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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4화 (14/200)
  • < 가로채기 2 >

    강하진은 거대한 나무 앞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냥 나무가 아니라 암석으로 만들어진 나무였다. 더 자세히 살피면, 원래는 그냥 나무였다가 석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던전의 환경이나 마력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아서 이렇게 변한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 나무까지는 왔는데, 여기서 어떻게 해야 스킬을 얻을 수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아니, 아예 모르는 건 아니다. 지창기가 자랑하듯 떠벌인 말이 있었으니까.

    나무열매를 먹었다고 했다. 한데 이 나무에는 열매 같은 건 없었다.

    원래는 나무였지만 그게 돌로 변했는데 거기서 열매가 열릴 리 없지 않은가.

    혹시 돌로 된 열매가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봤지만, 그런 것도 없었다.

    그저 거대한 줄기와 무수히 뻗은 가지만 있었다. 심지어 잎도 없었다.

    나무를 샅샅이 뒤졌지만 정말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강하진은 지창기가 떠들었던 말을 다시 한 번 기억에서 끄집어내 찬찬히 더듬었다.

    ‘일단 암석도마뱀이 얼마나 지독한 괴물인지 구구절절 설명했고······.’

    그다음 암석도마뱀의 약점부터 시작해 공략법을 세세히 풀어냈다. 어찌나 잘난 척이 심한지 그걸 다 들어준 사람은 강하진이 유일했다.

    회귀 전의 강하진은 팀의 조율자였고, 팀원의 얘기를 잘 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스킬을 이 나무에서 구했고, 열매를 본 순간 안 먹을 수가 없었다고도 했지.’

    뭔가에 홀린 듯이 열매를 먹었다고 했다.

    ‘그럼 열매가 열리는 조건이 따로 있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었다.

    강하진이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나무가 은은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음?”

    강하진은 깜짝 놀라 나무를 다시 올려다봤다. 분명히 나무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겉을 둘러싼 암석이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암석이 떨어져 나가자 놀랍게도 그 안에서 멀쩡한 나무가 나타났다.

    ‘분명히 안쪽까지 다 암석이었는데?’

    굳이 깨거나 잘라보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 나무는 분명히 모든 것이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력뿐 아니라 다른 힘도 움직이는 것 같아.’

    마력보다 고차원적인 힘은 아직 감지하기조차 어려웠지만, 이 정도로 격렬하게 움직이면 아무리 둔해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강하진은 왠지 그 고차원적인 힘이 자신이 앞으로 가져야 할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완벽하게 암석이 떨어져 나간 나무는 엄청난 생명력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생명력이 고차원적인 어떤 힘과 결합해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나뭇가지에 열매가 하나 열렸다.

    이 던전의 마력을 한껏 빨아들여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러니 대체 얼마나 막대한 힘이 깃들어 있겠는가.

    “저게 바로 그 열매구나. 한데 대체 왜 갑자기 나타난 거지?”

    생각해보면 지창기도 나무라고 했지 암석으로 된 나무라고 하지 않았다.

    당시 출신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뭐 하나라도 내세우고 싶어 하던 놈이 이런 대단한 광경을 감췄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니까 지창기는 이 광경을 못 본 거야. 그놈이 뭔가를 하는 와중에 조건이 맞아 떨어진 거고. 이건 나중에 발견했고.’

    이제야 아귀가 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조건이 과연 뭘까?

    -캬아아아아아!

    날카로운 괴성이 던전을 한껏 뒤흔들었다. 강하진은 저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보스였군.”

    열매의 생성 조건이 아마 보스의 출현인 모양이었다. 아니, 분명했다.

    강하진은 일단 열매를 따기 전에 엿보기로 정보부터 확인했다.

    [생명의 정수]

    [생명의 나무가 3천 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세상의 생명력과 마력을 모아 응집한 정수. 생명을 가진 존재로부터 탐욕을 이끌어낸다. 복용시 스킬 ‘강인한 육체’를 얻을 수 있다.][봉인]

    ‘강인한 육체’가 바로 지창기의 대표 스킬이었다. 그리고 그를 딜러이자 탱커로 만들어준 스킬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창기가 왜 홀린 듯이 저걸 먹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강하진도 처음 열매를 본 순간 하마터면 그냥 따먹을 뻔했으니까.

    일단 열매를 땄다. 그리고 아공간에 보관했다.

    열리지 않은 봉인이 마음에 걸렸다. 아마 지창기는 저 봉인을 해제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봉인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저건 엿보기 스킬이 없다면 알아낼 수 없는 종류의 정보니까.

    그리고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하려면 감정 스킬이 필수인데, 아직까지는 감정 스킬을 가진 사람의 수가 세계를 통틀어 스무 명 정도뿐이었다.

    게다가 복합감정 스킬이 없다면 아이템의 세부정보는 볼 수 없었다.

    ‘봉인을 어떻게 해제하지?’

    강하진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캬아아아아!

    던전의 보스가 내지르는 괴성이 굉장히 가까워졌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강하진은 일단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온몸이 암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렁이 한 마리가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 구렁이 주변에서 지창기 일당이 열심히 공격 스킬을 쓰고 있었다.

    구렁이는 그렇게 공격 스킬을 얻어맞으면서도 무작정 이동만 하고 있었다.

