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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35화 (35/200)
  • < 가디언스 2 >

    러시아의 각성자인 알렉세이는 얼마 전 던전 사냥을 끝내고 사흘의 휴가를 받아 쉬고 있었다.

    원래 휴가 때마다 남쪽 나라 따뜻한 곳에 가서 쉬다 오는데, 이번에는 휴가가 너무 짧아서 그냥 집에서 뒹굴거렸다.

    침대에 몸을 딱 붙인 채 태블릿 하나 들고 밀렸던 뉴스를 찾아 읽거나, 각성자 전용 커뮤니티에 가서 누군가 쓸데없이 싸질러 놓은 글을 읽으며 낄낄거리곤 했다.

    지금은 각성자 커뮤니티에서 뭐 쓸 만한 정보 없는지 뒤적이는 중이었다.

    그런 알렉세이의 눈에 묘한 글 하나가 보였다.

    막 작성한 게 분명한 글이었는데, 읽으려고 손가락을 대니 삭제된 글이라는 화면이 떴다.

    “어라? 이것 봐라?”

    알렉세이는 분명히 뭔가가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계속 게시판을 새로고침하며 새 글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떴다!”

    이번엔 늦지 않게 글을 터치해서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흥미로 글을 읽던 알렉세이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글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건 일종의 경고문이었다.

    “던전이······ 터진다고?”

    던전이 터지면 그 안을 꽉 채우고 있던 괴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는 글이었다.

    만일 이 글이 사실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래서 지운 거야?”

    자칫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글이었다. 누군가 노림수를 가지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알렉세이는 왠지 이 글이 사실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글이 각성자 커뮤니티 말고 다른 커뮤니티에도 올라올 거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자신이 아는 다양한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하나하나 확인을 해봤다.

    한 마디로 난리가 났다.

    “사냥 하느라 세상에 폭탄이 떨어진 것도 모르고 있었네.”

    누가 하는 건지 모르지만 전 세계의 이름 난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SNS를 통해 사방에 글을 뿌려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을 읽은 사람들 중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또 글을 퍼 날랐다.

    혼자서 하면 힘든 일이지만 일단 여론에 올라타기만 하면 불붙이는 건 간단했다.

    던전에 대한 잠재적 위험성은 언제나 제시되어 오던 주장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딱히 어떤 사건이 없는데다가, 던전 산업이 창출하는 부가 상당한지라 그 주장에 큰 힘이 실리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좀 달랐다.

    방치된 던전에 괴물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나 터지기 일보직전이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각성자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그 중에는 만일 터진다면 피해가 얼마나 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득실거리는 던전도 있었다.

    “이거 계속 이대로 둬도 되는 건가?”

    알렉세이는 지금이라도 방치된 던전의 괴물을 좀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비단 알렉세이뿐만이 아니었다.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름 난 각성자들이 올린 글들이 눈에 띄었다.

    모여서 방치된 던전에 가자는 내용이었다.

    알렉세이는 러시아의 각성자가 올린 글을 찾아봤다. 러시아에도 그런 각성자가 있었다.

    그는 어느새 그 글에 댓글을 달고 있었다.

    * * *

    “설마 이렇게 난리가 날 줄은 몰랐어요.”

    정아연은 태블릿을 조작해 전 세계의 커뮤니티 반응을 살피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걸 시작한 지 불과 사흘인데, 전 세계가 들끓고 있었다. 이런 반응을 원하긴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마치 다들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 A-마켓의 힘에 놀랐습니다.”

    윤경민은 이번에 A-마켓의 힘을 제대로 실감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커뮤니티에 한꺼번에 작업을 하는데, 이쪽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윤경민과 정아연이 앞으로의 일에 대해 몇 가지 의논을 하고 있는 동안 강하진은 열심히 커뮤니티를 둘러보고 있었다.

    강하진이 주목하는 건 주도적으로 나서서 방치된 던전을 정복하겠다고 나서는 각성자들이었다.

    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한데 보다 보니, 좀 이상한 점들이 있었다.

