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모노의 송곳니 1 >
A-마켓이 발칵 뒤집혔다.
발단은 한국 한강 지부였다. 그곳을 방문한 손님 하나가 레모노의 송곳니를 몽땅 구입해 버린 것이다.
안 그래도 효용성이 떨어져 슬슬 폐기처분 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서 헐값에 싹 팔아 버렸다.
사실 버려도 진작 버렸어야 하는데, 공간을 많이 안 차지해서 그냥 방치해 뒀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판매를 이끌어낸 직원에게 포상금까지 지급했다.
한데 고작 한 달 사이에 상황이 180도로 달라졌다.
레모노의 송곳니에 대한 쓰임이 발견된 것이다.
딱히 그걸 연구하다 발견한 게 아니라 정말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효용성이 발견되었다.
처음엔 그 효능이 레모노의 송곳니 때문인 줄도 몰랐다.
레모노의 송곳니는 관련 실험이 몽땅 중지된 인류가 포기한 괴물의 부산물 중 하나였으니까.
레모노의 송곳니가 가진 새로운 가능성은 바로 강화였다.
아직 완벽하게 검증된 건 아니었고, 그저 가능성만 발견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제법 높았다.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해도 좋을 정도로.
게다가 강화를 적용할 수 있는 대상에 거의 제한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알아낸 바로는 그랬다.
즉, 각성자에게 강화를 적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에게 강화를 적용할 수도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저 가능성일 뿐이었지만.
대체 이런 대단한 효능이 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을까? 답은 마석에 있었다.
레모노의 송곳니를 제대로 쓰기 위해선 부스러기 마석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정확히 계산된 크기의 마석이.
그동안 아무도 레모노의 송곳니, 통칭 강화석의 효능을 밝혀내지 못한 이유는 바로 마석 때문이었다.
모든 송곳니마다 정해진 마석의 크기가 달랐고, 그저 단순한 마력을 통해서는 절대 송곳니의 효능을 끌어낼 수 없었다.
하물며 마석 부스러기는 아예 연구에서 배재된 지 오래였다. 그러니 레모노의 송곳니에 그런 획기적인 효능이 숨겨져 있다는 걸 어찌 발견하겠는가.
행운이 중첩되지 않으면 밝혀낼 수 없는 효능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게 이뤄졌고.
아직 마석의 크기를 계산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그걸 알아내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레모노의 송곳니만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면 말이다.
사방에서 미친 듯이 주문과 문의가 쏟아졌다.
하지만 A-마켓에서 대답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었다. 재고가 없다고 말이다.
그들이 다음으로 진행한 일은 레모노의 송곳니를 몽땅 쓸어간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모든 대금을 현금으로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A-마켓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사람을 찾아낼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강하진의 행방을 찾는 사이 레모노의 송곳니는 점점 가격이 올라가고 있었다.
물건은 없는데 사는 사람은 많고, 효능 또한 대단하니 가치가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 * *
김진철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원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해운대 던전을 중심으로 조용히 유동훈을 찾기 시작했다.
유동훈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의 딸인 유소희만 찾아도 된다.
그는 지금 굉장히 초조한 상태였다.
“여기서 본 거 확실해? 이거 거짓 정보에 속은 거 아냐?”
하지만 그 말을 다른 사람한테 할 수는 없었다. 그 정보를 토대로 김진철을 부산에 보낸 사람이 바로 지창기였으니까.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꼭 감춰야 할 건 최대한 가려놓고 왔지만, 뒷수습을 하려면 자신이 꼭 해피머니에 붙어 있어야 했다.
“마석 판 새끼를 잡아 족쳐야 하는데······.”
그놈을 놓친 게 제일 뼈아팠다. 그 바람에 그놈을 치러 갔던 애들만 날아갔다.
“죽었겠지? 씨발, 역시 보통 놈이 아니었어. 걔들 넷이면 웬만한 고 레벨 각성자 아니면 다 당했을 텐데.”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지만 뒤에서 기습하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리고 사람 죽여 본 경험이 없으면 아무리 대단한 각성자라고 해도 상대를 죽이는 순간 멈칫하기 마련이다. 선을 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분명히 우리랑 비슷한 일을 하는 놈일 거야. 씨발, 이거 설마 작전에 말려든 건 아니겠지?”
