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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47화 (47/200)
  • < 과거의 악연들이 모이면 1 - 여기서부터 유료 시작입니다. >

    강하진은 길드 본부로 돌아왔다.

    원래는 차분히 앞으로의 계획을 좀 점검한 다음 명인혁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릴 생각이었다.

    한데 강하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길드 본부에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직원 한 명이 후다닥 달려오더니 강하진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응접실 문을 열기도 전에 안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주 익숙한 느낌이 벽을 뚫고 문 밖까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안으로 들어가니 정아연과 황수영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강하진에게 꽂혔다.

    두 사람의 눈에 반가운 기색이 떠올랐다. 제법 오래 기다린 모양이었다.

    “바쁘신 분들이 웬일입니까?”

    강하진이 그렇게 물으며 두 사람의 앞에 마련된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두 사람이 서로를 한 번 바라봤다.

    강하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정아연이 입을 열었다.

    “알려드릴 것도 있고 상의드릴 일도 있어서 왔는데, 기다리면서 황수영 씨와 얘기해보니 관계된 일이더라고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궁금하네요. 그래서 무슨 일이죠?”

    “일단 이것부터 말씀드리는 게 낫겠네요. 대기업 두 곳과 거대 길드 두 곳에서 황수영 씨를 찾아갔어요.”

    강하진의 눈이 흥미로 빛났다. 무슨 일인지 대충 알 것 같아서였다.

    “혹시 그 대기업이 제영이랑 화신인가요?”

    “어? 어떻게 아셨죠?”

    “그리고 길드는 신라, ATG이고?”

    정아영과 황수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맞아요!”

    황수영은 자신이 나서서 당시 그들과 나눴던 대화와 분위기를 아주 자세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모두 들은 강하진은 고개를 돌려 정아연을 쳐다봤다. 그러자 정아연이 입을 열었다.

    “최근 DM이라는 곳에서 아주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한데 좀 지저분한 소문이 많이 도는 곳이에요. 그러니 조심하세요.”

    강하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DM이었어. 아무리 빨라졌다고 해도 너무 빠른데? 아니면······ 원래 지금 시작했는데 회귀 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건가?’

    강하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아연이 잠시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희랑 마찬가지로 던전 관련 유통을 하는 기업이에요. 그런데 저희와 관계된 업체를 음지에서 공격하는 수법을 쓴다는 소문이 있어요.”

    “당한 곳이 있습니까?”

    “네. 그런데 명확한 증거를 찾지는 못했어요. 심증만 좀 있을 뿐이죠. 그래서 대응하기가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에요.”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지금으로서는 그래요. 저희도 방법을 강구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방안이 나올 거예요.”

    “너무 소극적이군요. 솔직히 말하면 좀 더 적극적이고 강하게 나가는 편이 나을 겁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DM의 목표는 A-마켓을 무너뜨리고 던전 시장을 독점하는 겁니다.”

    정아연의 눈이 빛났다.

    “우리가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거 같은가요?”

    “일단 한국 시장에서는 DM의 작업이 시작됐는데, 뭔가 알아낸 건 있습니까?”

    “예? 벌써 작업이 시작되었다고요?”

    정아연이 깜짝 놀라 물었다. 사실 DM이 한국에 무슨 일을 시작했다는 정보는 들은 적이 없었다.

    강하진은 피식 웃으며 황수영을 쳐다봤다.

    정아연은 갑자기 강하진이 왜 웃으면서 황수영을 보는지 몰랐다. 하지만 금방 그걸 이해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설마······! 황수영 씨를 찾아갔던 사람들이 관계된 건가요? 그것도 작전의 일부였어요?”

    정아연은 경악한 눈으로 강하진과 황수영을 번갈아 바라봤다.

    황수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고작 사람 만나게 주선해달라는 부탁에 이런 위험한 일이 엮여 있는 줄은 몰랐다.

    “우연히 그들의 만남을 보고 왔습니다.”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평소답지 않게 아무생각 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싶었고, 그게 아니었다면 조원영을 발견하지 못했을 테니까.

    “우연히 봤다고요? 그 대기업들이랑 거대 길드들이 만나는 걸요?”

    “거기에 DM이랑 태산파도 포함시키시죠.”

    “예?”

    점입가경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A-마켓을 견제하는 일에 제영 그룹, 화신 그룹에 신라 길드, ATG 길드, 거기에 DM도 모자라서 태산파까지 끼었다고요?”

    정아연이 멍한 표정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대체 어떻게 일이 여기까지 진행되었는데 A-마켓에서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슬슬 내부 단속 한 번 해야 할 때 아닌가요?”

