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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3화 (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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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좀 이상한 얘기가 들리던데······.”

    지창기가 테이블에 놓인 현금 100억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근처에 있던 덩치 한 명이 100억을 가방에 차곡차곡 담은 다음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지창기 앞에 긴장한 자세로 앉아있는 김진철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쨌든 저지른 일이 있었으니까.

    “너 사고 쳤냐?”

    “예? 사, 사고라니요? 무, 무슨 말씀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형님. 하하하하하.”

    김진철이 억지로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사고도 안 친 놈이 왜 딴 애들한테 손을 벌리고 다녀? 혼자 수습하기 어려우면 나한테 도와달라고 해. 대통령이나 장관을 쑤신 거 아니면 내가 다 해결해줄 수 있으니까. 아, 재벌도 빼고. 그놈들은 상대하기가 영 껄끄러워서.”

    그렇게 말하는 지창기의 눈동자가 뱀처럼 번들거렸다. 김진철은 그걸 본 것만으로도 몸이 더욱 굳는 것 같았다.

    “아, 아닙니다. 정말 별 일 없습니다.”

    지창기는 잠시 김진철을 노려보다가 피식 웃었다.

    “뭐, 혼자 해결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든가. 나중에라도 힘에 부치면 바로 말해. 일 더 키우지 말고. 오케이?”

    “예. 며, 명심하겠습니다.”

    김진철은 대체 지창기가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몰라 속이 썩어 들어갔다.

    “그나저나 유동훈은 아직 못 찾았고?”

    김진철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형님!”

    지창기가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됐고, 부산 쪽에서 유동훈 봤다는 얘기가 있으니까 그리로 가봐.”

    “부, 부산 말입니까?”

    “그래. 부산 해운대 던전 알지?”

    해운대 던전은 한강 던전과 마찬가지로 공개된 관광 던전이었다. 또한 그 안에 A-마켓을 비롯해 암시장까지 있었다.

    “해운대 던전 안에 있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냐? 그 근처에서 그놈 봤다는 얘기가 있어. 거길 중심으로 찾아보면 될 거다,”

    “예. 바로 애들 보내겠습니다.”

    “애들 보내지 말고 직접 가. 애들 싹 데리고 가서 부산 바닥을 샅샅이 훑으란 말이야. 내 말 무슨 소린지 알아들어?”

    “아, 알겠습니다, 형님.”

    “지금까지 우리 손해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여기서 더 잃어버리면 내가 정말 돌아버릴 거 같거든? 그러니까 잘하자. 알겠냐, 진철아?”

    “예. 저,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지창기가 손을 휘휘 내젓자 김진철이 조심스럽게 일어나 사무실에서 나갔다.

    지창기는 김진철이 사라지자마자 손을 들어 까딱였다. 마치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이리로 다가오라고 하는 듯했다.

    한데 놀랍게도 그 순간 사무실 구석 그림자 속에서 시커먼 형체가 쑥쑥 자라나더니 사람이 되었다.

    그가 지창기 옆으로 다가가 공손히 서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가서 저 새끼 뒤를 철저하게 캐. 분명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으니까. 그리고 저 새끼 엿 먹인 놈, 누군지 알아내고. 곱게 죽이면 안 되니까 그냥 알아보기만 해.”

    사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시 바닥으로 스르륵 스며들었다.

    지창기는 담배 하나를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후우. 슬슬······ 사냥 갈 시간이군. 오늘은 그 던전, 애들을 싹 쓸어 넣어서라도 꼭 박살을 내야겠어. 왠지······ 아주 끝내주는 게 나올 것 같단 말이야.”

    * * *

    강하진은 부산에 내려가 유동훈을 만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오늘 중으로 반드시 처리해야만 할 일이 있었다.

    아직 각성자 관리청에 등록되지 않은 미공개 던전에 가야 한다.

    사실 아직 미공개 던전이 굉장히 많은 시기였다.

    힘 있는 길드나 대기업이 굳이 각성자 관리청에 던전을 등록해서 세금과 수수료를 떼거나 다른 각성자가 던전에 들락거리는 걸 허용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던전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 중에 지창기가 관리하는 미공개 던전이 하나 있었다.

