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10화 (10/200)
  • < 과거의 악연, 첫 번째 >

    이동철은 깨질 것 같은 뒤통수를 문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뭐야, 어떤 새끼가······!”

    이동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제야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끄응.”

    뒤통수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이동철은 주위를 둘러봤다. 동료들이 자신과 똑같은 꼴로 쓰러져 있었다.

    손목과 발목이 겹쳐진 채 꽁꽁 묶여 있었다. 이런 식이면 절대 움직이지 못한다.

    “야야, 일어나 봐. 일어나라고!”

    이동철은 나직한 목소리로 소리쳐서 동료들을 깨웠다. 들키면 곤란하니 일단 다 일어난 다음 어떻게든 묶인 끈을 풀고 도망쳐야 했다.

    신음소리와 함께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딱 그 순간 강하진이 들어왔다.

    “이런 젠장.”

    이동철이 짜증을 확 냈다. 왠지 저놈이 숨어서 여길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타이밍 좋게 나타날 리 없지 않은가.

    이동철은 일단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 말을 많이 하는 건 좋지 않다. 최대한 상대를 도발하지 말아야 하고, 최대한 이쪽의 정보를 아껴야 한다.

    “어차피 너희는 죽는다.”

    강하진이 선언하듯 말했다. 이동철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놀란 척은 해줘야 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강하진을 바라봤다.

    “안 믿는군.”

    강하진은 담담하게 말하며 이동철 일행 앞에 그들이 쓰던 무기를 하나씩 내려놨다.

    “이걸 만든 사람을 찾고 있다.”

    이동철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암시장에서 구입한 겁니다.”

    강하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한데 그 미소가 왠지 섬뜩했다. 이동철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너희가 그렇게 알고 있다면 그런 거겠지.”

    지나칠 정도로 순순히 인정을 해 버리자 오히려 지독한 위화감이 들었다.

    “그럼 그걸 알 만한 사람이 누군지 말해. 한 사람당······ 두 명씩만 얘기하면 되겠군. 이름, 연락처, 주소. 그 사람과 관계된 건 뭐든 다 말하면 돼.”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녹음을 시작했다.

    눈치 빠른 사내 한 명이 얼른 말했다.

    “조동기! 010-####-1346! 주소는 모릅니다! 부천에 있는 로즈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임천구!”

    “기, 김영한! 010······!”

    여기저기서 중구난방으로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걸 듣는 이동철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멍청한 새끼들!”

    이런다고 살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저렇게 정보를 술술 불어 버리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낮아진다.

    이동철은 강하진의 담담한 눈을 보고 확신했다. 이놈은 말도 못할 수라장을 겪은 놈이라고.

    “너도 아는 걸 말해주는 게 좋을 거야. 편히 죽고 싶으면.”

    강하진은 이동철의 목 아래를 툭 때렸다. 마력이 훅 들어가 그의 성대를 마비시켰다. 이제 그는 마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을 것이다. 바람 빠지는 소리 말고는.

    “잠깐 맛만 보여줄게.”

    강하진이 이동철의 뒷목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리고 스킬 하나를 발동했다.

    아니, 하나가 아니라 세 개를 동시에 발동했다.

    이동철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리고 눈가의 실핏줄이 툭툭 터져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온몸의 핏줄이 보기 흉하게 돋아났고, 그의 얼굴로 새빨갛게 피가 몰렸다.

    스킬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고통을 참느라 그렇게 된 거였다.

    정확히 15초 후, 스킬 효과가 끝났다.

    잠시 시간을 두고 이동철이 호흡을 고르게 한 다음, 다시 목의 마력을 흩어 소리를 돌려줬다.

    “워, 원하는 게 뭡니까?”

    이동철은 다신 이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편히 죽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이제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마 아까 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죽여 달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런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낫다.

    그리고 그런 이동철의 반응은 나머지 사내들에게 훨씬 더 깊은 공포를 심어주었다.

    “유동훈, 알지?”

    이동철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쓴 각성자 사냥용 무기를 만든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놈이 어디 있는지는 모릅니다!”

    강하진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자 이동철이 화들짝 놀라며 얼은 말을 쏟아냈다.

    “조영우! 조영우가 알 겁니다!”

    강하진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맴돌았다. 드디어 귀에 익은 이름 하나가 나왔다.

    이들은 전부 해피머니와 관계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해피머니는 지창기가 거느린 하부조직 중 하나였다.

    지창기는 나중에 강하진의 뒤통수를 치는 여섯 사람 중 하나였다.

    강하진이 첫 번째 타겟으로 지창기를 선택한 건, 지금 유일하게 건드릴 수 있는 자였기 때문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을 상대하려면 아직 멀었다. 다만 미리 지창기를 잘라내면 시간을 좀 더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동철이 말한 조영우는 지창기의 오른팔이었던 놈이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나중에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조영우, 지금 어디 있어?”

    이동철은 강하진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보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해피머니는 이쯤에서 문 닫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유동훈은 각성자였다. 하지만 보유한 스킬이 전투와는 거리가 멀었다.

    [손재주(P)]

    [제작과 관련된 모든 일에 재능 가중치가 붙는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제작 속도와 제작 기술이 높아진다.]

    [부여(A)]

    [특별한 힘을 제작품에 심는다. 기본은 마력이며,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힘의 종류가 늘어나고 방식도 다양해진다.]

    각성한 지는 그래 오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던전과 각성자가 중요해진 시대에 이런 스킬을 잘 키우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자명했다.

