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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30화 (30/200)
  • < 나는 예정된 미래를 거부한다 1 >

    강하진은 2주 동안 미친 듯이 던전을 정복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김지혜 일행이 던전에 몰래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까지 병행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지만, 덕분에 레벨이 많이 올랐다. 김지혜 일행의 레벨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고.

    강하진은 던전을 선택할 때, 모든 기준을 재앙에 뒀다.

    재앙이 일어났을 때, 가장 위험했던 던전부터 순차적으로 정복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던전들은 대부분 없앴고, 그 다음으로 위험했던 던전들도 상당수 정리할 수 있었다.

    모든 위험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강하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머지는 그냥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급한 불은 껐으니 피해가 그렇게까지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말이다.

    김지혜 일행은 레벨이 급격히 올라 늘어난 힘을 소화하느라 휴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강하진은 유동훈으로부터 완성된 장비를 받았다.

    유동훈은 놀랍게도 진흙벌레 더듬이에 담긴 능력을 뽑아내 자신이 만든 장비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강하진은 그 결과로 나온 작은 쇠구슬을 집어 이리저리 살펴봤다.

    “대단하군요.”

    “이게 짝이 되는 장비입니다. 문제는······ 다루는 게 쉽지 않아요. 솔직히 전 100번 시도하면 한 번 성공할까 말까라서······.”

    유동훈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강하진에게 손에 든 장비를 내밀었다.

    “거리 제한이 어디까지인지는 아직 제대로 확인 못해봤습니다. 장비 제작 중에 능력이 증폭된 건 확실한데, 원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몰라서 계산도 못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강하진은 커다란 쇠구슬을 받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쇠구슬 안에 얽혀있는 마력의 흐름이 정말 복잡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력을 그 복잡한 흐름에 살짝 태웠다. 그러자 작은 쇠구슬의 위치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훌륭합니다.”

    기대 이상으로 정교한 성능에 정말 놀랐다.

    하지만 오히려 유동훈이 그걸 보고 더 놀란 모양이었다.

    “만든 저도 잘 못 쓰는 물건인데, 그걸 받자마자 그렇게 능숙하게 다루실 줄은 몰랐습니다.”

    유동훈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그걸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강하진이 씨익 웃으며 턱짓으로 저 멀리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명인혁과 명인수를 가리켰다.

    “쟤들 도와주려고요.”

    그 말을 들은 유동훈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부디 잘 됐으면 좋겠군요.”

    “잘 될 겁니다.”

    강하진이 자신 있게 말했다. 이제 슬슬 주변을 한 번 정리할 때가 되었다.

    * * *

    강하진은 A-마켓으로 향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이 바로 자신을 제영 그룹 정보실 쪽에 드러내는 거였으니까.

    우선 A-마켓에서 연구 진척 상황을 파악했다. 강화석은 강하진에게도 아주 중요한 물건 중 하나였으니까.

    어쩌면 이번에는 회귀 전보다 더 뛰어난 강화석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은밀히 방문했기에 한강 던전을 감시하던 자들 대부분이 강하진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영 그룹 정보실은 아주 확실한 정보를 A-마켓 으로부터 직접 받을 수 있었다.

    제영 그룹 정보실은 오래 전부터 A-마켓에 정보원을 심어뒀다. 또한 그쪽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로비를 통해 상당한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렇게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뚜렷한 법이다. 그래서 이번에 그들이 얻은 정보가, 사실은 강하진이 A-마켓을 담당하는 정아연에게 부탁한 일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제영 그룹은 그들로서는 아주 당연한 선택을 했다.

    휘하의 각성자들 중에서 사람과 싸우는 데 유용한 스킬을 가진 자들을 팀으로 엮어서 보낸 것이다.

    그들은 그동안 이와 비슷한 임무를 수도 없이 처리한 베테랑 중 베테랑이었다.

    제영 그룹이 이럴 때 써먹으려고 정하고 키우는 자들이기도 했다.

