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50화 (50/200)
  • < 과거의 악연들이 모이면 4 >

    “다들 너무 느긋한 거 아닙니까?”

    DM의 책임자인 제이크가 날카로운 눈으로 좌중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누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제이크도 동의한 일이었잖아요?”

    조원영이 나서서 말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여 조원영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설마 지창기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 버릴 줄이야.

    “애초에 처음 계획을 세울 때부터 한 사람에게 너무 의존했습니다. 이래선 안 됩니다.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그렇게 하고 있잖습니까.”

    제이크도 그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후우. 지금 상황이 안 좋습니다.”

    “상황이 안 좋은 거야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지금 투입한 자들 다들 베테랑입니다. 잘 하고 있어요.”

    제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DM에서 한국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처음 당신들이 올렸던 기획을 백지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쾅!

    “말도 안 됩니다! 우리가 여기 얼마나 돈과 노력, 시간을 쏟았는데!”

    조원영이 분개해서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테이블이 쩌저적 갈라지더니 이내 바스라지듯 부서졌다.

    흥분한 건 조원영뿐만이 아니었다. 제이크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자자, 흥분하지 마시지요.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상황이 안 좋을 뿐입니다.”

    “후우. 우리를 너무 자극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예, 예. 미안합니다. 자극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전 그저 정보를 드리는 것뿐입니다.”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다들 지금 너무 흥분했다는 걸 깨닫고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가졌다.

    침묵을 먼저 깬 건 제이크였다. 그에게는 이들을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할 임무가 있었으니까.

    “제 보스께서 제안을 하나 하셨습니다.”

    “제안? 뭡니까?”

    “암시장을 이용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다들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암시장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또 있을까?

    오히려 각성자 관리청이 이들보다 암시장과의 사이가 더 가까울 것이다.

    암시장은 이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갉아먹는 쥐새끼 같은 존재였으니까.

    반명 각성자 관리청은 조절하기에 따라서 암시장을 대기업과 거대 길드를 견제하는 데 이용할 수도 있었다.

    그런 존재를 이용하자는 언급이 나왔는데 기분이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암시장을 어떻게 이용한다는 겁니까? 우린 암시장과 교류가 거의 없습니다.”

    “그 지창기도 암시장이랑은 특별한 교류가 없었죠. 암시장은 정말 이상한 놈들이에요.”

    “그리고 다루기도 어렵고.”

    제이크는 그 모든 말을 다 듣고 있었다.

    “암시장은 전 세계 어디나 있는 건 아십니까?”

    “물론이죠.”

    외국에 나가면 재미로라도 암시장을 이용하곤 하는데 어찌 그걸 모르겠는가.

    “하면 한국의 암시장이 좀 기형적이라는 건 알고 계십니까?”

    다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은 좀 특수하다. 대기업과 거대 길드의 로비로 각성자 관리청이 던전 물품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기에 암시장이 기형적으로 발전했다.

    사실 암시장은 각성자 관리청이 밑에서 올라오는 불만을 다스리기 위해 단속을 일부러 느슨하게 한다.

    “한국의 암시장은 던전이 등장한 초기부터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세계로 가지를 뻗고 있습니다.”

    “암시장 수출이라니.”

    조원영은 피식 웃었다. 그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맺혀 있었다. 암시장 따위 안중에도 없었으니까.

    “우리 DM은 초기부터 암시장 쪽에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죠. 몇몇 나라의 암시장에는 굉장히 깊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다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이크를 바라봤다.

    “A-마켓이 실질적으로 던전 유통을 장악한 상태에서 후발주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린 가능한 모든 일을 시도했죠.”

    “그게 암시장입니까?”

    “몇몇 나라에서는 우리가 주도해서 암시장을 열기도 했고, 몇몇 나라에서는 기존 암시장을 침식해서 내부를 장악하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효과적이었죠.”

    “그래서 한국의 암시장도 DM의 입김이 닿아 있는 겁니까?”

    제이크가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한국의 암시장은 너무 컸어요. 사실 암시장을 노린 게 우리뿐만은 아닙니다. 암흑가에서도 꾸준히 노렸죠.”

    그래서 암시장과 암흑가의 사이가 데면데면하다.

    사업적으로는 서로 떼기 어려우니 관계는 이어가지만, 더 깊은 관계는 없었다.

