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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38화 (38/200)
  • < 재앙을 맞이할 준비 2 >

    명인혁은 윤경민의 지원을 받아 가디언스의 정보조직을 만들었다.

    과연 자신이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일을 윤경민이 처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정보조직 운영의 절반 정도를 윤경민이 담당했다.

    물론 윤경민은 계속 자신이 그렇게 해줄 생각은 없었다. 차츰차츰 명인혁의 역량을 키우면서 자신이 맡은 부분을 하나씩 넘길 계획이었다.

    명인혁이 정보조직을 만들고 가장 처음 맡은 일은 태산에 대한 조사였다.

    지창기가 이끄는 태산에 대해서는 명인혁도 예전 정 실장 밑에서 일할 때, 여러 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정 실장이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지창기는 야망이 컸다. 고작 암흑가 기반의 작은 회사 하나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지창기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준비한 것이 바로 유동훈이었다.

    아니, 유동훈을 발견하고 나서야 제대로 야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실제로 한동안은 지창기의 계획대로 정확히 이루어졌다.

    강하진이 나타나 모든 것을 박살 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일단 유동훈도 사라졌고, 거성과의 전쟁을 벌이느라 태산의 힘이 대폭 깎여 나갔다.

    거성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었다면 그나마 괜찮았겠지만, 거성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모든 걸 불살랐다. 그러고도 남는 건 강하진이 차지했고.

    그렇게 힘이 대폭 깎인 상태에서 지창기는 또 한 차례의 전쟁에 휩싸여야만 했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다른 조직들이 거의 동시에 달려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들 욕심과 야망으로 똘똘 뭉친 놈들이라서 힘을 합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명인혁은 그런 지창기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했다.

    “아무래도 다시 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암흑가의 전쟁은 슬슬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누구도 이득을 얻지 못하고 다들 잃기만 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교묘하게 전쟁에 개입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명인혁은 그 모든 것을 보고서로 차분히 작성했다. 윤경민과 함께 일하게 된 이후로 모든 것을 자료로 남기는 일에 점점 익숙해졌다.

    암흑가의 전쟁을 살펴보고 그에 관한 정보를 뽑아내는 일을 하면서 명인혁은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 * *

    강하진은 충룡의 유충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충의 약점은 아주 명확했다.

    어딘가에 있는 물렁살이었다.

    충룡의 유충은 온몸이 단단한 비늘로 덮여 있었다. 그 비늘을 뚫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놈을 상대하려면 끊임없이 충격을 줘서 내부에 데미지를 쌓아야 했다.

    그렇게 쌓인 데미지로 체력을 깎아내서 죽이는 것이 현재 용사냥꾼 길드에서 쓰는 정석 사냥법이었다.

    하지만 강하진은 유충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충룡의 유충뿐 아니라, 그 상위 존재인 충룡이나 진짜 용까지 약점은 다들 동일했다.

    저 수많은 비늘 중에서 단단하지 않은 물렁살이 하나 섞여 있었다.

    그 물렁살을 깊이 찌르면 된다.

    물렁살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바로 저 괴물의 두뇌였다.

    그러니 물렁살만 찾아내면 된다. 문제는 물렁살이 고정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끊임없이 비늘을 타고 흐른다. 그리고 간간히 순간이동 하듯 전혀 다른 비늘과 바뀌기도 한다.

    그걸 찾아 정확히 찌르면 된다.

    강하진은 빠르게 충룡의 유충을 향해 달려들었다.

    “키아아악!”

    유충이 온몸을 뒤틀며 꼬리로 강하진을 후려쳤다.

    그 순간 강하진은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숙여 꼬리를 피해냈다.

    뒤이어 유충의 날카로운 발톱이 강하진을 움켜쥐려했다.

    강하진은 그것 역시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러면서 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그 와중에도 강하진의 눈동자는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약점인 물렁살을 찾는 것이다.

    회귀 전에 용종과 싸운 경험이 정말 많았다. 과장 좀 보태서 눈 감고 싸우라고 해도 이길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강하진이 주로 싸우던 용종은 최상위라 할 수 있는 청룡들이었다.

    하물며 아직 제대로 된 용조차 아닌 이무기 유충들을 상대하는 것쯤이야.