    일단 강하진을 잡기 위해 구성한 팀은 모두 다섯의 각성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절대 실패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이건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임무였으니까.

    한강 던전을 나서는 강하진에게 제영 그룹 정보실 산하 정보원들이 따라붙었다.

    강하진은 그들이 아슬아슬하게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조절하며 빠르게 이동했다.

    미리 준비해둔 장소를 향해서.

    * * *

    제영 그룹에서는 이번 작전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작전 성공에 따라오는 대가는 굉장히 크지만, 작전 자체가 대단히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제영 그룹 정보실의 입장은 좀 달랐다.

    정보실이 실질적인 힘을 동원해 목표를 확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위치만 확정하면 끝나는 일인지라 티끌만큼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

    만일 여기서 목표를 못 잡는다면 무조건 정보실의 책임이 된다. 안 그래도 최근 악재가 생겨서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이런 일을 제대로 못하면 정말 피곤하고 암울해진다.

    그래서 그동안 충실히 구축했던 하부 조직을 모조리 동원했다.

    강하진의 움직임이 상당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의 물량으로 빈틈을 메워버린 것이다.

    그리고 강하진 납치 임무를 받은 타격 팀은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은 정보실 직원이었다. 정보실에서 연락을 받아 언제든 강하진을 덮칠 수 있도록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임무였다.

    본격적인 작전 시작은 강하진이 이동을 멈추거나 혹시 이동하더라도 타격이 용이한 상황이 되었을 때였다.

    하지만 강하진의 움직임이나 방향, 위치 선정이 워낙 교묘해서 기회를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자연스럽게 인원이 더 동원되었고, 다들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강하진은 기척을 확 죽이고 [숨바꼭질]을 쓰며 방향을 꺾어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강하진의 움직임을 놓친 자들이 방금 강하진이 있던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들키고 뭐고 없었다. 놓치면 끝장이니까.

    그리고 강하진이 그들 사이를 슥 지나쳐갔다.

    워낙 허를 찌르는 움직임이었기에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아니, 강하진을 발견한 사람이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들 중 몇몇의 주머니에 쇠구슬이 하나씩 들어갔다는 사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골목으로 들어섰다가 다시 강하진을 추적했다. 물론 그 전에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건 잊지 않았다.

    그 뒤로도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 이어졌다.

    추적하는 제영 그룹 정보실 산하 흥신소 직원들은 가끔 강하진과 마주치기도 하고, 또 그들도 모르는 사이 강하진과 동선이 겹치기도 했다.

    강하진은 그렇게 자신을 쫓던 각각의 그룹에 몇 개씩의 쇠구슬을 선물하고 원래 예정했던 목적지로 향했다.

    이 쇠구슬은 위치추적기이지만, 전파가 아닌 마력을 쓰기 때문에 역추적이 불가능하고, 감지장비에도 걸리지 않는다.

    아직은 그걸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강하진 밖에 없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오늘 이런 일을 벌이는 두 가지 목적 중 한 가지를 마무리 한 강하진은 두 번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미리 준비해둔 차를 탔다.

    최근 던전들을 열심히 처리한 덕분에 지금은 252레벨이 되었다.

    강하진이 생각하기에도 지나칠 정도로 레벨업이 빨랐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것이 괴물이 꽉 차서 터지기 일보직전인 던전들만 골라서 정복했다.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중에는 현재 강하진의 레벨로 혼자 처리하기 버거운 던전도 섞여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덕에 레벨이 대폭 올랐다. 역시 모험을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니 쫓아오는 자들의 움직임이 확 줄어들었다.

    운전을 하면서 보니 뒤쪽에서 좀 떨어진 위치에서 쫓아오는 승합차가 있었다.

    ‘저 차인 모양이군.’

    아마 저 차에 탄 각성자들이 강하진을 노리는 놈들인 듯했다.

    강하진이 모는 차가 샛길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비포장도로가 나타났고, 그 뒤로 한참을 이동해서야 멈췄다.