    강하진의 말에 정아연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이 정도 사안이라면 우리 정보팀에서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요.”

    아무리 조심해서 움직이고 정보를 교란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한두 기업도 아니고 저렇게 많은 기업과 길드, 심지어 암흑가에서까지 나섰는데 흔적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저들은 A-마켓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기업이고 길드였다.

    심지어 태산파도 마찬가지였다.

    A-마켓에 향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한 조직폭력배 간의 전쟁을 주시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으니까.

    “하아. 좋은 분위기에서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정아연은 그렇게 말하며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받으세요. 강화석 연구 진행상황이에요. 통 크게 판매해 주신 덕분에 성과가 아주 엄청나요. 아마 발표하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 거예요.”

    강하진은 서류를 받아 쭉 읽어봤다. 확실히 놀라웠다.

    ‘회귀 전에 이룩했던 연구 결과를 벌써 뛰어넘었어?’

    강화석 한 번 사용으로 각성자의 모든 능력치를 올리는 게 가능해졌다. 심지어 아직도 발전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가.

    “15번이나 중복 사용이 가능하군요.”

    “그 부분을 최근 집중 연구 중인데 수석 연구원이 25번까지 장담했어요. 어쩌면 더 될 수도 있고요.”

    “25번이요?”

    강하진도 그 터무니없는 수치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강화석이 굉장한 이레귤러로 등장할 가능성이 열렸는지도 모른다.

    “분위기 진짜 좋을 뻔했는데 정말 아쉽네요.”

    정아연의 말에 황수영이 살짝 가늘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의심스러워서요.”

    “뭐가요?”

    “알면서 왜 물어요?”

    “모르겠는데요?”

    “알걸요.”

    황수영은 그렇게 말하며 정아연과 강하진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묘하게 당황하시네요?”

    계속되는 집요한 질문에 정아연이 정색하며 말을 돌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비도 하고 함정도 파야죠.”

    강하진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정아연과 황수영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정석이긴 하죠.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로군요.”

    “태산파가 A-마켓이 후원하는 길드들을 공격할 겁니다.”

    “태산파요? 고작 그들만으로 될까요? 지금 태산파는 전쟁 중이라 인력을 따로 빼기도 어려울 텐데.”

    “기습하면 되니까요.”

    확실히 기습이라면 효과가 클 것이다.

    예를 들어 던전에 들어가서 사냥을 하고 있을 때, 뒤통수를 때리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쪽이 그걸 모르고 아무 대비도 안 했을 경우에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각성자를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다양한 수준을 섞어서 총 143명을 지원한다더군요.”

    “전쟁의 판도가 확 바뀌겠네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진창이 될 수도 있죠.”

    “저들의 계획부터 알아내야겠네요.”

    “그게 제일 중요하죠. 전쟁부터 해결하고 우리한테 올 건지, 아니면 우리 먼저 처리하려고 할지, 그것도 아니면 병행할지를 알아야 우리도 적절히 대처할 테니까요.”

    강하진은 황수영과 정아연이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대화만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래서 강하진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아연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강하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왠지 평소보다 즐거운 듯했다.

    “태산파부터 정리하죠. 일단 태산파의 작전은 제가 알아보는 게 나을 것 같군요.”

    강하진의 말에 정아연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겠네요. 우리 쪽 정보망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정보가 새 나갈 것 같으니까요.”

    “전 정보팀이 아예 없답니다!”

    황수영이 자랑스럽게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슬슬 던전 브레이커에도 정보팀을 만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강하진의 말에 황수영이 빙긋 웃으며 손을 슬쩍 내저었다.

    “에이, 필요할 때 도와주실 거잖아요. 우리 동맹 아니었나요?”

    “동맹은 동맹이고 정보는 정보죠. 공짜로 얻을 생각은 지금 버리세요.”

    강하진의 매몰찬 말에 황수영이 너무한다는 표정에 불쌍한 표정을 섞어서 바라봤다.

    하지만 강하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일단 태산파를 조사하는 동안 정아연 씨는 A-마켓의 배신자를 정리하세요.”

    “그럼 저는요?”

    황수영이 눈을 반짝이며 강하진에게 얼굴을 살짝 들이밀었다.

    강하진은 황수영이 오늘따라 왜 이러나 싶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아서 일단 그냥 모른 척했다.

    “정보팀 만드시고요.”

    황수영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됐어요. 난 내가 알아서 할게요.”

    “은밀히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좀 구해두세요.”

    그 말에 황수영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맡겨만 주세요.”

