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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25화 (25/200)
  • < 최고가 될 사람 >

    강하진은 던전 한복판에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한바탕 사냥을 해서 근처에 괴물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난이도가 제법 있는 던전이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다.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던전들의 난이도는 굉장히 쉬운 편이었다.

    물론 100%는 아니고, 그 와중에도 어려운 던전이 섞여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쉽다고 보면 된다.

    본격적인 던전이 등장하려면 아직 1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때부터는 아무리 강하진이 강해도 혼자서 던전에 들어가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니 그 전에 최대한 레벨을 올리고 강해져야지.’

    강해지기 가장 좋은 방법은 레벨을 올리는 것이다. 레벨이 올라가면 각종 능력치가 올라가고 스킬의 숙련도도 올라가며, 가끔은 스킬이나 칭호에 붙어 있던 봉인이 풀리기도 한다.

    레벨업의 첫 번째 고비는 50레벨이다. 50레벨부터 레벨업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50레벨까지가 너무 쉬워서 그런 것이고 실제로는 할 만 했다.

    100레벨에 또 한 번 벽을 만나는데, 50레벨의 벽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어려웠다.

    아무리 사냥을 해도 레벨이 찔끔찔끔 오르니 레벨업에 대한 흥미를 금세 잃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지옥의 시작은 200레벨 부터였다.

    아무리 어렵네 어쩌네 해도 200레벨까지는 그래도 올릴 만하다.

    하지만 200레벨이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말 그대로 지옥의 구간이 시작된다.

    그 지옥의 구간을 빨리 넘기는 방법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당장은 잘 알려지지 않은 지식이지만, 강하진이 회귀하기 직전의 미래에서는 굉장히 흔한 얘기였다.

    위험한 괴물과 치열하게 싸울수록 레벨업이 쉬워진다.

    즉, 각성자의 레벨보다 월등히 등급이 높은 괴물과 싸우면 성장이 빠르다는 뜻이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였다.

    어떤 괴물은 등급이 높은데 사냥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런 괴물들만 골라서 사냥하면 안전하고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다.

    강하진이 회귀하기 전에 그런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성과가 좋지는 않았다. 괴물의 등급을 산정하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까다로웠으니까.

    강하진도 레벨업을 위해 위험한 괴물을 상대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방법이 생겼다.

    200레벨이 되는 것과 동시에.

    강하진은 충분히 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직 괴물이 남은 방향을 향해 이동했다.

    현재 강하진이 들고 있는 무기는 칼두꺼비의 칼과 강철물소의 눈알을 재료로 만든 검이었다.

    유동훈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만든 명품 장비였다.

    이걸 시작으로 칼개구리의 칼과 강철물소의 눈알을 이용해 판매용 검을 양산할 계획이었다.

    강하진은 검을 들고 빠르게 이동했다. 어차피 탐색은 아까 다 끝났기에 사냥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곧 괴물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강하진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괴물을 향해 엿보기 스킬을 썼다.

    [불 고릴라]

    [레벨 : 202]

    [생명력 : 12458, 마력 : 782]

    [불주먹(A), 열기방출(P)]

    괴물의 정보가 눈앞에 떠올랐다. 200레벨에 도달함과 동시에 엿보기 스킬이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불 고릴라의 레벨은 190에서 210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니 지금 강하진의 수준과 아주 딱 맞아 떨어지는 괴물이었다.

    “우워어어어!”

    불 고릴라 한 마리가 강하진을 발견하고 괴성을 내질렀다.

    화르륵!

    고릴라의 주먹에 불이 확 타올랐다.

    쿵쿵쿵쿵쿵!

    고릴라가 강하진을 향해 돌진했다.

    후웅!

    고릴라의 주먹이 강하진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가까이 다가오니 뜨거운 열기가 확 밀려왔다.

    화르륵!

    고릴라의 주먹을 휘감았던 불길이 확 퍼지더니 강하진을 덮쳤다.

    강하진은 그 불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싸악!

    검에서 냉기가 흘러나와 불길을 둘로 갈라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고릴라의 목도 함께 날려 버렸다.

    쿠웅!

    불 고릴라가 허무하게 쓰러졌다.

    200레벨이 되면서 두 번째로 달라진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무기에도 속성을 덧씌울 수 있었다.

    아까 까지만 해도 불 고릴라 하나 잡으려면 온몸이 흙투성이가 될 때까지 구르면서 치열하게 싸웠어야 했다.