    강하진의 목표는 바로 거기였다.

    지창기는 회귀 전에 강하진의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딜러이자 탱커였다.

    어떻게 보면 어중간하다고 할 수 있었다. 딜러라기에는 데미지가 좀 모자라고, 탱커라기에는 몸이 좀 약했다.

    하지만 그거야 회귀 전 강하진의 팀이 세계 최고의 팀이었을 정도로 강력해서 그런 거고, 다른 어떤 팀에 가도 딜러든 탱커든 거뜬히 해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강하진의 팀에서 지창기의 역할은 딜러나 힐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거나 공격을 보조하거나 하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윤활유 같은 역할이었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팀이 삐걱거려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지창기가 팀의 윤활유가 되게 해준 스킬이 바로 그 미공개 던전에 숨겨져 있었다.

    강하진이 하려는 건 아주 간단했다.

    던전에 몰래 들어가서 보상만 쏙 빼먹고 다시 나오는 것이었다.

    아마 지창기는 그런 스킬이 그 던전에 원래 있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건 지창기의 미래였다.

    지금 강하진은 그놈의 미래를 빼앗으러 가는 중이었다.

    지창기가 관리하는 미공개 던전은 주택가에 있었다.

    정말 우연히 발견한 게, 마침 그 집에 채권추심을 하러 갔다가 난동을 부리는 와중에 발견한 던전이었다.

    입구가 워낙 좁아서 처음에는 별 거 아닌 던전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던전 규모가 크고 나타나는 괴물들의 수준도 높았다.

    그래서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강하진은 던전이 있는 집에 도착해 주변을 몇 바퀴 돌아봤다.

    집 안에서 던전을 지키고 있는 각성자는 없었다. 대신 유동훈이 만든 장비로 무장한 지창기의 부하들이 잔뜩 있었다.

    물론 겉에서 보기엔 수상한 점이 전혀 없었다. 담장 아래에 바짝 붙어서 앉아 있거나, 대부분 집안에 있었으니까.

    작은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냥 보통 한 가구가 사는 집이니 눈을 피해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강하진은 굳이 눈을 피해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지창기가 언제 오느냐가 문제인데······.’

    지창기가 왔을 때, 부하들이 쓰러져 있으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주변을 꽉 틀어막고 기다릴 것이다.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 당장 지창기 일당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창기 일당은 레벨도 높고, 좋은 스킬을 잘 키워왔으며, 뛰어난 장비로 무장하고 있으니까.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지창기 팀은 열다섯 명이나 된다.

    ‘앞으로는 이런 정보를 확인하고 적을 감시할 사람들도 필요해.’

    지금이야 어찌어찌 한다고 해도 나중에 상대할 놈들은 주먹구구식으로 상대할 수 없는 대단한 놈들이다.

    강하진은 고민하는 대신 움직였다.

    일단 담장을 뛰어넘었다. 그와 동시에 바로 아래에 앉아 있던 놈의 뒷목을 발끝으로 꽉 찍었다.

    쩍! 털썩!

    그대로 쓰러진 놈을 시야에서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고 빠르게 현관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던전의 위치는 화장실. 거기까지 들키지 않고 가면 베스트였다.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않은가.

    현관으로 들어가자마자 한 놈과 눈이 마주쳤다.

    뻑!

    강하진의 손에서 날아간 얼음 덩어리가 그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신음도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강하진은 빠르게 달려가 쓰러지지 않게 붙잡았다. 그리고 그놈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안, 욕조를 뜯어낸 곳에 검은 포탈 하나가 서 있었다.

    강하진은 쓰러진 사내를 들고 포탈로 들어갔다.

    * * *

    포탈을 타고 던전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암석지대가 나타났다.

    집채보다 훨씬 큰 암석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강하진은 이 던전에서 어떤 괴물이 나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 지창기가 틈만 나면 자랑질을 해댄 통에 이 던전에 대해 모르는 동료가 없었으니까.

    이 던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괴물은 암석도마뱀이었다.

    돌로 이루어진 도마뱀인데, 크기가 빌딩 만하다고 했다.

