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정수 >
암석 구렁이는 만신창이였다. 그래도 목숨 자체는 아주 멀쩡했다. 공격을 방어하느라 힘을 대부분 소진해서 잘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강하진은 일단 탐색부터 했다. 생명의 갈구를 찾아 뽑아내야 하니까.
의외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냥 척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강렬한 이끌림이 느껴졌다. 아마 생명의 정수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감각인 모양이었다.
생명의 갈구는 암석구렁이의 목구멍 바로 아래에 있었다. 정수를 삼키면 바로 반응할 수 있는 위치였다.
꽈드득!
강하진의 손이 암석구렁이의 목을 파고들었다. 그 안에 딱 생명의 정수만 한 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그 덩어리를 꽉 쥐고 그대로 뽑아냈다.
-캬아아아아아!
지독한 상실감에 암석구렁이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지창기 일당은 이쪽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생명의 갈구는 새까만 보석이었다. 강하진은 그걸 쥔 채 그곳을 벗어났다.
그 순간 암석구렁이가 풀썩 쓰러지더니 그대로 무너졌다. 죽어버린 것이다.
강하진은 레벨이 오르는 기분을 만끽하며 더욱 빠르고 은밀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 * *
지창기는 암석도마뱀과 한창 싸우다가 갑자기 힘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레벨업?’
이건 레벨이 올랐을 때 특유의 느낌이었다.
직감적으로 암석구렁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죽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며 가슴 깊은 곳에서 상실감과 불안감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지창기는 빠르게 팀원들을 확인했다. 그들도 전부 레벨업을 한 게 분명했다.
“서둘러!”
지창기는 그렇게 외치고는 좀 무리한다 싶을 정도로 격렬하게 움직였다.
당연히 나머지 팀원들도 부상을 각오하고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암석도마뱀을 정리한 그들은 구덩이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암석구렁이는 이미 죽어서 무너진 상태였다.
“일단 밖으로 나가! 코어는 다음에 찾는다!”
코어만 파괴하지 않으면 이 던전은 계속 유지된다. 하지만 보스가 없기에 뒷일을 장담할 수 없었다.
코어와 보스는 공명한다. 그러니 보스가 없으면 코어가 자연스럽게 소멸할 가능성이 높았다.
드문 확률로 보스가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정말 드문 확률이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
보스가 없는 던전도 있는데, 그 경우는 코어가 보스의 역할까지 한다.
예전 강하진이 혼자 정복한 괴물모기 던전이 바로 그 예였다.
어쨌든 지창기는 자잘한 부상을 입은 팀원들과 함께 빠르게 던전에서 나갔다.
예의 화장실이 나타났고, 그들은 화장실에서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지창기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탄식을 흘렸다.
“하아. 나, 이거 참.”
진짜 보기 좋게 당해 버렸다. 대체 어떤 놈인지 잡히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거실은 난장판이었다. 거실에서 대기하던 그의 부하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살아있는 놈 있는지 확인해라.”
지창기의 명령에 팀원들이 빠르게 확인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나 아까 암석구렁이가 갑자기 죽은 건 누군지 모를 침입자 때문이었다. 이래서 그렇게 불안하고 상실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후우. 죽은 애들 다 던전에 넣어. 뒤처리 확실히 하고. 당분간 사냥은 없다. 그놈 누군지 찾아. 티끌만 한 흔적이라도 허투루 넘기지 말고 싹 모아. 못 찾으면 다 죽는다. 그 새끼가 감히 누굴 건드린 건지 똑똑히 알게 해줘야지. 안 그래?”
다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 * *
강하진은 최근 새로 구한 집으로 들어갔다. 일산 쪽에 마련한 집이었는데, 혹시 모를 추적에 대비해 상당히 신경 써서 얻은 집이었다.
집까지 가는 것도 굉장히 조심해서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았다.
일단 CCTV와 사람들 시선을 피하는 게 중요했는데, 사실 강하진이 별로 해보지 않은 것들인지라 그렇게 능숙하진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집에 도착한 강하진은 더 시간을 끌지 않고 거실 한가운데 앉아 아공간을 열었다.
