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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48화 (48/200)

< 과거의 악연들이 모이면 2 >

“형님, 그런데 이래도 되겠습니까?”

지창기는 옆에서 묻는 부하의 말에 인상을 썼다.

하지만 부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인원을 나눠서 명일 말고 나머지 둘도 견제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닥치고 시키는 일이나 해.”

살기 넘치는 지창기의 말에 부하가 화들짝 놀라 얼른 물러났다.

“예. 형님.”

지창기는 잠시 짜증을 내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저 멀리 창고지대를 노려봤다.

오늘이 이번 전쟁의 분수령이었다.

이 싸움에서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 아니, 이길 것이다. 이건 싸움이 아니라 기습이니까.

“확실히 재벌은 재벌이야.”

제영 그룹과 화신 그룹의 힘은 대단했다. 아니, 어쩌면 그때 곁다리처럼 끼어 있던 외국인의 힘이 대단한 건지도 모른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지원을 시작하자, 태산과 대적하던 세 조직의 자금줄이 말라붙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지창기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지창기 밑에 애들 중 그런 걸 알아볼 수 있는 놈은 그림자뿐이었는데, 그놈은 지금 중요한 임무를 띠고 나가 있다.

그러니 깜깜한 상태로 재벌들이 던져주는 먹이나 먹으면서 최대한 버티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 해결하면 그림자를 다양하게 굴릴 수 있고, 그러면 숨통이 좀 트일 것이다.

‘그 전에 저놈들을 끝장내야지.’

자금줄이 말라버린 놈들은 위험한 거래에 손을 댔다.

마약과 밀수였다.

요즘 암흑가에서는 보통 마석이나 괴물의 부산물을 불법 거래해서 돈을 번다.

그 다음이 마약과 여자, 술장사였다.

사실 던전의 등장은 암흑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아마 나중에는 더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지창기는 그때를 위해 각성자를 닥치는 대로 모집하고 있었다.

요즘 각성자가 우수수 쏟아지듯 늘어나고 있어서 암흑가 쪽으로 빼내는 일이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그놈들 어디쯤 왔어?”

“입구를 막 지났다고 합니다.”

“그럼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군.”

“예. 애들 다 준비 시키겠습니다.”

지창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창고지대를 노려봤다.

저 창고지대 중심에 커다란 공터가 있었고, 그 공터에서 마석 밀수 거래가 예정되어 있었다.

오늘 거래의 주체는 명일이었다.

거성이 사라진 자리를 태산이 차지해야 하는데, 명일 때문에 제법 많은 차질을 빚었다.

명일도 거성 못지않게 독하게 돈을 노리는 놈들이었다.

그리고 김진철 때문에 태산과 결국 싸워야 할 놈들이기도 했다.

오늘 명일이 할 마석 암거래는 굉장히 중요한 만큼 명일의 주력 조직원들이 대거 참여한다.

그들만 제대로 처리할 수 있으면 앞으로 명일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지창기의 눈이 야망으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자신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사람이다.

‘반드시 그렇게 만든다.’

지창기가 그렇게 속으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다짐하고 있을 때, 트레일러 몇 대와 그걸 호위하듯 붙은 십여 대의 세단이 보였다.

드디어 명일에서 보낸 놈들이 도착한 것이다.

저들은 지창기가 이끄는 태산의 정예가 여기서 기다릴 거라고는 꿈에서도 모를 것이다.

지창기는 뒤를 힐끗 쳐다봤다.

수십 명이나 되는 각성자들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원받은 각성자 중에서 등급이 높은 자들만 데려온 것이다.

나머지 각성자들은 지금 멀찍이서 대기 중이었다. 작전이 시작되면 그들은 태산파의 다른 조직원들과 함께 이 창고지대를 포위할 것이다.

오늘 여기 온 놈들은 아무도 도망치지 못한다.

‘그리고 저들이 있다는 것도 모르겠지. 이 전쟁은 이제 끝났어.’

지창기는 확신했다.

그때 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저놈들은 뭐야?”

명일에서 보낸 차량들 뒤로 십여 대의 승합차가 따라가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가고 있었지만, 대놓고 따라가는 걸 보면 이미 다들 아는 사이가 분명했다.

부하가 전화를 받더니 다급히 지창기에게 말했다.

“명일에서 나머지 두 조직에 연락을 한 모양입니다. 저기 오는 놈들 말고 지금 막 입구를 통과한 놈들도 있다고 합니다.”

지창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전혀 불안하지 않은 눈빛이었다.