    문제는 각성하기 전에 그가 갖고 있던 막대한 빚이었다.

    원금도 제법 컸지만, 그 원금을 빌린 업체가 문제였다. 해피머니라는 대부업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살인적인 이자가 유동훈의 목을 옥죄어왔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으며 그들을 위해 제작 스킬을 연마하고, 또 마력이 깃든 무기를 만들고 있었다.

    “후우.”

    유동훈은 손에 든 길쭉한 검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간신히 만들었다. 요즘 왠지 마력 부여가 자꾸 실패해서 검을 몇 개나 날려 먹었는지 모른다.

    그 날려 먹은 검은 고스란히 손해로 쌓였다. 아마 이 검의 대가도 제대로 받기 어려울 것이다.

    유동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래서야 언제 빚을 다 갚지?”

    빚만 문제가 아니었다. 돈이 필요했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으니까.

    이 검이면 이번 달 이자와 약간의 원금을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소용이 없다. 필요한 돈을 또 빌려야 할 테니까.

    결국 빚이 계속 늘어나는 개미지옥에 걸려 버렸다.

    “그나저나 이놈들 왜 아무도 안 오는 거지?”

    장비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 바로 작업실로 들어와서 가져가 버리는데, 오늘따라 조용하기만 했다.

    결국 유동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이 검을 그놈들에게 넘겨야 이자도 해결하고 빚고 차감할 것 아닌가.

    “이번엔 무슨 수를 써서든 생활비라도 받아내야지. 최소한······ 소희 알바는 그만두게 해야 할 텐데······.”

    유소희는 유동훈의 딸이었다. 그나마 딸이 엇나가지 않고 반듯하게 커 준 것이 정말 고마웠다.

    유동훈은 문을 열고 작업실에서 나갔다.

    “다 끝났는데······.”

    말을 제대로 끝맺지도 못한 유동훈은 눈을 꿈뻑꿈뻑하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고민했다.

    직업실을 지키던 해피머니 놈들이 지금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서서 어질러진 사무실 공간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 미안합니다. 실랑이가 좀 있어서.”

    “시, 실랑이요?”

    실랑이라는 말에 유동훈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사무실 안을 다시 둘러봤다.

    사무실 집기가 어질러져 있었고, 몇 개는 부서진 것도 있었다.

    그리고 작은 흔적이긴 하지만 핏자국이 분명한 것도 몇 개 보였다.

    유동훈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누, 누구십니까?”

    남자가 제법 밝은 표정으로 유동훈이 손에 든 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 검, 잠시 봐도 되겠습니까?”

    “예? 아······ 예. 뭐······ 그러시죠.”

    유동훈은 머뭇거렸지만, 무슨 일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을 빼앗기는 게 낫다고 판단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검을 내밀었다.

    강하진은 그 검을 받아 정보를 확인했다. 원래는 감정 스킬이 필요하지만 엿보기 스킬이 있기에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다.

    [유동훈이 제작한 검]

    [대장장이 유동훈이 집중해서 제작한 검. 기본 공격에 마력 공격력이 약간 추가된다. 스킬 공격의 위력을 0.1% 높여준다.]

    정보를 확인한 강하진이 다시 검을 돌려주며 말했다.

    “실력 좋네요.”

    이동철 일당으로부터 빼앗은 무기들은 전부 추가 마력 공격력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스킬 공격에 대한 옵션은 없었다.

    실력이 더 늘어난 모양이었다.

    유동훈은 검을 빼앗길 줄 알았는데 그걸 다시 돌려받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워낙 나쁜 놈들만 계속 만나서 이런 경험 자체가 생소했다.

    “유동훈 씨, 맞죠?”

    유동훈은 긴장한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네. 맞습니다. 한데 누구신지······.”

    아무리 봐도 해피머니의 직원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조직 간의 항쟁에 잘못 얽혀 들어가면 결코 좋은 꼴 못 보니까.

    “유동훈 씨랑 계약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유동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이미 여기 묶인 몸입니다.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강하진이 그런 유동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계속 이렇게 피 빨리면서 살 겁니까? 빚은 딸한테 물려주고?”

    보통 이런 얘기를 들으면 발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동훈은 그러지 않았다. 더욱 위축되고 쪼그라든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 어쩝니까······ 그게 현실인데. 당장 손 뻗지 않으면 아내가 죽습니다. 그나마 연명이라도 하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유동훈의 아내는 말기 암이었다. 발병 위치도 안 좋고, 전이도 많이 되어서 수술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을 연명하는 건 가능했다. 던전에서 나오는 치료약이 있으니까.

    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해주진 못하지만 생명력을 불어넣고 병의 진행을 막을 수는 있었다.

    이제 좀 더 돈을 벌어 병원에서 병행 치료를 하면 어떻게든 소생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있었다. 일단은 그랬다.

    “아내 분, 제가 살려드리죠.”

    “예?”

    유동훈이 고개를 번쩍 들고 강하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자조적인 표정으로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그런 말로 접근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 줄 아십니까? 그 중에서 제대로 치료한 놈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돈만 날렸죠.”

    “치료에는 돈이 안 들어갑니다. 대신 치료하면 나랑 계약만 하시면 됩니다. 어때요? 밑져야 본전인데 한 번 해보시는 건.”

    “어······ 그, 그게 정말입니까?”

    강하진이 씨익 웃었다.

    “사람이 평생 살면서 세 번의 행운이 찾아온다고 하죠? 아마 지금 이게 그 중 하나일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유동훈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1