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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29화 (29/200)
  • < 미묘한 변화 >

    강하진은 김지혜 일행과 함께 던전에 들어와 있었다.

    이 던전 역시 방치되다시피 한 던전이었다.

    김지혜는 암시장을 통해 이 던전에 들어오자고 했다. 하지만 강하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원래 던전에 들어가려면 안에 들어가는 각성자 전원이 각각 신고를 해야 한다.

    암시장은 그 과정을 자신들이 떠안을 수 있었다. 그러니 설사 암시장이 관리하지 않는 던전이라 해도 돈을 좀 쓰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가능했다.

    특히 이곳처럼 비인기 던전인 경우에는 훨씬 쉬웠다.

    그래서 김지혜는 좀 이해가 안 갔다.

    “사실 지금처럼 하는 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암시장도 잘 이용하기만 하면 정말 괜찮아요.”

    강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전 이게 더 편합니다.”

    강하진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지혜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서, 설마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던전에 들어간 적이 한 번도 없는 건가요?”

    강하진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자, 김지혜는 물론이고 함께 있던 여자들까지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김지혜는 질문을 하면서 스스로 납득해 버렸다. 어떻게 가능한 건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정말······ 대단하시네요.”

    “다들 조만간 이 정도는 할 겁니다.”

    강하진이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하자 다들 그럴 리 없다고 웃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슬그머니 기대감이 들어왔다.

    “자, 쓸데없는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던전부터 공략하죠. 시간이 없습니다.”

    강하진의 말에 다들 눈을 빛내며 집중했다.

    “일단······ 괴물부터 찾읍시다.”

    강하진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무리 지어 어슬렁거리고 있는 괴물을 발견했다.

    그 괴물들을 보며 강하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수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이 던전은 첫 번째 재앙 때 가장 먼저 터지는 던전 중 하나였다.

    그러니 어느 정도 괴물이 쌓여 있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왠지 강하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괴물의 수가 좀 많았다.

    ‘저 정도라면 2년이나 안 터지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길어야 6개월, 짧으면 세 달 정도면 터질 것 같았다.

    괴물의 수가 그 정도로 많았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세요. 정찰 좀 하고 오겠습니다.”

    강하진은 좀 더 확실하게 판단하기 위해 던전을 좀 더 넓게 정찰해보기로 했다.

    잠시 후, 대략적인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강하진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돌아보니 여기서 보는 것보다 괴물이 더 많았다.

    이대로라면 6개월까지 버티는 건 무리였다.

    ‘세 달도 못 버틸 거 같은데?’

    생각해보면 모기 던전이나 진흙괴물 던전도 괴물의 수가 제법 많았다.

    지금 이 던전처럼 위화감을 강하게 느끼진 못했지만 말이다.

    ‘회귀 전과 상황이 달라졌어.’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첫 번째 재앙의 시기가 앞당겨진 것이다.

    잠깐 당황했지만, 강하진은 이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했다.

    ‘달라질 건 없어. 조금 서두르면 되니까.’

    여유가 사라졌다는 것 말고는 달라질 게 없었다. 어차피 하려던 일이었으니까.

    다만 한국 말고 다른 나라의 던전을 미리 공략하는 건 어쩌면 쉽지 않을 수도 있었다.

    ‘급한 것부터 처리하자. 차근차근.’

    강하진은 상념을 접고 김지혜 일행을 쳐다봤다.

    김지혜는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요? 뭐가 잘못됐나요?”

    강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일단 저 괴물의 약점부터 얘기해보죠.”

    [물선인장]

    [레벨 : 102]

    [체력 : 3462, 마력 : 124]

    [가시총(A)]

    강하진은 엿보기 스킬을 통해 괴물의 정보를 확인했다. 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인장에 팔다리가 난 것처럼 생겼는데, 눈코입이 보이지 않아서 좀 기괴했다.

    “일단 저놈은 불에 강하니 불 종류 공격은 금물입니다. 몸에 달린 가시를 쏘는데, 약한 독이 묻어 있으니까 맞으면 곤란합니다.”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왠지 굉장히 까다로운 괴물인 것 같아서였다.