강하진은 아공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 열매를 꺼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정수와 생명의 갈구를 합해서 만들어낸 열매였다.
[생명의 정수]
[생명의 나무가 3천 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세상의 생명력과 마력을 모아 응집한 정수. 복용시 스킬 ‘강인한 육체’를 얻을 수 있다. 봉인이 풀려 추가로 스킬 ‘공방전환’을 얻을 수 있다. 스킬이 안정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혹시 몰라서 던전 내에서 봉인을 풀었다. 혹시 환경도 영향을 미칠지 몰라서 그랬다.
[강인한 육체(P)]
[육체를 강화한다. 육체를 이용하는 모든 공격과 방어에 가중치가 추가된다. 잘 죽지 않는다. 숙련도에 따라 효율이 증가한다.]
설명은 굉장히 간단하지만, 효과가 정말 대단했다. 다만 지창기가 그러했듯이 상위로 올라가면 능력이 어중간해진다.
한데 봉인을 풀면서 추가된 스킬이 그걸 상쇄한다. 지창기는 회귀 전에 무조건 이걸 얻었어야만 했다.
[공방전환]
[공격력을 모두 방어력으로 바꿀 수 있다. 그 역도 가능하다. 단, 아이템 효과는 제외한다.]
이것 역시 설명이 단순하지만, 강인한 육체의 단점인 어중간함을 메울 수 있는 스킬이었다.
물론 리스크가 있지만, 그거야 충분한 훈련을 통해 줄여 나갈 수 있는 일이고, 무수한 전투경험이 쌓이면 리스크를 한없이 0에 수렴시킬 수도 있었다.
강하진은 그렇게 할 자신이 있었다.
“지창기 진짜 무서운 놈이 될 뻔했네.”
그가 이걸 장착했다면, 누구보다 뛰어난 딜러이자, 또 누구보다 뛰어난 탱커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무서운 스킬을 자신이 가졌다.
강하진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맴돌다가 사라졌다. 고작 이런 걸로 만족해선 안 된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리고 앞으로 상대해야 할 놈들은 지창기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놈들이었다.
“자, 그럼 그 대단한 스킬을 먹어볼까?”
강하진은 일단 마력을 차분히 안정시킨 다음 금빛 열매를 입에 넣었다.
열매는 그대로 녹아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그리고 곧장 특별한 힘으로 변환되어 온몸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정보가 떠올랐다.
[소화 진행률 3%]
‘저게 100%가 되어야 스킬이 생기는 모양이군.’
시간을 두고 살펴보니 적어도 이틀은 지나야 소화가 끝날 듯했다.
굳이 그렇게 긴 시간을 죽이면서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강하진은 최소한의 휴식만 취하고 집에서 나갔다.
아직도 할 일이 많았다.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여러 개 있었으니까.
* * *
“이야, 이걸 사는 사람이 나오긴 나오네.”
각성자 관리청 직원이 서류를 읽으며 피식 웃었다.
그가 보는 서류는 던전 판매에 관한 거였다.
던전 중에는 몇 가지 특이한 것들이 있었다.
일단 보통 던전이 있다. 안에는 괴물과 코어가 있고, 괴물을 소탕하고 코어를 부수면 던전이 사라진다.
이 던전은 각성자밖에 못 들어간다.
그리고 코어를 부숴서 공략을 완료했는데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던전이 있다.
한강 던전이 대표적이다. 그런 던전은 보통 국가에서 관리한다.
이 던전의 특징은 아무나 조건 없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개발하기도 쉽다. 중장비나 건축자재를 안으로 갖고 들어가기도 편하니까.
그리고 일반 던전인데 코어가 존재하지 않는 던전이 있었다.
여긴 각성자 밖에 못 들어가는데, 그 안에 괴물도 없다.
이런 던전은 각성자 관리청에서 각성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었다.
