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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7화 (17/200)
  • < 레모노의 송곳니 2 >

    정아연은 한동안 강하진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죠?”

    “그게 중요합니까?”

    “설마 미리 알고 레모노의 송곳니를 사재기한 건······.”

    “그건 말이 안 된다는 거 아시죠?”

    “······ 알아요.”

    미래라도 읽지 않는 한, 그건 절대 미리 알 수 있을 만한 정보가 아니었다.

    애초에 계획된 연구가 아니라 우연에 의한 행운이 겹쳐서 발견되었으니 내부 정보를 빼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설마······ 예지능력 각성자?”

    강하진이 눈을 크게 뜨고 정아연을 쳐다봤다.

    “그런 스킬을 가진 각성자도 있습니까?”

    “아뇨. 제가 알기로는 없어요. 그쪽이 처음이에요.”

    강하진이 피식 웃었다.

    “제 각성 정보 다 훑어보신 거 아니었습니까?”

    정아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봐도 각성한 지 고작 두 달도 안 됐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네요.”

    “각성 전부터 이쪽에 관심이 좀 많았습니다.”

    “고작 그런 말로 설명이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강하진이 어깨를 으쓱 했다.

    “그걸 왜 내가 고민해야 합니까? 난 여기 레모노의 송곳니 천 개를 팔러 왔을 뿐입니다. 개당 20만 원에.”

    고작 2억이었다. 그 정도는 정아연의 권한으로 얼마든지 즉시 결정할 수 있었다.

    “다음에도 같은 가격에 팔아달라면 거절하실 건가요?”

    “다음엔 100만 원이 될 겁니다. 아마도.”

    “아마도?”

    “상황이 달라지면 값이 좀 더 오를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 눈독 들이는 데 많은 거 아시죠?”

    정아연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눈독 들이는 자들이 전부 정당하게 돈을 주고 그걸 사갈 거라고 믿으시는 건 아니죠? 순진하게.”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이죠.”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며 천 개의 송곳니를 테이블 위에 쏟아냈다.

    촤르륵!

    언제 꺼냈는지도 모르게 송곳니를 쏟아내자, 정아연의 눈이 커다래졌다.

    “마술도 하세요?”

    강하진은 그저 빙긋 웃었다.

    * * *

    강하진은 한강 던전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슬슬 자신에 대한 정보가 여기저기 퍼졌을 것이다. 오늘 A-마켓에 온 것은 고작 2억을 벌고자 함이 아니었다.

    이들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확보했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정아연은 강하진에게 그동안 자신이 확보한 정보들을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호의를 얻고자 하는 목적도 있지만, 미리 정보를 줘서 강하진이 어설프게 당하지 않도록 대비시키고자 한 것이다.

    정아연이 제공한 정보는 그동안 A-마켓이 구한 강하진의 모든 것이었다.

    또한 강하진의 정보를 입수한 조직들에 대한 간략한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짜 잘 털었네.”

    정아연이 건넨 파일 안에는 강하진의 개인정보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강하진은 태블릿을 통해 그걸 확인하며 혀를 내둘렀다.

    사실 레모노의 송곳니를 구입한 사람이 강하진이라는 걸 밝혀내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정보를 캐기 시작한 지도 며칠 되지 않았을 테고.

    그런데도 정보의 양과 디테일이 장난 아니었다.

    사진과 이름, 그리고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강하진이 행한 특별한 행적들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내가 이력서를 써도 이렇게는 못 쓰겠다.”

    각성자 관리청에 등록된 각성 정보도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심지어 각성자인 강하진이 볼 수 없었던 정보까지 있었다.

    이 정보가 A-마켓을 비롯해 대기업이나 거대 길드 쪽으로 싹 넘어갔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천 개의 송곳니를 20만 원에 A-마켓에 팔았다는 얘기도 함께 돌아다닐 테고.

    조만간 그 비슷한 가격에 협상하러 오는 자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강하진은 빠르게 한강에서 벗어났다.