    한데 200레벨이 되자마자 이렇게 간단히 불 고릴라를 처리해 버렸다.

    이 정도면 한 번에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도 가능할 듯했다.

    강하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200레벨이라······.”

    회귀 전에 200레벨에 올랐던 것이 언제쯤인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강하진은 처음 각성자 등록을 할 때부터 유명인사가 되었다. 당시에도 버퍼는 굉장히 귀했다. 한데 버퍼와 힐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인재가 나타났으니 당연했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지만, 사실 강하진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제영 그룹이 후원하는 길드인 스카이라인 길드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게 당시 제영 그룹이 벌인 협상의 결과였으니까.

    조원영을 만난 것도 그때였다. 당시 조원영은 강하진 덕분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재능과 스킬이 뛰어났기에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그 뒤로 변화를 원한다는 이유로 스카이라인 길드에서 나가 몇몇 길드를 전전했다. 하지만 스카이라인에서의 생활이 가장 길었다.

    뭐, 나중에는 결국 조원영이 있는 팀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긴 했지만.

    어쨌든 당시 강하진은 스카이라인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열심히 레벨을 올리고 성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200레벨을 넘기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첫 번째 재앙이 끝난 다음이었나?”

    스카이라인 길드에서 2년을 굴렀는데도 레벨은 100 중후반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굉장히 빠른 속도라고 다들 놀랐었다.

    그리고 첫 번째 재앙이 터졌다.

    세상에 갑자기 던전들이 많이 생겨났고, 기존 던전 중 포화 상태를 넘어선 것들이 터진 것이다.

    순차적으로 터진 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터졌기에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

    군대가 동원되었고, 각성자들도 몰려드는 괴물과의 전쟁에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각성자들은 목숨을 건 전투에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그걸 바탕으로 강하진은 첫 번째 재앙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레벨이 되었다.

    사냥 방식과 레벨업에 대한 연구는 그때부터 꾸준히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각성자들이 갑자기 레벨업 속도가 늘어나거나 하진 않았다.

    레벨을 빨리 올리기 위해 지나친 위험을 감수하는 각성자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지금 강하진은 전무후무한 속도로 레벨을 올리는 중이었다.

    ‘그래도······ 슬슬 정체기가 한 번쯤 올 때가 되었지.’

    그리고 그 정체기를 부수는 데 엿보기 스킬이 정말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레벨업 외에 엿보기 스킬을 발전시킬 방법이 없는지 계속 확인해야겠어.’

    강하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저 멀리 보이는 불 고릴라를 향해 이동했다.

    이제 슬슬 이 던전도 끝낼 때가 되었다.

    * * *

    강하진은 태산과 거성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 그들이 가진 던전을 모두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레벨도 상당히 많이 올렸고, 마석을 비롯해 괴물의 부산물이나 다양한 아이템까지 잔뜩 얻었다.

    태산과 거성의 전쟁은 거의 막바지였다.

    역시나 거성은 태산의 벽을 넘지 못했고, 몰락의 끝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도 주명우는 틈 날 때마다 강하진에게 던전 정보를 보내주었다.

    이제 더 이상 돈을 보내주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보내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실 주명우는 암시장을 끌어들여서 이 전쟁을 좀 더 키워보려고 한 모양인데, 지창기가 무슨 수를 썼는지 그게 무산되어 버렸다.

    주명우가 처음 강하진의 손을 잡았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삶을 포기한 걸로 보였다.

    그는 강하진의 도움을 원치 않았다.

    강하진은 주명우와의 마지막 만남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발버둥입니다. 전 이렇게 죽는 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생기가 넘쳤다. 그리고 뭔가 초연했다. 적어도 강하진이 보기에는 그랬다.

    강하진은 이제 태산과 거성의 전쟁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게 주명우가 원하는 바이기도 했다.

    이것만으로 태산을 무너뜨릴 수는 없겠지만, 향후 지창기의 행보에 큰 지장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슬슬 정보사냥꾼을 섭외해야겠어.’

    사실 회귀했을 때만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여러 일을 진행할수록 정보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다.

    회귀 전에도 정보에 대해 유명한 조직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 조직들은 대부분 대기업이나 거대 길드, 혹은 유명한 가문에 소속되어 있거나 그들과 전문적으로 거래했다.

    그런 조직을 휘하에 두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지금의 강하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큰 조직을 선택할 필요도 없었다. 강하진의 기억 속에는 그 어떤 정보조직보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던 자들의 목록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목록의 가장 위에 있는 이름이 떠올랐다.

