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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39화 (39/200)
  • < 그래도 재앙은 재앙이다 1 >

    난리가 났다.

    용 사냥꾼 길드가 관리하는 던전이 닫힌 것이다.

    그들이 용의 던전이라 부르는 곳이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곳곳에서 상당한 차질이 빚어졌다.

    용의 던전에서 나오는 용의 부산물은 던전 산업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였다.

    용 사냥꾼 길드가 24시간 풀가동해서 용을 사냥한 것은 아무리 용을 많이 잡아도 그걸 다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는데도 수가 모자라서 난리였다.

    최근 레이드 팀을 더 늘려서 한꺼번에 두 팀이 동시에 사냥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갑자기 던전이 닫히는 바람에 그 프로젝트조차 어그러졌다.

    특히 각성자 전용 무기 제작에 큰 투자를 한 대기업들과 용의 피를 이용해 포션 제작에 성공한 대기업들의 피해가 컸다.

    사업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용의 부산물들은 해외에서 수입하면 되니까.

    용의 던전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수가 많진 않지만 유사 용종이 서식하는 던전이 세계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재를 조달하는 것과 수입하는 건 단가 차이가 너무 컸다.

    용 사냥꾼 길드와 이리저리 얽힌 자들은 사태 해결을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뛰어야 했다.

    그리고 당사자인 용 사냥꾼 길드는 모든 역량을 범인 색출에 투입했다.

    하지만 아무리 길드의 각성자들을 투입해도 강하진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결국 용 사냥꾼 길드는 그동안 쌓아둔 막대한 돈을 이용해서 정보 조직들에 의뢰를 넣었다.

    결과적으로 그 일은 명인혁의 경험을 쌓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사실 강하진이 워낙 흔적 없이 잘 빠져 나와서, 단순한 수색으로 추적하는 건 불가능했다.

    당연히 정보 조직들은 강하진이 도망쳤던 산을 수색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성자와 관련된 다른 정보들을 모아서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모으고자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추적하고 정보를 쌓아가다 보면 결국 원하는 답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평소에는 쓸 엄두도 못 내는 작업이었지만, 용 사냥꾼 길드에서 작정하고 나선 덕분에 시도했다.

    그들도 덕분에 나름 좋은 경험을 쌓게 된 것이다.

    명인혁은 다른 정보 조직들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파고들어 살피고, 흔적 없이 역정보를 흘리는 법을 터득해갔다.

    그리고 강하진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목표로 찍어 놓은 던전들을 하나하나 공략해갔다.

    * * *

    “터졌다!”

    황수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각성자 관리청에서 긴급 문자를 보내왔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근처에 같이 있던 다른 각성자들의 핸드폰에도 똑같은 내용의 문자가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긴급한 상황이니 서둘러 출동해 달라는 문자였다.

    사실 각성자 등록할 때, 각성자의 의무 중에 이런 식의 요청에 응해야 한다는 사항은 없었다.

    오히려 던전 외부에서 각성한 힘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의무 사항이 있었다.

    한데 지금은 그만큼 다급한 상황이었다.

    TV에서 리포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는 경기도 양주로 가는 고속도로 위입니다. 지금 각성자들이 괴물을 막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괴물을 피해 도망치느라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카메라가 각성자와 괴물들의 싸움으로 시선을 이동했다.

    모여 있는 각성자의 수는 거의 백 명에 달했다. 근처에 버스 몇 대가 아무렇게나 서 있는 걸로 봐서 단체로 이동하던 중에 괴물을 마주친 모양이었다.

    각성자들과 싸우는 괴물은 나무귀신이었다.

    몸놀림은 빠르지만 불에 약하고 비교적 공격력도 약해서 상대하기가 결코 어려운 괴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어서 그런지 각성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괴물의 수가 각성자보다 월등히 많았다. 이런 전투를 겪은 경험이 현저히 모자라니 더 힘들었다.

    누가 봐도 각성자들은 우왕좌왕 어리바리했다. 오히려 괴물들이 더 체계적으로 싸우는 듯했다.