김진철이 그렇게 혼자 머리만 굴리고 있을 때, 부하 하나가 다급히 달려왔다.
“형님, 찾았습니다.”
김진철의 눈이 살기로 번득였다.
“찾았어?”
“예. 딸을 찾았습니다. 일단 미행 중인데, 어쩔까요? 바로 덮칠까요?”
“됐다. 그냥 잘 따라가라고 해. 한꺼번에 다 확보할 수 있는데 왜 번거롭게 처리해? 그냥 조용히 따라가. 그게 제일 빨라.”
김진철은 그때까지만 해도 금방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 * *
강하진은 한동안 아공간을 늘리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려면 일단 공간의 마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마석 광산을 통해 조달했다.
하루에 꼬박 다섯 시간을 마석 광산에 투자했다.
마석 광산이 인기 없는 이유는 각성자가 아니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있지만, 아무리 파고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복원된다는 점이 훨씬 더 컸다.
그리고 마석 광산에서 부스러기가 아닌 비교적 큰 마석을 채취하려면 굉장히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그 얘기는 깊이 파고들 수만 있다면 크기가 큰 마석과 부스러기 마석을 모두 채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강하진은 마석 광산 이용법에 대해 굉장히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광산이 복원되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복원 속도를 늦추는 건 가능했다.
그걸 이용해 제법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고, 거기서 크기가 제법 큰 공간의 마석을 구할 수 있었다.
마석 광산에서 캔 마석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공간 속성을 갖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알지 못하던 지식이었다.
당시 아공간 사업을 지배하던 기업이 그 비밀을 철저히 지킨 것이다.
“정말 대단한 놈들이야. 그놈들 소유 광산이 하나도 없었던 걸로 아는데.”
그래서 아공간과 마석 광산을 연결하지 못한 것이다. 아마 그 기업에서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명 없었으리라.
사실 돌이켜보면 속이 쓰린 일이었다. 아공간 제작 기술을 만들어낸 당사자가 바로 강하진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강하진은 그렇게 모았던 공간의 마석으로 상당히 큰 아공간을 만들었다.
사실 더 이상 큰 마석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걸 이용해 몸에 문신으로 아공간을 새겨버리는 게 최고였다.
절대 잃어버릴 일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직 그 정도 크기의 마석이 없기에 팔찌나 옷에 장착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아공간 안에 레모노의 송곳니를 분산해서 보관했다.
이제 레모노의 송곳니가 가지는 가치가 폭등했으니 조금씩 풀어서 돈으로 만들 차례였다.
아마 값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다.
‘레모노가 나오는 던전을 찾기가 어려울 테니까.’
레모노가 서식하는 던전은 던전이 나오기 시작한 초창기에 잔뜩 있었다.
그 던전은 당연히 그때 전부 정복했다. 강하진이 구입한 레모노의 송곳니도 거의 그때 나온 것을 보관하던 물량이었다.
그렇게 아공간까지 장착한 강하진은 지금 한강 던전으로 가는 중이었다.
한강 던전에 도착한 강하진은 곧장 A-마켓으로 향했다.
A-마켓은 물건을 팔기도 하지만 사기도 하니까. 다만 거기에 팔면 따라붙는 세금은 어쩔 수 없이 내야만 한다.
그래도 그렇게 얻은 돈은 합법적이다. 앞으로 그 돈을 이용해 주식을 사야하고, 무조건 크게 성공할 테니 깨끗한 돈을 써야 할 것 아니겠는가.
강하진이 A-마켓에 들어가자마자 예전 레모노의 송곳니를 팔았던 직원이 눈을 크게 뜨고는 득달같이 달려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모시겠습니다!”
직원은 다시 허리를 펴고 살짝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강하진을 바라봤다.
“원하시는 바를 말씀해 주시면 제가 신속하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물건이 없다면 최대한 빠르게 구해드리겠습니다.”
강하진이 빙긋 웃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 위에는 레모노의 송곳니가 하나 놓여 있었다.