    그렇게 회의가 대충 마무리 되었다.

    강하진은 서둘러 돌아가는 두 사람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자리를 떴다.

    * * *

    강하진, 윤경민, 명인혁이 둥그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이번 일에 대해 윤경민과 명인혁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한 것이다.

    어차피 함께 가기로 한 이상, 이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용하는 편이 나았다.

    일단 모든 얘기를 들은 윤경민이 정리를 했다.

    “그러니까 암흑가를 동원해 우리를 치고, 최근 유명세를 탄 각성자들을 싹 빼가겠다 이거군요?”

    가디언스를 위주로 생각하면 정확하다.

    그 포석으로 황수영을 동원해 김지혜를 비롯한 최근 유명세를 탄 미모의 각성자들과 자리를 마련하려고 한 것이고.

    아무래도 길드가 사라진 마당이면 미리 좋은 인상을 심어준 길드나 단체 쪽으로 움직이기가 쉬울 테니까.

    명인혁이 슬쩍 거기에 정보를 덧붙였다.

    “그놈들이 우리 길드에 있는 누나들한테만 눈독 들이는 건 아니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윤경민의 물음에 명인혁이 설명을 이어갔다.

    “A-마켓의 후원을 받는 길드 전체에 손을 뻗었어요. 그 중에서 쓸 만한 각성자들은 벌써 한 번씩 다 만났으니까요.”

    명인혁은 서류 한 장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강하진 쪽으로 슥 밀었다.

    “요즘 실력이 좀 늘어서 정보수집 범위를 살짝 넓혀봤어요.”

    그 중에 공교롭게도 제영, 화신 그룹과 신라, ATG 길드가 포함되어 있었고 말이다.

    아니, 정확히는 정황이 좀 이상해서 그들에게 집중했다.

    “최근 각성자들은 전부 던전에 집중하거나 혹시 빠져나갔을지 모를 괴물을 사냥하는 데 동원돼요.”

    “그렇지.”

    “그런데 저 네 군데는 각성자를 따로 빼돌리는 거 같더라고요.”

    왜 따로 빼돌렸는지는 잘 알고 있다. 지창기에게 지원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빼돌리는 각성자의 수가 너무 많아서 좀 집중해서 보고 있었죠.”

    그 와중에 다른 움직임을 파악했는데, 그게 A-마켓이 후원하는 길드에 소속된 각성자에게 접촉하는 거였고 말이다.

    “빼돌리는 각성자의 수가 많았다고?”

    “네. 아무리 거대 길드랑 대기업이라지만 한 군데에서 거의 100명이 넘는 각성자를 빼돌렸으니까요.”

    “네 곳이 전부 그 정도 각성자를 빼냈어?”

    명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계산이 안 맞는다. ATG는 몰라도 다른 곳은 절대 그렇게 많이 빼지 않았다. 빼돌린 각성자의 수준이 다를 뿐.

    강하진은 자신이 들었던 얘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윤경민이 대뜸 말했다.

    “이놈들이 또 어디를 털려고 그러는 걸까요?”

    답은 너무나 뻔했다.

    “A-마켓.”

    강하진은 회귀 전에 A-마켓이 한국에서 어땠는지 떠올려봤다.

    회귀 전 A-마켓은 첫 번째 재앙 이후 조금씩 입지를 잃어갔다.

    하지만 그 자리를 DM이 꿰차진 않았다. DM이 한국에 진출한 건 그보다 훨씬 뒤였다.

    역사가 달라졌거나, 아니면 강하진이 모르는 다른 내막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때 A-마켓을 밀어내던 업체가 어디였더라?’

    어디라고 딱 짚어 말할 수 없었다.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당시 여러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서로 경쟁을 했다. 아니, 담합을 했다.

    그렇게 A-마켓이 서서히 밀려났고.

    기억을 떠올리다보니 그때의 일이 하나둘 선명하게 떠올랐다. 역시 정신력이 높으면 이럴 때 좋다.

    A-마켓은 한국에서의 일이 워낙 예외적인 상황인지라 역량을 집중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순간을 노리고 대대적인 공세로 전환한 DM이 빈틈을 파고들어 A-마켓에 제대로 대항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과거의 상황까지 끌어오고 나니, 지금 저들이 노리는 게 뭔지 명확해졌다.

    그러니 이건 강하진이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다.

    가디언스는 그 일을 진행하는 와중에 같이 딸려 들어가는 덤 같은 것이고 말이다.

    어쨌든 그냥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A-마켓은 이렇게 쉽게 무너져선 안 된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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