    오늘은 처리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레모노의 송곳니를 천 개나 팔았으니 그걸 보충해야하지 않겠는가.

    강하진은 혹시 모를 미행을 주의하며 복잡한 동선으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구미였다.

    구미에 있는 공업단지 안에 있는 공장 중 하나에 던전이 숨겨져 있었다.

    아마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반 년? 아니, 다섯 달? 그 정도 후에 발견될 텐데······.’

    래모노의 송곳니가 강화석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레모노가 서식하는 던전을 찾는 열풍이 불었다.

    레모노는 비교적 약한 괴물이기에 일단 찾기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으니 각성자는 물론이고 각성자가 아닌 사람들도 던전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

    레모노의 던전은 굉장히 드물었기에 대부분은 헛수고로 끝났다.

    하지만 드물긴 해도 발견되는 던전이 분명히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구미에 있는 던전이었다.

    망해서 방치된 공장 안에 있는 던전이었는데, 그동안 발견된 모든 레모노의 던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던전이었기에 굉장히 유명했다.

    “여길 나중에 누가 차지하더라······.”

    여긴 이름 없던 각성자 하나가 차지했다. 그는 그걸로 떼돈을 벌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고스란히 제영 그룹에 갖다 바쳤다.

    그는 그렇게 해서 제영 그룹에 끼고 싶었겠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결국 사고로 죽었으니까.

    ‘그게 사고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이쪽 공단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서 제법 많은 공장이 방치되어 있었다.

    아마 여길 구입하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남은 공장도 간신히 유지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곳은 빠르게 몰락하는 법이다. 아마 던전 산업이 발전하다보면 이쪽 공단에도 관련 업체가 제법 들어오겠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공단 거리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아직 다들 일하고 있을 시간인지라 대부분 공장 안에 있었다.

    강하진은 그럼에도 되도록 사람이 안 다닐만한 길로만 이동했다.

    목적지는 금방 찾았다. 사실 실제로 온 적은 처음이었지만, 워낙 유명했기에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유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 던전을 발견한 사람이 얼마나 큰돈을 벌었는지에 대한 얘기가 전국을 넘어 세계를 들썩이게 했으니까.

    당시 그렇게 난리가 났던 것에는 기득권자들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레모노의 던전 열풍을 이어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더 많은 각성자가 나서야 하나라도 더 발견할 테니까.

    강하진은 인적 없는 공장으로 들어갔다. 건물 주변에는 쓰레기가 잔뜩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건물 입구는 잠겨 있었다. 튼튼한 쇠사슬로 손잡이를 칭칭 감아 놓았는데, 거기 달린 자물쇠도 굉장히 커서 웬만한 절단기로도 잘라내기 쉽지 않았다.

    물론 강하진에게 절단기는 필요 없었다.

    강하진은 열쇠구멍으로 마력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빙글 돌렸다.

    철컥.

    마력은 능숙하게 다룰 수만 있다면 굉장히 유용하다. 아직 이 정도로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강하진은 쇠사슬을 풀고 문을 살짝 열었다. 그리고 공장 안으로 들어간 다음, 다시 쇠사슬을 손잡이에 칭칭 감았다.

    틈이 있어서 처음처럼 단단히 묶이진 않았지만 겉으로 보기엔 거의 차이가 없을 테니 상관없었다.

    그렇게 다시 자물쇠까지 잠그고 나니, 정말로 처음과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원한다면 언제든 문을 열고 틈으로 들락거릴 수 있을 것이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야겠어.’

    아마 강하진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방을 들쑤시고 다니겠지만, 절대 찾지 못할 것이다.

    이곳 던전을 마무리하고 나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저깁니다, 형님.”

    김진철은 부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쳐다봤다. 제법 큰 단독주택이었다.

    부산에서 저 정도 집을 얻으려면 상당한 돈을 들였을 것이다.