    목표는 생명의 나무였다.

    그리고 구렁이가 생명의 나무를 지척에 둔 순간, 갑자기 땅이 훅 무너졌다.

    꽈르릉!

    그건 생명의 나무가 준비해 놓은 함정이었다. 꽤 깊은 구덩이였고, 암석구렁이는 그 안에서 몸부림을 쳤다.

    꽈르르릉!

    물론 오랫동안 잡아놓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암석구렁이는 위로 올라올 것이고, 생명의 나무를 삼킬 것이다.

    강하진은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나서야 지창기가 어떻게 생명의 정수를 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저렇게 구렁이가 함정에 빠졌으니 생명의 정수에 홀릴 틈이 생긴 것이다.

    그걸 먹은 다음 생긴 스킬로 암석구렁이를 손쉽게 잡았을 것이고.

    하지만 이제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기회다! 제일 센 걸로 때려 박아!”

    지창기의 명령에 구덩이 안으로 강력한 스킬이 쏟아졌다.

    준비 시간이 길어서 함부로 쓸 수 없는 스킬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위력 하나는 확실했다.

    꽈과과과과광!

    강하진은 조금 더 다가가 암석구렁이의 정보를 확인했다.

    [암석구렁이]

    [암석에 묻은 마력으로 말라붙은 생명력을 보충하다 암석과 하나가 되어버린 구렁이. 항상 생명력에 목말라있다. 체내에 ‘생명의 갈구’를 품고 있다.]

    ‘생명의 갈구?’

    [생명의 갈구]

    [암석구렁이가 3천 년 동안 모은 생명에 대한 탐욕이 만들어낸 결정체. 생명의 정수에 덧씌워진 생명의 갑각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재료이다. 암석구렁이가 죽으면 사라진다.]

    ‘이거였군.’

    엿보기 스킬은 정말 대단했다. 정보를 확인하면 그 안에 있는 키워드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어쨌든 생명의 정수가 가진 봉인을 깨뜨릴 방법을 지금 발견했다.

    문제는 그러려면 저 암석구렁이가 죽기 전에 달라붙어서 그 결정체를 뽑아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히 들킬 테고.’

    그러는 사이에도 암석구렁이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워낙 크고 체력이 강해서 당분간 죽지는 않겠지만, 다시 저 구덩이를 빠져나오는 것도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 내가 변수를 만들어 줘야지.’

    강하진은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 * *

    “거의 다 됐다. 조금만 더 힘 내!”

    지창기가 그렇게 외치며 마력을 회복했다. 마력을 회복하려면 포션을 마시거나 마력이 자연스럽게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니면 마력회복 스킬을 쓰거나.

    지창기는 스킬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에 비해 마력이 회복되는 속도가 빨랐다.

    암석구렁이는 이제 곳곳이 부서지고 금이 가서 움직일 때마다 돌조각이 우수수 떨어졌다.

    마력을 회복하며 다음 스킬을 준비하던 지창기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음? 이게 무슨 소리지?”

    “소리 말입니까? 전 안 들리는데 말입니다.”

    옆에서 같이 마력을 회복하고 있던 부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지창기를 바라봤다.

    “아니, 잘 들어봐.”

    귀를 기울이자 부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돌 굴리는 소리 같습니다.”

    구구구구구.

    “확실히······.”

    지창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표정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런 씨발!”

    지창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소리의 정체를 깨달은 것이다.

    “도마뱀이다!”

    “예? 이 근처에 있는 도마뱀들은 싹 정리하지 않았습니까?”

    정리했다. 하지만 이 던전의 모든 도마뱀을 처리한 건 아니었다.

    아직 곳곳에 숨어 있는 놈들까지 하면 수가 제법 될 것이다.

    원래 계획은 모든 도마뱀을 싹 정리한 다음 차근차근 보스를 공략하려고 했는데, 오늘 갑자기 보스가 깨어나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씨발, 더럽게 꼬이네. 굿이라도 해야 하나? 요즘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어?”

    “어쩝니까, 형님?”

    “어쩌긴 뭘 어째! 저 구렁이는 일단 냅두고 도마뱀부터 정리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형님.”

    달려오는 암석도마뱀의 수는 일곱 마리였다. 쉽지 않은 수였지만, 처리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약점은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자,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서두를 필요 없으니까 안전하게 가자, 알지?”

    “예, 형님!”

    지창기는 부하들의 대답을 들으며 몸을 날렸다.

    일단 가장 앞에 달려온 암석 도마뱀의 사각으로 몸을 비틀어 접근하며 칼을 찍었다.

    꽈득!

    도마뱀의 옆구리가 터져 나갔다. 그러자 도마뱀이 시각 정보를 모으기 위해 혓바닥을 내밀었다.

    지창기에게 바짝 붙어서 이동하던 사내가 그 혓바닥을 싹둑 잘라 버렸다.

    암석도마뱀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각 정보를 모으지 못하는 암석도마뱀을 상대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다른 도마뱀들이 몰려왔다.

    지창기를 비롯한 그의 팀원들은 다가오는 싸움에 제대로 집중했다.

    그리고 그러느라 미처 보지 못했다.

    강하진이 미끄러지듯 암석구렁이가 있는 구덩이로 들어가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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