    강하진은 차에서 내려 저 멀리 달려오는 승합차와 그 뒤를 따라오는 승용차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 * *

    김용태는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저 멀리 서 있는 강하진을 노려봤다.

    “이거 봐라? 꼭 우리를 이쪽으로 유인한 모양새인데? 안 그래?”

    각성자나 인간 사냥의 경험이 많다는 건 돌발 상황도 여러 번 겪어봤다는 뜻이다.

    함정으로 유인당해 죽다 살아난 경험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래서 상황이 주는 위화감을 금방 알아차렸다.

    “일단 함정부터 파악해야겠어. 정보실에 연락해서 허수아비들 보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운전수가 그렇게 대답하고는 정보실에 신호를 보냈다. 잠시 후, 버스 몇 대가 달려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허수아비를 미리 준비해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허수아비라는 건 아무 능력도 없는 일반인이었다. 돈에 팔려온 사람들 말이다.

    다들 돈에 영혼과 생명을 파는 자들이라서 아무리 위험하고 불합리하고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일이라도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도 있었고, 나이가 제법 많아 보이는 노인들까지 있었다.

    “준비 됐으면 바로 보내.”

    허수아비라고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이들 전부 손에 길쭉한 칼을 들고 있었으니까.

    그냥 칼이 아니라 각성자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전용 무기였다.

    물론 좋은 무기는 아니었다. 오늘 쓰고 나면 아마 망가질 것이다. 또한 아주 큰 타격을 줄 수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가 몰려가 칼을 휘두르면 상대하기가 굉장히 난감하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돈이 만들어낸 독기와 광기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눈빛만 봐도 지릴 정도로 지독한 자들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각성자라고 해도 아차 하는 순간 당할 수도 있다.

    “많은 거 안 바란다. 그냥 함정만 꺼내게 해.”

    이들에게 원하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김용태는 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전투 준비. 함정이 드러나든 안 드러나든 허수아비가 교전 시작하면 움직인다.”

    허수아비들이 강하진을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그대로 강하진을 뒤덮어 버렸다.

    “가자!”

    김용태는 팀원들과 함께 승합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허수아비들이 악을 쓰며 칼을 휘두르는 곳을 향해 이동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였다. 어떤 함정이 있는지 확인해야하기에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편이 나았다.

    “함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팀원 중 한 명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김용태는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김용태는 허수아비들이 난리치는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했는데도 발동하지 않았다면 일단 함정은 없다고 봐야 한다.

    “다들 물러나!”

    김용태는 그렇게 소리치며 돌진할 준비를 했다. 허수아비들은 김용태의 명령을 확실히 듣기 위해 무선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당연히 우르르 물러나야 하는데, 허수아비들은 여전히 난폭하게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뭣들 하는 거야! 물러나라는 말 안 들려!”

    하지만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용태는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는 팀원들을 보며 외쳤다.

    “뭔가 잘못됐다! 후퇴해!”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허수아비들이 일제히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허수아비들의 눈이 살기로 번득였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죽이고 병신으로 만든 사람이 수두룩했다. 그리고 지금과 비슷한 경험도 많았다. 강력한 각성자에게 덤빈 경험 말이다.

    그렇게 쌓인 살기가 고스란히 폭발하고 있었다.

    “어설픈 허수아비 새끼들이······!”

    김용태의 팀은 일제히 허수아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빠르고 간결하게 칼을 휘둘렀다.

    스사사사사삭!

    허수아비들이 피를 뿌리며 우수수 쓰러졌다.

    피의 광기에 젖어서 허수아비들을 썰던 김용태는 갑자기 가슴 어림이 뜨끔해서 흠칫 놀랐다.

    땅이 자신을 향해 와락 달려들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쓰러지고 있었으니까.

    쿵!

    쓰러진 김용태의 시야에 바닥에 엎어진 팀원들과 피투성이가 된 채, 여전히 광기에 젖어 사방으로 칼을 휘두르고 있는 허수아비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제야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쉽게 흥분하는 놈이 아닌데······.’

    그게 김용태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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