어차피 각성자밖에 못 들어가는데다가, 보통은 굉장히 비좁아서 개발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기껏해야 창고 정도로 쓸 수 있는데, 고작 창고로 쓰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던전 규모에 따라 판매 액수가 정해지는데 지금 관리청 직원이 보는 서류에 기록된 던전은 가장 작은 규모였고, 가격은 12억이었다.
그나마 위치가 경기도라는 점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대체 이걸 왜 산다는 거지? 아하, 마석이 출토되는 던전이군?”
직원은 피식 웃었다. 던전의 서류를 확인하니 이 던전의 주인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휘유, 이 던전 하나로 대체 돈을 얼마나 번 거야?”
일단 던전 거래는 개인대 개인으로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려면 국가의 눈을 피해 암거래를 해야 한다.
즉, 개인이 던전을 팔려면 각성자 관리청에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각성자 관리청에서 팔았던 가격에 다시 사줄 리가 없었다. 가격을 엄청나게 후려친다.
그렇게 후려쳐서 산 던전을 다시 개인에게 판매한다.
이걸 몇 번만 반복해도 수십억이 생긴다.
직원은 정보 서류를 확인한 후, 판매 서류를 따로 준비해 도장을 꽝 찍었다.
마석이 출토되는 작은 던전의 주인이 강하진으로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 *
강하진은 경기도 외곽에 세워진 창고 앞에서 각성자 관리청 직원을 만났다.
창고는 굉장히 튼튼했고, 보안도 아주 철저했다.
애초에 각성자 관리청에서 한 번 설비한 것을 주인이 바뀔 때마다 보안 설비가 추가되었기에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덕분에 강하진은 굳이 따로 돈이나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이 그냥 이 창고와 던전을 이용하기만 하면 되었다.
“자, 여기 소유권 이전 서류입니다. 제가 미리 등기소에도 등록을 해뒀으니 그냥 편하게 쓰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강하진은 서류와 창고 열쇠를 받았다. 이 근처 땅의 소유는 국가였고, 창고 건물과 그 안에 있는 던전만 강하진의 소유였다.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던전을 판매하고 싶으시면 제게 바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개인 간의 던전 거래는 불법인 거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그럼 좋은 성과 얻으시길 빕니다.”
관리청 직원은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갔다.
강하진은 촘촘한 강철기둥으로 둘러싸인 창고 주변을 먼저 둘러봤다.
일단 몇 가지 손을 좀 봐야 한다.
던전을 관리청에 되파는 놈들 심정이 과연 좋았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러니 그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려놨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강하진은 창고에 설치된 모든 것들 중 전자장비를 싹 제거했다.
어차피 24시간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잘 잠가두는 것만으로 일단은 충분했다.
차라리 다른 전자 보안 장비를 싹 제거하는 편이 나았다. 거기에 뭔가 수작을 부려놨다면, 그냥 눈 뜨고 당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전자 보안 장비를 싹 뜯어내자, 군데군데 빈 곳이 생겼다. 강하진은 그곳을 미리 준비해 간 시멘트와 철판으로 철저히 보강했다.
그렇게 창고를 싹 손본 다음에서야 던전에 들어갔다. 물론 그 전에 창고 문을 잠근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던전에 들어가니 10평쯤 되는 공간이 나타났다. 천장도 낮았다.
사방이 돌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 돌에 부스러기 마석이 섞여 있었다.
어차피 구입하기 전에 미리 확인해봤다.
앞으로 부스러기 마석이 많이 필요하게 될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해 둔 것이다.
‘유동훈이 조만간 큰 활약을 하겠지.’
회귀 전에는 지금으로부터 2년은 더 지나야 유동훈이 본격적인 활약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길어야 세 달이다.’
유동훈이 어떻게 활약을 시작했는지 알기에 강하진이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김지혜라고 했던가? 그쪽도 한 번 연락을 해봐야겠군.’
아마 분명히 이런 마석 광산을 갖고 있을 것이다. 마석 광산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리고 당장 써먹을 일도 있고.’
강하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단 창고에서 나갔다.
“그나저나······ 슬슬 레모노의 송곳니에 대한 소식이 나올 때가 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