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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8화 (18/200)
  • < (주)태산 >

    김지혜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유동훈의 집 근처로 커다란 트레일러 한 대가 와서 섰다.

    그곳에서 유니폼을 갖춰 입은 평범한 사내들이 나와 집안에 김지혜가 모아둔 사내들을 싹 싣고 사라졌다.

    그 모습을 유심히 확인하던 김지혜는 문득 얼마 전 있었던 강하진과의 일이 떠올랐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다짜고짜 전화해서 일 하나 해볼 생각 없느냐는 말에 처음엔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동생들을 다 고용하겠다는 말에 살짝 흔들렸고, 매월 보수로 인당 삼천만 원을 주겠다는 말에 대번에 승낙해 버렸다.

    동생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말이다.

    사실 몰릴 대로 몰린 상황이었기에 다른 걸 따질 겨를도 없었다.

    김지혜는 좀 민망했지만 한 달 치 보수를 선불로 달라고 했다. 급하게 막아야 할 돈이 있어서였다.

    강하진이 흔쾌히 돈을 보내주었고, 그때부터 부산에 와서 동생들과 유동훈의 가족을 지키기 시작했다.

    처음엔 돈 때문에 시작했지만, 이젠 굳이 돈이 아니더라도 이 가족을 반드시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말 부러운 가족이었다. 그리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예전 같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로 좋은 장비를 선물로 받았다.

    “암시장에서 일했던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김지혜는 멀어지는 트레일러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나란히 서 있던 이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뭐······ 다시 얽히고 싶지 않은 놈들이긴 하지만요.”

    “팔은 괜찮아?”

    김지혜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지영의 팔을 바라봤다.

    싸움이 제법 치열했는지라 아무 상처도 없이 끝낼 수는 없었다.

    “살짝 긁혔어요. 별 거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그나저나 이제 집 옮겨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게 안전하겠지?”

    이지영이 눈을 반짝이며 김지혜를 바라봤다.

    “전화 해봐요. 어떻게 할지 물어보면 되잖아요.”

    “안 그래도 해봤는데, 안 받아.”

    “안 받는다고요?”

    “음······ 아무래도 던전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아깝다.”

    이지영의 말에 김지혜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하진에 대해서 한 얘기라고는 암시장에서 마석을 사갔다는 얘기랑 지금 하는 일에 관한 것 외에는 없는데, 동생들이 다 이지영과 같은 상태였다.

    “아까울 거 없으니까 이만 들어가자.”

    “그 부스러기를 300만 원이나 주고 사갔는데, 아무 마음도 없으면 절대 안 그런다니까요? 게다가 한 달에 3천이나 주잖아요. 마음도 없는 사람한테 그게 가당키나 해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 한 번만 더 그 얘기하면 나 진짜 화낸다.”

    “알았어요, 알았어. 아무튼 집은 옮기는 걸로 하면 되죠? 안에 들어가서 유동훈 씨랑 의논해 봐요. 내 생각에는 부산을 뜨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김지혜도 그렇게 생각했다.

    ‘뭐······ 일단 집부터 옮기고 나중에 얘기해주면 되겠지. 혹시 모르니 문자나 하나 남기고.’

    아무리 암시장을 통해 처리를 했어도 비밀이 지켜질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분명히 알려질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서둘러야만 한다.

    * * *

    던전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물론 모든 던전의 유통기한이 똑같은 건 아니었다.

    이 유통기한이 의미를 가지려면 일단 던전에서 각성자들이 사냥을 해야 한다.

    괴물의 수를 줄여 던전이 터지지 않게 조절해야 한다.

    그렇게 던전을 유지할 수 있지만, 유통기한이 지나면 결국 던전은 사라져 버린다.

    그 유통기한은 던전 코어가 가진 에너지의 양과 던전의 규모에 따라 달라지고.

    광산 형 던전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 역시 던전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유통기한이 굉장히 길 뿐이라고 의견이 모였었다. 물론 회귀 전의 일이었다.

    현재, 던전의 유통기한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태였다. 아직 그것 말고도 다른 중요한 연구가 널려 있으니까.

    레모노의 던전은 다른 던전에 비해 유통기한이 굉장히 짧은 편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레모노의 송곳니는 굉장히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이 될 것이다.

    강하진은 레모노의 던전을 유통기한이 끝날 때까지 쪽쪽 빨아 먹었다.

    레모노가 워낙 약한 괴물이라서 레벨은 못 올렸지만, 그래도 송곳니는 제법 많이 구했다.

    물론 그래봐야 3천 개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여긴 비교적 규모가 큰 레모노 던전이었다. 보통은 던전 하나를 완벽하게 빨아 먹어도 구할 수 있는 송곳니의 수는 천 개 이하였다.

    강하진은 던전이 있던 자리를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공장에서 나갔다.

    깜깜한 밤이었다.

    불황이라서 그런지 밤에 돌아가는 공장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길은 어두웠고, 분위기는 음산했다.

    강하진은 천천히 걸어서 공단을 벗어났다. 그리고 시내로 들어가 적당한 곳에 방을 잡고 편안히 누웠다.

    그리고 그동안 밀렸다가 한꺼번에 몰아친 문자와 부재중전화 목록을 확인했다.

    대부분 스팸이었지만, 중간 중간 스팸이 아닌 번호가 섞여 있었다.