    그래서 예전 태산과 거성의 싸움에 강하진이 암시장을 이용해서 끼어들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외국에 진출한 한국의 암시장들도 건드리기 어렵더군요.”

    “그래서 우리보고 뭘 어쩌란 겁니까?”

    “어차피 목표는 하나 아닙니까.”

    그 말에 다들 뭔가를 깨달은 듯 눈을 번득였다.

    “A-마켓······!”

    “맞습니다. 우린 A-마켓만 몰아내면 됩니다. 하면 그 A-마켓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게 누구일까요? 우리 DM일까요? 아니면 한국의 대기업과 거대 길드일까요?”

    제이크는 모든 사람과 한 번씩 눈을 마주친 다음, 한 글자씩 씹어서 말했다.

    “암시장입니다.”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과연 암시장과 손을 잡는 것이 타당한지, 또 정말로 암시장이 A-마켓을 몰아내는 데 힘을 보탤지를 계산해야만 하니까.

    제이크는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어차피 이들의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다.

    이 일이 잘 되면 DM은 또 다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한국 암시장이 움직여 A-마켓을 물리치는 그림을 그려낼 수만 있다면, 다른 나라의 암시장도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A-마켓이라는 공룡이 사라지면, 나눠먹을 수 있는 파이가 얼마나 커지겠는가.

    설사 그 자리에 다른 업체가 들어와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업체가 와도 A-마켓처럼은 해낼 수 없을 테니까.

    A-마켓은 굉장히 특수한 상황과 시기에서 시장을 선점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적어도 이쪽 바닥에 있는 사람은 다들 그렇게 여겼다.

    ‘겸사겸사 잘 하면 암시장 내부에 스파이를 심을 수도 있고.’

    제이크가 그리는 그림은, 아니, 제이크의 보스인 스팬서가 그리는 그림은 세상 모든 암시장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거였다.

    더불어 양지의 유통도 장악하고 말이다.

    ‘그게 바로 세상의 주인이지.’

    * * *

    콰드득! 콰드득! 콰드드득!

    강하진은 돌거인 주위를 맴돌며 마음껏 [분쇄]를 꽂아 넣었다.

    그 때마다 돌무더기가 우수수 떨어져 나왔다.

    이곳에는 흙과 돌이 어마어마하게 많기에 그 때마다 끊임없이 바닥을 빨아들인 돌 거인이 몸을 수복했다.

    돌 거인은 아직까지 강하진에게 주먹을 휘두르거나 발로 밟는 공격만 시도했다.

    한 번도 성공하진 못했지만.

    강하진은 [공방전환]을 써서 [분쇄]에 최대한 힘을 집중했다.

    그러니 지금은 스쳐도 안 된다. 그저 스치기만 해도 빈사상태에 빠질 테니까.

    이 사냥이 게임이랑은 다르지만, 이 돌거인은 확실히 게임처럼 페이즈가 나뉘어 있다.

    이대로 적을 분쇄하지 못하면 돌구슬탄을 쓴다.

    그리고 돌구슬탄을 쓰기 직전, 바로 그 타이밍을 잘 파악해야 한다.

    ‘지금!’

    강하진은 [공방전환]을 써서 공격력을 모조리 방어력으로 보냈다.

    그러면서 뒤로 쭉 물러났다. 아무리 방어력이 좋아졌어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으니까.

    강하진이 물러난 순간, 돌거인이 양손바닥을 쫙 펼치며 강하진을 향해 겨눴다.

    콰콰콰콰콰콰콰!

    손바닥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돌구슬이 튀어나왔다.

    퍼버버버버버벅!

    강하진은 최대한 빨리 돌거인을 중심에 두고 크게 돌았다.

    바닥에 쏟아진 돌구슬이 땅에 푹푹 박혔다.

    그리고 일부는 강하진의 몸을 두드렸다.

    강하진은 아공간에서 방패까지 꺼내 돌구슬탄을 막아냈다. 방패도 돌구슬을 막을 때마다 움푹움푹 들어갔다.

    정말 굉장한 위력이었다.

    아무리 방어력에 몰았다고 해도 이 돌구슬을 정면으로 맞으면 무사할 수가 없었다.