    강하진은 순식간에 물렁살을 찾아 검을 내질렀다.

    푸욱!

    전격 속성이 살짝 깃든 검이 부드럽게 물렁살을 파고들었다.

    비늘과 똑같이 생겼지만 모양이 반대로 된 역린이었다. 물론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게 역린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강하진은 압도적인 경험 덕분에 그냥 스쳐지나가듯 봐도 확연히 구분할 수 있었다.

    검에 손상되고, 전격 때문에 신경망조차 망가져 버렸기에 이무기 유충은 더 이상 그 어떤 짓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

    쿠웅!

    허공을 유영하고 있다가 죽었기에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강하진은 서둘러 그것을 팔뚝의 아공간에 담고 다음 사냥감을 찾아 이동했다.

    일단 유충을 만나 전투를 시작하면 아무리 길어도 1분 이내에 끝났다. 그러니 사냥 속도가 얼마나 어마어마하겠는가.

    강하진은 몇 시간 되지 않아 던전 깊숙한 곳에 있는 대부분의 유충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충의 던전은 굉장히 넓었다. 대부분이 평야였고, 군데군데 바위산이 솟아 있었다.

    각 바위산마다 수십 마리의 유충이 서식했고, 평야에는 띄엄띄엄 한 마리씩 살고 있었다.

    용사냥꾼 길드가 사냥하는 건 바로 그 평야에 띄엄띄엄 사는 개체였다.

    강하진은 던전 깊숙한 곳의 괴물을 모두 처리한 다음, 바위산에 서식하는 놈들을 사냥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상대해야 했지만, 별로 문제될 건 없었다.

    어쨌든 이들은 고작 충룡의 유충일 뿐이니까.

    바위산 위에 오르니 저 멀리서 유충 한 마리를 둘러싸고 사냥하고 있는 각성자 무리가 보였다.

    용사냥꾼 길드였다.

    사냥을 시작한 지 제법 되었는지 유충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저렇게 죽이면 역린이 굳어 버린다. 뇌는 녹아버리고. 그러니 아직까지 용종의 약점을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적의 약점은 치열한 전투가 아니면 알아낼 수 없다. 모든 건 간절함에서 오는 법이니까.

    강하진은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아마 저 충룡의 유충이 죽을 무렵이면 이 던전에서의 사냥도 끝날 듯했다.

    * * *

    용사냥꾼에는 레이드 팀이 열 개나 있었다.

    그 열 팀이 돌아가며 던전에서 용을 잡았는데, 한 마리 잡고 부산물을 챙기는 데 평균 여섯 시간 정도 걸렸다.

    하루 네 마리 정도 잡았으니 한 번 레이드를 뛰고 나면 이틀 정도는 쉴 수 있었다.

    현재 용을 사냥하고 있는 건 레이드 3팀이었다.

    사실 레벨이나 스킬을 적절히 분배해서 모든 팀을 평준화 했지만, 그래도 팀장이나 팀웍에 따라 수준이 조금씩 나뉠 수밖에 없었다.

    레이드 3팀은 10개의 레이드 팀 중에서 거의 첫 손에 꼽히는 팀이었다.

    3팀과 비견될 만한 팀은 1팀 정도였다.

    어쨌든 그들은 아주 능숙하게 용을 사냥했다. 적절히 어그로를 관리하면서 용을 제자리에 묶어 둔 채로 순차적으로 원거리 공격을 했다.

    용에게 접근하는 건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다.

    가까이 갔다가 휘두르는 꼬리에라도 맞으면 단숨에 진형이 와해된다.

    지금 이 진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용 사냥은 정말 위험해진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힘 내!”

    3팀장의 외침이 터져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용이 결국 쓰러졌다.

    쿠웅!

    허공을 유영하며 독을 뿜어대던 용이 바닥에 떨어지는 광경은 언제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했다.

    “자! 얼른 소독부터 하자! 오늘은 한 잔 할 테니까 다들 집에 돌아갈 생각 하지 마!”

    다들 하하 웃으며 일단 소독부터 했다. 준비한 분사기를 꺼내 중화액을 뿜어냈다.

    치이이익!

    용의 독과 반응하면 물로 변하는 용액이었다. 용의 피를 정제해서 만드는 물품 중 하나였다.

