믿을 만한 사람으로 지원단을 구성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인력 지원은 많이 할 필요 없습니다.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만 골라서 구성하세요. 그들은 우리와 따로 움직이게 될 테니까.”

    정아연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녀는 속으로 배신자들을 몽땅 찾아내 반드시 응징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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