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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51화 (51/200)
  • < 암시장의 주인 1 >

    “이거 참, 저희 입장을 너무 곤란하게 만드시는군요.”

    “에이, 입장 곤란할 게 뭐 있어요? 관리청은 솔직히 우리가 나서서 던전 빨리빨리 정리하면 좋잖아요. 안 그래요?”

    관리청 직원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다른 길드가 형평성을 따지고 들면 저희도 진짜 난감해집니다.”

    황수정이 피식 웃었다.

    “형평성 따지고 싶으면 지들도 빨리 닫고 다음 던전 받으라고 해요.”

    “아니, 그들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때 옆에서 계속 지켜보기만 하던 윤경민이 나섰다.

    “형평성은 오히려 저희가 따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만······.”

    관리청 직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황수영은 워낙 유명인이니 자신이 어쩌지 못하지만, 그 위세를 믿고 어중이떠중이까지 나서니 짜증이 확 치밀었다.

    “가디언스 길드에서 나오셨다고 했죠?”

    “네. 저희도 던전 할당 받으러 왔습니다.”

    “없으니까 오늘은 그냥 가세요.”

    “있는 거 다 조사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던전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합니까? 오늘 던전 브레이커에 던전 할당하고 나면 남는 던전 없으니까 돌아가세요.”

    “다른 길드에서 받아만 두고 방치하는 던전이 굉장히 많은 걸로 아는데, 그거 빨리 처리 안 하실 겁니까?”

    “그걸 무슨 수로 내가 빼옵니까!”

    그 짓을 하고 있는 놈들은 대기업이랑 거대 길드였다. 관리청 직원은 그들과 척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럼 그걸 방치해서 벌어질 일은 모두 관리청에서 책임지는 겁니까?”

    “뭐?”

    관리청 직원이 발끈했다. 하지만 윤경민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하니까 녹화 진행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웃기지 마! 누가 그따위 거를 동의해!”

    “그럼 가디언스에서 공문을 보내고, 그걸 언론에 공개하겠습니다. 그건 괜찮겠죠?”

    “뭐? 당신 지금 우리 각성자 관리청이랑 해보자는 겁니까?”

    윤경민은 여전히 냉정하고 담담했다.

    “해보자는 게 아니라,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관리청에서는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증거를 남겨드리고 싶어서요.”

    여기까지 말하니 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불과 얼마 전에 난리가 한 번 나지 않았던가. 그래서 던전을 빨리 닫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었고 말이다.

    한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대기업과 거대 길드가 또 예전과 비슷한 짓을 하고 있었다.

    다 먹지도 못할 던전을 잔뜩 할당 받아서 꽉꽉 쟁여두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방치되는 던전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재앙이 일어난 지 불과 한 달 정도 되었는데 벌써부터.

    “아니, 하고 싶어도 내가 못 한다니까요? 진짜 왜 이러실까······. 제가 조만간 어떻게 해서든 가디언스에 던전 챙겨 드릴 테니까, 오늘은 제발 돌아가세요. 이렇게 부탁합니다.”

    관리청 직원이 한 발 물러섰다. 여기서 대립각을 세워봐야 자기만 손해였다.

    윤경민은 그럼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가디언스에 챙겨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중소 길드들 중에서도 손가락만 빨고 있는 곳이 여럿 있습니다. 애초에 할당량 자체가 달라서 벌어지는 문제입니다.”

    “그거야 길드 규모나 보유한 각성자 수가 다르니까 저희도 어쩔 수······.”

    “아뇨.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 던전들 한꺼번에 터지거나, 아니면 거기 신경 쓰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한 던전이 나타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관리청 직원이 울상을 지었다.

    “아니, 전 그걸 조율할 권한이 없다니까요. 책임이야 던전 받아간 길드가 지겠지요.”

    “무리하게 할당했다는 책임을 면치 못할 겁니다. 관리청장님께서 후년쯤 정계 진출하신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은데······ 아마 굉장히 치명적일 겁니다.”

    관리청 직원이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솔직히 자신은 청장이 정계에 진출한다는 얘기는 여기서 처음 듣는다.

    하지만 만일 그게 정말이라면 그냥 대충 넘겨선 안 될 문제였다.

    “어······ 제가 바로 청장님께 직접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윤경민은 그제야 물러났다. 애초에 목적이 그거이기도 했고.

    관리청장은 대기업이나 거대 길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래를 흔드는 방법을 택했다.

