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45화 (45/200)

< 재앙이 끝난 후 1 >

강하진은 쉬는 동안 앞으로의 계획을 차근차근 점검했다.

처음 회귀했을 때 세웠던 계획과 현재 상황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사실 그때는 한동안 혼자 다닐 생각이었다. 결국 나중에는 사람들을 모아 길드를 만들긴 했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뒤의 일이어야 했다.

당시 세운 계획대로라면 그랬다.

한데 상황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일단 회귀 전보다 너무 빨리 재앙이 터졌다.

그뿐 아니라 가이아의 선택을 받은 이레귤러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변수가 되어 회귀 전과 조금씩 다른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재앙이 끝나자마자 강하진이 한 일은 상황파악이었다.

한국에서만 일어난 상황이 아닌데 강하진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건 한국뿐이었기에 다른 나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확인 결과 회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적었다.

모두 회귀 전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각국의 영웅들 덕분이었다.

물론 그 중에는 황수영처럼 강하진의 기억 속에 있던 인물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황수영과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에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자들이었다. 강하진이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의 활약은 했지만 말이다.

강하진은 그들이 모두 가이아의 선택을 받은 이레귤러라고 추측했다. 아니, 확신했다.

강하진은 가이아와 이레귤러에 대해 굉장히 다양한 추측을 해봤다.

몇 가지 의심이 가는 것들이 있었지만,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단정하지는 않았다.

그저 의심으로만 남겨두고 염두에 둘 뿐.

어쨌든 재앙은 잘 막았고, 각성자가 대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정말 뛰어난 각성자도 있을 것이고, 무늬만 각성자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윤경민은 벌써부터 무늬만 각성자인 사람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마석 광산에서 채굴을 시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마석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었다.

강하진은 아공간에 보관해둔 마석을 꺼냈다.

회귀 전에는 분명히 혼돈의 마물을 처리하고 나니 9단계 마석이 나왔다.

9단계 마석은 정말 대단한 보물이었다.

일단 마석의 값을 매길 때, 6단계부터는 가치가 정해져 있지 않다.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부르는 게 값이었다.

한데 무려 9단계 마석이 나왔으니 얼마나 난리가 났었겠는가.

당시 강하진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9단계 마석을 구경할 수 있었다.

물론 나중에는 더 높은 단계의 마석도 나오게 되고,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각성자들이 힘을 모으면 9단계 마석을 지닌 괴물을 레이드 하는 일도 심심찮게 이뤄지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나타난 9단계 마석은 그 가치를 상정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자원이었다.

이런 것들이 세계에서 몇 개나 나타났었다.

혼돈의 마물이 나타난 곳은 많았지만, 모든 혼돈의 마물이 9단계 마석을 뱉은 건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마석이 없는 경우도 있었고, 8단계나 7단계 마석을 뱉은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한국에 나타난 9단계 마석은 정부와 대기업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연구 재료로 써먹었다.

강하진은 그냥 구경밖에 할 수 없었고.

당시에는 그랬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마석이 강하진의 손아귀에 있다. 강하진은 손에 든 마석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이 마석 좀 큰 느낌인데······.”

응집도는 어마어마했다. 일단 7단계가 넘어가면 응집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응집도를 따져야 하는 건 6단계 이하의 마석뿐이다.

그나마도 3단계까지나 차이가 심하지 그보다 높은 단계는 차이도 미미하다.

어쨌든 그때의 기억이 아주 정확하진 않겠지만, 이 마석보다는 분명히 작았던 것 같다.

“마석 측정장비라도 사야 하나······.”

만일 이 마석이 10단계라면, 이용하기에 따라 현 시점에서는 무궁무진한 가치를 가진다.

그리고 이 마석이 왜 더 큰지에 대해서는 추측하는 바가 있었다.

아마 던전 안에서 혼돈의 마물을 처리했기 때문이리라.

던전 안에서 혼돈의 마물을 처리한 건 한국이 유일했다.

한동안 마석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강하진은 다시 아공간에 넣고는 이번엔 검은 구슬을 꺼냈다.

‘마르바스의 마석조각이라······.’

이 마르바스의 마석조각이 나오게 된 이유 역시 마찬가지로 던전 안에서 혼돈의 마물을 처리했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강하진은 구슬을 손바닥에 놓고 이리저리 굴렸다. 새까만 광택이 흐르는 표면에 무지개가 살짝 흐르는 듯했다.

사실 마르바스와 가이아에 대해 뭔가 좀 더 알아내고 싶었다.

한데 그 둘에 대한 정보는 [당당하게 엿보기]로도 확인이 불가능했다.

마치 뭔가 단단한 것에 막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락도 걸어놓을 수 있을 줄이야.”

강하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확실히 지금까지 너무 쉽게 오긴 했다. 물론 회귀하기 전까지 개고생 했으니 그 정도야 별 거 아닌 보상이었지만.

어쨌든 이건 분명히 어딘가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알아낼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강하진은 아공간에 구슬을 넣었다.

다시 소파에 축 늘어진 강하진의 주위로 마력이 천천히 휘돌았다.

슬슬 부하가 걸렸던 마력기관이 안정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당장 사냥에 나서도 되지만 굳이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 무리하면 금방 또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으니까.

강하진은 그렇게 마력기관을 충분히 안정시킨 다음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가디언스 본부였다.

숙소가 바로 옆에 붙어 있었기에 차를 탈 필요도 없었다. 그냥 걸어서 건물만 갈아타면 된다.

원래는 가디언스 본부 최상층에 거처를 마련했었는데, 최근 옆 건물로 옮겼다.