    “쯧쯧, 저 멍청이들. 저따위로밖에 못 싸워?”

    황수영이 혀를 찼다. 그러면서 긴급 문자를 다시 쭉 확인했다.

    각성자 관리청에서 보낸 문자는 지금까지 파악한 괴물 출몰 위치를 지도와 연결시킨 것이었다.

    대략적인 지역과 나타난 괴물의 종류를 텍스트로 표시하고 지도 링크를 걸어두는 방식이었다.

    황수영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미리 예상했다. 그래서 언제 무슨 상황이 생기더라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상태였다.

    “자, 다들 가까운 데로 출동하자고. 일단 팀은 항상 하던 대로 유지하고. 오케이?”

    황수영의 말에 다들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문자를 확인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터진 던전이 많지 않았다.

    각성자 관리청에서도 대도시의 던전은 나름 관리했다는 뜻이다.

    “하여튼 이놈들도 진짜 마음에 안 들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왔다는 뜻이잖아.”

    특히 주요 관공서나 재벌 소유의 큰 빌딩, 시설물들 근처에서 사고가 터진 건 제로에 가까웠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 서두르자고.”

    황수영을 비롯한 던전 브레이커의 길드원들과 마침 같이 있던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이제부터 다른 각성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전투를 보여준다는 생각만으로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 * *

    세상에 괴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계에 달한 던전이 곳곳에서 터지며 그 안에 있던 괴물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괴물이 등장한 장소는 대부분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깊은 산속이나 계곡, 혹은 사막이나 무인도 같은 장소들 말이다.

    그곳에 있던 던전은 방치될 수밖에 없었고, 당연하다는 듯 거의 동시에 터져 버렸다.

    밖으로 나온 괴물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들은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괴물은 근처에 인간이 있으면 가장 우선적으로 달려들었다. 인간이 없다면 다른 생명체를 찾아다녔다.

    짐승들도 괴물의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괴물들은 짐승을 잡아먹는 도중이더라도 인간을 발견하면 즉시 달려들었다.

    마치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누군가 풀어놓은 사냥개 같았다.

    그런 일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세계 곳곳에서 군대가 동원되었다.

    괴물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지막지한 물량을 때려 박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끔 괴물들 중에는 인간의 무기로 싸우기 어려운 놈들이 존재했다.

    물리 방어력이 너무 단단해서 물리적 충격을 가하는 현대 무기로는 데미지를 거의 줄 수 없는 괴물들이 존재했다.

    그런 괴물들은 오직 마력을 기반으로 하는 각성자의 스킬로 공격을 해야만 했다.

    던전이 터지면서 각성자의 중요성이 점차 커졌다.

    사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암울한 상황인데, 세상은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암울하지 않았다.

    다들 제법 잘 견뎌내고 있었다.

    일단 새로 각성하는 사람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물론 각성하자마자 강력한 힘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상당히 든든한 힘이 되었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얼마 전 불 같이 일어나서 방치 된 던전의 위험성을 주장하고 던전을 토벌해야 한다던 사람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중심으로 각성자들이 모여들었고, 기존의 거대 길드들을 위협할 만한 새로운 세력이 형성되었다.

    한국의 영웅은 황수영이었다.

    황수영은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강력하게 던전 토벌을 주장했고, 무수한 반대를 뚫고 그걸 관철해냈다.

    또한 그 뒤로 엄청난 수의 던전을 정복하면서 매일 이름을 드날렸다.

    게다가 던전이 터지기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돌아다니며 괴물을 사냥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하면 단연 황수영이었다. 하지만 정작 황수영은 너무 바빠서 그 인기를 실감할 시간도 누릴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황수영은 자신이 그렇게까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하진을 몰랐다면 모를까, 강하진과 함께 하고 있는 이상, 이번 사태를 이렇게나마 잘 틀어막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 황수영은 이제 자신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사람, 강하진과 함께 방금 막 터진 던전의 괴물들을 사냥하는 중이었다.