    ‘명인혁.’

    사실 명인혁은 강하진이 회귀할 무렵에는 세상에 없었다. 그 전에 죽었으니까.

    그가 실제로 정보 사냥꾼 일을 한 기간은 고작 3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3년 동안 그가 보여준 성과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강하진은 명인혁이 죽은 뒤에야 그의 존재를 알았고, 호기심으로 그에 대한 조사를 했다.

    그리고 모든 조사 결과를 토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당시 최고의 정보사냥꾼은 바로 명인혁이 되었을 거라고.

    만일 명인혁이 혼자 활동하지 않고 조직을 이뤘다면 그가 죽을 일도 없었을 테고, 그랬다면 정보조직의 구도가 아예 달라졌을 것이다.

    명인혁은 정보 수집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최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정보 수집에 특화된 스킬을 보유한 각성자였다.

    흥미를 가지고 조사를 했기 때문에 그의 과거 행적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 시기쯤 아마······.”

    * * *

    명인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과로가 분명했다. 벌써 며칠 째 잠도 못 자고 이 짓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 멀었냐!”

    소파에 눕듯이 앉아 발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정 실장이 소리쳤다.

    “다 끝나갑니다.”

    명인혁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이를 악물고 일에 집중했다.

    각성까지 해놓고 남들 뒷조사나 하고 있으려니 처량하긴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사실 이직을 고려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쪽 바닥은 한 다리만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정 실장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명인혁은 그저 정 실장이 갖다 주는 일을 시키는 대로 처리하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안 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네. 일이 많아도 너무 많잖아.’

    명인혁은 그렇게 일하고 늘어진 파김치가 되어서 퇴근했다.

    집은 사무실로 쓰는 3층 건물 옥상에 마련된 옥탑방이었다.

    컨테이너 박스를 옥상에 올려서 집으로 꾸민 건데, 솔직히 죽지 못해 사는 정도였다.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정 실장이 반대하니까.

    사무실을 나서는 명인혁의 뒤통수로 정 실장의 말이 꽂혔다.

    “거기 책상 위에 동생 약 갖다 놨다. 씨발, 더럽게 구하기 힘들고 비싸.”

    명인혁이 순간 멈칫했다. 그는 어금니를 꽉 물고는 문 옆에 있는 책상 위에 있는 하얀 약봉지를 잠시 노려봤다.

    이게 바로 명인혁을 도망가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였다.

    명인혁은 약봉지를 휙 낚아채듯 들고는 사무실에서 나갔다.

    “쯧쯧, 좀 고분고분해졌나 싶더니 또 저러네.”

    정 실장의 눈에 새파란 살기가 맺혔다가 사라졌다.

    그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스마트폰을 보며 게임에 집중했다.

    그리고 명인혁은 문밖에 서서 정 실장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고스란히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힘없이 계단을 올랐다.

    이 건물은 그의 직장이기도 하지만, 감옥이기도 했다. 함부로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었으니까.

    옥상에 도착한 명인혁은 구석에 놓인 컨테이너 박스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명인혁?”

    명인혁은 등줄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는 천천히 돌아서서 자신을 부른 자가 누군지 확인했다.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강하진이었다.

    “누구십니까?”

    “손님.”

    “손님? 정 실장이 보내서 오신 겁니까?”

    명인혁은 그렇게 묻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을 직접 이쪽으로 보내는 일은 없는데?”

    “정 실장인지 뭔지 모르니까 일단 들어가자고. 아, 참.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말 놔도 되지?”

    “······ 이미 놓으신 것 같습니다만.”

    “사소한 건 넘어가자고. 자자, 일단 들어가자. 건물 입구 막아놔서 저기서 뛰어내리느라 발목이 시큰거리니까.”

    명인혁은 강하진이 힐끗 쳐다본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헛웃음을 흘렸다.

    거기에는 15층짜리 빌딩이 서 있었으니까.

    어쨌든 이상하게도 경계심이 생기지 않았다. 어쩌면 삶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들어오시죠.”

    강하진은 빙긋 웃으며 명인혁을 따라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보자마자 엿보기 스킬로 명인혁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최근 숙련도가 늘어서 메인이 되는 스킬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역시나 최고의 정보사냥꾼답게 좋은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안으로 따라 들어가니 명인혁의 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형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엿보기 스킬을 쓴 강하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진짜 최고가 될 사람이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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