“투자에 성공해서 투자금 좀 회수할까 해서 왔습니다.”
“아주 잘 오셨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직원이 안내한 곳은 작지만 잘 꾸며진 응접실이었다.
인테리어는 심플했지만 품격이 있었다.
직원은 강하진을 그곳으로 안내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새로운 사람이 등장했다.
“안녕하십니까, A-마켓 한강 지부를 담당하고 있는 정아연입니다.”
“지부장님이신가요?”
“아뇨. 지부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권한은 충분합니다. 때에 따라 지부장이 결정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강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A-마켓 본사에서 나온 사람이 분명했다.
아마 직위도 지부장보다 더 높을 것이다.
‘하긴, 레모노의 송곳니에 그 정도 가치는 있지.’
그녀는 미리 준비한 차를 강하진 앞에 내려놓으며 마주보고 앉았다.
“레모노의 송곳니를 187,198개나 구입한 대단한 분이 누군지 정말 궁금했는데, 오늘 그 궁금증 하나가 풀렸네요. 이렇게 젊고 잘생긴 분인 줄은 몰랐어요.”
강하진은 피식 웃었다.
“운이 좋았죠. 솔직히 이렇게 빨리 성과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몇 년은 묵혀둘 생각이었는데.”
“운도 실력 아니겠어요? 어쨌든······ 일단 거래부터 끝내죠. 개인적인 궁금증은 그 이후에 천천히 풀어보시지 않겠어요?”
정아연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빛은 살짝 달아올라 있었다. 노골적이진 않지만 분명한 유혹의 시선이었다.
“그러죠. 저도 제법 바쁜 사람이라서.”
“자, 그럼 시세부터 확인해보죠. 개당 7천 원에 사가셨죠?”
싸게 샀으니 적당한 가격만 불러도 굉장히 큰 이득을 본 듯한 생각이 들게 하려는 의도로 한 말이었다.
“현재 시세가 2만4천 원에 형성되어 있어요. 그러니······ 다 하면 45억쯤 하는군요. 대체 몇 배나 버신 거죠? 정말 대단하시네요.”
강하진이 피식 웃었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예? 장난이라니요? 전 정확한 시세를 알려드렸을 뿐인데요?”
정아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녀의 어조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정아연 씨라고 했죠?”
“네. 연락처 드릴까요? 아니면 그쪽 연락처를 주셔도 되고요.”
물론 연락처를 교환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정아연 씨 같으면 2만4천원에 이걸 넘기겠습니까?”
“안 될 건 없죠? 세 배가 넘는 차익을 얻으셨잖아요? 그 시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장담할 수 없고요. 솔직히 최근 그걸 구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언제까지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그리고 지금 사방에서 레모노의 던전을 찾고 있기도 하고요.”
강하진은 빙긋 웃었다. 레모노의 던전을 찾는 건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초기 던전이고, 난이도도 낮아서 발견하는 족족 정복했으니까.
“일단 오늘 제가 생각한 가격은 20만입니다. 그리고 딱 천 개만 팔 거고요.”
정아연이 입을 쩍 벌렸다.
“그게 말이 되는 가격이라고 생각하세요?”
개당 20만 원에 187,198개면 374억이 넘는다.
“말이 안 되죠.”
“그런데 왜 그런 가격에 파시겠다는 거죠?”
“일단 연구를 더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 물량 좀 푸는 겁니다. 솔직히 20만 원이면 말도 안 되게 싼 가격 아닙니까?”
“예에?”
“아, 설마 이 레모노의 송곳니가 어디에 쓰이는지 제가 모른다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정아연의 표정이 굳었다. 당연히 모른다고 여겼다. 그건 정말 우연히 발견된 거고, 철저히 비밀을 유지했다.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은······.
‘하아, 생각보다 많네.’
일단 힘, 권력, 돈을 가진 조직의 수장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비밀을 지키려 해도 처음 그 효과를 발견한 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걸 감추지도 않고 마구 떠벌였고. 레모노의 송곳니가 절실히 필요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하지만 그걸 일개 각성자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날 떠보는 건가?’
강하진은 정아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툭 말했다.
“강화석.”
그 말을 들은 정아연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