    “젠장! 이건 사기야!”

    황수영은 온몸의 힘이 끓어오르는 경험을 하며 외쳤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버프가 어떻게 존재한단 말인가.

    “그래서 싫어요?”

    “누가 싫대! 너야? 너야? 아주 그냥 좋아서 미치겠다.”

    황수영은 옆에서 슬쩍 끼어든 김지혜에게 윽박지르듯 말하고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자! 힘 받았으니 써야지!”

    황수영의 탄탄한 허벅지와 살짝 굴곡진 팔 근육이 아름답게 요동쳤다.

    꽈드드드드득!

    강하진의 버프에 괴력 스킬까지 쓰니 앞에 있는 괴물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김지혜와 이지영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언제 봐도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진짜 무시무시한 것은 저 수백 마리나 되는 괴물 무리 한가운데에서 싸우고 있는 강하진이었다.

    저렇게 치열하게 괴물을 물리치는 와중에 버프까지 주고 있으니 감히 흉내도 못 낼 실력이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에서 벼락이 쫙쫙 쏟아져 나와 주변에 있는 다른 괴물들까지 바짝 구워 버렸다.

    저런 식이니 수백 마리나 되는 괴물을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레벨이 몇일까?”

    이지영이 문득 떠오른 궁금증을 중얼거리며 괴물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 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김지혜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지. 어쩌면 세계제일인지도.”

    “그건 좀 오버고.”

    사실 강하진의 레벨이 그렇게까지 높지 않다는 걸 알면 아마 지금 표정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딱 거기까지였다. 두 사람 실력으로는 아직 싸우면서 다른 짓을 할 여유까지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정신없이 싸우다보니 어느새 괴물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쓸모 많은 놈들이니까 다 챙깁시다.”

    강하진의 말에 김지혜와 이지영의 눈에 다크서클이 확 내려왔다.

    두 사람은 어기적거리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괴물 사체를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다.

    강하진이 두 사람에게 지급한 아공간 장비에 괴물을 쑥쑥 넣는 모습을 지켜보던 황수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저한테는 저거 언제 주실 거예요? 공짜로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돈 드린다니까요?”

    “나중에요.”

    강하진의 한결같은 대답에 황수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다른 어떤 것보다 저 아공간 장비가 제일 부러웠다.

    황수영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그 안에 담긴 애처로움과 갈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탁을 들어주고 싶게 만들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강하진은 아예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자, 다음 포인트로 갑시다. 우리가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 얼굴을 보고 말하라고요!”

    지켜보고 있던 김지혜와 이지영이 입을 가리고 조용히 웃었다.

    그때, 강하진의 표정이 갑자기 확 굳었다.

    “왜, 왜 그래요? 이 정도는 평소에도 그냥 하던 장난이잖아요. 그렇게 갑자기 정색하면 무섭······.”

    강하진은 손을 들어 황수영의 말을 끊었다.

    “이상한 느낌 안 들어요?”

    그 물음에 황수영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이상한 느낌이요? 글쎄요, 저는 별로······.”

    황수영이 어깨를 으쓱 했다. 정말로 별반 차이를 못 느끼는 모양이었다.

    강하진은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이건 그동안 강하진이 꾸준히 캐치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새로 살짝 열린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힘이었다.

    마력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힘이 세상을 조용히 뒤덮고 있었다.

    “드디어······ 진짜가 시작되는군.”

    강하진의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10미터쯤 떨어진 곳에 포탈이 확 열렸다.

    던전이 생성된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세상 곳곳에 던전이 우수수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열렸던 모든 던전을 다 합한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던전이.

    시야에 들어온 던전의 수가 거의 스무 개는 되는 듯했다.

    그 경이로운 광경을 바라보는 일행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강하진은 입을 꾹 다문 채 열린 던전들을 슥 둘러봤다.

    비로소 튜토리얼이 끝났다.

    ‘아니, 이게 튜토리얼의 마지막 단계지.’

    강하진의 눈이 차분하게 불타올랐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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