    아마 당분간 관리청이 시끌시끌해질 것이다. 윤경민이 이렇게 찾아와서 저 얘기를 하는 게 오늘이 벌써 다섯 번째고, 이 직원이 다섯 명 째니까.

    * * *

    강하진은 길드 본부로 돌아와 잠시 쉬면서 다음 사냥 일정을 확인했다.

    “일단······ 길드 자체적으로 잡은 사냥 계획은 아예 없군.”

    즉, 던전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 회귀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으니까.

    이건 거대 길드의 횡포였다.

    회귀 전에는 첫 번째 재앙이 이번처럼 간단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이번에 대충 넘어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합법적인 사냥이 불가능하니 결국 불법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던전은 최대한 많이 닫아야 하고, 사냥을 해서 레벨도 올려야 하니까. 그리고 괴물의 부산물과 마석도 최대한 모아야 하고.

    사냥을 통해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조만간 돈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될 테니까.

    뛰어난 장비도 만들어 팔 것이고, 각종 포션도 만들어 팔 것이다. 게다가 아공간 사업을 시작하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괴물의 부산물과 마석이 필요한 이유는 더 뛰어난 장비를 제작하기 위함이다.

    유동훈에게는 분명히 그럴 능력이 있었다.

    어쨌든 그러기 위해서는 던전이 필요하다.

    불법적인 던전은 발견자가 신고하지 않은 던전이 있고, 암시장을 통해 구하는 던전이 있었다.

    다른 것도 있지만, 크게 보면 그렇게 두 가지였다.

    가디언스에서 취하는 방법은 둘 다였다.

    소속 길드원들이 대부분 암시장에서 활동한 전적이 있기에 생각보다 암시장에서 무언가를 구하거나 의뢰를 넣기가 편했다.

    미등록 던전은 명인혁이 찾아내곤 했다. 정보팀이 움직여 던전 자체를 찾는다기보다는 미등록 던전을 보유한 개인을 찾아내 거래를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거대 길드나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던전 중에 관리가 소홀한 것들도 파악해서 리스트를 만들어뒀다. 언제든 원할 때 사냥할 수 있도록.

    불법으로 사냥할 수 있는 던전을 쭉 확인해봤다. 수가 상당히 많았고, 그 중 몇 개는 현재 사냥 중이기도 했다.

    강하진이 길드 운영에 대해 거의 간섭하지 않기에 대부분은 윤경민이 운영 방향이나 길드의 앞날에 대한 고민을 했다.

    사실 강하진이 길드 마스터이긴 하지만, 진짜 길드의 주인처럼 움직이는 사람은 윤경민이었다.

    그리고 그건 강하진이 원하는 바였다.

    윤경민은 강하진의 지시에 따라 최근에는 길드의 덩치를 키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일을 제대로 하려면 거대 길드와 대기업의 견제를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강하진은 별 고민하지 않았다. 운경민이 어련히 알아서 다 하지 않겠는가.

    강하진이 고민하는 건, 이제부터 나타나게 될 진짜 던전이었다.

    자리에 앉아 한창 서류를 확인하고 있을 때, 비서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저, 마스터.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예. 최대길이라는 분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강하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대길? 누구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왠지 만나야 할 것 같았다.

    “들어오라고 해요.”

    “네.”

    비서가 나갔다가 한 사람을 데리고 다시 들어왔다.

    최대길은 강하진을 보자마자 성큼성큼 걸어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최대길입니다. 그동안 이름만 듣던 유명인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군요. 반갑습니다.”

    최대길의 말에 강하진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맞잡았다.

    “강하진입니다.”

    두 사람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파에 앉았다. 그 뒤로 비서가 차를 놓고 나갈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그걸 먼저 깬 사람은 강하진이었다.

    “절 유명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혹시 사람을 잘못 알고 찾아오신 거 아닙니까? 동명이인이라거나.”

    최대길이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 찾아왔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귀가 밝습니다. 알고 싶지 않은 걸 물어다 주는 사람도 많고요.”

    강하진은 대답하지 않고 최대길을 가만히 쳐다봤다.

    상대를 알아보는 가장 편하고 빠른 방법은 당연히 엿보기다.

    일단 능력치 창이 뜨지 않는 걸로 봐서 각성자는 아니었다. 그러니 최대길이라는 이름이 진짜인지도 확실치 않다.

    반면 몸에 마력이 깃든 물품을 잔뜩 달고 있었다. 일반인이 착용해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비였다.

    ‘일단 저 반지들.’