    “대신 체력이 낮아서 금방 죽습니다. 다만, 평범한 물리 공격으로는 데미지를 줄 수 없습니다.”

    “그, 그럼요?”

    “공격에 마력을 담아야 합니다. 다들 할 수 있죠?”

    강하진이 그렇게 물으며 일행을 슥 둘러봤다. 다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각성자라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겠지만, 저들은 강하진의 영향을 받은 각성자였다.

    평소에도 마력을 다루는 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바짝 붙으면 가시를 안 쏘니까 근접 전투를 하면 됩니다. 혹시 가시에 찔리면 빠르게 저놈의 체액을 발라야 합니다. 아니면 몸이 둔해집니다.”

    “그럼 첫 번째 사냥 때, 체액을 좀 담아두면 좋겠네요.”

    강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발상입니다. 제가 알려드리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다양한 상황을 직접 겪어보고 많은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합니다.”

    “네. 그런데······.”

    김지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하진씨는 같이 사냥 안 하시는 건가요? 왠지 말씀하시는 게 그럴 것 같아서······.”

    “맞습니다. 전 다른 던전에 갈 겁니다. 그러니 여길 빨리 정리하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던전은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김지혜는 좀 불안했지만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걱정 마시고 얼른 다녀오세요. 우리도 잘 할 수 있으니까요.”

    강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던전에서 나가 버렸다.

    김지혜와 그녀의 일행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정말로 가버렸네.”

    “냉정해.”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김지혜에게 모였다. 김지혜가 흠칫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왜, 왜 그래?”

    대표로 나서려던 이지영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아. 아니에요. 얼른 사냥부터 하죠. 언니, 방어막 걸어줘요.”

    김지혜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방어막 스킬을 썼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방어막을 둘러주는 스킬이었다.

    투자한 마력에 비해 방어력이 강한 스킬이었다. 단점은 자신에게 쓸 수 없다는 거였고.

    방어막까지 두른 이지영은 앞장서서 물선인장을 향해 달려갔다.

    “레벨업이다!”

    총 다섯 명의 여자로 이루어진 각성자가 물선인장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 * *

    강하진은 서둘러 자신이 가려던 던전으로 향했다.

    이번 던전도 예상보다 괴물이 많은지 반드시 확인이 필요했다.

    만일 그렇다면 회귀 전과 달라진 게 또 뭐가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

    그래야 더 면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튜토리얼이 너무 빨리 끝나는데? 이래서 각성자들이 버틸 수 있을까?’

    첫 번째 재앙은 본격적인 던전 시대로 가는 출발선이었다.

    회귀 전의 각성자들은 입을 모아서 재앙 이전의 던전들은 튜토리얼이라고 말했다.

    재앙 이후에 나오는 던전은 지금처럼 각성자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각성자의 평균 수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지막지한 던전도 심심찮게 나타나곤 한다.

    그 던전이 터지면 말 그대로 또 한 번의 재앙이 내리는 셈이었다.

    그러니 던전과의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고.

    서둘러 이동한 강하진은 던전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방치된 던전이었기에 하던 대로 감시카메라를 막아놓고 [숨바꼭질]을 이용해 직원의 시선을 피해 던전으로 들어갔다.

    던전에 들어간 강하진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고작 10미터쯤 떨어진 곳에 괴물이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나 우글거렸다.

    [얼음개미]

    [레벨 : 187]

    [체력 : 68921, 마력 : 472]

    [얼음숨결(A)]

    반사적으로 엿보기 스킬로 괴물의 레벨과 능력을 확인한 강하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얼음개미들을 쳐다봤다.

    얼음개미들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이제 터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뜻이다.

    아마 이 던전은 아까 갔던 물선인장 던전보다 더 빨리 터질 것이 분명하다.

    ‘아무래도 예상이 맞는 모양이야.’

    회귀 전보다 진행이 훨씬 빠르다. 아무래도 서두르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가만,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첫 번째 재앙이 터질 즈음 각성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났다.