재앙 이후 가디언스도 양적 성장을 하는 중이었기에 건물의 공간을 미리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본부에 들어간 강하진은 곧장 명인혁이 일하는 곳으로 향했다.

명인혁은 윤경민의 지원을 받아 정보조직을 만들어 이끌기 시작한 이후로, 마치 껍질을 몇 번 벗은 것처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회귀 전보다 더 대단한지도 모른다.

물론 시간은 좀 더 필요하겠지만.

“어? 마스터. 오셨습니까!”

명인혁이 강하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그에게 있어서 강하진은 상사이기도 하지만 은인이라는 의미가 훨씬 더 컸다.

“음? 인수는?”

이 사무실은 명인혁과 명인수가 함께 쓰는 공간이었다.

명인혁을 안정시키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명인수가 허튼짓을 못하도록 감시하고자 하는 목적이 더 컸다.

명인수가 가진 스킬은 자칫하다간 목숨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니까.

한데 그런 명인수가 자리에 없다는 건 그냥 넘겨선 안 될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명인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레벨 올리러 갔습니다.”

“레벨? 그 몸으로?”

명인수는 정보갈취 말고는 변변한 스킬이 없었다. 사냥을 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각성자였다.

“던전 브레이커에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황수영 씨가? 왜?”

“윤경민 이사님이 뭔가를 하신 거 같은데,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윤경민 씨가?”

강하진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윤경민은 강하진이 회귀하기 전에 황수영의 부하였다. 그리고 황수영을 좋아하던 관계이기도 했고.

한데 강하진이 윤경민을 선점했는데도 이렇게 관계가 이어지는 걸 보니 좀 신기했다.

‘그렇다고 빼앗길 생각은 없지만.’

아마 윤경민은 던전 브레이커로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

어쨌든 명인수의 레벨을 올려두면 좋긴 하다. 나중에 그의 스킬이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으니까.

던전 브레이커는 요즘 가장 핫한 길드이고, 최근 인원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명인수 한 명 버스 태워주는 정도는 아마 별 부담도 없을 것이다.

“넌 좀 어때? 일은 할 만해?”

생각을 정리한 강하진이 묻자, 명인혁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재미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아! 안 그래도 보고드릴 사항이 있었습니다.”

강하진이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명인혁이 말을 이었다.

“몇몇 길드에서 묘한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묘한 움직임이라······.”

“태성 길드, 블루드래곤, 명성, 클라우드 그리고 치료사 길드입니다.”

강하진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예전 김지혜가 말해준 바로 그 길드들이다.

“뭘 하고 있는데?”

“우리 길드원들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게 나와 줘야지. 그 길드들 조사는 좀 해봤고?”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리 좋은 길드들은 아닙니다. 원래 불법적인 일을 자주 벌이던 길드들인데, 이번에 큰 피해를 입어서 그걸 보충하겠다고 더 심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피해 많이 입었다고?”

“예. 길드 본부에 던전이 너무 많이 열려서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들 하위 각성자를 착취하는 구조를 가진 길드였기에 열린 던전의 수는 많은데, 정작 제대로 싸울 줄 아는 각성자가 많지 않으니 큰 피해를 입은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 와중에도 우리 길드원들을 조사한다고?”

“네. 그 이유는 아직 조사 중인데, 생각보다 관련된 정보가 없습니다.”

“좀 이상하긴 하네.”

강하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김지혜나 이지영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어도 길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굳이 돈과 인력을 분산할 이유는 없었다.

“좀 더 확인해 봐. 아무래도 뭔가가 있을 거 같으니까.”

“네. 좀 더 신경 써보겠습니다.”

“그렇다고 위험을 감수하진 말고.”

“예.”

명인혁은 기분 좋게 웃었다. 이럴 때마다 예전 정 실장 밑에서 일할 때가 떠올랐다.

만일 그때 계속 거기 있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건 그렇고 요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때?”

“남은 던전을 빨리 정리하자는 여론과 그걸 잠재우려는 자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여론을 잠재운다고? 거대 길드랑 대기업들?”

“네. 그들은 던전을 무작정 닫아 버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거죠.”

“웃기고 있네.”

강하진은 피식 웃었다. 용사냥꾼 길드가 관리하던 던전만 해도 강하진이 닫지 않았으면 결국 터졌을 것이다.

굳이 이번 재앙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네 생각은 어때?”

“무조건 닫아야 합니다.”

“이유는?”

“분명히 더 어려운 던전들이 나타날 겁니다. 미리 주변을 정리해 두지 않으면 중요한 순간 위험한 요소가 됩니다.”

강하진은 명인혁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보고 있네. 아마 그놈들도 조만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될 거야. 앞으로 나타날 던전은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를 테니까.”

“네. 염두에 두고 정보를 수집하겠습니다.”

강하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명인혁을 쳐다봤다.

보고 있다 보니 제영 그룹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회귀 전 팀 가디언스에 함께 있던 자들이 생각났다.

‘그놈들은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특히 회귀 전 최고 레벨이던 제이슨이 제일 궁금했다. 과연 지금 몇 레벨이나 됐을까?

제이슨은 이번 재앙의 영웅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슬슬 스팬서가 활동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스팬서의 가문이 운영하는 DM은 두 번째 재앙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물론 그 전에도 성장세가 상당했다.

A-마켓이 몰락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DM이었으니까.

‘빨리 국내를 정리하고 시선을 외국으로 돌려야겠어.’

강하진은 명인혁과 대충 대화를 마무리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것도하기 싫었다. 그냥 하염없이 거리를 배회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거리로 나서서 5분쯤 걸었을 때, 기억 속에 있는 아주 익숙한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