    꼼꼼하게 소독을 끝낸 다음, 우르르 달라붙어 용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던전에 일반인은 들어올 수 없기에 각성자들이 모든 일을 알아서 할 수밖에 없었다.

    비늘을 모조리 분리해서 챙긴 다음, 용 사냥에 맞춰서 제작한 거대한 혈액팩에 피를 뽑아냈다. 그리고 뼈를 발라내 들고 가기 좋게 따로 질끈 묶었다.

    나머지 장기들도 미리 준비해간 커다란 비닐 포대 안에 잘 분리해서 넣었다.

    용을 모두 해체하고 나면 한 명이 두세 개의 비닐 포대를 들어야 했다.

    아니면 비닐 포대 하나와 뼈 뭉치를 들거나.

    용의 심장, 마석은 팀장이 챙겼다. 그게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니까.

    한 마리 잡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렇게 해체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니 하루에 고작 네 마리 잡는 게 전부인 것 아니겠는가.

    “잊은 거 없이 다 챙겼지?”

    부산물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비는 더 중요했다. 던전에 놓고 가면 그 장비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다음 팀이 챙겨주면 다행이지만, 지나가던 용이 집어 삼키거나 망가뜨리면 새로 구해야 한다.

    3팀장은 다른 팀장들에 비해 굉장히 꼼꼼했다. 마지막까지 모든 걸 확인하고 챙긴 다음에야 명령했다.

    “자, 돌아가자. 입구로 출발!”

    팀장의 명령에 다들 살짝 긴장이 풀어졌다. 항상 이러다보니, 저 말을 들어야 끝났다는 느낌이 왔다.

    그렇게 다들 입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절반쯤 갔을 때, 팀장이 걸음을 멈췄다.

    “음? 좀 이상한 느낌 들지 않아?”

    “무슨 말입니까? 이상한 느낌이라니요?”

    “어? 저도 좀 이상합니다. 뭔가 몸을 훑고 지나갔어요. 너희들은 못 느꼈어?”

    절반 정도는 느꼈고, 나머지 절반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한데 그 순간 방금 전보다 훨씬 강렬한 파동이 몸을 쫙 훑고 지나갔다.

    이번엔 모두 그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저도 느꼈······!”

    아까는 못 느꼈던 자가 이번엔 확실히 달라서 느낌이 왔다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말을 멈췄다.

    갑자기 주변 풍경이 뭉개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던전이······!”

    누군가 던전을 정복한 것이다. 이제 이 던전은 닫힌다.

    어느새 그들은 전부 던전 밖에 서 있었다.

    다들 멍하니 서서 방금 던전으로 들어가는 포탈이 서 있던 곳을 바라봤다.

    “이, 일단 나가자.”

    한 명이 문으로 달려가 철문을 쿵쿵 두드렸다.

    밖에서 약간의 소음이 들리더니 이내 철문이 열렸다.

    건물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 저 사람!”

    3팀장은 분명히 방금 밖으로 누군가 달려 나가는 것을 봤다.

    마치 허공에서 튀어나오듯 갑자기 나타나 밖으로 달려나간 것이다.

    “던전을 닫은 게 저놈이야! 잡아!”

    3팀장의 외침에 그의 팀원들이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내던지다시피 하고 우르르 달려 나갔다.

    이미 밖의 분위기도 난리가 아니었다. 다들 3팀장의 외침을 들었기 때문이다.

    “저쪽이다!”

    어느새 담장을 넘어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다들 우르르 그 뒤를 쫓아갔다.

    각성자들 중 몇몇은 우왕좌왕했다. 근처에 자신들이 타고 온 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쫓을까 망설이는 사이 강하진이 훨씬 멀어졌다.

    “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잡아!”

    강하진이 향하는 곳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산이었다.

    크고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나무가 울창했기에 일단 거기 들어가서 [숨바꼭질]을 적절히 이용하면 여길 빠져나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결국 강하진이 산에 들어갔다.

    그 뒤를 각성자들과 던전을 경비하던 경비대원들이 우르르 쫓아 올라갔다.

    하지만 산에 들어간 강하진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해도 지고 있었다.

    산에서 강하진의 종적을 잃은 각성자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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