    또한 첫 번째 재앙을 겪으면서 크게 성장하는 각성자도 많았다.

    나중에 이름을 날리던 각성자는 대부분 첫 번째 재앙에서 확연히 성장했다.

    과연 그들이 2년 먼저 터지는 재앙을 버틸 수 있을까?

    강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아. 아직 각성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강하진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흥분하면 안 된다. 흥분하면 서두르게 되고, 그건 실수를 낳는다.

    일단 지금은 던전부터 처리해야 한다.

    강하진은 얼음개미 무리를 향해 달려갔다. 약점을 훤히 꿰고 있으니 위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강하진의 양손에서 전격이 번득였다.

    * * *

    각성자 관리청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제법 많은 던전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중요한 던전이 사라지진 않아서 문제가 외부로 확대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은 채 일이 커질 때까지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었다.

    관리청 대회의실에 주요 인물들이 모여서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한데 그 중에 관리청 소속 인물은 청장과 차장 두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그동안 각성자 관리청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 오고 있는 대기업이나 거대 길드의 책임자들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나눠드린 보고서에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은 관리청 차장이었다.

    “일단 사라진 던전의 수는 총 12개 입니다.”

    “생각보다 수가 많지는 않군요.”

    현재 한국에 있는 총 던전의 수는 178개였다. 물론 관리청에 기록된 던전의 수가 그렇고, 실제로는 더 많은 던전이 존재한다.

    그러니 12개라는 숫자만 놓고 보면 그렇게 여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차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고작 2주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중요도가 떨어져서 방치하다시피 한 던전이긴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언제 중요한 던전에 문제가 생길지 장담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건 그렇지요.”

    그래서 다들 이렇게 모인 것이다. 어떤 문제로 번질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일단 사라진 던전을 감시하던 카메라에 외부 조작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카메라를 조작해서 증거를 없애고 던전에 들어가 그걸 없앴다는 말인데······ 그럼 거길 관리하던 직원은 어떻게 됐습니까? 설마 사고라도 당한 겁니까?”

    차장은 순간 말문이 막혀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직원들은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그 말에 회의에 참석한 자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직원의 근무 기강을 바로잡으면 해결될 문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차장 역시 그 분위기를 읽었다. 그래서 얼른 준비한 말을 쏟아냈다.

    “문제는 마지막에 사라진 던전의 관리자입니다. 그자가 이상한 말을 하더군요. 눈앞에서 그냥 던전이 사라졌다고.”

    “그러니까······ 충실히 근무했는데도 당했다는 겁니까?”

    “그 직원의 주장은 그렇습니다.”

    차장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분위기를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그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눈앞에서 던전이 사라졌는데도, 그 던전을 정복한 각성자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아니면 정말로 던전이 그냥 사라졌거나.”

    하지만 누구도 후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차라리 특수한 스킬을 장착한 각성자의 짓이라고 여기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었다.

    “사실 지금 관리청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의 수가 그렇게 많은데 던전마다 직원을 파견하는 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24시간 감시해야 하니 한 명 보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고.

    “이걸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면 인력을 최소 지금의 세 배는 늘려야 합니다. 시설과 장비에 대한 투자도 훨씬 많이 해야 합니다.”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는 시선으로 차장을 바라봤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합니다.”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던전을 버리겠다는 겁니까? 말이 굉장히 많아질 텐데요?”

    “일단 중소 길드에 던전을 공개하려고 합니다.”

    다들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던전이라고 해도 나중에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가상의 이권이라고 하지만, 그걸 나눠먹는 건 이곳에 모인 자들이 속한 조직에서 결코 용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암시장 쪽에도 적당히 물량을 넘겨줄 생각입니다.”

    대번에 반대가 나왔다.

    “안 됩니다! 암시장이 맡는 던전이 늘어나면 시장이 어지러워집니다! 난장판이 될 게 분명해요!”

    차장이 담담히 말했다.

    “그럼 그 부분을 여러분들께서 맡아주시면 되겠군요. 가능하시겠습니까?”

    회의가 점점 과열되고 길어졌다. 하지만 어쨌든 결론을 도출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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