    이 각성자들은 분명히 레벨이 높은 자들이다. 그들이 올린 글에 달린 댓글을 살펴보면 그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상당히 영향력이 높은 각성자들이었다.

    문제는 그 중에 강하진이 아는 각성자가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회귀 전에는 왜 이자들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이번 일을 계기로 튀어 올랐다고 하기에는 그동안 꾸준히 이들이 쌓아온 영향력이 너무 컸다.

    즉, 꾸준히 어떤 성과를 얻어 왔다는 뜻이다. 그걸 감추지도 않았고.

    이번 일을 꾸밀 때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훨씬 격렬한 이유가 바로 이들 때문이었다.

    강하진은 그 명단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기록했다.

    나중에라도 이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준 덕분에 첫 번째 재앙은 제법 가벼운 피해로 넘어갈 수 있을 듯했다.

    아니, 이제는 재앙이라고 부르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내가 일을 벌이지 않았어도 아마 이들 중 누군가가 나섰을지도 모르겠어.’

    생각을 정리한 강하진이 정아연을 보며 물었다.

    “우리나라 반응은 어떻습니까?”

    “제일 문제에요. 기득권 세력이 너무 완강해요.”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직 커뮤니티 쪽으로는 활동하지 않는데, 던전을 정리하겠다고 나선 길드가 있어요.”

    강하진이 눈을 빛냈다. 방금 확인한 다른 나라의 각성자들 같은 자가 한국에도 있었던 것이다.

    “던전 브레이커라는 길드인데, 사람도 제법 모은 모양이더라고요.”

    강하진의 표정이 싹 굳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윤경민을 쳐다봤다.

    윤경민은 흥미로운 눈으로 정아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윤경민이 던전 브레이커와 관계가 생기는 게 지금보다 나중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던전 브레이커는 원래 첫 번째 재앙 이후에 작게 시작한 길드였다.

    한데 그게 벌써 나타난 것이다.

    “길드 마스터가 누굽니까?”

    “황수영이라는 여자인데, 나이는 서른둘, 초기 각성자인데 어쩌면 한국에서 레벨이 제일 높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어요. 물론 이 소문은 기업들 사이에서만 알음알음 도는 소문이고요.”

    맞다. 그 여자다. 윤경민이 끝까지 길드를 떠안게 만들었던 바로 그 여자.

    강하진은 던전 브레이커에 아주 잠깐 있다가 나가서 황수영을 겪을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고집이 정말 장난 아닌 여자였다.

    자신의 실력만으로 던전 브레이커를 일류 길드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넘치던 여자였다.

    사실 황수영의 실력보다는 윤경민의 능력이 훨씬 큰 역할을 했지만, 황수영도 윤경민도 그런 건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강하진은 문득 지금의 윤경민이 황수영과 만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졌다.

    또 사랑에 빠질까? 아니면 좀 더 냉정한 눈으로 황수영을 보게 될까?

    ‘그나저나······ 한국에서 레벨이 제일 높을 거라고? 그럴 리가. 분명 실력이 괜찮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강하진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정아연에게 말했다.

    “혹시 그 사람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예? 강하진 씨가요? 왜요? 영입은 불가능할 텐데요?”

    “영입할 생각 없습니다. 그저 나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니 한 번 얘기나 나눠보고 싶어서요.”

    정아연이 묘한 표정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사실 좀 의외였다.

    강하진은 길드 창설도 윤경민에게 다 맡겨두고 오직 던전에만 매달렸다.

    한데 갑자기 저 여자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내겠다니.

    “일단 연락은 해볼게요. 하지만 확답은 못 드려요. 예측이 잘 안 되는 사람이라서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만날 수 있는 쪽으로 애써 주십시오.”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했지만, 정아연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강하진과 가디언스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이니까.

    “알겠어요. 최대한 노력을 해볼게요.”

    “그럼 전 이만 사냥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이제 명인수도 데리고 갈 테니 준비해 주세요.”

    강하진의 말에 윤경민이 눈을 반짝였다.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명인수, 명인혁은 항상 대기 상태입니다. 의욕도 넘치고요.”

    “잘 됐네요. 그럼 가죠.”