    반지를 다섯 개나 꼈는데, 전부 제법 알이 굵은 마석이 박혀 있었다.

    거기에 목걸이와 팔찌도 전부 마석이 달린 장비였다.

    ‘조끼, 허리띠, 신발까지.’

    장비를 하나하나 확인해봤는데, 다들 보통 장비가 아니었다.

    일례로 팔찌만 보면,

    [화룡의 비늘]

    [등급 - 희귀]

    [화룡의 비늘 다섯 개를 가공해 만든 팔찌. 불의 방패를 둘러 5회의 공격을 막아낸다. 방패의 방어력을 넘어서는 공격은 회수를 더해서 막아낸다.]

    이런 식이었다.

    최대길이 각성자도 아니면서 저렇게 당당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 장비들일 것이다.

    저런 걸 저렇게 잔뜩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많을 리 없다.

    거대 길드나 대기업의 수뇌부나 되어야 구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강하진이 눈을 빛냈다.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최대길을 쳐다봤다.

    거대 길드나 재벌이 아니면서도 저런 장비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었다.

    ‘암시장의 주인이 누구였지?’

    강하진은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엔 희미했던 기억이 점차 선명해졌다.

    한국 암시장은 DM의 진출과 동시에 몰락한다.

    아니, 더 정확히는 DM에 흡수된다. DM이 한국에 진출하기 전부터 꾸준히 작업을 진행해 타이밍을 맞춰 흡수해 버린 것이다.

    암시장은 제법 협조적으로 흡수되었다. 적대적 합병이 아니라 자발적 흡수에 더 가까웠다.

    그 덕분에 DM 한국지부에서 제대로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었다.

    ‘그때 암시장을 넘긴 사람이······ 최선호였나?’

    강하진은 최대길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암시장?” 최대길이 눈을 번득였다.

    “호오. 가디언스 마스터께서도 귀가 아주 많은 모양입니다. 제 정체를 아는 사람이 솔직히 그리 많지는 않은데 말이죠.”

    강하진은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최대길을 쳐다봤다.

    “당신이 암시장의 주인입니까?”

    “맞습니다. 한국 암시장을 제가 총괄하고 있죠. 뭐, 사실 암시장의 진짜 주인은 암시장을 이루는 장사꾼들이랑 그 장사꾼들을 지켜주는 각성자들입니다. 저야 그저 관리만 할 뿐이고 말이죠.”

    강하진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저에 대해서 아시는 게 많은 모양이군요.”

    “거성과 태산의 전쟁 때부터 주시했습니다. 아니, 살짝 그 전부터라고 해야 할까요?”

    최대길은 잠시 의미심장한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대단하시더군요. 거성과 태산을 진흙탕에 끌어내리고, 거성의 돈을 싹 흡수하고, 나중에는 다른 조직의 싸움에도 개입하신 것 같던데······.”

    그리고 또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 그리고 이번 재앙의 영웅들도 모두 가디언스 소속이더군요. 각성자를 키우는 비법이라도 가지신 걸까······ 잠깐 생각 좀 해봤습니다.”

    강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그 정도면 됐습니다. 아는 게 더 많은 것 같지만 굳이 그 얘기를 하실 필요는 없고, 용건부터 말씀하시죠.”

    “요즘 암시장에 접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이 암시장에 접촉하는 일이야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우리도 그랬고.”

    “그게 이번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릴 이용해서 A-마켓을 견제하려는 것 같습니다. 다른 못된 의도도 많이 섞여 있고요.”

    그 말을 들으니 암시장에 접촉하려는 자들이 누군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날 찾아온 겁니까? 그놈들이랑 싸움 붙이려고?”

    최대길이 흐흐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그런 거 아닙니다. 싸움을 붙이다니요. 그저······ A-마켓을 움직이려면 강하진 씨가 제일 확실한 카드가 아닐까 생각했을 뿐이죠.”

    강하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굳이 그놈들 의도에 놀아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암시장과 A-마켓은 지금까지 서로의 영역을 건드린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아니었습니까?”

    최대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사실 싸울 필요가 없죠.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하진이 최대길을 쳐다봤다. 최대길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우리 암시장의 주인은 나 혼자가 아닙니다. 최선호라고 사촌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놈이 멋모르고 그놈들 손을 덥석 잡았지 뭡니까.”

    거기까지 말한 최대길의 눈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빛났다. 그건 명백한 살기였다.

    “나한테 비밀로 하고 말입니다.”

    최대길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이제 강하진의 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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