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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24화 (24/200)
  • < 강화석 2 >

    정아연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민에 잠겼다. 방금 떠난 강하진 때문이었다.

    “A-마켓에서 자체적으로 연구를 하라고?”

    사실 좀 어이가 없긴 했다. 레모노의 송곳니는 원래 A-마켓이 갖고 있었다.

    그걸 사다가 막대한 이익을 붙여 되팔면서 또 연구는 이쪽에서 하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충분히 합리적이고 괜찮은 의견이었다. 또한 강하진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일이기도 했고.

    강하진이 레모노의 송곳니를 몽땅 사재기 하지 않았다면 A-마켓은 약간의 이익을 붙여서 싹 팔아치웠을 테니까.

    “가능성은 충분해.”

    정아연에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하지만 결정까지의 과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중에 그녀에게 큰 성과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 레모노의 송곳니에 대한 연구는 아직 궤도에 오르지 않았다.

    기본적인 정보는 퍼질 대로 퍼진 상황이고, 지난번에 구입한 천 개의 송곳니는 모든 연구소에 골고루 판매했다.

    이 상황에서 A-마켓이 자체적으로 연구소를 세우고 그들을 한데 모아 연구를 진행한다면 아마 굉장히 빠른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강하진이 얻는 건 뭐지?’

    그 조건을 수락한다면 강하진은 A-마켓과 독점 거래를 하겠다고 했다.

    그 얘기는 협상을 잘 하면 가격 폭등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정아연은 고개를 휘휘 저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지금 중요한 건 이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다.

    그녀는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강하진이 A-마켓에서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사내가 얼른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성원 그룹 던전 사업팀에서 나왔습니다. 잠시만 시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강하진이 채 명함을 받기도 전에 약간 늦게 도착한 자들이 앞 다퉈 명함을 내밀었다.

    “하늘 길드입니다. 저희에게도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하 그룹 던전 사업팀입니다! 제 명함도 받아 주십시오!”

    갑자기 명함과 함께 밀려드는 사람들의 기세에 강하진은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일단 자리를 옮기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갑니다.”

    그제야 몰려든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성원 그룹에서 갑자기 달려든 바람에 우르르 휩쓸리는 바람에 냉정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길이 막혀 짜증이 난 사람들도 잔뜩 보였다.

    “아······ 일단 저쪽으로 가시죠. 저쪽에 제법 큰 찻집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서서 안내를 자처하자, 강하진이 그를 따라갔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우르르 움직였다.

    제법 규모가 큰 찻집인데 상당히 넓은 회의실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넓은 회의실에도 모든 사람들이 전부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였으니까.

    그래서 각 조직의 대표 한 명씩만 회의실에 자리했다. 그래도 회의실이 꽉 차서 몇몇은 서 있어야만 했다.

    강하진은 상석에 앉아 그들을 슥 둘러봤다.

    놀랍게도 다들 각성자였다. 물론 레벨은 그리 높지 않았다. 여기서 제일 레벨이 높은 사람이 81레벨이었으니까.

    그 81레벨의 남자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회의실에 들어오기 직전에 그들 사이의 일은 나중에 조율하기로 입을 맞췄다.

    “우리가 여기서 강하진 씨를 기다린 건, 짐작하시겠지만 레모노의 송곳니 때문입니다. 그걸 구입하고 싶습니다.”

    강하진이 대답하지 않고 그를 쳐다보자, 그가 얼른 말을 이었다.

    “가격은 충분히 만족할 만큼 지불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전량을 팔아주십시오.”

    회의실에 모인 모든 사람의 시선이 강하진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의 눈빛은 심상치 않았다.

    “A-마켓에서 개당 만 달러를 부르더군요.”

    강하진의 말이 떨어진 순간 다들 작게 욕설을 토해냈다.

    “미친!”

    “이 새끼들이 아주 작정을 했네.”

    그들이 생각한 가격은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그들은 충분히 가능할 거라 여겼었다. 방금 강하진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믿을 수가 없군요.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입니다.”

    강하진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날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입을 다물었다. 이제 강하진을 만족시키려면 개당 만 달러 이상을 불러야 한다.

    ‘A-마켓이 욕심을 부풀려놨어. 여기서 저놈을 만족시키려면······ 2만 달러는 불러야 해.’

    하지만 그가 판단하기에 레모노의 송곳니가 가진 가치는 만 달러에도 못 미친다. 그건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나중에 준비되면 다시 얘기하도록 하죠.”

    강하진은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밖으로 나가는 강하진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 * *

    강하진은 찻집에서 나와 던전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재미있네.’

    오늘 모인 자들 중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강하진이 지창기를 처리한 다음, 두 번째 타겟으로 염두에 둔 놈과 관계된 자였다.

    강하진의 두 번째 목표는 조원영, 제영 그룹의 후계자였다.

    아직까지는 재계 순위가 그리 높지 않지만, 향후 던전 사업이 크게 흥하면서 한국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재벌로 올라서는 곳이 바로 제영 그룹이었다.

    제영 그룹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 건 포션 사업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직전에 계단이 되어준 사업이 있는데, 그게 바로 강화석 사업이었다.

    ‘정말 재미있네.’

    조원영이 여기에 관여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강하진이 아는 제영 그룹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놈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조원영 역시 마찬가지였고.

    ‘과연 어떻게 나오려나······.’

    강하진은 되도록 빨리 감지에 관한 스킬이나 아이템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보 사냥꾼이 필요해.’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김지혜를 끌어들인 것이다.

    아직까지는 믿을 만했지만, 그래도 안심해선 안 된다. 강하진은 언제나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행동했다.

    던전 입구에 거의 도착했을 때, 찻집에서 나온 자들이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강하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던전에서 나갔다.