    강하진이 밖으로 나가자, 윤경민과 정아연도 뒤를 따랐다.

    정아연은 앞서가는 강하진의 등을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아는 눈치였어. 대체 무슨 관계지?’

    그녀의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가 쫙 펼쳐졌다.

    * * *

    각성자 관리청장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요즘 터진 일 때문에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다들 왜 이리 난리들인지, 이거 입장 난처해서 죽겠군.”

    “그래도 언제까지 이대로 지켜만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벌써 움직인 길드도 있고······.”

    “그러니까 그 던전 브레이커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문제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지들이 무슨 정의의 사도야?”

    “여론이 너무 안 좋습니다. 일단 조치를 하고 나중에 징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관리청 차장이 조심스럽게 청장을 달랬다.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끄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던전 브레이커에 휩쓸려서 참여한 길드들이 있긴 하지만 너무 규모가 작고 힘이 없어서 제대로 된 던전 사냥이 어려웠다.

    그러니 대기업이나 거대 길드가 나서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들에게 이익을 좀 포기하고 공익에 나서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들이 어디 쉽게 그런 일을 해주겠는가.

    “일단 협조공문부터 돌리게. 여론에 떠밀렸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지.”

    “협조공문으로 되겠습니까?”

    “끄응. 당연히 안 되지. 이번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마석에 붙이는 세금을 절반으로 줄여준다고 하게.”

    차장이 놀란 눈으로 청장을 바라봤다. 세금을 줄이는 문제는 청장이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미리 다 얘기가 끝난 부분이니까 그렇게 처리하게.”

    “아······ 알겠습니다. 바로 공문 돌리겠습니다.”

    차장이 얼른 청장실에서 나갔다.

    청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하여튼 있는 놈들이 더하다니까. 그 작은 손해를 안 보겠다고 세금을 깎아 달라니.”

    이미 대기업과 거대 길드의 대표와 만나 모든 논의를 끝낸 상황이었다.

    그들 역시 여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 와중에 이익을 챙기는 걸 보면 확실히 지독한 놈들이었다.

    그래도 청장은 그들이 별로 괘씸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익을 얻는 만큼 청장에게도 떨어지는 돈이 상당할 테니까.

    * * *

    강하진은 명인혁, 명인수 형제를 데리고 다니며 끊임없이 던전을 정복했다.

    아직 한국에 남은 던전의 수가 너무 많았다.

    다른 나라는 본격적으로 던전을 정복하기 시작해서 그 수가 많이 줄었는데, 한국은 이제야 시작하네 마네, 하는 중이었다.

    아마 제대로 던전을 정복하기 시작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듯했다.

    그러니 그 전에 최대한 던전의 수를 줄여놔야 한다.

    명인혁과 명인수를 굳이 데리고 다닌 이유는 이렇게 쉽고 안전하게 버스를 태워줄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어느 정도 레벨을 올려두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장비를 착용한다고 해도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

    특히 명인수는 가진 스킬이 전투와는 거의 상관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힘들어진다.

    어쨌든 그렇게 열심히 던전을 정복하고 있을 때, 황수영과 약속을 잡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지금 그 황수영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황수영과는 던전 브레이커의 길드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녀가 그걸 강력하게 원했기 때문이다.

    강하진으로서도 그게 나았다. 황수영 말고 다른 길드원들도 볼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예전에 강하진이 잠깐 몸 담았을 때 함께 일했던 각성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미래가 달라졌는데 그들의 능력은 제대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길드 사무실에 도착한 강하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강하진을 기다리고 있던 황수영과 눈이 딱 마주쳤다.

    강하진은 최근 독한 사냥으로 올린 레벨 덕분에 한 층 성장한 엿보기 스킬을 썼다.

    스킬도 한두 가지 더 확인할 수 있고, 무엇보다 메인이 되는 칭호도 하나 확인이 가능했다.

    황수영의 상태창을 확인한 강하진의 눈이 살짝 빛났다. 다름 아닌 그녀의 칭호 때문이었다.

    [칭호 : 가이아의 선택을 받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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