    “돈이 어디서 나서 저런 집을 구한 거지? 설마 산 건 아니겠지?”

    “예. 알아보니 월세랍니다. 근데 아무리 월세라도 보증금이랑 매달 들어가는 돈이 상당합니다. 아무래도 스폰서 하나 제대로 문 거 같습니다.”

    “상황이 안 좋네.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봤어?”

    “알아봤는데, 별로 나오는 게 없습니다.”

    “나오는 게 없다고? 못 찾은 게 아니라?”

    “못 찾았을 수도 있는데······ 제 생각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김진철은 턱을 쓰다듬으며 멀찍이 보이는 집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지금 그들은 근처 옥탑방에서 그 집을 살펴보고 있었다. 옥탑방 쪽이 살짝 높아서 마당 정도 들여다보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놈들만 사나? 셋이 살기엔 집이 너무 큰데?”

    “웬 이상한 여자 두 명이 더 있습니다.”

    “이상한 여자?”

    “예. 예쁘장하게 생긴 애들인데 하나는 항상 집에 있고, 누가 나갈 때마다 한 명이 따라갑니다.”

    “꼭 경호원 같네.”

    “저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김진철이 피식 웃었다. 고작 경호원 두 명으로 뭘 하겠는가. 그것도 여자가.

    “그럼 지금 당장 덮쳐도 아무 문제없는 거지?”

    “일단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우리 애들은?”

    “근처에서 대기 중입니다.”

    “그럼 지금 시작해. 시간 끌 거 뭐 있어? 혹시 경호원 더 있을지 모르니까 조심하고, 일단 목표부터 확보해. 알았어?”

    “예.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형님.”

    부하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자, 김진철은 옥탑방에서 내려갔다.

    그가 목표인 유동훈의 집 앞에 도착하자,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온 사내들이 가득했다.

    인적은 별로 없었다. 아직 날이 밝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벼락처럼 치고 들어가 목표만 확보하고 몸을 뺄 것이다.

    그 사이 누가 시끄럽다고 신고를 하든 일은 다 끝난 뒤일 테니까.

    김진철이 턱짓을 하자 사내들이 우르르 담장을 넘어 들어갔다. 그들의 움직임은 민첩하고 조용했다.

    몇몇이 현관문 옆 벽에 바짝 붙었다. 그러자 김진철이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수도 검침왔습니다.”

    김진철이 능숙하게 거짓말을 했다.

    -네. 잠깐만요!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여자 한 명이 나왔다. 그러자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사내들이 현관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숨어 있던 사내들이 밖으로 나온 여자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갔다.

    담장 아래 숨어 있던 자가 나타나 대문을 열렸고, 김진철이 여유롭게 들어갔다.

    하지만 그 여유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뻐버벅!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현관 근처에 있던 사내들이 순식간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저 정도 움직임을 보여주는 걸로 봐서 각성자가 분명했다.

    “각성자다!”

    김진철의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품에서 각성자 전용 무기를 꺼냈다.

    “씨발, 그럼 안에 있는 여자도 각성자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까 들어갔던 사내들이 현관문을 통해 휙휙 날아왔다.

    마침 오늘 집에서 대기하던 사람은 김지혜였다.

    김지혜는 밖으로 나오며 날카롭게 주위를 둘러봤다.

    “많이도 몰려왔네. 지영아, 안에 들어가 있어. 애들 연락해서 부르고.”

    “네, 언니.”

    지영이라 불린 여자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관문을 쾅 닫았다.

    아직 남은 자들이 스무 명 가까이 됐다. 게다가 그들은 다들 각성자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를 들고 있었다.

    칼을 든 자도 있고, 석궁을 든 자도 있었다.

    하지만 김지혜는 전혀 위축되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팔뚝부터 손까지 빈틈없이 감싼 가죽장갑을 손으로 꽉 죄며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장비 바꿔서 테스트 해보고 싶었는데 잘 됐네.”

    그 모습을 본 김진철의 뇌리에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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