    맞을 때마다 뼈에 금이 가거나 근육이 파열되고 살이 찢어졌다.

    하지만 강하진에게는 치료스킬이 있었다.

    강하진은 계속 돌거인 주변을 돌면서 돌구슬탄을 막고 피해냈다.

    가끔 방향을 반대로 바꿔 돌기도 했다.

    속도를 단계별로 올려서 돌구슬탄을 피해내면 돌거인도 더 빨리 몸을 돌려서 돌구슬탄을 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몇 번에 걸쳐 속도를 높인 다음, 갑자기 방향을 바꾸면 최소한의 피해로 다시 첫 단계 속도로 내릴 수 있었다.

    돌거인의 지능이 생각보다 낮기에 쓸 수 있는 방식이었다.

    돌구슬탄의 재료는 당연히 몸을 이루고 있는 돌이었다.

    그렇기에 돌구슬탄을 쏘면서 바닥의 흙과 돌을 빨아들여 몸을 수복했다.

    그 역시 마력을 쓰는 일이었다.

    돌거인은 돌구슬탄으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스킬을 멈추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강하진에게 달려들었다.

    후웅! 후웅!

    쿠웅! 쿠웅!

    돌거인은 땅 흔들기와 분쇄를 이용한 공격을 시작했다.

    강하진은 거기에 맞춰 다시 양손에 [분쇄]를 두르고 [공방전환]을 썼다.

    꽈드드드득!

    돌거인의 움직임에 제법 익숙해졌기에 훨씬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돌거인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력이 바닥난 것이다.

    기본적으로 회복되는 마력이 있기에 어떻게든 스킬을 쓰고 몸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강하진이 [분쇄]로 뜯어내 부숴버린 몸을 처음처럼 복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마력이 줄어들면서 부서지는 크기가 점점 더 커졌다.

    하지만 그러면서 움직이는 속도는 조금씩 빨라졌다.

    이대로라면 아예 한 대도 안 맞고 돌거인을 잡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강하진은 딱 아슬아슬한 순간 [공방전환]을 껐다.

    돌거인의 크기가 2미터쯤으로 줄어들었다. 그때부터 싸움이 굉장히 치열해졌다.

    돌거인은 빠르고 강했다. 그리고 전투기술도 뛰어났다.

    아까는 왜 이렇게 못 싸웠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강하진도 전투능력이 상당했지만, 돌거인과 싸우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물러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안 될 말이었다. 물러나서 돌거인에게 시간을 준다는 건, 다시 처음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뜻이니까.

    강하진은 양손에 두른 [분쇄]를 몸의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원래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왠지 지금은 그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멋지게 성공했다.

    덕분에 적절한 순간 발에 둘러서 돌거인을 가격할 수 있었다.

    한 번 성공하자, 그 뒤로는 더욱 능숙해졌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분쇄]를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온몸을 이용해 공격하는 게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팔꿈치나 무릎, 심지어 어깨나 등으로 공격할 수도 있었다.

    돌거인 역시 [분쇄]를 이용해 공격했지만, 그걸 강하진처럼 몸 곳곳에 이동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그 순간 승패가 갈린 거나 다름없었다.

    돌거인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고, 그때부터는 더 작아져도 빨라지지 않았다.

    이내 돌거인이 돌가루가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강하진은 온몸에 차오르는 특별한 힘을 느끼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레벨이 올랐다.

    * * *

    강하진이 던전에서 나오자, 박영호가 후다닥 달려왔다.

    “아니, 벌써 나오십니까? 명인수 군은 만나 보셨고요?”

    “그냥 멀리서 사냥하는 모습만 좀 지켜봤습니다. 굳이 만나봐야 방해만 될 거 같아서요.”

    “아······ 배려심이 정말 대단하시군요. 감탄했습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가 여기 왔던 건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이고, 그러믄요, 그러믄요. 원하시는 대로 철저히 비밀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물론 황수영에게는 보고할 것이다. 박영호를 고용한 사람은 황수영이지 강하진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렇게 보고해 둬야 생색을 낼 수 있지 않겠는가.

    ‘나도 금년에는 승진할 수 있겠어.’

    박영호는 멀어지는 강하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황수영이 가디언스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강하진은 서둘러 자리를 뜨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짧은 휴가가 끝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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