    그 정체는 문자를 확인하니 알 수 있었다.

    강하진의 정보를 알아낸 대기업, 거대 길드, 각성자 관리청의 연락이었다.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사이에 김지혜의 문자가 끼어 있었다.

    ‘응? 이사?’

    습격을 받았고, 상황은 정리했지만 장소가 노출되었으니 이사를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음 문자로 새로 이사 간 곳의 주소가 찍혀 있었다.

    강하진은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격한 놈들의 정체는 지창기 일당임이 분명했다. 아마 해피머니 쪽에서 인원을 동원했을 것이다.

    애초에 담당하고 있던 곳이 해피머니이니 해결도 그들이 하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지창기가 그냥 모든 일을 해피머니에 맡겨놓고 기다릴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틀림없이 뭔가 대비를 해두었을 것이다.

    강하진은 벌떡 일어나 다시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아공간에 넣었다.

    서둘러 숙소에서 나간 강하진은 일단 시내를 벗어나기로 하고 마침 근처에 서 있던 택시에 탔다.

    “서울 가실 수 있죠?”

    강하진의 물음에 택시기사가 반색하며 대답했다.

    “어이구, 물론입니다.”

    행여 취소라도 할까봐 택시가 빠르게 출발했다. 세부적인 목적지야 나중에 서울에 도착할 즈음 들어도 되니까.

    * * *

    지창기는 그림자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김진철이 50억 정도 손해를 본 듯합니다.”

    “뭐? 50억?”

    “마석 관련 자금을 거의 날렸습니다.”

    “어쩌다가!”

    “최근 마석 시장에 변화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손해를 봤습니다.”

    “뭘 어떻게 하면 50억이나 손해를 봐?”

    그림자는 어떤 식으로 50억을 날렸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듣고 보니 김진철이 뭘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새끼, 그런 보고는 왜 빼먹어? 그리고 그게 어떻게 50억 손실이야? 실제로는 수백억 손실이지! 그럼 전에 100억은 어떻게 마련한 거야?”

    “여기저기 빌린 모양입니다.”

    “하긴, 그때 그 새끼가 여기저기 손 벌리고 다닌 건 알지. 그게 100억이나 되는 줄은 몰랐지만.”

    “한데 빌린 곳이 좀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문제?”

    “김진철이 예전 친구들한테 손을 벌린 모양인데, 다들 우리 회사에 관심이 많은 곳 소속입니다. 일단 거성이랑 명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창기가 어이없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 나 이 새끼 진짜. 개념이 없어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거성에 손을 벌릴 생각을 해?”

    “어쩔까요?”

    “어쩌긴 뭘 어째. 김진철이 가서 당장 잡아와.”

    “그게 또 문제입니다.”

    “뭔 문제가 그렇게 많아?”

    “김진철이 죽었습니다.”

    “뭐? 죽어?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김진철이 자기 애들 싹 모아서 부산으로 간 것까지 확인했는데, 그 뒤로 종적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좀 조사를 했는데, 김진철이 죽고 그 뒤처리를 암시장에서 한 모양입니다.”

    지창기가 이를 바득 갈았다.

    “암시장? 그 개놈의 새끼들이 지금 우리 애들을 건드렸다 이거야?”

    “아닙니다. 암시장은 뒤처리만 한 거고, 아무래도 유동훈 쪽에 실력자가 붙은 모양입니다.”

    지창기는 그제야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 표정을 풀고 다시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누가 붙은 건지는 알아봤고?”

    “아직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뒤를 파보니 애초에 해피머니에 50억 손실을 안기고 유동훈을 빼돌린 것까지 전부 그놈들 짓인 것 같습니다.”

    “작정하고 작업 들어온 거였군.”

    그림자는 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런 짓을 할 놈들은 거성 밖에 없는데······ 씨발, 설마 전에 던전에 난입한 놈도 거성 쪽 아냐? 그쪽 분위기는 어때?”

    “겉으로는 평소와 똑같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려면 지원이 필요합니다.”

    “거성, 위험하지. 그리고 우리랑 밥그릇도 같고. 일단 최대한 지원해줄 테니까 제대로 파헤쳐 봐.”

    “예. 알겠습니다. 그럼 해피머니 쪽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쩌긴 뭘 어째. 김진철이 죽었다며. 확실하게 선 그어. 돈 받고 싶으면 김진철이한테 직접 받으라고 해.”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겁니다.”

    “어차피 한 번은 싸워야 돼. 그러니까 질질 끌다가 한 방에 끝내야지.”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해피머니에 얽힌 직원과 부하들 수십이 나락으로 떨어지겠지만, 지창기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흔적 안 남게 빼돌릴 수 있는 건 최대한 빼돌리고. 무슨 말인지 알지?”

    그림자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졌다.

    지창기는 새파란 독기가 일렁이는 눈으로 어금니를 꽉 물었다.

    * * *

    김지혜가 새로 구한 집 역시 부산이었다. 하지만 전에 살던 곳과는 상당히 먼 곳이었다.

    강하진은 자신이 그곳에 찾아가는 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일단 김지혜에게 모든 걸 맡겨 놓는 편이 나았다.

    생각보다 그녀의 능력이 뛰어났다. 역시 레벨은 딱지치기해서 딴 게 아니었다.

    거기에 암시장과의 인맥까지 있으니 당분간은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지창기도 당분간 그쪽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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