    던전 밖에도 저들의 일당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던전 안에서 밖으로 연락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리 정해진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의 선택은 미행이었다.

    미행하는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니고 저렇게 우르르 움직이니 미행이라는 의미가 사라져 버렸다.

    강하진은 잠시 그렇게 미행하는 자들을 끌고 다니다가 근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제법 큰 아파트 단지는 아무래도 순간적으로 몸을 가릴 곳이 많다.

    강하진은 뒤에 미행을 달고 아파트 건물 하나를 끼고 살짝 돌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여 달렸다.

    현재 강하진의 레벨은 무려 136이었다. 힘, 민첩 체력이 100을 훌쩍 넘겼다.

    레벨은 136이지만, 기본 스탯만으로도 잠재력 높은 200레벨 각성자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런 강하진이 마음먹고 달리니 순간 가속도가 엄청났다.

    순식간에 건물 두 개를 지나쳐 옆으로 돌았다. 그리고 미행하는 자들의 동선과 겹치지 않는 방향으로 달려 단지를 둘러싼 담장을 넘었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자세를 살짝 낮춰 낮은 담장 위로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서 빠르게 달렸다.

    뒤늦게 강하진을 놓친 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찾았지만, 그때는 이미 강하진이 그곳을 떠난 뒤였다.

    * * *

    정아연은 전화를 끊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어!”

    사실 상부에 보고를 하고 제안을 할 때, 좀 조마조마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을 하면서도 그랬다.

    솔직히 A-마켓은 연구보다는 판매에 훨씬 집중하는 사업체다.

    연구는 다른 기업이나 정부 연구소에서 진행하고, A-마켓은 그 결과만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세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거대하고 정교한 유통망과 던전 등장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빠르게 쌓아온 막대한 물량은 대체가 불가능했으니까.

    A-마켓 이사회에서는 정아연의 제안을 굉장히 빠르게 받아들였다.

    게다가 정아연이 강화석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었다.

    “당연한 결과이긴 해도 기분은 정말 좋네.”

    가슴이 두근거렸다.

    강화석 연구를 성공하려면 강화석의 주재료가 되는 레모노의 송곳니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A-마켓은 자체적으로 연구하겠다는 결정만 내리면 그걸 거의 유일하게 조달할 수 있는 창구를 얻게 된다.

    그러니 받아들이지 않는 게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렇게 해서 연구를 성공시키면, A-마켓은 강화석을 제작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

    강화석의 독점, 이 얼마나 달콤한 단어란 말인가.

    “충분해.”

    일단 지난번에 강하진이 판매한 천 개의 송곳니가 세계 곳곳의 연구기관으로 흩어졌다.

    그곳의 주요 연구원들부터 섭외해야 한다.

    “그 전에 연구실부터 갖춰야지.”

    정아연은 튼튼한 강철 상자에 가득 담겨 있는 레모노의 송곳니를 가만히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바로 일을 시작해 빠르게 모든 준비를 갖췄다.

    연구원 섭외도 어렵지 않았다. 각 연구소에서 지금까지 연구한 결과를 얻어내는 것도 성공했다.

    A-마켓은 완벽한 도덕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었다. 오히려 도덕과 좀 더 거리가 먼 쪽에 가까웠다.

    그런 그들에게 연구결과 빼돌리기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걸 모두 통합해 A-마켓의 연구소에서 새로 연구를 시작했다.

    A-마켓이 작정하고 돈과 자원을 쏟아 넣자, 엄청난 속도로 결과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시제품이 나왔다.

    * * *

    거대한 회의실.

    그 회의실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원탁에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 있었다.

    그들은 A-마켓의 이사들이었다.

    오늘 강화석 시제품이 나왔다고 해서 이렇게 모인 것이다.

    원탁 중앙에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케이스 다섯 개가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고, 그 케이스 안에 반짝반짝 빛나는 손톱만 한 보석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

    “그냥 보석으로써의 가치도 상당할 것 같군요.”

    누군가의 말에 다들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여자 이사들의 눈이 특히 번득였다.

    강화석은 굉장히 신비로운 빛을 품고 있었다. 그저 단순히 한 가지 색이 아니라 수십 가지 색을 동시에, 그리고 번갈아 뿜어냈는데, 보고 있으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영혼까지 빨려 들어가는 것 같네요. 정말 아름다워요.”

    그걸 마지막으로 외형에 대한 평가는 끝났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으니까.

    “자, 다들 나눠드린 보고서부터 확인하시죠.”

    한 장의 서류에 강화석의 효능에 대한 보고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놀랍군요. 저 다섯 개의 강화석이 다 제각각이라니!”

    “결과를 제어할 수 없다는 점이 더 놀라운데요? 원하는 걸 정확히 만들어 내지 못하면 수익을 극대화 할 수 없잖습니까.”

    “아직 모든 연구가 끝난 게 아닙니다. 이제 시작이죠. 이건 고작 첫 번째 결과물일 뿐입니다. 개선의 여지가 아주 많아요.”

    여기저기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결론은 이대로 만들어 팔아선 안 된다는 거였다. 좀 더 개량이 필요했다.

    이 강화석들은 마력을 주입하면 아주 간단히 아이템에 흡수시킬 수 있었다.

    각성자 전용 장비에 이걸 쓰면 성능이 소폭 상승한다.

    하지만 강화석의 효능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 강화석들은 각성자가 가진 능력치 중 하나를 1만큼 올려준다.

    “어디까지 성능을 개선할 수 있을까요?”

    “아직 가능성이 너무 활짝 열려 있어서 정확히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다음 결과물은 이것보다 최소 10배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하더군요.”

    그 말에 한동안 회의실에 침묵이 맴돌았다.

    그들은 강화석 연구에 좀 더 투자를 집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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