그걸 본 그의 부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형님, 아무래도 불안합니다. 우리 쪽 정보가 샌 거 아닐까요?”

지창기가 피식 웃었다.

“정보가 새긴 샜지.”

“예? 정말입니까?”

부하가 깜짝 놀랐다가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창기의 반응이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 정보 내가 뿌린 거다.”

“예? 대체 왜······.”

“그래야 한꺼번에 처리할 거 아니냐. 하나하나 처리하는 건 솔직히 시간 낭비거든.”

부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정예이긴 하겠지만 전부 몰려온 건 아니었다. 그러니 기습만 제대로 성공해서 의미 있는 타격을 준다면 몽땅 죽여 버릴 수 있다.

여기까지 계산하고 벌인 일이었다.

“하지만 형님, 우린 기습을 해야 하는데······.”

지창기가 씨익 웃었다.

“내가 어떤 정보를 풀었을 것 같으냐? 우리가 저놈들을 친다고?”

“그, 그럼 아닙니까?”

“명일이 수작을 부린다는 정보를 조작해서 뿌렸다.”

물론 도움을 받아서 처리한 일이었다. 제영 그룹을 비롯한 그들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번 일은 아예 시도도 못했을 것이다.

부하가 지창기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저 멀리 창고지대를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에도 이번 전쟁의 끝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 * *

얼굴을 반이 좀 넘게 가리는 마스크 같이 생긴 가면을 쓴 사람 다섯 명이 창고지대의 어두운 그늘 속에 숨어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했고, 모두가 모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명심하세요. 우리가 할 일은 소탕이 아닙니다.”

“알아요, 알아. 균형을 맞추자는 거잖아요. 맞죠?”

“맞습니다. 그리고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그건 염려하지 마세요. 설마 저기 있는 사람들이 우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있겠어요?”

“방심하면 당하는 겁니다.”

이곳에 모인 다섯 사람은 강하진과 황수영 그리고 김지혜와 이지영, 마지막으로 채희정이라는 가디언스의 길드원이었다.

황수영을 제외하면 전원 가디언스 소속이었다. 아직까지 강하진은 던전 브레이커를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황수영은 믿을 만했다. 물론 100% 믿는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강하진은 뒤통수를 맞은 이후, 어떤 사람이건 100% 믿지 않고 약간의 여지를 뒀다.

또 그런 일을 당하는 건 사양이었다.

어쨌든 실력 순으로 셋을 뽑아서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이라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힘을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김지혜는 치료 스킬과 방어 스킬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두 가지 스킬을 써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김지혜는 충분한 강자였다.

나머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황수영의 스킬 [괴력]은 써도 티가 나지 않는다.

“자, 슬슬 시작할 거 같으니 다들 준비하시죠.”

강하진의 말에 기다리던 사람들은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사실 괴물이랑 싸우는 것과 사람이랑 싸우는 건 다른 법이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과의 전투 경험을 갖고 있었다.

‘황수영은 어떤지 모르겠군.’

회귀 전에 같은 길드에서 잠깐 함께 했지만, 사실 그녀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분위기를 보니 아예 경험이 없는 건 아닌 듯했다.

강하진은 창고지대 공터 쪽에 귀를 기울였다.

말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이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싸움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가죠.”

“기다렸어요.”

황수영이 제일 신 났다. 그녀는 A-마켓에서 특별히 대여해준 장비를 쫙 빼입고 있었다.

A-마켓은 세계 제일의 던전 물품 유통업체였다. 당연히 보유한 장비의 수준도 천차만별이었고, 개중에는 어디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뛰어난 장비도 있었다.

정아연이 해줄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서는 그 정도뿐이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지금 강하진이 하려는 건 A-마켓을 위하는 일이었다.

너무 큰 걸 해주면 어딘가로 분명히 정보가 새나갈 가능성이 있기에 흔적이 나지 않는 선에서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강하진 일행의 장비 수준은 상당했다.

A-마켓에서만 가져오지 않고 유동훈이 새로 제작한 장비를 하나씩, 혹은 두 개씩 착용하고 있었으니까.

유동훈의 실력은 점점 늘어서 이제는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을 뛰어난 장비를 하나둘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싸우면 안 됩니다. 전황을 확인해야 하니까 제 명령에 반드시 따라주세요.”

“아이, 걱정 마시라니까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아요? 답지 않게.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게요.”

강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훌쩍 몸을 날렸다.