    사실 강하진도 아직 암석도마뱀을 만난 적이 없어서 지창기의 말대로 진짜 빌딩만 한 암석도마뱀이 나타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암석도마뱀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암석도마뱀의 약점은 혓바닥이었다.

    암석도마뱀은 눈이 달려 있긴 해도 그걸로 볼 수는 없다. 혓바닥에 시각을 대신하는 감각기관이 달려 있어서 혀를 내밀 때마다 주변 상황을 살핀다고 했다.

    ‘이거 알아내느라 정말 고생했다고 했는데.’

    강하진은 그때의 일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지창기는 나중에 또 암석도마뱀을 상대할 일이 있을 거라 여겨서 정말 정성들여 공략법을 찾아내고 검증까지 했다고 한다.

    한데 암석도마뱀은 딱 여기서만 나오는 괴물이었다.

    그리고 다른 특별한 스킬을 얻은 각성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들이 스킬을 얻은 던전은 유니크했다. 다시 나타나지도 않고, 그 안에 등장한 괴물도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스킬을 위해 존재하는 괴물인 것처럼.

    어쨌든 암석도마뱀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조용히 스킬만 빼먹고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무리 강하진이 뛰어난 스킬을 보유하고 레벨을 어느 정도 올리긴 했지만, 지창기 팀이 몽땅 달려들어야 간신히 처리할 수 있는 괴물을 혼자 상대하는 건 어려웠다.

    ‘일단······ 나무부터 찾아야겠군.

    그 스킬은 이 암석지대 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나무 근처에서 얻었다고 했다.

    강하진은 나무를 찾기 위해 마력과 기척을 갈무리하고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지창기는 오늘따라 계속 마음이 안정되질 않았다. 그러다보니 괜히 신경질을 부리고 짜증을 냈다.

    “빨리 빨리 안 움직여? 내가 오라고한 지가 언제인데 이제 와? 요즘 너무 설렁설렁 해서 감이 떨어졌지? 응? 내가 한 번 제대로 지랄을 떨어 봐?”

    “죄송합니다, 형님. 갑자기 차가 너무 막혀서······.”

    변명하지 말라고 소리치려던 지창기는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사냥 가기 전에 이래봐야 손해다. 던전에 들어가서 손발 안 맞으면 진짜 곤란해지니까.

    더구나 오늘 상대해야할 놈은 보통이 아니다. 각오를 단단히 다져도 모자란데 분란을 안고 갈 수는 없었다.

    “후우. 아니다. 아무래도 오늘 상대할 놈이 위험해서 좀 심란한 모양이다. 누구 하나라도 잘못되면 큰일 아니냐. 그러니 너희가 이해 좀 해라.”

    “아닙니다, 형님.”

    지창기는 부하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가끔은 이렇게 당근을 던져줘야 말을 잘 듣는다.

    “그럼 마음 단단히 먹고 가자. 오늘 일 한 번 쳐보자. 왠지 대박 한 번 터트릴 것 같으니까.”

    “예, 형님.”

    지창기는 부하이자 팀원인 사내 일곱 명을 데리고 미공개 던전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들은 익숙하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열 번도 넘게 왔기에 이젠 자기 집처럼 익숙했다.

    몇몇 사내들이 나와 인사를 했고, 지창기는 고개만 끄덕여주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강하진이 워낙 깔끔하게 일을 처리했기에 침입의 흔적이나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두 사람이 사라지긴 했지만, 지창기가 신경을 쓸 만한 일은 아니었기에 그것도 알지 못했다.

    지창기는 팀을 데리고 던전으로 들어갔다.

    지창기 일행이 사라지자, 남은 태산의 조직원들 중 하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명철이가 안 보이는 거 같은데? 어디 갔냐?”

    “모르겠습니다, 형님. 편의점 간 거 아니겠습니까?”

    “하, 이 새끼 꼭 그러더라. 말 좀 하고 다니라니까. 알았다. 가서 일들 봐. 큰형님 여기 들어가면 최소 이틀은 있으니까 그때까지는 평소처럼 하면 돼. 알지?”

    “예, 형님.”

    다들 대답하고 흩어졌다.

    그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난 건, 몇 시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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