그러자 황수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뭐야, 농담에 아무 반응 안하고 저렇게 가 버리면 난 뭐가 돼? 쳇.”

이내 나머지 일행도 서둘러 강하진을 따라갔다.

그녀들의 귀에는 인이어가 끼워져 있었다. 언제든 강하진의 명령에 따라 전투 상대를 바꿔야 하니까.

물론 대놓고 싸워서도 안 된다. 아무리 마스크 비슷하게 생겼다지만, 그래도 가면을 쓰고 있으니 대놓고 싸우면 누구든 의심할 것이다. 그렇기에 생각보다 까다로운 작전이었다.

강하진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팀의 머리가 되어 전투 지시를 내리는 건 굉장히 익숙했다.

강하진이 회귀 전에 있던 팀에서 담당한 역할이 힐러와 버퍼였다.

그러니 전투 참여보다는 적절한 지시를 통해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사냥을 했다.

물론 강하진의 팀이 최강이었고, 언제나 가장 어렵고 힘든 던전만 공략했기에 전투에 끼어들어야 할 때가 많았지만, 직접 싸우면서도 전황을 살피고 지시를 내리는 일을 습관처럼 해왔다.

그동안 강하진이 겪은 전투는 굉장히 다양했다.

던전의 괴물이 한 종류만 나오는 게 아니니 당연했다.

그 중에는 거대하고 강력한 하나의 괴물도 있었고, 사람 크기쯤 되는 다수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두 무리의 괴물이 서로 싸우고 견제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래서 강하진에게 지금 상황은 굉장히 익숙했다.

‘그때보다 동료의 수는 한 명 적지만.’

강하진은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곳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빛나는 칼 든 사람부터 정리합니다.”

그들은 이번 전투에서 가장 많은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들이었다.

* * *

지창기는 몸을 사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싸울 일이 있으면 가장 앞장서서 칼과 주먹을 휘둘러왔다.

그게 던전의 괴물이든 상대 조직의 사람이든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기습할 때 가장 먼저 달려들어 칼을 휘두른 사람이 바로 지창기였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쉴 새 없이 적을 쓰러뜨렸다.

처음에는 지창기도 크게 흥분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아드레날린을 마구 내뿜으며 적을 난도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체력도 살짝 떨어지고 흥분을 가라앉히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상한데?’

분명히 기습도 성공했고 각성자의 수도 이쪽이 살짝 위에 있는데, 싸움은 그야말로 팽팽했다.

곳곳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쓰러진 자는 적이 훨씬 많았어야 한다.

한데 그렇지 않았다.

‘우리 애들이 더 많이 쓰러져 있어.’

얼핏 보이는 것만 확인했는데도 상위 각성자들이 여기저기 누워 있었다.

‘이러니 팽팽하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라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 아무리 싸움에서 이기면 뭐 하겠는가. 피해가 너무 커서 조직을 유지할 수도 없을 텐데.

현재 서울을 나눠먹는 조직들이 강력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피해가 커져 주저앉는 순간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놈들이 고개를 쳐들고 이를 드러낼 것이다.

지창기는 이를 악물었다.

‘그건 안 돼!’

절대 그렇게 둘 수 없었다. 지창기는 칼을 더욱 꽉 쥐었다. 그리고 저 멀리 서서 아군을 막 쓰러뜨린 놈을 향해 달려갔다.

꽝!

강렬한 일격이었는데 상대가 그걸 너무 수월하게 막았다.

지창기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등골을 따라 소름이 쫙 내달렸다.

상대는 얼굴을 반쯤 가리는 마스크 비슷하게 생긴 가면을 쓰고 있었다.

“너······ 누구야?”

지창기는 맞댄 칼에 힘을 꽉 주며 물었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놈이었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놈에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주먹이 날아왔다.

꽈르릉!

상대의 주먹에 깃든 강렬한 전격을 보며 지창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일단 막을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손을 얼른 뻗어 상대의 주먹을 잡았다.

빠지지지직!

“끄으으으으!”

지창기는 온몸을 전기로 지지는 충격에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전격은 모두 지나갔지만 여전히 몸이 감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맞댄 칼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칼을 타고 순식간에 몸을 장악해 버리는 냉기에 지창기는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렸다.

‘씨, 씨발······ 레벨을 더 올렸어야 하는 건데······.’

그게 지창기가 떠올린 마지막 생각이었다.

털썩.

쓰러진 지창기는 눈을 감지 못했다.

그가 쓰러졌는데도 여전히 싸움은 팽팽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그렇게 조절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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